“An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 – Arthur Clarke
“모든 진보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 아서 클라크
2014
오늘 블로그의 첫 배경 사진은 영화 프로즌의 여왕 <엘사>다. 2014년의 첫 글 치고는 다소 뜬금없어 보이지만, 오늘은 영화에서 느낀 비전(꿈)에 관한 내 감정을 일기처럼 표현해 보고 싶었다. 이런 글은 영화를 아직 못 본 분들껜 공감이 어려울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워드프레스의 Matt Mullenweg 가 이야기 했듯 블로그의 제1 가치는 미래에 다시 이 글을 읽을 내 자신이라 생각하고 ([1]) 그냥 표현해보기로 맘 먹었다.
2014를 맞이한 지금 이순간, 나는 참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이다. 행복한 이유는 예전의 블로그 <비전: 눈으로 보는 행위> [2] 에서 이야기 했듯 대학 시절에 가졌던 꿈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실력 쟁쟁한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삼줄 추리닝에 샌달 신고 다니며 신나게 코딩하는 것은 지금 매일 매일의 생활이 됐다. 예쁘고 착한 아내와 두 딸이 주는 가정에서의 안정감과 기쁨 역시 참 좋다. 집에서 하고 싶은 코딩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부족하지 않다. 지금처럼만 늙어간다면 인생이 아마 썩 괜찮을 것 같다….하지만,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 마음속 한 공간엔 감정으로는 느껴지는데 말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 블랙홀같은 공간이 있다. 불행함으로 표현한 그 공간에 비어있는 것은 <비전><꿈>이다. 10대때는 좋은 대학을 가는게 꿈이었고, 20대때는 미국 학교에서 공부하고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되는게 꿈이었는데, 이제 30대는 절반이 이미 지났는데 무슨 꿈을 꾸어야 하는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끝없이 전해지는 SW 창업자들의 성공 스토리는 운좋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비전은 단어 뜻 그대로 무엇인가를 <눈으로 목격>하는 것이다. 10대때는 활기넘치는 대학생들, 20대에는 자유분방한 미국 프로그래머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이번에는 뜻하지않게 딸 아이들과 영화 <프로즌>을 보며 또 한번 <비전>이 주는 강렬한 비쥬얼 효과를 느꼈다. 내가 “<프로즌>의 주인공같은 여왕이 되리라”고 마음먹은 것은 물론 아니다. 애니메이션 곳곳에 드러나있는 은유들 속에서, 프로그래머로서 내가 꿈꿔야 하는 것들을 찾았다는 뜻이다. 사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영화가 특별하게 느껴졌는지 알지 못했다. 일주일 내내 가슴이 벅찬 느낌, 그 이유를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천천히 내용을 곱씹어보고 YouTube 영상을 여러번 보고 나서야 <프로즌>이 내 머릿속에 어렴풋이 스케치해뒀던 다음 단계의 <비전>을 강력하게 시각화했음을 알았다.
프로즌
프로즌의 주인공 <엘사>는 손에 닿는 모든것을 얼게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갖고 태어났다. 마법은 아름다운 눈송이를 만들기도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사람들을 다치게하는 저주가 되기 때문에 <엘사>는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장갑을 손에 끼우고 살아야만 했다. <엘사>는 자신의 여왕 즉위식 날 처음으로 바깥 세상에 나와 조심스레 왕관을 받는다. 그러나 <엘사>의 마음속 깊은 두려움은 곧 주위를 얼어붙게 만든다. 그녀의 손을 저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피해 눈덮인 산으로 도망하는 엘사, 거기서 처음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게 된다. 아래의 동영상을 꼭 감상해야 블로그를 이해할 수 있다.
장갑 (두려움)
<엘사>는 어른이 되기까지 손에 장갑을 끼운채 살아야했다. 제어할 수 없는 두려움 때문이다.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것들이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것이 두렵다. 실제로 그 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어려서부터 각인된 <두려움>이 손을 장갑밖으로 꺼낼 수 없게 만들었다. 두려움은 <엘사> 자신뿐 아니라 주위를 해치는 감정이었다.
프로그래머로서의 내게 두려움은 내 머릿속으로 상상한 고유한 창조물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나게 코딩할 수 있다. 이미 가치를 인정받은 소프트웨어의 한 부분을 코딩하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이 상상한 세계를 머리에서 꺼내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다. ‘내 것을 창조해봤는데 그게 추한것이면 어쩌지?’ ‘내 상상력이 저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기라도 할까?’ ‘내 유치한 아이디어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 역시 내 손이 만드는 것이 두려워 장갑을 끼운채 살고 있다. 이제 나도 이 장갑을 벗어야겠다.
아름다운 창조물
눈덮인 산에 홀로 떨어진 <엘사>는 장갑을 벗고, 처음으로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손 위에서 빛어진 눈송이들의 아름다운 문양과 귀여운 눈사람이 즐겁다. 이제 자신감이 생긴 그녀는 이렇게 노래한다.
It’s time to see what I can do
To test the limits and break through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I’m free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때야.
내 한계를 시험해보고 그것을 넘어서보고.
내겐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무런 룰도 없어.
난 자유야.
절벽의 끝에 조심스레 발을 대니 얼음 다리(bridge)가 만들어지고, 이제는 거침없이 하늘위로 달려나간다. <엘사>가 달려나가는 하늘위로 다리가 채워져가는 장면은 너무 감격스러워 하마트면 울어버릴뻔했다.
코딩이 바로 <엘사>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창조해내는 마법이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주어진 과제들을 풀어나갈때는 문제의 숲속에 갇혀서 깨닫지 못하지만, 프로그래밍의 본질은 머신이 사람처럼 생각하게 하고 (구글), 정지해있는 것들이 움직이게 하며(자동차), 침묵하던 사람들이 말하게 하는 것이다 (페이스북). 그래서 “모든 진보한 기술은 마술과 구분할 수 없다”는 아써 클라크의 말이 옳다. 때로는 알고리즘이 어렵고 하드웨어를 이해하느라 머리 아프지만, 프로그래머는 <창조주>, <마법사>로서의 감격을 잊어선 안된다.
<엘사>는 처음부터 다리나 거대한 궁전을 만들지 않았고 눈송이, 눈사람을 만들어보며 즐거워했다. 그리곤 자신의 한계를 하나 하나 시험해 나간다. 코딩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완전한 다리, 궁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손을 장갑안에 감추게끔 한다.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름다운 창조의 시작이다. 하지만 조심스레 내밀던 발로 하늘을 향해 달려나가듯, 우리 역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그걸 넘어서는것이 중요하다. 아써 클라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가능한 것의 한계점을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한계점을 넘어서 조금 더 나아가 보는 것이다”. 내 한계를 넘어서 아름다운 창조물을 만들고 싶은 마음, 그게 <비전> 이다.
얼음 궁전
<엘사>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얼음 궁전의 유일한 거주자는 <엘사>자신이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으로 갖게된 자유가 홀로 사는 외로움보다 더 중요했다. 이후 스토리가 더 진행되면 왕국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위해 마법을 사용하지만, <엘사>는 자신의 궁전에 홀로 살면서 창조하고 누리는 삶 역시 행복해했다.
‘내가 만드는 것이 추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은 그 창조물의 유일한 사용자가 <나> 일때는 더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코딩할때, 누군가를 위해 그것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때때로 상상속의 “사용자” 때문에 자신없고 비참해질수 있다. 폴그레이엄이 <스타트업 아이디어>[3] 에서 지적했듯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은 그래서 실패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내는 창조물 (아이디어)은 오로지 내가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야한다. <사용자>로서의 내가 기술의 최첨단에 서 있고, 나를 위해 만드는 프로그램이 그런 나 자신을 만족시킨다면 그럼 나는 세상에서 가장 진보한 SW를 만들어낸 것이다. 훗날 외로운 궁전에서 나온 <엘사>는 온 국민의 환호속에 여왕으로 귀환한다. 내가 만들고 스스로 누리는 그 SW 역시 같은 영광을 얻을지도 모른다.
<프로즌>의 주제곡은 이렇게 끝난다.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어차피 추위가 힘들었던 적은 없어.
내 귀엔 이렇게 들렸다.
The code never bothered me anyway. 어차피 코드가 힘들었던 적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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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go
The snow glows white on the mountain tonight
Not a footprint to be seen
A kingdom of isolation,
And it looks like I’m the Queen
오늘밤 산위에 눈이 하얗게 빛나고 있어요.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않아요.
고립된 저 왕국, 이제 보니 내가 그곳의 여왕이네요.
The wind is howling like this swirling storm inside
Couldn’t keep it in, heaven knows I tried Don’t let them in, don’t let them see
Be the good girl you always have to be
Conceal, don’t feel, don’t let them know
Well, now they know
회오리 폭풍속처럼 바람이 부네요.
감출수가 없었어요. 하늘은 알아요 내가 노력했다는 걸.
아무도 들이지마, 누구도 알면 안돼. 언제나 착한 소녀로 살아야 해.
감춰. 느끼지마. 아무도 알게 하지마. 하지만 이제는 모두 알아요.
Let it go, let it go
Can’t hold it back anymore
Let it go, let it go
Turn away and slam the door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이제 잡아둘 수 없어요.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뒤돌아서, 문을 닫아 버려요.
I don’t care
What they’re going to say
Let the storm rage on,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이제 신경쓰지 않아요.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폭풍은 계속 불어와도 돼요.
한번도 추위를 느낀적 없었으니까.
It’s funny how some distance
Makes everything seem small
And the fears that once controlled me
Can’t get to me at all
참 재밌어요. 조금 거리를 두었을땐 모든 것들이 작아 보이니.
한때 날 괴롭혔던 두려움은
이제 전혀 내게 없네요.
It’s time to see what I can do
To test the limits and break through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I’m free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때죠.
내 한계를 시험해보고 그것을 넘어서보고.
내겐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무런 룰도 없어요.
난 자유예요.
Let it go, let it go
I am one with the wind and sky
Let it go, let it go
You’ll never see me cry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지금은 바람과 하늘과 하나예요.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다시는 우는 모습은 없을거예요.
Here I stand
And here I’ll stay
Let the storm rage on
여기 내가 서있고
여기 내가 머무를거예요.
폭풍은 계속 불어도 돼요.
My power flurries through the air into the ground
My soul is spiraling in frozen fractals all around
And one thought crystallizes like an icy blast
I’m never going back,
The past is in the past
내 힘은 하늘과 땅에 흩날리고
내 영혼은 얼음 문양을 만들며 회오리쳐요.
한번의 생각이 얼음 폭풍처럼 크리스탈을 만들죠.
절대 돌아가지 않아요. 과거는 과거일 뿐이죠.
Let it go, let it go
And I’ll rise like the break of dawn
Let it go, let it go
That perfect girl is gone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새벽처럼 그렇게 일어설 거니까요.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그 완벽한 소녀는 이제 없어요.
Here I stand
In the light of day
Let the storm rage on,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여기 내가 서있어요.
낮의 빛 가운데에.
폭풍이 계속 몰아쳐도 돼요.
추위는 한번도 괴롭지 않았으니까.
[1] http://ma.tt/2014/01/intrinsic-blogging/
[2] 비전, 눈으로 보는 행위.
[3] 스타트업 아이디어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