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it go

“An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 – Arthur Clarke
“모든 진보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 아서 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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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오늘 블로그의 첫 배경 사진은 영화 프로즌의 여왕 <엘사>다. 2014년의 첫 글 치고는 다소 뜬금없어 보이지만, 오늘은 영화에서 느낀 비전(꿈)에 관한 내 감정을 일기처럼 표현해 보고 싶었다. 이런 글은 영화를 아직 못 본 분들껜 공감이 어려울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워드프레스의 Matt Mullenweg 가 이야기 했듯 블로그의 제1 가치는 미래에 다시 이 글을 읽을 내 자신이라 생각하고 ([1]) 그냥 표현해보기로 맘 먹었다.

2014를 맞이한 지금 이순간, 나는 참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이다. 행복한 이유는 예전의 블로그 <비전: 눈으로 보는 행위> [2] 에서 이야기 했듯 대학 시절에 가졌던 꿈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실력 쟁쟁한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삼줄 추리닝에 샌달 신고 다니며 신나게 코딩하는 것은 지금 매일 매일의 생활이 됐다. 예쁘고 착한 아내와 두 딸이 주는 가정에서의 안정감과 기쁨 역시 참 좋다. 집에서 하고 싶은 코딩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부족하지 않다. 지금처럼만 늙어간다면 인생이 아마 썩 괜찮을 것 같다….하지만,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 마음속 한 공간엔 감정으로는 느껴지는데 말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 블랙홀같은 공간이 있다. 불행함으로 표현한 그 공간에 비어있는 것은 <비전><꿈>이다. 10대때는 좋은 대학을 가는게 꿈이었고, 20대때는 미국 학교에서 공부하고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되는게 꿈이었는데, 이제 30대는 절반이 이미 지났는데 무슨 꿈을 꾸어야 하는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끝없이 전해지는 SW 창업자들의 성공 스토리는 운좋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비전은 단어 뜻 그대로 무엇인가를 <눈으로 목격>하는 것이다. 10대때는 활기넘치는 대학생들, 20대에는 자유분방한 미국 프로그래머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이번에는 뜻하지않게 딸 아이들과 영화 <프로즌>을 보며 또 한번 <비전>이 주는 강렬한 비쥬얼 효과를 느꼈다. 내가 “<프로즌>의 주인공같은 여왕이 되리라”고 마음먹은 것은 물론 아니다. 애니메이션 곳곳에 드러나있는 은유들 속에서, 프로그래머로서 내가 꿈꿔야 하는 것들을 찾았다는 뜻이다. 사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영화가 특별하게 느껴졌는지 알지 못했다. 일주일 내내 가슴이 벅찬 느낌, 그 이유를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천천히 내용을 곱씹어보고 YouTube 영상을 여러번 보고 나서야 <프로즌>이 내 머릿속에 어렴풋이 스케치해뒀던 다음 단계의 <비전>을 강력하게 시각화했음을 알았다.

프로즌

프로즌의 주인공 <엘사>는 손에 닿는 모든것을 얼게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갖고 태어났다. 마법은 아름다운 눈송이를 만들기도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사람들을 다치게하는 저주가 되기 때문에 <엘사>는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장갑을 손에 끼우고 살아야만 했다. <엘사>는 자신의 여왕 즉위식 날 처음으로 바깥 세상에 나와 조심스레 왕관을 받는다. 그러나 <엘사>의 마음속 깊은 두려움은 곧 주위를 얼어붙게 만든다. 그녀의 손을 저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피해 눈덮인 산으로 도망하는 엘사, 거기서 처음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게 된다. 아래의 동영상을 꼭 감상해야 블로그를 이해할 수 있다.

장갑 (두려움)
<엘사>는 어른이 되기까지 손에 장갑을 끼운채 살아야했다. 제어할 수 없는 두려움 때문이다.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것들이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것이 두렵다. 실제로 그 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어려서부터 각인된 <두려움>이 손을 장갑밖으로 꺼낼 수 없게 만들었다. 두려움은 <엘사> 자신뿐 아니라 주위를 해치는 감정이었다.

프로그래머로서의 내게 두려움은 내 머릿속으로 상상한 고유한 창조물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나게 코딩할 수 있다. 이미 가치를 인정받은 소프트웨어의 한 부분을 코딩하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이 상상한 세계를 머리에서 꺼내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다. ‘내 것을 창조해봤는데 그게 추한것이면 어쩌지?’ ‘내 상상력이 저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기라도 할까?’ ‘내 유치한 아이디어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 역시 내 손이 만드는 것이 두려워 장갑을 끼운채 살고 있다. 이제 나도 이 장갑을 벗어야겠다.

아름다운 창조물
눈덮인 산에 홀로 떨어진 <엘사>는 장갑을 벗고, 처음으로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손 위에서 빛어진 눈송이들의 아름다운 문양과 귀여운 눈사람이 즐겁다. 이제 자신감이 생긴 그녀는 이렇게 노래한다.

It’s time to see what I can do
To test the limits and break through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I’m free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때야.
내 한계를 시험해보고 그것을 넘어서보고.
내겐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무런 룰도 없어.
난 자유야.

절벽의 끝에 조심스레 발을 대니 얼음 다리(bridge)가 만들어지고, 이제는 거침없이 하늘위로 달려나간다. <엘사>가 달려나가는 하늘위로 다리가 채워져가는 장면은 너무 감격스러워 하마트면 울어버릴뻔했다.

elsa_bridge

코딩이 바로 <엘사>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창조해내는 마법이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주어진 과제들을 풀어나갈때는 문제의 숲속에 갇혀서 깨닫지 못하지만, 프로그래밍의 본질은 머신이 사람처럼 생각하게 하고 (구글), 정지해있는 것들이 움직이게 하며(자동차), 침묵하던 사람들이 말하게 하는 것이다 (페이스북). 그래서 “모든 진보한 기술은 마술과 구분할 수 없다”는 아써 클라크의 말이 옳다. 때로는 알고리즘이 어렵고 하드웨어를 이해하느라 머리 아프지만, 프로그래머는 <창조주>, <마법사>로서의 감격을 잊어선 안된다.

<엘사>는 처음부터 다리나 거대한 궁전을 만들지 않았고 눈송이, 눈사람을 만들어보며 즐거워했다. 그리곤 자신의 한계를 하나 하나 시험해 나간다. 코딩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완전한 다리, 궁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손을 장갑안에 감추게끔 한다.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름다운 창조의 시작이다. 하지만 조심스레 내밀던 발로 하늘을 향해 달려나가듯, 우리 역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그걸 넘어서는것이 중요하다. 아써 클라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가능한 것의 한계점을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한계점을 넘어서 조금 더 나아가 보는 것이다”. 내 한계를 넘어서 아름다운 창조물을 만들고 싶은 마음, 그게 <비전> 이다.

얼음 궁전
<엘사>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얼음 궁전의 유일한 거주자는 <엘사>자신이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으로 갖게된 자유가 홀로 사는 외로움보다 더 중요했다. 이후 스토리가 더 진행되면 왕국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위해 마법을 사용하지만, <엘사>는 자신의 궁전에 홀로 살면서 창조하고 누리는 삶 역시 행복해했다.

‘내가 만드는 것이 추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은 그 창조물의 유일한 사용자가 <나> 일때는 더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코딩할때, 누군가를 위해 그것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때때로  상상속의 “사용자” 때문에 자신없고 비참해질수 있다. 폴그레이엄이 <스타트업 아이디어>[3] 에서 지적했듯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은 그래서 실패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내는 창조물 (아이디어)은 오로지 내가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야한다. <사용자>로서의 내가 기술의 최첨단에 서 있고, 나를 위해 만드는 프로그램이 그런 나 자신을 만족시킨다면 그럼 나는 세상에서 가장 진보한 SW를 만들어낸 것이다. 훗날 외로운 궁전에서 나온 <엘사>는 온 국민의 환호속에 여왕으로 귀환한다. 내가 만들고 스스로 누리는 그 SW 역시 같은 영광을 얻을지도 모른다.

<프로즌>의 주제곡은 이렇게 끝난다.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어차피 추위가 힘들었던 적은 없어.

내 귀엔 이렇게 들렸다.
The code never bothered me anyway. 어차피 코드가 힘들었던 적은 없어.

https://twitter.com/sm_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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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go 
The snow glows white on the mountain tonight
Not a footprint to be seen
A kingdom of isolation,
And it looks like I’m the Queen

오늘밤 산위에 눈이 하얗게 빛나고 있어요.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않아요.
고립된 저 왕국, 이제 보니 내가 그곳의 여왕이네요.

The wind is howling like this swirling storm inside
Couldn’t keep it in, heaven knows I tried Don’t let them in, don’t let them see
Be the good girl you always have to be
Conceal, don’t feel, don’t let them know
Well, now they know

회오리 폭풍속처럼 바람이 부네요.
감출수가 없었어요. 하늘은 알아요 내가 노력했다는 걸.
아무도 들이지마, 누구도 알면 안돼. 언제나 착한 소녀로 살아야 해.
감춰. 느끼지마. 아무도 알게 하지마. 하지만 이제는 모두 알아요.

Let it go, let it go
Can’t hold it back anymore
Let it go, let it go
Turn away and slam the door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이제 잡아둘 수 없어요.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뒤돌아서, 문을 닫아 버려요.

I don’t care
What they’re going to say
Let the storm rage on,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이제 신경쓰지 않아요.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폭풍은 계속 불어와도 돼요.
한번도 추위를 느낀적 없었으니까.

It’s funny how some distance
Makes everything seem small
And the fears that once controlled me
Can’t get to me at all

참 재밌어요. 조금 거리를 두었을땐 모든 것들이 작아 보이니.
한때 날 괴롭혔던 두려움은
이제 전혀 내게 없네요.

It’s time to see what I can do
To test the limits and break through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I’m free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때죠.
내 한계를 시험해보고 그것을 넘어서보고.
내겐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무런 룰도 없어요.
난 자유예요.

Let it go, let it go
I am one with the wind and sky
Let it go, let it go
You’ll never see me cry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지금은 바람과 하늘과 하나예요.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다시는 우는 모습은 없을거예요.

Here I stand
And here I’ll stay
Let the storm rage on

여기 내가 서있고
여기 내가 머무를거예요.
폭풍은 계속 불어도 돼요.

My power flurries through the air into the ground
My soul is spiraling in frozen fractals all around
And one thought crystallizes like an icy blast
I’m never going back,
The past is in the past

내 힘은 하늘과 땅에 흩날리고
내 영혼은 얼음 문양을 만들며 회오리쳐요.
한번의 생각이 얼음 폭풍처럼 크리스탈을 만들죠.
절대 돌아가지 않아요. 과거는 과거일 뿐이죠.

Let it go, let it go
And I’ll rise like the break of dawn
Let it go, let it go
That perfect girl is gone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새벽처럼 그렇게 일어설 거니까요.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그 완벽한 소녀는 이제 없어요.

Here I stand
In the light of day
Let the storm rage on,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여기 내가 서있어요.
낮의 빛 가운데에.
폭풍이 계속 몰아쳐도 돼요.
추위는 한번도 괴롭지 않았으니까.

[1] http://ma.tt/2014/01/intrinsic-blogging/
[2] 비전, 눈으로 보는 행위.
[3] 스타트업 아이디어 (번역).

아이디어 생각 안하기

들어가며

난 어려서부터 코딩한 그런 창조적 아이는 아니었다. 그저 98년 당시 가장 쿨했던 전공 컴퓨터공학(지금은 상상 안가겠지만..) 에 발 담궈봤을 뿐이다. 처음 1년간은 C 프로그래밍이 너무 어려워 학점이 계속 “씨 씨” 욕을 해댔다. 1년정도 지났을때 좀 색다른 경험이 있었다. 교회의 젊은 전도사님이 어느날엔가 잡지책을 한권 펴 놓고 끙끙대고 있는걸 봤다. 무엇을 하시느냐 묻자 잡지사의 상금이  걸린 퍼즐 문제를 푼다고 했다. 그분은 사실 좀 많이 가난했었는데 거기에 진심으로 희망을 걸고 계신 듯 했다. 그런데 문제들중 딱 한가지만 모르겠다고 울상이었다.  퍼즐은 숫자가 나열되어 있고 중간 중간에 비어있는 연산부호를 넣어 결과 숫자를 만들어내는 문제였다. ‘안 어려워 보이는데?’ 생각했지만 한참 끙끙대도 조합이 안 나왔다. 가능한 연산자의 조합이 수도 없이 많으니 당연했다. 그러다가 언뜻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가만..코드로 짜면 그 많은 조합을 컴퓨터가 할 수 있잖아?’. 막상 코딩하는데는 몇분 안 걸렸고 프로그램은 곧바로 답을 찾아냈다.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전도사님은 눈이 휘둥그레져, 과장하자면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목격한 사람처럼 흥분했다. 그 주 내내 만나는 사람마다 “저사람 천재”라고, 심지어는 설교중에도 토해내던 흥분이 다음 호 잡지의 당첨자 목록에 본인 이름이 없는걸 확인한 후에야 멈췄다.

두뇌의 조작질

작은 에피소드를 아직 기억하는 이유는 내 코드가 어떤 사람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한 첫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전에 학교에서 해오던 숙제, 프로젝트는 매년 반복되는 이미 정답이 정해진 훈련이었다면 그날의 코딩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살아있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요즘 종종 블로그를 읽고 일개 프로그래머인 내게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상담해오는 분들이 있다. 대부분 재미있고 신선하다. 그런데 거의 모든 경우 슬라이드를 다 읽고 난 후에도 그 아이디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지 알수가 없다. 많은 경우 본인의 아이디어가 “새롭다” 또는 “지금껏 없었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말이 맞다. 새롭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는 무한대로 만들어낼수 있다. 트위터에 한글자 더 추가해 141 글자를 가능케 하는 것도 아이디어고, 139자로 제한하는 것도 아이디어다. 다만 아무도 원하지 않을 뿐.

폴 그레이엄이 “스타트업 아이디어”에서 지적했듯 아이디어에서 시작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 [1]. 무한한 아이디어의 바다에는 반짝이는 돌들이 너무 많아서 우연히 예쁜 돌맹이 하나를 집어들고 진주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을 꿈꾸는 나는 종종 아침에 샤워하다가 혹은 밤늦게 뜨거운 욕조에 누워 생각하다가 깜짝 놀랄 쿨한 아이디어가 생각나곤 한다. 흥분된 마음에 검색을 해보고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걸 알땐 가슴이 벌렁벌렁 한다. 우뇌는 어떻게 구현할까 생각하고, 좌뇌는 벌써 빌게이츠집에 놀러가 있다. 생각의 그 다음단계는 쿨한 아이디어가 해결하는 문제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 이러한 문제를 겪고 있는데 내 아이디어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가정한다. 생각이 더 깊어지면 창조해낸 그 문제가 내게 그동안 고통이었다고 믿기 시작한다. 문제가 주는 고통이 심하다고 믿으니 아이디어는 더 빛나 보인다. 이 스타트업은 대박이다!

gollum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결국 두뇌의 장난질이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전까지는 사실 그 문제가 쓰라려본 적이 없다. 아이디어를 정당화 시키기 위해 두뇌가 한 조작질에 또 한번 당했을 뿐이다. 아이디어를 갖고 싶어한 그 순간부터 내 두뇌는 내 편이 아니다.

문제부터 생각할때

성공한 스타트업은 모두 문제에서 시작한다. 트위터의 창업자지만 세력 다툼에서 밀린 잭 도시(Jack Dorsey)는 Square라는 모바일 페이먼트(Payment) 스타트업을 다시 시작해 현재 적어도 3조원 이상의 가치를 평가 받는다. 잭 도시는 물건을 살 때마다 이런 질문을 했다. “왜 지금 내가 지갑에 손을 가져가 신용카드를 꺼내야 하지?” “왜 카드가 승인나서 영수증이 나올때까지 어색하게 서서 기다려야 하지?” “왜 또 나는 영수증에 사인해서 다시 돌려주고, 카드를 넣은 지갑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 넣어야 하지?” [2] 보통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결제의 과정이 잭 도시의 일상에서는 괴로움이었다. 아마도 리누스 토발즈가 본인을 ‘게으름뱅이’라고 지칭한 이유와 같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에겐 익숙한 삶의 방식이 창업자들에겐 너무 귀찮고 불 필요해서 코딩으로 해결해야하는 문제로 보인 것이다.

사실 잭 도시, 리누스 토발즈 같은 “난 놈” 들에게만 그런 문제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때론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를 다른 이유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주 미국에서는 홈조이라는 집 청소 스타트업이 약 400억 이상의 펀드를 받았다 [3]. 창업 1년만에 꽤 많은 매출을 올리는 알짜배기 스타트업으로 알려져 이곳 기준으로도 큰 펀드를 받아낸 것이다. 홈조이는 깔끔한 웹 페이지에서 집 청소를 요청하면 미국의 대도시에 있는 청소 업체들을 연결해 청소부를 파송한다. 스스로 청소부를 고용할 필요도 없고 홈페이지 하나 예쁘게 만든다니 마치 대동강 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마냥 기발해 보인다. 그런데 꼭 그런 것일까? 아래는 홈조이의 창업자 Adora Cheung의 트윗에서 발췌한 것이다. 청소부들과 함께 추수감사 식사후 찍은 사진이다.

피부색도 사회적 클래스도 완전히 다른 청소부 사회에 들어가 그 업체들과 네트웍을 만들만한 용기, 적극성을 가진 프로그래머가 얼마나 될까? 실제 Adora Cheung은 인터뷰에서 본인이 청소부로 일했던 경험이 중요했다고 얘기했다. “집청소” 혹은 “청소부 고용” 이라는 문제는 아마도 몇천년의 역사를 가진 누구나 아는 문제인데 그걸 인터넷으로 가지고 온 것은 홈조이가 처음이다. 때론 문제를 알지만 해결할 용기가 없을 뿐이다. 비슷한 다른 예로 Stripe라는 페이먼트 스타트업이 있다 [4]. 수없이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자신의 프로그램을 온라인에서 돈 받고 파는 그 과정을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누구도 해결하려 들지 않았다. 코딩은 자신 있지만, 금융회사를 상대하는건 상상도 못할 일이기 때문에. 그걸 처음 시도해 의외로 쉽게 문제를 해결하고 페이먼트 서비스를 만든것이 Stripe 이다. 모든 프로그래머가 고통을 느꼈지만 금융회사의 문을 한번 두드려볼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아이디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부터 두뇌는 스스로를 속이기 시작한다. 그대신 우리 주변에 있는 문제를 발견하면서 스타트업은 시작된다. 때로는 홈조이, Stripe의 예처럼 스스로 단정지은 영역을 넘지 못해 알면서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더 많은 경우는 사실 우리가 문제를 발견할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런 표현을 본 적이 있다. “Founders attract the problem (창업자는 문제들을 매혹시킨다)”. 문제가 매력적이어야 하는게 아니다. 우리 주변에 숨어서 존재하는 문제들중 하나가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을만큼 당신이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표현도 좋다. “Problems want to be discovered (문제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준비된 사람에게 보일 뿐이다. Ev Williams는 Blogger, Twitter에 이어서 최근엔 Medium 이라는 세번째 스타트업을 창업해 성공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꾸준히 한 우물만 파다보니, “웹에서 글쓰기” 라는 주제에서는 대박 문제들이 그에게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스타트업을 꿈꾼다면 그래서 보이지 않는 문제들에게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첫째, 무언가를 정말 좋아해야 하고, 둘째는 작은 문제부터 해결해봐야 한다.  Ev Williams가 글쓰고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2조원 넘는 재산이 있으면서도 medium.com을 창업할 이유가 없다. 잭 도시는 아주 어려서부터 트위터를 상상하고 있었다 [5]. 두 사람 다 문제에 빠져 사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마크 쥬커버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치과 사무실과 자신의 집을 연결하는 작은 문제를 메신져를 코딩해 해결했다. 페이스북의 전신 Facemesh는 내성적이라 여친을 사귈 수 없었던 쥬커버그가 여학생들 사진을 스토킹하며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었다.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다보니 소셜 네트웍이라는 대박 문제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디어 생각은 멈추고, 좋아하는 것(직업일수도 있고 취미 일수도 있는)을 계속 하자. 그 과정에서 나를 괴롭히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세심하게 관찰하자. 혹 문제가 대박처럼 보이지 않을지라도 내게 중요하다면 코딩으로 해결해보자. 그러다보면 언젠가 대박 문제가 당신에게 노크할지도 모른다.

loveactually

https://twitter.com/sm_park

[1] 스타트업 아이디어 (번역)
[2] http://techcrunch.com/2011/12/25/what-startup-to-build/
[3] http://techcrunch.com/2013/12/05/homejoy-38-m/
[4] http://paulgraham.com/schlep.html
[5] 장관님, 이런 놈들을 찾으십니까?

번역: 스타트업 아이디어

아래의 글은 최근에  Paul Graham 의 에세이 Startup Idea를 읽고 감동받아 번역한 것입니다. 원본은 이곳에 있습니다: http://paulgraham.com/startupideas.html . 참고로 Paul Graham은 YCombinator를 시작해 Dropbox, Reddit, Airbnb등의 스타트업을 키워낸 대가입니다. 뛰어난 해커이기도 하고 특히 글을 아주 잘 써서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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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최고의 방법은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문제를 찾아내되 가능하면 당신 자신이 경험하는 문제를 찾는 것이다.

가장 뛰어난 스타트업 아이디어는 세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그것은 창업자 자신이 원하는 솔루션이고, 그들 스스로 만들수 있으며, 다른이들이 가치있다고 여기지 않은 것들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야후, 구글, 페이스북 모두 이같은 방식으로 시작됐다.

왜 당신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에서 시작하는게 중요한가? 그것은 문제 자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얼핏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현재까지 거의 모든 스타트업들의 공통된 실수는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다 (역: 학계에서 연구하고 논문을 쓸때도 마찬가지).

나 스스로 그런 실수를 경험했다. 1995년에 미술작품들을 온라인에서 전시하는 회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갤러리들은 온라인을 원하지 않았다. 미술 비지니스는 그런식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 나는 왜 6개월이나 이 어이없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낭비했을까? 내가 사용자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머리속으로 상상한 미술 비지니스의 모델은 실제와는 달랐는데도, 그 모델을 구현하려 노력한 것이다. 내가 사용자들에게 비용을 청구하기 전까지 나는 내 모델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내 상상속의 세계, 그 모델에 나는 집착했고 엄청난 시간을 소프트웨어를 만드는데 투자했다. 세계는 내 작품을 원했어야만 했다!

왜 그럼 많은 창업자들이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것들을 만들까? 시작할때부터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대단히 위험한데, 아이디어를 아예 못 만들어낸다면 모를까, 스스로 생각하기에 너무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만들고 거기에 속아넘어가 열정을 쏟아붓는다.

YCombinator에서는 그런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창조형” 혹은 “시트콤” 아이디어라 부른다. tv쇼에서 배우들이 스타트업을 시작한다고 생각해보자. 작가는 무언가 스타트업다운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좋은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어렵다. 생각한다고 떠오르는게 아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얼핏 듣기에 그럴싸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지만 실제론 가짜일 뿐이다.

예를들어,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소셜 네트웍을 생각해보자. 그렇게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을것이다. 수백만의 애완 동물 키우는 사람이 있고 그들중 많은 사람들이 애완동물에 많은 돈을 써가며 정성을 기울인다. 당연히 사람들은 어딘가 온라인에 모여서 다른 애완동물 애호가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할 것이다. 그들중 단 2-3%만 사이트에 꾸준히 방문한다면 그것만으로 백만 이상의 사용자를  얻을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광고를 제공하거나 아니면 돈을 받는 고급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을것이다.

이 뛰어난(사실은 위험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친구에게 간다고 생각해보자. 친구는 “절대 그런 서비스는 사용 안해!” 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래 어쩌면 언젠가 나도 그런 서비스 사용할지도 모르겠다” 이야기할 것이다. 회사를 시작하는 순간까지 아이디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럴듯해 보일 것이다. 그 사람들은 당장 그 서비스를 사용하고 싶어하진 않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원할거라고는 쉽게 상상한다. 모든 인구가 이런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단 한명의 사용자도 얻지 못한다.

우물

스타트업을 시작할때는 제품을 간절히 원하는 최소 몇명의 사용자가 꼭 필요하다. 언젠가 사용할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고 지금 급하게 원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보통 이런 얼리아답터 사용자들은 숫자가 얼마 안되는데 이유는 단순하다. 만일 많은 수의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데, 스타트업의 적은 자원으로도 만들 수 있는 제품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아마도 그런 제품은 이미 시장에 존재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럼 타협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원하는 제품을 만들수도 있고,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많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수도 있다. 후자를 택해라. 모든 후자 타입이 좋은 스타트업 아이디어는 아니다. 하지만 모든 성공한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는 그런 타입이었다.

그래프를 한번 상상해보자. x축은 당신의 제품을 원하는 사람들을 나타내고, y축은 그들이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를 나타낸다. y축을 거꾸로 놓으면 당신의 회사는 구멍과 같은 모양을 그릴 것이다. 구글은 아주 큰 구덩이였다. 수억명의 사람들이 구글의 검색을 간절히 원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그만큼 큰 구덩이를 파내는건 힘들다. 당신에게 남은 선택은 그래서 두가지 모양의 구멍이다. 넓고 얕은 구멍 아니면 좁은데 깊은 마치 우물같은 모양 말이다 (역: 우물 모양은 적은 수의 사용자가 간절히 원하는 형상).

시트콤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는 보통 첫번째 타입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아주 조금 애완동물 소셜네트워크를 원한다.

거의 모든 좋은 스타트업 아이디어는 두번째 타입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Altair에 올라가는 베이직을 만들때 그랬다. 당시 겨우 몇천명의 Altair 사용자가 있었지만 컴파일러 없이 그들은 머신 언어로 프로그래밍 해야 했다. 30년후 페이스북도 같은 모양이었다. 그들의 첫 사이트는 몇천명 안되는 하버드 학생이 대상이었지만 그 몇천명은 페이스북을 간절히 원했다.

당신이 스타트업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렇게 질문해라: 누가 이것을 지금 원하는가? 누가 이것을 지금 간절히 원하기에 한 두 사람 스타트업이 만든 허접한 버전이라도 쓰려고 할까? 여기에 답할 수 없다면 아마도 그 아이디어는 별로인 것이다.

위의 그래프에서 사실 얼마나 우물이 좁은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 우물의 깊이가 중요하다 (역: 얼마나 원하는가). 때로 우물이 좁은 이유는 적은 자원으로 깊은 구덩이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처음에 우물은 좁기 마련이다. 실제 우물의 깊이와 좁은 정도는 연관성이 강력해서 만일 당신의 아이디어가 아주 특정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어필한다면 그것은 좋은 사인이 된다.

그러나 우물과 같은 모양의 아이디어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충분조건은 아니다. 져커버그가 오로지 하버드 학생들에게만 먹히는 것을 만들었다면 그건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을 것이다. 페이스북이 좋은 아이디어였던 것은 작은 사용자 그룹에서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는 경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버드에서 통하는 걸 만들었다면 어떤 대학교에서도 통할 것이다. 그럼 빠르게 대학교들로 서비스를 확장하면 된다. 모든 대학생들을 끌어들였다면 그 외의 일반인들은 오픈만 해주면 들어오게 되어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Altair를 위한 베이직. 다른 컴퓨터를 위한 베이직. 베이직 말고 다른 언어들. 운영체제. 어플리케이션. 주식 상장.

당신 자신

그럼 초기 아이디어에서 확장할 수 있는 경로가 있는지 어떻게 알까? 어떤 아이디어가 거대한 회사의 dna를 가졌는지 아니면 그저 작은 마켓에 머무르게 될지 알 수 있을까? 보통 이 대답은 어렵다. Airbnb의 창업자들은 그들이 얼마나 큰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지 몰랐다 (역: Airbnb는 공유 경제의 시작). 처음에 그들은 더 작은 아이디어로 컨벤션 센터에서 호스트들이 전시장 공간을 렌트하는 서비스에서 시작했다. 그 아이디어가 어떻게 확장될런지 그들은 몰랐다. 자연스레 확장된 것 뿐이다. 그들이 처음에 알았던 유일한 사실은 그들이 가능성있는 무언가를 잡고있다는 느낌 뿐. 빌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 역시 처음엔 그랬을 것이다.

어떤때는 초기의 작은 성공에서 퍼져나갈 경로가 있는지 확연히 보일때가 있다. 종종 나는 다른 사람들이 포착 못하는 경로를 볼 때가 많다. 그게 YCombinator의 특기중 하나다. 하지만 아무리 경력이 많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제일 중요한 점은 그래서 처음 아이디어에서 퍼져 나가는 성장 경로의 여부는 알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럼 아이디어의 확장 여부를 예측 못한다면 다양한 아이디어중 어떻게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대답은 실망스럽지만 또 한편 흥미롭다: 당신이 적합한 사람이라면, 당신에게는 그 아이디어를 찾아낼 감각이 있다. 당신이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의 최 선봉에 서있는데, 어떤 아이디어가 가치있다고 느껴진다면 그게  맞을 가능성이 많다.

“오토바이 관리와 명상” 이라는 책에서 Robert Pirsig은 이야기 하기를:

“페인팅을 최고로 잘 하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까? 쉽습니다.
먼저 최고가 되고, 그 다음 자연스럽게 칠하면 됩니다.”

고등학교에서 이 대목을 접한 이후 계속 궁금했다. 그게 페인팅에 얼마나 적합한 조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설명하는 상황엔 잘 맞아 떨어진다. 경험적으로 볼때 좋은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찾는 방법은 그런 것을 갖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떤 분야의 최첨단에 있다는 것은 꼭 기술을 만드는 사람을 의미하진 않는다. 사용자로서 최첨단에 서 있을 수 있다. 저커버그가 페이스북 아이디어를 생각한 것은 그가 프로그래머여서라기 보다는 컴퓨터를 워낙에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그랬다. 2004년 당시 40대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상을 인터넷에 반 공개적으로 포스팅 하면 어떨지 묻는다면 대부분 기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커버그는 이미 온라인에서 살고 있어서 그 아이디어는 자연스러웠다.

Paul Buchheit는 빠르게 변하는 분야의 최첨단에 서있는 사람은 “미래에 산다” 고 이야기 했다. 이 말을 Pirsig의 말과 합하면 이렇게 요약할수 있다.

“미래에 살아라 그리고 비어있는 것을 채워라”

이것이 현재 가장 성공한 스타트업의 시작 방식이다. 애플, 야후, 구글, 페이스북 모두 처음엔 큰 회사가 될지 상상 못했다. 모두 창업자들이 그 당시에 비어있다고 생각한 공간을 채운 결과물이다.

성공한 창업자들이 처음 아이디어를 얻은 방식을 보면, 그들의 준비된 마인드를 어떤 외부의 자극이 때려서 얻은 것이 많다. 빌게이츠와 폴엘런은 Altair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우리가 베이직 컴파일러를 만들수 있을걸?” 생각했다. Drew Houston는 (Dropbox 창업자) USB 스틱을 자주 잃어 버린 후에 “내 파일들을 온라인에 모두 올려놔야겠어”라고 생각했다. 기존의 경험들이 창업자들을 미리 준비시켰기에 외부의 자극을 받았을때 기회를 포착하는게 가능했던 것이다.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생각할때 써야 할 동사는 “생각해내기”가 아니라 “발견하기(알아채기)” 이다. YCombinator에서는 그런 아이디어를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해서 “올개닉” 아이디어라 부른다. 성공한 스타트업은 그렇게 시작했다.

아마도 당신이 듣고 싶어한 대답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어떤 레서피를 기대했을텐데, 나는 올바른 방식으로 준비된 마인드를 갖는게 핵심이라고 이야기 하니까. 실망스럽더라도 그게 진리다. 어떤 면에선 그게 레서피다. 다만 한주에 생각해내기 보다는 일년이 넘게 걸리는 레서피일 뿐이다.

당신이 빠르게 변하는 분야의 첨단에 서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렇게 만들 수 있다. 예를들어 적당히 똑똑한 사람이라면 1년정도 시간을 투자해 프로그래밍의 최첨단에 서 있을수 있다 (모바일 프로그램을 만든다든지). 성공적인 스타트업이 최소 3-5년이 걸린다고 생각한다면 1년 정도 준비하는건 큰 투자가 아닐것이다. 특히 공동 창업자를 찾고 있다면.

최첨단에 서기위해 프로그래밍을 꼭 배울 필요는 없다. 다른 분야도 빠르게 변하니까. 해킹(코딩)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몇십년 미래를 보았을때 충분한 툴이 될 것이다. 마크 엔드리슨이 이야기했듯 소프트웨어는 세상을 먹어 치우고 있고 몇십년간 이 트렌드는 지속될 것이다.

해킹 할줄 안다는 것 (역: 해킹=코딩)은 아이디어가 생겼을때 구현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게 아주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잇점이 된다. 당신이 대학교 페이스북을 온라인에 올리는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한다면 코딩이 가능한 것은 사실 큰 잇점이다. 그저 “그거 괜찮은 아이디어네” 생각하기 보다 “오늘 밤에 초기버전 한번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훨씬 유리하다. 당신이 프로그래머면서 동시에 사용자라면 그건 더 유리하다. 새 버전을 만드는 것과 사용자 측면에서 테스트 하는것이 한 두뇌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알아채기

어떤 형태로든 미래에 살고 있다면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알아채는 것은 비어있는 공간을 찾는 것과 같다. 빠르게 변하는 분야의 최첨단에 있다면 확연히 비어있는 어떤 것을 발견 할 것이다. 그런데 확실하지 않은 한가지는 비어있는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인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찾을때는 단지 “뭐가 비어있지?” 라는 필터를 켜놓는 것 뿐 아니라 다른 필터들을 모두 꺼버리는 게 필요하다. 특히 “이게 큰 회사가 될까?” 이런 필터는 나중에 충분히 걱정할 시간이 있다. 초기에 그런 생각을 한다면 많은 훌륭한 아이디어를 필터링 해버릴 뿐 아니라, 별로인 아이디어에 집중하게끔 만든다.

비어있는 어떤 것들을 보는 것엔 시간이 걸린다. 자신에게 거의 속임수를 걸어야 주변에 있는 아이디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아이디어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질문(아이디어가 과연 있을까?)엔 언제나 명확한 답이 있다. 오늘이 기술의 진보가 멈추는 바로 그날 이라고 생각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확신컨데 사람들은 다음 몇년간 새로운 것들을 만들 것이고 당신은 몇년후 “제품 x가 없을땐 어떻게 살았지?” 물을 것이다.

그런 문제들이 해결된 후에 과거를 돌아보면 너무나 당연해보일 것이다. 당신이 해야 하는 것은 그런 아이디어를 못보게끔 만드는 필터들을 모두 꺼버리는 것이다. 그런 나쁜 필터중 가장 강력한 것은 현재의 세계를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다. 우리중 가장 진보적이고 오픈마인드인 사람조차도 자주 그런다. 침대에서 일어나 현관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질문하지 않으면 아이디어는 없다

당신이 아이디어를 찾으려한다면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면서 얻는 효율을 희생해야 하고 질문하기 시작해야 한다. 예컨데, 왜 당신의 이메일 인박스는 늘 차고 넘치는가? 이메일을 정말 많이 받으니까? 아니면 이메일을 지우기가 힘드니까? 왜 그럼 이메일을 그렇게 많이 받는가? 사람들은 무슨 문제를 해결하려고 당신에게 이메일을 그렇게 보내는가? 이 문제를 해결할 더 나은 방법은 없나? 왜 이메일을 인박스에서 꺼내기 어려운가? 왜 이메일을 읽은 후에도 남겨 놓는가? 이메일 인박스가 정말 최적의 툴인가?

당신을 괴롭히는 것들에 특히 주의를 기울여라. 현재 기술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지금 인생이 효율적이고 편안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50년후에 우리가 사용할 어떤 것들을 모두 알고 있는데 지금 그것들이 주위에 없다면 현재의 날들은 아주 불편할 것이다. 한번 타임머신을 타고 50년전으로 돌아갔다고 상상해 보라. 어떤 것들이 당신을 짜증나게 한다면, 당신이 미래를 살고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적절한 문제를 찾았다면, 그 문제는 (최소한 자신에게) 아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Viaweb 을 시작했을때 모든 인터넷 상점들의 사이트는 웹디자이너들이 하나 하나 HTML페이지를 써서 만들었다. 우리에게는 그 당시 그런 사이트의 HTML을 소프트웨어로 자동 생성해야 한다는게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을 찾는 문제다. 좀 이상하게 들리는 이 프로세스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당신은 아주 당연한것을 찾으려 하는데, 그것을 아직 본적은 없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좀 더 느슨하게 오픈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직접적인 공격 (즉 앉아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려 애쓰는것) 은 피하는 것이 좋다. 아마 최고의 전략은 그저 백그라운드 프로세스가 돌아가게 하고, 비어있는 것같은 어떤 것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호기심으로 그저 어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보려 노력해라. 하지만 또 하나의 당신을 백그라운드에 세우고 어깨 너머에 비어있는 것, 이상한 것들을 기록하게 하라.

자신에게 시간을 좀 주어라. 얼마나 빨리 자신의 마인드를 준비시키는가 여부는 당신에게 달려있지만 아이디어를 터뜨리는 외부의 자극은 당신 손에 달려있지 않다. 빌게이츠와 폴알렌이 한달안에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생각하려 했다고 치자. 만일 그 한달안에 Altair가 나오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아마 덜 성공적인 아이디어에 매달렸을 것이다. Dropbox를 만든 Drew Houston은 Dropbox전에 별 가능성이 없던 SAT 준비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하지만 Dropbox는 시장성에서 그리고 그의 기술력에 있어서도 훨씬 더 나은 아이디어였다.

아이디어를 발견하도록 자신을 단련하는 방법은 뭔가 쿨해보이는 프로젝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비어있는 것들을 만들게끔 되어있다. 현재 존재하는 것들을 다시 만드는 것은 그렇게 재미있지 않으니까.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짜내려 애쓰는 것은 나쁜 아이디어를 낳기 마련이다. 대신 “장난감”이라 치부되는 것들을 만들다보면 종종 좋은 것들이 나온다. 장난감이라 불리는 것들은 사실 “중요하다”는 점 빼고는 스타트업 아이디어의 모든 것들을 갖고 있다. 쿨하고 사용자들이 좋아한다. 그냥 중요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하지만 당신이 미래에 살고 있고, 쿨한 어떤것을 만들어 사용자들이 좋아한다면 다른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일수 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마이크로컴퓨터를 만들때 그건 사실 장난감처럼 보였다. 그 당시 시대를 기억한다면 마이크로컴퓨터를 갖고있던 사람들을 “취미그룹, 동호회” 라 불렀던 것을 알 것이다. BackRub (구글의 스탠포드 시절 서버)은 별 의미없는 과학 프로젝트처럼 보였다. 페이스북은 학부생들이 다른 아이들 스토킹하는 사이트에 불과했다.

YCombinator에서 일하다보면, 전문가 포럼에서 “장난감”이라 무시하는 아이디어를 만드는 스타트업을 만날때 늘 흥분된다. 우리에겐 그게 좋은 아이디어라는 증거가 된다.

당신이 스타트업에 대해 좀 더 긴 플랜을 가질 수 있으면 (아마 빠르게 쥐어짜기 식으로는 사실 불가능할 것이다), “미래에 살고 비어있는 것을 채워라” 이 구절을 이렇게 더 나은 버전으로 만들 수 있다.

“미래에 살고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만들어라”

장관님, 이런 놈들을 찾으십니까?

이상한 녀석들

세인트루이스 도심 기차역에 어려서부터 말을 더듬었던 그래서 내성적일 수 밖에 없었던 한 10대 아이가 앉아있다. 아이는 복잡하게 얽힌 기찻길을 사고한번 없이 정교하게 지나가는 기차들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비디오로 찍어댄다.  그에겐 기차, 택시와 같은 교통수단들이 지점 A에서 지점 B로 정확하게 이동하는 그 과정이 참으로 신비하다. 호기심많은 이 아이는 또한 경찰과 앰뷸런스의 비상 라디오 채널에 무선 주파수를  맞추고 거기서 들려오는 “짹짹” 대는 듯한 짧고 강렬한 메시지들에 매료되어 있다. 그는 복잡한 교통 지도와 짦은 메시지로 표현되는 이 도심 전체를 재현해보고 싶었다. 그가 트위터를 만든 Jack Dorsey 다 [1].

dorsey

사진 1: 잘생겼다! Jack Dorsey

뉴욕주에 어려서부터 참 코딩을 좋아한 녀석이 있었다. 그는 갓 12살 되는 나이에 아버지의 치과 사무실과 집을 연결하는 메시징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아래는 그가 만든 홈페이지인데, 저 가운데 떡하니 박힌 공룡 눈깔은 90년대 너드의 풍모를 제대로 풍긴다.

mark zuckerberg

사진 2: 공룡 눈깔 홈페이지                                              사진 3: The Web

그런데 그중 “The web” 이라는 링크를 따라 들어가면 오른쪽 그림과 같은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 복잡한 그래프가 나온다.  웹의 정의는 HTML 문서와 문서가 링크되는 것인데,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그런 웹이라니…? 이것은 페이스북의  Mark Zuckerberg가 고1때 만든 홈페이지다 [2]. 짧은 스토리에서 드러나는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 어려서부터 프로그래밍을 참 좋아했고 잘했다는 것. 그리고,

남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아주 이상한 것에 꽃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번 이런 상상을 해보자. 우리 동네에 어떤 형 하나가 있는데 말도 더듬고 내성적이다. 비디오 카메라를 가지고 전철역에 나가서는 기차가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항상 찍는다.  무전기를 꺼내 경찰의 신호를 도청하며 듣고, 복잡한 교통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곤 웃는다.  난 그 사람을 이렇게 부를거다: “동네 바보형”.

초딩? 코딩?

Jack Dorsey나  Mark Zuckerberg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다름아닌 창조경제의 떠오르는 키워드 “초딩 코딩”을 다루고 싶어서다. 우선 나는 코딩을 일찍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에 동감한다. 거의 모든 성공적인 해커들이 어려서부터 코딩했으니까. 아래 비디오에 나오는 강호의 고수들이 거짓말을 할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가지 마음속 깊은곳부터 “그건 아닌데…” 라고 반항하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 높으신 장,차관님들의 제한된 생각 때문인듯 싶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능숙하게 컴퓨터 언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 교육을 진행하면서 창조경제에 적합한 인재를 키워내겠다는 전략이다 [3].”

“윤 내정자는 ‘우리 아이들이 ICT로 발달한 결과물(게임, 인터넷)만 가지고 노는 것에 익숙하다보니 게임 중독도 나오고 인터넷 중독도 나오는 것’이라면서 ‘소프트웨어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에 기반해 아이들의 놀라운 호기심과 능력을 직접 만들고 개발하는 쪽으로 돌릴 수 있다면… [4].”

창조형 인재를 “키워내겠다”는 의지는 고마운데 그 과정에서 혹시 저기 노량진역에 앉아 기차들을 비디오로 찍는, 말 더듬는 그런 아이 하나도 창조형 인재로 인정해 줄 수 있을까? 혹시 그런 아이들을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와 같은 비 창조형으로 낙인찍진 않을까?

장관님, 저 코딩은 좀 합니다

이 동네에 만 34세에 코딩을 꽤 하는 사람이 있다. 실리콘밸리의 잘 알려진 스타트업에서 IaaS 클라우드를 만드는데 10개 넘는 언어중 아무거나 골라잡아 코딩할 수 있고, 리눅스나 윈도우즈든 가리지 않는다. 뭐 버는 것도 쏠쏠찮다. 그래서 뻔뻔하게 “장관님 저 코딩은 좀 합니다” 라고 이야기 할만한 그 사람은 바로 나다.

ujjurago

그런데 내겐 마음 한구석 늘 빈공간이 하나 있다. 나도 무언가 내것을 창조해보고 싶다. 내가 시작하는 스타트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10년 넘게 지겹게 날 쫓아왔다. 코딩 실력은 부족하지 않다. 20대만큼 잠 적게 자며 코딩할 수 있는 자신도 있고 체력도 있다. 늘 하는 이런 고민을 하던중 얼마전 새벽 갑자기 스치는 생각에 놀라 잠에서 깼다.

내게는 비젼(Vision) 이 없구나.

아니 사실은 예전 블로그에서 이야기 했듯  미국의 너드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코딩하는 그 비젼은 있었고 이루었다 [링크]. 하지만 넘치는 코딩 능력과 열정을 쏟아부어 이루고 싶은 그림, 오랜 시간 집착하게 만드는 그런 그림이 내게는 없었다. 붓도 물감도 모두 준비되었지만 꼭 그려내야 할 나만의 세계관이 없었다.

SW 스타트업 – 집착(Obsession) 과 비젼

Jack Dorsey가 어린시절 빠져있었던 것은 도심의 복잡한길을 정교하게 통과하는 기차, 택시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짹짹”대는 소음들이었다. 그 집착(Obsession)이 코딩을 만난 결과물이 트위터다.  Mark Zuckerberg는 문서와 문서가 연결되는 웹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웹을 생각했다. 고1때 그런 웹을 생성하는  Java프로그램을 홈페이지에 올렸고, 훗날 하버드 기숙사에서는 Facemash라는 해킹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집착을 지속했다.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스타트업 Pinterest를 시작한 Ben Silbermann은 어려서부터 우표, 돌, 곤충을 수집했고 자신이 수집한 것들이 자기를 표현한다고 믿었다 [5]. 최근 가장 크게 주목받은 Tumblr의 David Karp는 고등학교를 중퇴해 처음 일한곳에서 블로깅 사이트를 만들다가, “‘this blogging thing is too hard”라 선언하며 사용자 친화적인 블로그에 집착했다. 어려서부터 지속되는 바보같은 집착이 코드를 만날때, 집착은 비전이 되고 코드는 전세계에 그림을 그린다.

pinterest

사진 4: Pinterest – 온라인 곤충 수집

우리 아이들

창조경제의 핵심이 SW라고 믿는다면, 창업자들의 독특한 세계관에 대한 “집착”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야 한다. 지금 우리 눈에 바보처럼, 엉뚱한 짓거리 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의 집착을 과연 우리는 용납할 수 있을까? 나는 30대 중반에서야 깨달은 이 SW의 진실이 참 억울하다. 80-90년대를 지나며 그런 바보짓할 여유를 주지 않았던 부모님과 한국 학교, 사회가 참 야속하다. ‘만일 그때 나도 Jack처럼 비디오 카메라 들고 전철역에 앉아 있었더라면….’. 지금도 분명 우리 가운데 Jack같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역전, 시장통 어딘가에서 엉뚱한 짓거리를 하고 있을거다. 그 아이들에게 코드는 가르치자..그리고 그 집착은 눈감아주자… 

— 박상민  https://twitter.com/sm_park

[1] http://www.vanityfair.com/business/features/2011/04/jack-dorsey-201104
[2] http://www.huffingtonpost.co.uk/2013/04/04/mark-zuckerbergs-first-website-angelfire-screenshots_n_3012148.html
[3] http://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serial=746979&g_menu=020400&mains=News
[4] http://media.daum.net/digital/others/newsview?newsid=20130324164805713
[5] http://money.cnn.com/gallery/magazines/fortune/2012/10/11/40-under-40.fortune/18.html

장관님, 코딩은 좀 하십니까?

창조의 추억

창조경제부가 위기다. 큰 누님 등극후 언론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그들이 “진상의 거인” 윤창중에 의해 아웃오브안중이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어쩌면 언론의 관심에서 잠시 벗어난 지금 어디 다같이 MT라도 가셔서 SW 공부, 코딩 공부라도 다시 하는 일은 당연히 상상할 수 없겠다. 창조경제부의 수장 “최문기” 장관님.. 처음 이름을 들었을때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높은분 내가 알리가 없는데… 얼마전 그의 프로필을 훑어 보다가 내겐 잊을수 없는 단어를 발견했다.

2001.10 : 그리드포럼코리아 의장”, “ICU 그리드미들웨어연구센터 최문기 소장”

아 그분은 내가 10년을 연구했던 그리드 컴퓨팅의 한국내 최고 책임자셨구나. 그래서 내가 그 이름이 친숙했구나. 이거 참 너무 반가워서 블로그를 안할 수가 없다. 기대하시라!

그리드 컴퓨팅. 10년전 SW 최고 핫 이슈! 이곳저곳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를 연동해 하나의 컴퓨터처럼 공유한다는게 비전이었고, 미국에선 제 2의 인터넷이라 불리며 정부에서 몇천억을 학교에 뿌려주던 그런 프로젝이다. 미국 따라하기 좋아하는 우리 역시 참여정부 출범직후 수백억을 학교에 하사한다. 창조의 역군 최문기님이 그 프로젝의 리더였다.

때는 2002년, 석사 1학년 “꼬꼬마”였던 나는 우연히 그리드 컴퓨팅에 발을 들였다. 수많은 논문을 읽으며, 나 역시 서양것들이 이야기하는 그런 “진짜” 그리드 시스템 — 여러개의 학교, 연구소의 컴퓨터가 연결되어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 을 만들고 싶었다. 상상하니 신이났고, 또 하면 할수 있을것 같았다 (이게 꼬꼬마의 문제다). 두가지가 관건이었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과 전국의 클러스터 컴퓨터를 모으는 것.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happened

아, 이제 막 학부 졸업한 꼬꼬마도 맘먹으니까 되는구나 그때 알았다. 몇달간 밤새 프로그램을 만들고 전국의 몇개 학교 대학원생에게 클러스터를 사용해도 될지 이메일을 돌렸다. 과부사정 홀애비가 잘안다고 그들은 너그러웠고, 몇몇은 root 패스워드를 가르쳐주는 과잉친절까지 보였다. ‘이렇게 진짜 그리드 테스트베드가 생기는구나’, 그게 참 신이났다. 당시 채팅으로 열정을 나누던 타학교 학생들을 신촌까지 찾아가 만나고, 맥주마시며 신나게 연구 이야기를 하던 기억이 아련하다. 결과적으로 그 당시 꽤 잘나가던 국제 학회에 논문을 집어넣고 채택되는 행운을 얻는다. 사실 아이디어는 구닥다리였지만 아시아에서 테스트베드를 만들고, 실제 그리드를 만들어 실험했다는 그 사실이 서양것들에겐 신기했다. 자랑같지만 실제 한국에서 그리드를 만들어서 논문 채택된 것은 처음이고 마지막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연구하던 2년내내 그리드의 변방에 머물렀다. 내 연구결과를 가지고 교수님이 제안서를 썼고, 돈 얻으러 발표 다녀오신후 한마디: “어 그거 안됐어…거기 될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다 알더라고…”. 그리드 포럼 코리아, 창조의 역군께서 의장으로 계시던 그곳은 이미 네트웍이 단단해서 나같은 변방 학교 꼬꼬마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내가 논문을 어디에 냈건, 어설프지만 테스트베드를 만들었건 그게 큰 상관은 없었다. 그 분들은 이미 뛰어난 플랜을 가지고 계신 한국에서(만) 알아주던 전문가 들이니까. 2년간 그래서 좀 외롭게 연구하다가 미국에 나왔다. 결과적으로는 지금의 클라우드 회사에서 같은것을 만들고 있고.

그럼 정부의 돈을 다 빨아간 “그리드 포럼 코리아” 이 분들은 몇년간 무슨 일을 하셨을까? 처음엔 제법 서양것들처럼 조직을 만들었다. 포럼, 워킹 그룹, 리서치 그룹 등등. 회의도 많이 했다. 그리고 그분들은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비전을 담은 그림, 연간 계획도, 기술스택, 담당기관 연락처등등.. 몇년간 계획세우고, 그림그리고 발표하고…

그렇게 끝났다. 몇년 후 이젠 “유비쿼터스”가 대세라고 정부가 방향을 트니 예산이 사라졌고, 포럼의 교수들, 기관들 다 그쪽으로 돌아섰다. 나랏님이, 그 돈받는 교수님이 이제 유비쿼터스 하라시니 대학원생들은 별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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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간 수백억 세금을 들인 사업에 남은 건 파워포인트와 그림들 뿐이다. 코드도 남지 않고, 사람도 남지 않았다. 허무한 그림만 여러개 구글 이미지 캐쉬에 남아있다. 아래는 당시 최문기 장관의 인터뷰 기사다.

“한때 ETRI에서 연구열정을 불사르기도 했던 최 소장은 “오는 2010년께는 지금보다 1만배 빠른 인터넷이 일상생활에 활용될 전망”이라며 “미들웨어 연구는 향후 예상되는 인터넷 트래픽을 해결하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소장은 산·학·연 컨소시엄을 활용한 공동연구로 미들웨어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석박사급 인력을 향후 4년간 50명 정도 배출할 계획이다.”

묻고 싶다. 약속했던 미들웨어 분야 코드는 어딨습니까? 전문인력 50명? 난 그동안 한 사람도 못 보았는뎁쇼?

관료의 나라

우리는 관료의 나라다. 최문기 장관도, “기가 코리아”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그 아래 윤종록 차관도 모두 한때 엔지니어였다. 언론은 그들이 한때 우리처럼 코딩하던, 그래서 현장감있는  새시대의 일꾼이라 칭찬하지만, 내가 경험한 그들은 모두 “관료”일뿐이다. 돈이 있는 곳에, 인기가 있는 곳은 제일 먼저 달려가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 팝송을 번역해 부르는 것처럼 미국의 인기 기술, 그 호사스런 미래상을 소개하는 사람들. 파워포인트에 미래상을 그려주면, 언젠가 진짜 엔지니어, 해커들이 그것을 이루어 줄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들. 그림만 그려대는 사람들, 그들은 관료다.

Licklider와 Arpanet

J._C._R._Licklider

J.C.R. Licklider (http://en.wikipedia.org/wiki/J._C._R._Licklider). 20세기를 살았던 이상한 이력의 소유자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하버드와 MIT에서 교수를 하다가 60년대 처음 컴퓨터를 만난다. 그리고 쉴세없이 빠져들어가 심리학자가 코딩을 시작한다.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기계어를 직접 넣어야하는 어려운 코딩말이다. 컴퓨터에서 미래를 본 그는 교수 생활을 접고 BBN이라는 컨설팅 회사에 들어간다. 음향전문회사인 BBN을 설득해 비지니스에 아무 상관없는 컴퓨터를 구입하고, 몇명의 해커를 고용해 컴퓨터 부서를 만든다. 그는 곧 미 국방부의 연구 지원 프로그램 ARPA에 들어가 스스로 “공무원”이 된다. 그리고 두개의 프로젝을 시작한다. 프로젝과 시작 동기는 이렇다.

  • MIT의 프로젝트 MAC: 그는 코딩을 하던중 비싸고 큰 컴퓨터를 혼자만 이용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임을 깨닫는다. 한대의 컴퓨터에 여러명이 접속해서 공유할때 컴퓨터의 진짜 가능성이 실현된다고 믿었다. 프로젝트 MAC은 처음으로 time sharing을 구현했다.
  • ARPANet: ARPA의 사무실에는 여러개의 국방부소속 컴퓨터 터미널이 놓여있다. 여러개의 모니터를 왔다갔다하는 것이 불편해, 컴퓨터들이 서로 네트웍에 연결되면 얼마나 편할까 상상한다. 그리고 대학들을 네트웍으로 연결하는 프로젝을 시작한다.

프로젝트 MAC에서는 훗날 유닉스와, C 언어, 그리고 넓게 봐서는 리눅스가 나왔다. ARPANET은 네개의 미국 대학 컴퓨터를 연결해 인터넷의 전신 패킷네트웍을 만들었고, 그 핵심기술인 IMP(라우터)는 BBN에서 Licklider가 심어놓은 해커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TCP/IP의 아버지 Vint Cerf가 그의 프로젝 펀드로 연구하던 꼬꼬마 대학원생이다.

코딩하던 공무원은 Licklider 혼자가 아니다. 어느날  ARPA의 디렉터와 그 아래 ARPANET 책임자 사이에선 이런 대화가 오갔다.

ARPA 디렉터: “너희 ARPANET에서 만든 이메일을 쓰니까 정말 편하더라. 근데 난 이메일을 너무 많이 받아서 그거 관리하는게 정말 불편해…ㅠㅠ”
며칠후 ARPANET 디렉터: “내가 이메일 관리 코드를 짜봤어 한번 써봐.”

이렇게 세계 최초의 이메일 관리 프로그램을 고위 공무원이 만들었다. 그리고 그 코드는 곧 ARPANET 유저사이에 사랑받는 프로그램이 된다.

마무리

정권이 바뀔때마다 정부에서 외치는 구호에 학교들이 화답한다: “그리드”, “유비쿼터스”, “월드클래스 유니버시티”, 이제는 “창조경제”. 우리에게 더이상 큰 그림 그리는 사람은 필요 없다. 언론에 떠들어댄 몇조원 경제 효과, 수백명의 전문가 양성, 이제는 주워남을 수 없는 그 약속들이 부끄럽지는 않은가? “장관님, 차관님 코딩을 좀 하십니까? ” 물으면 아마 속으로 ‘내가 이 나이에, 이 자리에 그짓을 왜..?’ 묻겠지..하지만 우리에겐 해커의 심성을 지닌 사람, 즉 문제가 왜 문제인지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 절실하다. 문제를 정말 사랑하고, 그 본질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창조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

한때는 나와같은 엔지니어, 해커의 길을 걷던 “동지” 높은분들께 이렇게 묻고싶다.

brother

“어이 부라더, 너 만에 하나 내가 C코드 짜라하면 그거 감당할 수 있긋냐?”

대답을 제대로 못할 시 연변 너드들이 찾아갈지도 모른다.

yeonbyon

— 박상민 https://twitter.com/sm_park

우리의 강함은.

흔히 해커들은 어려서부터 프로그래밍에 빠졌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나는 아니다. 인문학부로 막 대학에 들어간 첫해는 국사, 국문, 영문과마다 MT를 따라다니며 그때까지 남아있었던 인문학의 끝자락 낭만을 구경했다. 제 멋대로 머리기르던 “스티븐 시발”형들이 길목마다 가득했다. 절친 형이 컴퓨터를 너무 사랑해 밤마다 프로그래밍 하던 모습이 사실 그것보다 더 좋아보였다. 그래서 컴퓨터과에 전과를 했다.

고등학교부터 인문학돌이였던 내가 그렇게 첫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었다 (참고로 나는 수능 언어영역에서는 늘 99.9% 에 들었고, 수리 영역에서는 50%를 간신히 턱걸이했다). C언어를 하는 그 수업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 처음이라 어렵긴 하구나…”.  두번째 수업을 마치고 “확실히 이과 애들은 다른가보다. 생긴것들 봐봐….”.  막 전과한터라 도움 받을 사람도 없이 결국은 학기말까지 이해 안되는 코딩…어떻게든 버텼고 랩실에서 기말 시험을 보았다.  시험 내용은 아마도 Sorting 알고리즘 하나를 구현하는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컴파일이 되지 않았다.’…

시험 마치기까지 데이터 정렬을 하기는 커녕 프로그램이 컴파일조차 안됐다. 조교가 결과값을 확인하러 왔을때 결국 컴파일 에러가 가득한 모니터를 보여줄 수 밖에 없었다. C언어 수업 결국 C를 받았다. 그날 부끄러워서 조교형 얼굴도 못쳐다보며 컴퓨터실을 나오고 마음속에 무언가 감정이 솟구쳤다.

학부 3학년, 때마침 한국은 벤처의 광풍이 몰아쳤다. 앞에 소개한 형이 한 벤처 회사의 CTO가 되었고, 그동안 간신히 덜덜덜 거리며 프로그램 수업듣던 내게 일을 제의했다. 일년간 정말 열심히 코딩했다.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코딩하다가 회사의 아주 조그만 서버실 뒤에서 매트리스를 깔고 잤다. 너무 생각을 많이해 때로는 꿈에서 알고리즘을 얻기도 했다. 아침에 회사 화장실에서 대충 머리를 감고 나오자면 청소부 아줌마가 늘 ‘저건 뭐하는 자식이야?…’ 이런 얼굴로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이제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당시 비지니스 모델 찾는다고 마음만 바쁘던 회사는 처음으로 (대기업!) 나우누리에서 프로젝을 수주했다. 그런데 사실 개발 경험이 거의 없던 회사였던지라 진도가 영 부진했다. 간신히 apache, tomcat 셋업하고 자바 서블릿 튜토리얼 보아가며 ‘달달달’ 겨우 코딩하던 꼬꼬마였다. ‘갑’ 나우누리는 진도가 안 나오는 우리를 전화로 닥달하다가 결국 개발자 보내라고 요구했다. 아…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그랬는지..이제 겨우 학부 3학년 꼬꼬마가 그곳에 갔다. 그래도 ‘갑’이 부르시니 좋은거 입고 가야한다고…아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은갈치 정장을 입고 갔다.

개발자들 수두룩하고 터미널이 가득한 커다란 방에 은갈치가 던져졌다. 그리고 데모를 해야 하니 준비를 하란다. 윈도우즈가 세상의 전부인줄 알았던 나는 리눅스를 배운지 이제 갓 몇주. “ls” “cd” “mkdir”..이런 단 몇개의 커맨드라인으로 무장한 나를 유닉스 터미널에 앉혀놓고 다시 올테니 데모를 준비해 놓으란다. 정장을 하고 앉은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렇게 갑의 회사 터미널에 한시간동안 ls, cd만 쳐대고 있었다. 결국 그날 갑의 팀장에게 정말 무섭게 혼나며 세상맛을 보았다. 속으로는

‘저 이제 학부 3학년 어린이예요..리눅스 지난주에 배웠어요’

말하고 싶었지만 분위기상 혼나는게 맞았다. ‘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혼날수 있구나’ 그날 알았다. 그렇게 그곳 개발실을 나오며 마음속에서 무언가 또 솟구쳤다.

몇년후, 이전 블로그에서 소개했던 내용이 계기가 되어 유학을 나왔다.(https://sangminpark.wordpress.com/2011/09/15/%EB%B9%84%EC%A0%84-%EB%88%88%EC%9C%BC%EB%A1%9C-%EB%B3%B4%EB%8A%94-%ED%96%89%EC%9C%84/) 비록 학부 학점은 요즘 류현진 방어율 비슷하지만 코딩은 이제 제법 자신있었다. 게다가 다른 신입생들과 다르게 나는 이미 여러편 논문을 쓴 경험이 있었다. 미국에서도 잘 할것 같았다. 두학기 지난후 퀄 시험이라는 박사자격시험을 보았다. 안될것같은 학생은 미리 걸러내는 시험이다. 열심히 준비했다. 아직 20대 초반 어린 아내가 싸준 도시락 도서관에서 같이 먹으며 공부했다. 아 이렇게 많이 배우는구나 생각했다. 시험을 치뤘다 그리고..

‘나는 한 문제도 맞추지를 못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무어라고 답을 적어낸 문제가 거의 없었다. 빈 종이를 내고 나오며 혹 교수님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부끄러웠다. 집에 돌아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맞아준 아내를 방에서 나가게 하고 그냥 침대에 누웠다. 살면서 처음으로 ‘정말 안될것 같다’ 라는 패배감이 가득했다. 아마 한 문제만 제대로 답을 써봤어도 그렇진 않았을텐데…간신히 잠을 청하고 저녁즈음 일어나며 드는 어떤 감정이 있었다.

돌아보면 세가지 일을 겪은후 마음속을 가득 채운 그것은 “분함”이었다. C학점을 받은것도, ‘갑’에게 혼났던 것도, 빈 답안지를 냈던 것도 모두 내 모자람때문이었는데 나는 왜 그게 그렇게 분하고 원통했는지 모른다. “분함”이란 풀어 쓰자면, “두고봐라 내가 지금은 이래도 앞으로는 달라질 거다” 라는 일종의 선언이다. 그렇게 처음 분함을 품은지 10년이 좀 더 지났다. C코드 컴파일도 못시키던 꼬꼬마가 지금은10개 정도 언어로 몇십만 라인 코드를 짜고 있다. 리눅스를 몰라 ls, cd만 땀흘리며 톡톡댔었는데 지금은 ubuntu, redhat 사람들과 같이 일을한다. 정말로 안될줄 알았던 퀄시험도 그냥 책을 통째로 외우는 비장함으로 마쳤다.

이렇게 개인적 일화를 길게 적어간 이유는 “다 잘되었노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는 이 “분함”이 한국인이 가진 가장 강한힘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번 블로그를 올린후 누군가 한국인으로서의 강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는 미국과 같은 잉여 문화도 없고, 거대한 오픈소스 커뮤니티도 없다. SW를 제대로 만들어본 경험도 없다. 무엇일까…나름 고민을 하다가 결국 다다른것은 우리에겐 이 “분함”과 같은 강한 감정의 힘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인 동료들과 일하며 그들의 너드스런, 잉여스런 집착에 감탄하고, 정말 화려한 코딩 실력에 많이 감동할때가 많다. 하지만 한국인 동료들만큼 자신의 코드에 감정적으로 접착(attach)되는 사람은 별로 못 보았다. 때로 우리는 툴툴대긴 하지만, 주말에도 밤에도 코딩할만큼 자신의 일에 감정적으로 몰입한다. 혹 누군가 내 코드가 영 별로라고 말하면 미국 사람들은 “입닫고 저리 가” 하겠지만, 한국 사람은 그말이 분해서 디버그하고 또 디버그한다.

우리가 가진 이 강한 감정의 힘. 이것이 어떻게 일상의 행복, 잉여의 문화와 결합할 수 있을까?…추상적인 질문이지만 개인적으론 여기에 SW의 해결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한국인 고유의 감정의 힘과 잉여스러움의 조화…언젠가 멋지게 어우러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너드의 코드

꽤 오래 블로그를 안해서 그런지 손가락이 찌뿌드드하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 생각하다가, 문득 그동안 관찰한 인류의 한가지 패턴중 하나인 너드(Nerd)를 떠올렸다. 한국에도 너드 인종이 분명 존재하지만, 여기 미국의 너드 인종은 사회가 자유로워서 그런지 마음껏 DNA에 새겨진 너드 향기를 풍기며 산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너드향에 취해 나 또한 너드가 되어 가는것을 발견한다. 완전히 너드인으로 감염되기 전에 어서 나의 발견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어 키보드를 두들긴다.

우선 유식하게 보이기 위해, 너드 (Nerd)의 사전적 정의를 한번 먼저 살펴보자 (http://dictionary.reference.com/browse/nerd).

  1. 멍청하고, 쓸모없고, 매력없는 사람
  2. 똑똑하지만 비 사회적인 취미나 이상에 깊이 빠져있는 사람

멍청한 사람도 너드고 똑똑한 사람도 너드라니 재밌다. 미묘하게 두 반의어 사이를 오가는 인종을 너드인이라고 해야 할까? 참고로 유사어로는 Geek 정도가 있고, 한국에서 서식하는 너드는 흔히 오탁후, 잉여인등의 명칭으로 불린다. 그럼 본격적으로 너드의 코드를 분석해 보자.

1. 너드의 드레스 코드 (Nerd’s dress code)

너드라면 패션센스 없는게 상식이다. 나는 한국에 갈때마다 한가지 스트레스를 받는데, 나름 집에서 제일 깨끗한 옷으로 잘 차려입고가 비행기에서 내리면, 부모님, 특히 엄마가 너무 속상해하신다. 미국에서 거지온줄 알았다고…하루, 이틀 여행가방에 넣어온 옷들 — 주로 검은 티셔츠와 갭 반바지 — 을 입고 돌아다니면, 결국 이웃들 보기 부끄러우신지 내 손을 이끌고 메이커 옷가게로 향하신다. 몸에 착 달라붙는 그 옷들을 한국에서만 간신히 입어 드리다가 미국에서는 옷장에 쳐박고 다시 나만의 드레스코드로 돌아간다. 그럼 너드의 드레스 코드, 그 기준은 무엇인가? 개콘의 애정남 프로가 유행인데 최효종처럼 그럼 나도 이 자리에서 애매한 그 기준을 정확히 정해드리겠다.

  • C급 너드: 면바지 + 카라 있는 옷 (폴로 티셔츠나 남방)
  • B급 너드: 청바지 + 카라 없는 티셔츠
  • A급 너드: 청바지/반바지 + 공짜 티셔츠 (주로 컨퍼런스에서 주는 홍보 티) + 샌달
  • 일진 너드: 반바지 + 공짜 티셔츠 + 샌달 + 양말 (흰색이 갑)

여기에 예외는 없다. 내가 수년간 관찰한 결과이기도 하고 리누스 토발즈가 그의 책 (Just for fun)에서 밝히기도 한 그의 드레스 코드다.

        리누스 토발즈와 흰양말                                     귀여운 검은 티셔츠 고슬링 옹

오른쪽 사진은 두달전쯤 우리 회사에 놀러온 제임스 고슬링 옹이시다(고 밑에는 본인).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분은 반바지, 공짜 티셔츠, 샌달에 양말을 정확히 착용하고 계셨다. 우리 회사에선 마케팅 차원에서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가장 싼(!) 티셔츠를 선물했고, 티셔츠의 로고를 약 10초간 흐뭇하게 바라보며 좋다고 하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우리 회사의 개발팀 막내는 작년 막 대학을 졸업한 ‘개럿’이라는 녀석이다. 이 친구가 저 멀리 미네소타주에서 인터뷰 하러 온날, 나와 동료들은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결론을 내렸다: “대박이다. 뽑자!”. 두뺨을 살포시 덮는 꼬불꼬불한 금발, 여드름끼가 가시지 않은 희고 큰 얼굴에 두툼한 안경을 낀 그 녀석의 호기심 가득한 얼굴은 동화속에서 막 뛰어 나온것 같은 너드나라 어린왕자였다. 깔끔해 보이려고 입은 흰 남방을 힘겨워 하는 그를 보며 , 면접을 위해 엄마가 정성껏 골라준 옷이었다는 사실을 모두 직감했다. 그의 패션센스는 반바지에 매달고 다니는 알루미늄 물통에서 절정을 이룬다. 회사에 들어온후 우리의 예상대로 그는 실력에서도 일진이었다. 개발팀에서 가장 어리고, 팀 절반은 박사들이지만 그의 패키징 지식은 팀의 그 누구도 따라갈 수가 없다. 개럿은 Fedora 커뮤니티에서 존경받는 개발자중 하나다.

2. 너드의 생활 코드 (Nerd’s social code)

너드들과 어울려 생활하다 보면 묘하게 발견되는 대화와 인간관계, 그리고 취미의 공통점이 있다. 오늘은 특이한 두가지만 소개해 본다.

– 마음 여린 독설가
경험상 성격이 유순하고 두루 두루 사람들과 잘지내는 사람가운데 뛰어난 프로그래머는 드물다. 뛰어나고 감각적인 코더들은 종종 성격이 지랄 맞거나, 아니면 대화의 기술이 부족해서 표현이 아주 직설적이다. 이를테면 우리 회사의 개발회의는 종종 이런식의 대화가 오간다.

CTO ‘리치’ (약 50세, 사진속 고슬링과 대화) – “얘들아 우리 경쟁회사 애들이 A라는 기능을 새로 추가했단다. 우리도 그 기능을 만들어볼까?”

나 (순한 32세) – “오 좋은 아이디어. 나도 그런거 생각했어요 (일종의 아첨…).”

개발자 ‘닐’ (31세) – “오 쒯, 왓 더 뻥! 코딩도 제대로 못하는 잡놈들이 만든걸 따라하라고?”

회의중에 “쒯” “왓 더 뻥” 이런 상스런 표현은 아주 흔하게 접한다 (뻥유 까지는 안한다). 회사에 ‘닐’ 이라는 이름의 31살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욕쟁이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까만 구레나룻이 나서 좀 무섭게 생겼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도 근육질인데 이 친구는 회의할때면 종종 흥분해서 욕을 내뱉는다. 개발팀엔 50대 아저씨들도 있고 CTO는 예전 지도교수인데도 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사실 표현이 거칠어서 그렇지 대부분 맞는 이야기를 한다. 약간은 어색한 가운데 회의가 끝나면 ‘닐’은 이런 사진을 모두에게 보내곤 한다.

            

그렇다. 그는 험상궂은 얼굴에 욕을 달고 살아도 마음만은 고양이 사진을 좋아하는 여린 청년인 것이다!

대부분 너드들은 마음이 여리고 착하다. 뛰어난 화술과 감정을 숨길줄 아는 사회 생활 스킬은 부족해도, 그래서 종종 친구들이 없고 외로워 보여도, 내가 만난 진짜 너드들은 모두 착한 사람들이었다. 소프트웨어 회사의 진정한 힘은 MBA 출신에 서글서글 사교성 좋은 사람들보다, 이렇게 거칠지만 마음 여린 개발팀 너드들이다.

– 잉여 폭발
지금까지 여러번 강조했지만, 폭발하는 잉여력은 너드들의 특징중 하나다. 회사에서 누가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너드들은 종종 밤을 세우고 심혈을 기울여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 내곤 한다. 그리고 그 작품에 다들 감탄하지만, 누구나 곧 이 의문을 갖게 된다. “근데 왜 했지?” — 예를 들어 ‘앤드류’라고 주말에도 회사에서 사는 젊은 너드가 최근 액셀 파일을 하나 만들었는데, 실시간으로 회사의 서버 정보들을 취합하는 매크로를 사용해 대단한 그래프를 선보였다. 내가 보기에 너무 멋졌다. 근데 왜 한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그 기능을 하는 웹페이지가 있었는데…

종종 이런 잉여력은 취미 생활로 나타난다. 우리 회사엔 자전거에 미친 사람이 많은데, 매일 나가서 20 km 정도를 달리고 온다. 보기 좀 민망하게 어떤 부위에 착 달라붙는 자전거복을 입고 복도를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 보면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생각이 절로 난다. 회사의 한국인 교포 친구는 써핑을 좋아해서 매일 아침 써핑하고 1시에 출근한다. 밤늦게까지 일하며 자기 몫은 잘 해낸다. 코딩을 하다보면 종종 기타소리가 들리는데, 자기 방에서 갑자기 미친듯 기타를 치는 대니얼과 그의 전 지도교수 리치다. 한때 골프에 미친 나는 1년동안 매일 아침 라운딩을 돌고 출근했다.

3. 너드의 인생 코드 (Nerd’s life code)

너드의 인생은 호기심으로 충만하다. 재미있는 장난감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하고, 새로나온기계에 흥분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 회사 사무실엔 장난감 헬리콥터가 날아다니고 모형 기차가 비좁은 개발실 가운데에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고등학생 아들이 있는 엔지니어 아저씨 ‘데이빗’은 어느날 흥분하며 로봇 프로그래밍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회사의 비지니스와 관련도 없는데). 그의 입사를 환영하는 회식은 비좁은 사무실에서 시켜먹은 인도 카레와, 그가 들고온 X-box 게임이 전부였다.

잉여짓과 같은 작은 비전도, 때로는 세상을 바꾸는 큰 비전도 너드의 세상가운데 피어난다. 너드는 자신이 꿈꾸는 비전을 향해 코딩을 멈추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그 열망은 강해지는듯 하다. 우리 개발팀 최고 노장 아저씨 ‘밋치’는 아마 나이로는 50을 넘겼을거다. 하지만 우리 개발팀중에 그가 제일 유명하고 실력도 최고다. 구글을 포함 수만명이 그가 만든 아마존 웹서비스 클라이언트 라이브러리를 사용한다. 아저씨는 낮에는 회사일로, 밤과 주말에는 사람들이 보내온 패치를 적용하고 코딩하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회사의 창업자이자 CTO인 ‘리치’역시 비슷한 연배의 대학 정교수다. ‘리치’는 개발팀 사람들 중 매일 아침 가장 일찍 출근해 코딩한다. 노트북 스크린을 뚫어버릴듯이 집중하며 키보드를 두들겨대다가, 밝게 웃으며 느즈막이 출근하는 우리들을 맞는다. CTO 역할은 좀 더 높은 자리에서 회사의 비전과 경영을 논해야 하건만, 그는 여전히 버그를 잡으려 GDB를  돌리고 시스템을 테스트할 스크립트 짜기에 여념이 없다. 출장길 공항에서도 그는 SSH로 접속해 시스템을 점검한다.

“너드: 똑똑하지만 비 사회적인 취미나 이상에 깊이 빠져있는 사람” — 그 이상이 세상을 바꾼다.

4. 마무리

의문이 든다. 나는 진짜 너드일까?
패션감각은 제로니까 OK. 지금쓰는 블로그를 포함해 종종 잉여짓을 하니까 그것도 OK.
그런데 내가 프로그래밍하게끔 하는 힘은 정말 호기심과 비전일까?

두 딸과 아내의 생계를 위해 내가 희생한다고 생각했던적이 얼마나 많았는데…
박사학위를 받으면 코딩하지 않아도, 고상한 논문에 남들을 지도하는 것만으로도 존경받을거라 생각한적도 있었는데…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아니면 도태될까봐, 그 “공포”에 질려 기술책들을 읽어가던 그런 때가 얼마나 많았는데…

그런데 50세가 넘어서도 코딩하는 나의 모습을 나는 정말 바라고 있었던 걸까? ….

아무쪼록, 훗날 내 아이들의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내가 만든 시스템을 보여줄 그런 날을 맞게되길 소망해본다.

– 박상민 http://twitter.com/#!/sm_park

비전-눈으로 보는 행위

얼마전 둘째 아이를 낳고 (내가 아니고 부인님이) 그 녀석 돌보는게 너무 피곤한 나머지 초저녁 새우잠을 잔적이 있다. 꿈을 꾸었다. 이유는 알수 없었는데 10여년전 대학생 시절 매일처럼 지나다니던 수원역 거리가 마치 영화 필름 돌려보듯이 너무 생생하게 나타났다. 학교버스에서 내려 신호등 지나면 보이는 수원역전과 그 주변을 가득 매운 노점상, 그리고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한참동안 잊고 있었던 그 풍경을 그대로 돌려보니 꼭 예전 발라드 듣고 난 기분 이었다. 그런데 그중에 제일 생생하고 한편으로 왠지 돌아갈수 없을것 같은 아련함까지 느낀건 다름아닌 길거리 노점상들의 오뎅 냄새를 꿈속에서 맡았기 때문이다. 웃기지만, 정말 그 냄새들이 꿈속에서 살아나니 13년전 그때의 분위기 모두 다시 돌아온 기분이었다. 꼭 그 꿈 뿐만이 아니다. 종종 낯선 장소에서 우연히 맡은 어떤 향기 때문에 나는 한참을 잊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때가 많았다. 아마도 후각은 무의식속 과거를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감각 기관인가 보다.

후각이 과거라면, 시각은 미래를 만드는 감각기관이라 생각한다. 비전(vision)의 사전적 해석을 보면:

  1. 눈으로 보는 행위
  2. 앞으로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것

약 9년전쯤에 나는 한국에서 컴퓨터과 대학원을 다녔다 (아주대학교). 학부시절 벤처한다고 밤을 세우고 살았던 것 그리고 인문학과에서 컴퓨터과로 전과를 한 배경때문에 학부 학점이 심히 안 좋았다. 수학등 모든 기초과학 과목에서 B를 맞아본 적이 없을 정도니까. 성공한 사람들은 흔히 학부때 다른 잉여짓에 몰두한 나머지 학점을 소홀히 했다고 이야기 하지만, 나는 나름 열심히 공부해도 안됐으니 안 똑똑해서 그런거라고 고백할수 밖에 없다. 그래서 졸업후 나를 받아주는건 자대 대학원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정부의 눈먼돈 (BK21) 지원을 받아 해외 학회를 가게됐다. 영국에서 열리는 오픈 그리드(GRID) 포럼이라는 곳인데 나 포함해서 네명 정도 같은 연구실에서 동행했다. 너무 예쁜 관광지 에딘버러에서 열리는  학회여서 나와 동기들 모두 신났던걸로 기억난다. 첫날 등록하러 학회 장소로 향하는데, 그 당시 그리드는 지금의 클라우드와 같은 유망한 기술로 소문나 이미 건물주변이 사람들로 북적북적 했다. 우리가 관광하느라 늦게 도착해서 안에서는 이미 IBM같은 거대 기업의 중역들이 키노트를 하고 있었다. 성큼성큼 넓은 홀을 지나가는데,  청바지와 컨퍼런스 티셔츠로 후줄근하게 입고 바닥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뭘하나 살펴보니 그 사람들은 무선랜으로 터미널을 접속해 프로그래밍 하고 있었다. 2002년 그 당시 우리나라엔 무선랜이 막 보급되는 시점이었는데, 선이 없다는게 그렇게 자유로운건지 그때 알았다. 그 사람들은 안에서 하는 높은분들의 키노트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고 오로지 검은 스크린에 떠오르는 하얀 글씨들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거기서 난 나를 봤다. 그때 눈으로 목격한, 자유분방한 차림에 오로지 코딩에만 집중하는 그 모습이 왜 그리 멋있어 보였는지 모른다. 나와 함께 간 동기들은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였는데, 나는 그 모습이 혹 나의 모습이 된다면 하는 상상에 몹시 설렜다. 숙소에 돌아가서도 관광 보다는 그 풍경이 떠올라 괜히 터미널을 띄워넣고 “ls; cd; vi”를 반복했던 것 같다. 학교로 돌아와 에딘버러에서 본 그 사람들이 가는 학회에 나도 한번 논문을 내보자라는, 석사1년차로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품었다. 교수님은 “안될텐데 거기는…”, 만류 하셨지만, 고집을 부려 두달 부지런히 일했고 논문을 제출했다. 다시 두달후에 논문이 accept됐다는 이메일을 받았을때 아마 그때가 태어나 처음으로 성취감을 느꼈던때 였던것 같다. 그리고 그 논문덕에 구원투수 방어율같던 학점을 극복하고 유학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9년전 눈으로 봤던 그 모습으로 살고 있다. 청바지에 샌달신고 (솔직히 흰양말은 안신는다)  출근해 그때 봤던 그사람들 사이에서 코딩하고 있다 (실제로 지금 회사 동료들이 에딘버러 그곳에 있었다). 아마 그때 그 모습을 못보았다면 지금 난 다른 삶을 살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솔직히 지금 모습이 그렇게 자랑스러워서 글을 쓰는건 아니다. 동기들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궁핍하다. 그냥 눈으로 찍어놓은 가장 인상적인 기억이 구현된 것, 즉 비전의 사전적 의미가 현실에도 적용되는게 신기해서 기록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고민은 10년후에 구현할 내 모습이다. 지금 스냅샷을 찍고 가슴에 담아야 할 생생한 풍경, 비전은 무엇일까? 계속 주변 사람들과 현상을 관찰하는 습관은 아마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뛰어난 영웅 — 최고로 가치있는 삶을 사는 사람 — 을 가까이에 두고 그 모습을 찍고 싶다.

– 박상민 http://twitter.com/#!/sm_park

What-How-Why-Why not?

출근했는데 마땅히 급한 일이 없으니 한번 짧게 교육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요즘 Steven Levy 가 지은 구글에 대한 책 [1] 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구글은 미디어에서 잘 묘사하듯이 너드, 오탁후, 해커들이 모여 만든 대형 AI (인공지능) 공장이다. Levy는 책에서 이런 구글의 문화는 독종 오탁후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받았던 몬테소리 교육에서 비롯됐다고 이야기한다(몬테소리 원장님들이 들으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갈 듯). 즉, “그건 왜 안되는데?” 를 가르치는 교육이 일찌기 두 창업자 뇌를 프로그래밍 했다는 이야기다. 30분 걸어가야 유치원 한군데 있는, 00리 출신인 나로선 그런 교육을 못받은게 억울할 뿐이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난 자연이 프로그래밍 했다. 자랑스러워 하자). 한번 교육의 네 단계에 대해서 정리해 보자.

What
중,고등학교에서 늘 하는 짓, 지식의 결과물을 듣고 암기하는 것이다. 지금 머릿속에서 랜덤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을 적어보면:

  • 삼국사기 김부식, 삼국유사 일연. 김부식 나쁜놈
  •  
  • ATM의 셀은 53 바이트 (아 이건 그만 잊고싶다…ㅠㅠ)

How
대학교와서 What과 더불어 배우는 것들이다. xx 기술은 어떻게 구현되었는가? CPU는 디지털회로 땜질을 해보면서, C 언어는 컨텍스트 프리 그래머를 떠올리면서, SW디자인은 폭포와 달팽이를 손으로 따라 그려보면서 배웠다.

Why
여기서부터는 대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인데, 누가, 왜  그 시대에 그 지식 혹은 기술을 만들어야 했는가? 미국에 와서 1년후 치른 공포의 박사시험 (Qual)에서 받은 이론 점수는 0 점이었다. 지도 교수는 미 동부 특유의 깐깐하고 엄숙한 사람인데, 그 점수가 매겨진 시험지를 앞에 놓고 약 1분간 침묵하며 날 바라보았다. 그 깊고 그윽한 눈길에서 난생 처음 공포를 느꼈다. 집에 돌아가 위로하는 아내를 거실에 두고 혼자 침대에 누워 다시 눈뜨지 않았으면 생각했다.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힘을 얻은건 지난번 소개처럼 Martin Davis의 The Universal Computer를 읽고 나서다. 라이프니츠와 튜링이 왜 그리 Dream Machine 문제에 집착했는지를 알고 난 후, 그제서야 나도 문제 자체의 매력을 알게 됐다. 간신히 Why의 단계로 들어간 거다. How 과정에서 좌절하고 힘들때 Why는 신념을 갖고 문제에 도전하게 한다. 이런 동기부여를 주지 않은 예전 대학이 미웠다.

Why not?
요즘 정말 들어가고 싶은 단계는 “Why not?” 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왜 안되는데?”, “난 회사를 시작하면 왜 안되는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Why 를 찾아냈다면, 그럼 미래를 만들어내려면 Why not? 을 외쳐야 한다. 그런데 참 어렵다. 래리와 세르게이가 받았던 그런 교육을 못 받아서 그런가? 공포로 받은 상처들이 아직 아물지 않아 그런가? 은행 잔고를 보면 한숨쉬는 아내에게 미안해서 그런가?

어쩌면 평생 Why not?의 단계에 못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Why 단계에 머무르기만 해도 아마 중산층으로, 좋은 남편과 아빠로, 혹 학교에 가게 된다면 좋은 선생이 될 수 있겠지. 근데….10년전 집을 나와 살던 벤처회사의 서버실 뒷 공간, 거기 깔아 놓은 매트에 누워서 듣던 팬(fan) 소리, 서너시간 자면서도 알고리즘이 떠오르면 일어나 메모지에 적어놓던 날. 아주 잠시였고, 실패했지만 Why not? 을 시도해봤던 그때가 계속 생각난다. 돌아가고 싶다.

– 박상민 http://twitter.com/#!/sm_park

[1] In The Plex: How Google Thinks, Works, and Shapes Our Lives, by Steven Levy
[2] 소프트웨어, 하드웨어의 아버지 (https://sangminpark.wordpress.com/2011/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