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드의 코드

꽤 오래 블로그를 안해서 그런지 손가락이 찌뿌드드하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 생각하다가, 문득 그동안 관찰한 인류의 한가지 패턴중 하나인 너드(Nerd)를 떠올렸다. 한국에도 너드 인종이 분명 존재하지만, 여기 미국의 너드 인종은 사회가 자유로워서 그런지 마음껏 DNA에 새겨진 너드 향기를 풍기며 산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너드향에 취해 나 또한 너드가 되어 가는것을 발견한다. 완전히 너드인으로 감염되기 전에 어서 나의 발견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어 키보드를 두들긴다.

우선 유식하게 보이기 위해, 너드 (Nerd)의 사전적 정의를 한번 먼저 살펴보자 (http://dictionary.reference.com/browse/nerd).

  1. 멍청하고, 쓸모없고, 매력없는 사람
  2. 똑똑하지만 비 사회적인 취미나 이상에 깊이 빠져있는 사람

멍청한 사람도 너드고 똑똑한 사람도 너드라니 재밌다. 미묘하게 두 반의어 사이를 오가는 인종을 너드인이라고 해야 할까? 참고로 유사어로는 Geek 정도가 있고, 한국에서 서식하는 너드는 흔히 오탁후, 잉여인등의 명칭으로 불린다. 그럼 본격적으로 너드의 코드를 분석해 보자.

1. 너드의 드레스 코드 (Nerd’s dress code)

너드라면 패션센스 없는게 상식이다. 나는 한국에 갈때마다 한가지 스트레스를 받는데, 나름 집에서 제일 깨끗한 옷으로 잘 차려입고가 비행기에서 내리면, 부모님, 특히 엄마가 너무 속상해하신다. 미국에서 거지온줄 알았다고…하루, 이틀 여행가방에 넣어온 옷들 — 주로 검은 티셔츠와 갭 반바지 — 을 입고 돌아다니면, 결국 이웃들 보기 부끄러우신지 내 손을 이끌고 메이커 옷가게로 향하신다. 몸에 착 달라붙는 그 옷들을 한국에서만 간신히 입어 드리다가 미국에서는 옷장에 쳐박고 다시 나만의 드레스코드로 돌아간다. 그럼 너드의 드레스 코드, 그 기준은 무엇인가? 개콘의 애정남 프로가 유행인데 최효종처럼 그럼 나도 이 자리에서 애매한 그 기준을 정확히 정해드리겠다.

  • C급 너드: 면바지 + 카라 있는 옷 (폴로 티셔츠나 남방)
  • B급 너드: 청바지 + 카라 없는 티셔츠
  • A급 너드: 청바지/반바지 + 공짜 티셔츠 (주로 컨퍼런스에서 주는 홍보 티) + 샌달
  • 일진 너드: 반바지 + 공짜 티셔츠 + 샌달 + 양말 (흰색이 갑)

여기에 예외는 없다. 내가 수년간 관찰한 결과이기도 하고 리누스 토발즈가 그의 책 (Just for fun)에서 밝히기도 한 그의 드레스 코드다.

        리누스 토발즈와 흰양말                                     귀여운 검은 티셔츠 고슬링 옹

오른쪽 사진은 두달전쯤 우리 회사에 놀러온 제임스 고슬링 옹이시다(고 밑에는 본인).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분은 반바지, 공짜 티셔츠, 샌달에 양말을 정확히 착용하고 계셨다. 우리 회사에선 마케팅 차원에서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가장 싼(!) 티셔츠를 선물했고, 티셔츠의 로고를 약 10초간 흐뭇하게 바라보며 좋다고 하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우리 회사의 개발팀 막내는 작년 막 대학을 졸업한 ‘개럿’이라는 녀석이다. 이 친구가 저 멀리 미네소타주에서 인터뷰 하러 온날, 나와 동료들은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결론을 내렸다: “대박이다. 뽑자!”. 두뺨을 살포시 덮는 꼬불꼬불한 금발, 여드름끼가 가시지 않은 희고 큰 얼굴에 두툼한 안경을 낀 그 녀석의 호기심 가득한 얼굴은 동화속에서 막 뛰어 나온것 같은 너드나라 어린왕자였다. 깔끔해 보이려고 입은 흰 남방을 힘겨워 하는 그를 보며 , 면접을 위해 엄마가 정성껏 골라준 옷이었다는 사실을 모두 직감했다. 그의 패션센스는 반바지에 매달고 다니는 알루미늄 물통에서 절정을 이룬다. 회사에 들어온후 우리의 예상대로 그는 실력에서도 일진이었다. 개발팀에서 가장 어리고, 팀 절반은 박사들이지만 그의 패키징 지식은 팀의 그 누구도 따라갈 수가 없다. 개럿은 Fedora 커뮤니티에서 존경받는 개발자중 하나다.

2. 너드의 생활 코드 (Nerd’s social code)

너드들과 어울려 생활하다 보면 묘하게 발견되는 대화와 인간관계, 그리고 취미의 공통점이 있다. 오늘은 특이한 두가지만 소개해 본다.

– 마음 여린 독설가
경험상 성격이 유순하고 두루 두루 사람들과 잘지내는 사람가운데 뛰어난 프로그래머는 드물다. 뛰어나고 감각적인 코더들은 종종 성격이 지랄 맞거나, 아니면 대화의 기술이 부족해서 표현이 아주 직설적이다. 이를테면 우리 회사의 개발회의는 종종 이런식의 대화가 오간다.

CTO ‘리치’ (약 50세, 사진속 고슬링과 대화) – “얘들아 우리 경쟁회사 애들이 A라는 기능을 새로 추가했단다. 우리도 그 기능을 만들어볼까?”

나 (순한 32세) – “오 좋은 아이디어. 나도 그런거 생각했어요 (일종의 아첨…).”

개발자 ‘닐’ (31세) – “오 쒯, 왓 더 뻥! 코딩도 제대로 못하는 잡놈들이 만든걸 따라하라고?”

회의중에 “쒯” “왓 더 뻥” 이런 상스런 표현은 아주 흔하게 접한다 (뻥유 까지는 안한다). 회사에 ‘닐’ 이라는 이름의 31살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욕쟁이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까만 구레나룻이 나서 좀 무섭게 생겼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도 근육질인데 이 친구는 회의할때면 종종 흥분해서 욕을 내뱉는다. 개발팀엔 50대 아저씨들도 있고 CTO는 예전 지도교수인데도 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사실 표현이 거칠어서 그렇지 대부분 맞는 이야기를 한다. 약간은 어색한 가운데 회의가 끝나면 ‘닐’은 이런 사진을 모두에게 보내곤 한다.

            

그렇다. 그는 험상궂은 얼굴에 욕을 달고 살아도 마음만은 고양이 사진을 좋아하는 여린 청년인 것이다!

대부분 너드들은 마음이 여리고 착하다. 뛰어난 화술과 감정을 숨길줄 아는 사회 생활 스킬은 부족해도, 그래서 종종 친구들이 없고 외로워 보여도, 내가 만난 진짜 너드들은 모두 착한 사람들이었다. 소프트웨어 회사의 진정한 힘은 MBA 출신에 서글서글 사교성 좋은 사람들보다, 이렇게 거칠지만 마음 여린 개발팀 너드들이다.

– 잉여 폭발
지금까지 여러번 강조했지만, 폭발하는 잉여력은 너드들의 특징중 하나다. 회사에서 누가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너드들은 종종 밤을 세우고 심혈을 기울여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 내곤 한다. 그리고 그 작품에 다들 감탄하지만, 누구나 곧 이 의문을 갖게 된다. “근데 왜 했지?” — 예를 들어 ‘앤드류’라고 주말에도 회사에서 사는 젊은 너드가 최근 액셀 파일을 하나 만들었는데, 실시간으로 회사의 서버 정보들을 취합하는 매크로를 사용해 대단한 그래프를 선보였다. 내가 보기에 너무 멋졌다. 근데 왜 한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그 기능을 하는 웹페이지가 있었는데…

종종 이런 잉여력은 취미 생활로 나타난다. 우리 회사엔 자전거에 미친 사람이 많은데, 매일 나가서 20 km 정도를 달리고 온다. 보기 좀 민망하게 어떤 부위에 착 달라붙는 자전거복을 입고 복도를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 보면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생각이 절로 난다. 회사의 한국인 교포 친구는 써핑을 좋아해서 매일 아침 써핑하고 1시에 출근한다. 밤늦게까지 일하며 자기 몫은 잘 해낸다. 코딩을 하다보면 종종 기타소리가 들리는데, 자기 방에서 갑자기 미친듯 기타를 치는 대니얼과 그의 전 지도교수 리치다. 한때 골프에 미친 나는 1년동안 매일 아침 라운딩을 돌고 출근했다.

3. 너드의 인생 코드 (Nerd’s life code)

너드의 인생은 호기심으로 충만하다. 재미있는 장난감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하고, 새로나온기계에 흥분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 회사 사무실엔 장난감 헬리콥터가 날아다니고 모형 기차가 비좁은 개발실 가운데에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고등학생 아들이 있는 엔지니어 아저씨 ‘데이빗’은 어느날 흥분하며 로봇 프로그래밍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회사의 비지니스와 관련도 없는데). 그의 입사를 환영하는 회식은 비좁은 사무실에서 시켜먹은 인도 카레와, 그가 들고온 X-box 게임이 전부였다.

잉여짓과 같은 작은 비전도, 때로는 세상을 바꾸는 큰 비전도 너드의 세상가운데 피어난다. 너드는 자신이 꿈꾸는 비전을 향해 코딩을 멈추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그 열망은 강해지는듯 하다. 우리 개발팀 최고 노장 아저씨 ‘밋치’는 아마 나이로는 50을 넘겼을거다. 하지만 우리 개발팀중에 그가 제일 유명하고 실력도 최고다. 구글을 포함 수만명이 그가 만든 아마존 웹서비스 클라이언트 라이브러리를 사용한다. 아저씨는 낮에는 회사일로, 밤과 주말에는 사람들이 보내온 패치를 적용하고 코딩하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회사의 창업자이자 CTO인 ‘리치’역시 비슷한 연배의 대학 정교수다. ‘리치’는 개발팀 사람들 중 매일 아침 가장 일찍 출근해 코딩한다. 노트북 스크린을 뚫어버릴듯이 집중하며 키보드를 두들겨대다가, 밝게 웃으며 느즈막이 출근하는 우리들을 맞는다. CTO 역할은 좀 더 높은 자리에서 회사의 비전과 경영을 논해야 하건만, 그는 여전히 버그를 잡으려 GDB를  돌리고 시스템을 테스트할 스크립트 짜기에 여념이 없다. 출장길 공항에서도 그는 SSH로 접속해 시스템을 점검한다.

“너드: 똑똑하지만 비 사회적인 취미나 이상에 깊이 빠져있는 사람” — 그 이상이 세상을 바꾼다.

4. 마무리

의문이 든다. 나는 진짜 너드일까?
패션감각은 제로니까 OK. 지금쓰는 블로그를 포함해 종종 잉여짓을 하니까 그것도 OK.
그런데 내가 프로그래밍하게끔 하는 힘은 정말 호기심과 비전일까?

두 딸과 아내의 생계를 위해 내가 희생한다고 생각했던적이 얼마나 많았는데…
박사학위를 받으면 코딩하지 않아도, 고상한 논문에 남들을 지도하는 것만으로도 존경받을거라 생각한적도 있었는데…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아니면 도태될까봐, 그 “공포”에 질려 기술책들을 읽어가던 그런 때가 얼마나 많았는데…

그런데 50세가 넘어서도 코딩하는 나의 모습을 나는 정말 바라고 있었던 걸까? ….

아무쪼록, 훗날 내 아이들의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내가 만든 시스템을 보여줄 그런 날을 맞게되길 소망해본다.

– 박상민 http://twitter.com/#!/sm_park

클라우드, 새 술 담는 부대

1. 들어가며
사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한 이유는 일하는 분야인 클라우드를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아마존 웹서비스 같은 대세 기술들을 소개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잉여와 공포, 영웅등의 이야기에 빠져들어가 꼭 써야 할 클라우드 이야기를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글쓰기를 시작하고 발견한 사실은 클라우드, 이놈이 설명하기가 정말 까다롭다는 점이다. 사실 어제도 두어시간 키보드를 타닥 타닥 대다가 접고 말았다. 모두들 대세라고 인정하는 IT 기술 클라우드. 이 회사 저 회사마다 “내가 진짜 클라우드요!” 등장하고 있고, 특히 애플에서 독점적인 컨텐츠가 결합된 플랫폼 iCloud 를 가지고 나오니 사람들마다 “클라우드 어우썸!”을 연발하고 있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 시합하듯 “컨텐츠가 클라우드요~”, “가상화가 클라우드요~”, 비용절감이 클라우드요~” 제각각 만져본 코끼리 모양을 설명하고 있다. 오늘은 나도 그럼 내가 만져본 클라우드의 몸통을 묘사해 보리라.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라” – 성경에 나오는 교훈인데 왠지 클라우드의 출현배경을 설명하기에 적절해 보여서 제목으로 따왔다. 우선은 클라우드라는 새 “부대”에 담길 “새 술”로 시작해보자.

2. 불어나는 새 술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제는 스마트폰과 타블렛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새 세상이 왔구나! 가장 강렬히 느낀건 컴맹이였던 우리 부인께서 침대에 누워 아이폰으로 아이돌의 동향을 탐색하고 있을때였다. 나만 해도 정보에 중독이라도 되어 있는지 쉴새 없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살피고 스카이프로 통신하며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아래의 그림처럼 불과 3년이 채 안된 사이에 손바닥위의 컴퓨터가 우리 일상을 완전히 지배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이제는 자동차 [1], 바다위 서핑보드 (제임스 고슬링의 새 벤처) [2], 풀뜯는 가축들까지 데이터를 인터넷으로 발산하고 있다. 마크 앤더슨 (Marc Andreessen)은 10년안에 지구의 절반 50억 인구가 스마트폰을 휴대할 것이라 예견했고 [3], 더 나아가 IBM은  2015년까지 1조개의 디바이스들이 인터넷에 연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4]. 1조개의 디바이스들이 뿜어낼 데이터의 양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스마트폰 가입자 수.

폭발적인 디바이스, 데이터증가와 더불어 생기는 변화는 기존의 구식 산업들이 점차 온라인 소프트웨어로 대체되어 간다는 점이다. 앤더슨이 최근 유명한 “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우는가 [3]”, 기고문에서 밝혔듯 넷플릭스는 TV를, 킨들은 종이책을, 스카이프는 전화선 통신사들을 최근 몇년사이에 먹어치웠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땅 덩어리가 너무 넓어 택배 서비스가 형편 없는 미국인데, 아마존에서 주문한 물건은 빈틈없이 하루만에 배달된다. 몇시까지 주문했을경우 다음날에 배달되는지를 초단위로 정확히 계산해주는 아마존 백엔드 소프트웨어는, 이미 대부분 미국인들을 구식 택배서비스에 만족할 수 없게끔 중독시켰다. 얼핏 보면 IT와 거리가 있어 보이는 회사(월마트, 페덱스)와 산업 분야들(자동차, 금융, 의료, 음악) 모두 허겁지겁 온라인 소프트웨어로 달려들고 있다. 소프트웨어에 의해 잡아먹히느냐 아니면 잡아먹느냐 무한 경쟁을 시작했다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아래의 그림은 현재 아마존 클라우드로 운영되는 일부 회사들이다. 대부분 설립된지 5년이 안된 기업들인데, 세개의 회사(Netflix, Zynga, Dropbox) 추산가치만 합해도 20조원이 넘는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DVD대여, PC 게임(EA), 하드디스크와 같은 구식 산업들을 잡아먹고 있다.

불어나는 새 술 — 데이터의 폭발적 증가와 온라인 소프트웨어의 확산 — 이 산업 전반에 퍼져나가고 있음은 확실하다. 아마존 클라우드의 수백개 고객리스트(참조 [5]) 를 보면 거의 모든 산업분야들이 총망라 되어있다. 내가 일하는 갓 2년된 클라우드 스타트업에서는 종종 전혀 예상치 못한 회사와 기관들이 고객이 되는 것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신발회사 퓨마, 정부기관 NASA, FDA,  무기회사, 심지어 이름을 밝힐수 없는 종교기관까지(!)…급증하는 데이터를 온라인 소프트웨어로 처리하는 “새 술” 어플리케이션은 분야를 가리지않고 생겨나고 있다.

3. 헌 부대: 클라이언트-서버 시스템
그런데 문제는 불어난 새 술을 담기엔 기존의 기술이 헌 부대라는 사실이다. PC가 안방을 차지하고 웹이 거미줄처럼 세상을 엮어버린게 이제 15년 지났다. 초기 인터넷 시대의 아키텍춰는 클라이언트-서버 (C/S) 모델로 쉽게 요약할 수 있다. 몇대의 서버들이 수만명 클라이언트의 웹 요청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사실 C/S 모델은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호랭이 담배피던 옛날엔  회사나 학교에서 돌리는 메인프레임에 집에서 dumb (멍청한) 터미널로 접속하는 너드들이 있었다. 쉰세대의 로망 하이텔, 천리안 시대를 생각해 보라. PC와 웹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에도 기본적인 클라이언트/서버 구조는 증가하는 웹서버와 PC 인구를 무리없이 커버했다. 흔히 LAMP 스택 (Linux-Apache-MySQL-PHP) 으로 칭하는 오픈소스로 구성된 백엔드가 대표적인 기술이다. 아래의 그림은 흔하게 볼수 있는 C/S모델의 백엔드 구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터넷 접속 단말들과 데이터의 양은 점점 기존의 C/S 모델이 지탱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우선 서버가 감당해야할 클라이언트의 수가 너무 많아진다 (뻥쟁이 IBM임을 감안하더라도 1조개의 숫자가 갖는 의미는 대단하다).  그리고 과거 단순히 사용자가 PC로 정보를 읽어내려가던 웹이 이제는 실시간으로 사용자가 정보를 제어, 융합하는 interactive media로 변하기 시작했다 (Ajax, HTML5 등등). 누군가 외쳤던 것처럼 이제는 “네트워크가 컴퓨터다”, 이게 현실이다. PC, 타블렛, 스마트폰은 이제 거대한 컴퓨터(네트워크)와 상호 작용하게끔 돕는 사람들의 네트워크 말단(edge) 인터페이스가 되어가고 있다 (스카이넷의 손, 발, 눈이 되어간다고나 할까?)

디바이스, 데이터, 온라인 소프트웨어가 범람하는 이 시대엔, 헌 부대 — 클라이언트/서버 모델 — 로는 담을 수 없는 몇가지 중요한 특성이 있다.

  • 스케일: 디바이스가 게임이나 검색등으로 네트워크에 무언가를 요청할때마다 백엔드에서는 서버자원을 소모한다. 디바이스가 많아지는 만큼 백엔드의 서버도 증가하게 되어있다 (최근 122개의 타블렛 컴퓨터가 팔릴때 1대의 서버가 증가한다는 인텔의 보고서가 있다 [6]).  최고로 재미있는 웹게임을 만들었어도, 백엔드가 준비되어 있지 않을 경우 급속히 증가하는 게이머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앵그리버드의 제작사는 이미 아마존 웹서비스를 사용중이다). 한정된 서버를 두고 서비스하는 C/S 모델은 근본적으로 디바이스의 폭발적 증가를 감당할 수 없다.
  • 정보의 실시간성: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재미있는 이유는 정보들이 바로 몇초전에 누군가의 뇌에서 튀어나온 신선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어제 생산된 지식은 의미가 없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 농산물을 가공해 음식을 만들어내듯, 정보들은 온라인 소프트웨어에 의해 유용한 지식으로 가공돼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헌데 정보의 양이 많아질수록, 단 몇분 안에 정보를 유용한 지식으로 가공해 내는 것은 제한된 서버로는 불가능하다. 불현듯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탐크루즈가 몇번의 손짓으로 영상정보를 조합해내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게 현실이 된다면 탐크루즈가 손가락을 까딱할때마다 어딘가에서 수백대의 서버들이 그가 원하는 영상을 처리해야 한다.
  • 디바이스의 이동성: 한가지 확실해지는 트렌드는 네트워크 말단 디바이스들이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점이다. 사람과 함께 걷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앞으로 자동차에 장착될 디바이스들은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주변의 정보를 모으고 네트워크와 소통할 것이다. 헌데 기존 C/S 모델에서의 서버는 IP 주소와 물리적 위치가 고정되어있기 때문에 재빨리 이동하는 디바이스들에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LA 공항에서 보던 스트리밍 영화를 인천 공항에 내려 연속해서 플레이 할 수 있을까? 이것은 단순히 한 사람 이동경로의 문제만은 아니다. 종종 유명한 서비스들은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흥행이 전파되는것을 본다. 한국에서 흥행한 게임을 미국 유저에게는 어떻게 서비스 할까?

기존의 C/S모델을 뛰어넘어 위 특성들을 해결하는 시스템은 사실 지금도 존재한다. 구글의 경우 100만대 이상의 서버로 매일 매일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고,  그 결과로 오늘 올리는 이 글은 몇 분안에 인덱스에 업데이트돼 검색 결과에 나타날거다. 하지만 구글과 같은 소수의 회사들이 독점하는 시스템을 클라우드라 부를수는 없다. 일반에게 오픈되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단 며칠만에 수천대의 컴퓨터를 프로그래밍 하게끔 하는 기술, 그게 정말 클라우드다.

4. 새 부대: 클라우드

클라우드는 그래서 서비스의 스케일, 정보의 실시간성, 디바이스의 이동성을 모두 해결하는 거대한 기술의 모음이다. 어떤 회사든 위 조건을 충족시키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클라우드라고 부를만 하다. 그래서 “클라우드는 아마존이다, 구글이 진짜다. 아니다 끝판왕은 MS다” 이런 논쟁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각각의 특성을 해결하는 몇가지 클라우드의 예를 들어보면 —

  • 스케일: 아마존의 데이터 서비스 S3는 현재 5,000억개의 데이터 오브젝트를 저장하고 있다 (세계 인구가 100개씩 오브젝트를 갖고있는 셈이다!). 최근 한 회사가 아마존 EC2를 사용해 3만개의 코어로 구성된 초대형 클러스터를 만들었다 [7]. 슈퍼컴퓨터 랭킹으로 30위쯤에 위치할만한 성능인데, 아마존이 직접 만든게 아닌 제 3의 회사가 아마존의 컴퓨팅 자원을 사서 구성했단다! 2009년 팜빌 (Farmville)이라는 초대형 히트게임을 출시한 징가는 게임 출시후 몰려든 하루 3천만명의 유저를 아마존 클라우드로 서비스 할 수 있었다. 영화 스트리밍 1위 회사 넷플릭스는 전체 시스템을 아마존에서 돌리고 있다.
  • 정보의 실시간 처리: 하둡(Hadoop)은 원래 구글이 내부적으로 사용하던 MapReduce라는 분산프로그래밍 시스템을 오픈소스로 만든 것인데, 대규모 정보를 유용한 지식으로 재가공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각광받고 있는 시스템이다. 이제 사람들은 하둡 프로그램을 아마존, 구글, MS 클라우드의 수백, 수천대의 서버에서 돌리고, 빠른 시간안에 유용한 지식을 산출해서 각자의 분야에 활용한다.
  • 디바이스의 이동성: 아마존은 미국의 동부와 서부, 유럽의 아일랜드, 아시아에서는 싱가폴, 일본에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사용자는 어느 지역의 데이터센터에서든 같은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다. 즉, 영화를 보다가 인천 공항에 내렸을 경우 가까운 일본의 서버에서 영화의 남은 부분을 스트리밍 하는것이 가능하다.

클라우드는 이러한 속성들을 다양한 레이어의 서비스로 제공한다. 아마존은 사용자가 마음껏 환경을 꾸미고 무제한의 서비스를 만들수 있는 가상머신과 스토리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IaaS), MS와 구글은 웹, DB, 이메일등 잘 알려진 서비스 패턴을 손쉽게 구성하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PaaS). 누군가 “새로운 술” 아이디어가 있다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새 부대” 클라우드로 가라고 권할것이다. 우선 아마존, 구글, MS의 클라우드에서 한두대의 서버로 서비스를 운영해보라. 하루 운영하는데 커피 한잔값밖에 들지 않는다. 혹 서비스에 사람이 몰려든다면 하루 몇만원 더 지출하면 된다. 그렇게 서비스를 늘려가다보면, 언젠가 우리도 몇조원 비지니스를 클라우드에서 운영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5. 결론
글을 다 마쳐가는 지금에 와서도 내 클라우드 소개가 완전히 맘에 들진 않는다. 내가 만져본 코끼리 몸통을 설명한것은 같은데, 어째 몸통 반 정도나 제대로 묘사했는가 싶다. 아마도 클라우드가 그만큼 거대한 흐름이고 또한 여전히 진화하며 모양을 형성해가는 기술이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술 (폭발적인 디바이스와 데이터의 증가, 그리고 이것들에 끊임없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백엔드 소프트웨어)을 담는 새 부대가 클라우드다!” 이 정도로만 정리하는 것으로 오늘은 만족해야겠다. 나는 새 부대를 짜는 일 (클라우드 시스템을 만드는)을 하는데, 지금까지완 전혀 다른 방식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그런데 새 술을 빚는 사람들 (게임, 컨텐츠, 소셜네트웍…)은 얼마나 더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신나게 클라우드를 프로그래밍 하게 될까 상상해 본다.

[1] http://www.youtube.com/watch?v=WyBO32jz7Vg&feature=player_embedded#

[2] http://nighthacks.com/roller/jag/entry/i_ve_moved_again
[3] http://online.wsj.com/article/SB10001424053111903480904576512250915629460.html
[4] http://www.readwriteweb.com/enterprise/2010/06/ibm-a-world-with-1-trillion-co.php
[5] http://aws.amazon.com/solutions/case-studies
[6] http://www.ft.com/cms/s/2/48f1caac-81bd-11e0-8a54-00144feabdc0.html#axzz1Yd2YknDN
[7] http://blog.cyclecomputing.com/2011/09/new-cyclecloud-cluster-is-a-triple-threat-30000-cores-massive-spot-instances-grill-chef-monitoring-g.html
[8] Man-Computer Symbiosis, J.C.R. Licklider. http://groups.csail.mit.edu/medg/people/psz/Licklider.html

비전-눈으로 보는 행위

얼마전 둘째 아이를 낳고 (내가 아니고 부인님이) 그 녀석 돌보는게 너무 피곤한 나머지 초저녁 새우잠을 잔적이 있다. 꿈을 꾸었다. 이유는 알수 없었는데 10여년전 대학생 시절 매일처럼 지나다니던 수원역 거리가 마치 영화 필름 돌려보듯이 너무 생생하게 나타났다. 학교버스에서 내려 신호등 지나면 보이는 수원역전과 그 주변을 가득 매운 노점상, 그리고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한참동안 잊고 있었던 그 풍경을 그대로 돌려보니 꼭 예전 발라드 듣고 난 기분 이었다. 그런데 그중에 제일 생생하고 한편으로 왠지 돌아갈수 없을것 같은 아련함까지 느낀건 다름아닌 길거리 노점상들의 오뎅 냄새를 꿈속에서 맡았기 때문이다. 웃기지만, 정말 그 냄새들이 꿈속에서 살아나니 13년전 그때의 분위기 모두 다시 돌아온 기분이었다. 꼭 그 꿈 뿐만이 아니다. 종종 낯선 장소에서 우연히 맡은 어떤 향기 때문에 나는 한참을 잊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때가 많았다. 아마도 후각은 무의식속 과거를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감각 기관인가 보다.

후각이 과거라면, 시각은 미래를 만드는 감각기관이라 생각한다. 비전(vision)의 사전적 해석을 보면:

  1. 눈으로 보는 행위
  2. 앞으로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것

약 9년전쯤에 나는 한국에서 컴퓨터과 대학원을 다녔다 (아주대학교). 학부시절 벤처한다고 밤을 세우고 살았던 것 그리고 인문학과에서 컴퓨터과로 전과를 한 배경때문에 학부 학점이 심히 안 좋았다. 수학등 모든 기초과학 과목에서 B를 맞아본 적이 없을 정도니까. 성공한 사람들은 흔히 학부때 다른 잉여짓에 몰두한 나머지 학점을 소홀히 했다고 이야기 하지만, 나는 나름 열심히 공부해도 안됐으니 안 똑똑해서 그런거라고 고백할수 밖에 없다. 그래서 졸업후 나를 받아주는건 자대 대학원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정부의 눈먼돈 (BK21) 지원을 받아 해외 학회를 가게됐다. 영국에서 열리는 오픈 그리드(GRID) 포럼이라는 곳인데 나 포함해서 네명 정도 같은 연구실에서 동행했다. 너무 예쁜 관광지 에딘버러에서 열리는  학회여서 나와 동기들 모두 신났던걸로 기억난다. 첫날 등록하러 학회 장소로 향하는데, 그 당시 그리드는 지금의 클라우드와 같은 유망한 기술로 소문나 이미 건물주변이 사람들로 북적북적 했다. 우리가 관광하느라 늦게 도착해서 안에서는 이미 IBM같은 거대 기업의 중역들이 키노트를 하고 있었다. 성큼성큼 넓은 홀을 지나가는데,  청바지와 컨퍼런스 티셔츠로 후줄근하게 입고 바닥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뭘하나 살펴보니 그 사람들은 무선랜으로 터미널을 접속해 프로그래밍 하고 있었다. 2002년 그 당시 우리나라엔 무선랜이 막 보급되는 시점이었는데, 선이 없다는게 그렇게 자유로운건지 그때 알았다. 그 사람들은 안에서 하는 높은분들의 키노트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고 오로지 검은 스크린에 떠오르는 하얀 글씨들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거기서 난 나를 봤다. 그때 눈으로 목격한, 자유분방한 차림에 오로지 코딩에만 집중하는 그 모습이 왜 그리 멋있어 보였는지 모른다. 나와 함께 간 동기들은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였는데, 나는 그 모습이 혹 나의 모습이 된다면 하는 상상에 몹시 설렜다. 숙소에 돌아가서도 관광 보다는 그 풍경이 떠올라 괜히 터미널을 띄워넣고 “ls; cd; vi”를 반복했던 것 같다. 학교로 돌아와 에딘버러에서 본 그 사람들이 가는 학회에 나도 한번 논문을 내보자라는, 석사1년차로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품었다. 교수님은 “안될텐데 거기는…”, 만류 하셨지만, 고집을 부려 두달 부지런히 일했고 논문을 제출했다. 다시 두달후에 논문이 accept됐다는 이메일을 받았을때 아마 그때가 태어나 처음으로 성취감을 느꼈던때 였던것 같다. 그리고 그 논문덕에 구원투수 방어율같던 학점을 극복하고 유학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9년전 눈으로 봤던 그 모습으로 살고 있다. 청바지에 샌달신고 (솔직히 흰양말은 안신는다)  출근해 그때 봤던 그사람들 사이에서 코딩하고 있다 (실제로 지금 회사 동료들이 에딘버러 그곳에 있었다). 아마 그때 그 모습을 못보았다면 지금 난 다른 삶을 살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솔직히 지금 모습이 그렇게 자랑스러워서 글을 쓰는건 아니다. 동기들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궁핍하다. 그냥 눈으로 찍어놓은 가장 인상적인 기억이 구현된 것, 즉 비전의 사전적 의미가 현실에도 적용되는게 신기해서 기록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고민은 10년후에 구현할 내 모습이다. 지금 스냅샷을 찍고 가슴에 담아야 할 생생한 풍경, 비전은 무엇일까? 계속 주변 사람들과 현상을 관찰하는 습관은 아마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뛰어난 영웅 — 최고로 가치있는 삶을 사는 사람 — 을 가까이에 두고 그 모습을 찍고 싶다.

– 박상민 http://twitter.com/#!/sm_park

영웅 없는 나라

1. 들어가며
바야흐로 소프트웨어 시대가 도래했다.
벤처붐 빵 터질때 쌈짓돈 탈탈 털어서 투자한 국민을 울렸던 그 소프트웨어, 그 얄미운 것이 이제 다시 이 나라의 희망으로 멋지게 컴백한 것이다.
1999년 당시 대학 2학년이던 나는 조그만 벤처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 했는데, 딱히 기술도 없던 회사가 신문에 광고 한번으로 투자금 10억을 모았다. 곧 200평은 족히 되는 사무실을 임대해 이사했고, 회사 임직원은 뜨거운 마음으로 밤낮없이 일해 그 돈을 다 날렸다. 그 당시 내가 일했던 그 회사 같은 곳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생히 기억난다. 오죽했으면 그때 최고 신랑감 1위가 벤처사업가 였겠는가?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35위쯤 된다고 한다. 34위가 광부라고 하던가 배 있는 어부 (36위-배없는 어부) 라던가? 아무튼 그리 화려했던 그 회사들은 이제 구글로 검색을 해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 부는 소프트웨어 바람은 양상이 다르다. 국민들의 기대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 쏠려있다. 즉 “우리 뒤통수 친 구글좀 혼내줘!”, 이런 화려한 복수극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국민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언론들은 이런 기사들을 주구장창 내보내고 있다.

“삼성에 대한 걱정에 송구, OS문제 걱정 안해도 돼… 바다도 있고 리눅스 기반한 스마트폰 운영체제 곧 나와” – 최지성 부회장 [1]

염려하는 우리를 달래기 위한 그분들의 배려는 곧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인력 2만명에 달함” [1] 혹은 “소프트웨어 인력 따로 선발” [2] 등의 기사에 구구절절 드러난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통일을 노리던 구글은 이제 큰일이다. 중공군이 바글바글 압록강 건너듯  “2만+α” 의  소프트웨어 인재들이 구글을 다시 밀어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전국의 컴퓨터학과 학생들에겐 좋은 세상이다. 그들은 이제 삼성의 +α 인재들로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수만명 인재들이 만들어낼 제 2의 안드로이드, 클라우드, 소셜네트워크를 생각하니 너무 흥분돼 키보드 치는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린다.

2. 실리콘밸리의 영웅들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영웅의 역사다. 실리콘밸리의 영웅은 자본과 인재로 넘치는 큰 조직에서 나오지 않았다. 한 시대 관점에서는 아웃라이어 (outlier) 인 사람이나 기술이,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점에 영웅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즉 구글이 웹 패러다임의 영웅이 되었듯). 지금까지 실리콘밸리 역사를 바꾸었던 소프트웨어 기술과 회사들은 항상 이런 패턴으로 발전했다.

  1. 본업 (학교/회사)이 따로 있는 프로그래머 A가 잉여짓으로 프로그램을 만든다 [참조 3]
  2.  A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큰 조직(회사)에 알린다. 윗분에게 뻘짓 했다는 소리만 듣는다.
  3. A는 조직 밖 대중에게 프로그램을 공개한다. 사용자가 급격히 증가한다.
  4. 투자자들의 눈에 띄어 투자를 받는다. A는 마음맞는 프로그래머들을 뽑아 제대로 회사를 시작한다.

위의 기본 공식에 몇가지 사례를 한번 대입해 보자.

  •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스탠포드에서 박사 논문 준비중 떠오른 검색 알고리즘 Page Rank를 구현하기 시작한다. 본업인 박사 논문은 뒷전이다 (1 만족). 구현된 프로그램을 그 당시 잘 나가던 야후! 의 임원진(창업자 제리양이 스탠포드 선배)에게 보여주고 거래를 제의한다. 야후는 포털인데 검색기능이 너무 훌륭하면 사람들이 금방 포털에서 다른 사이트로 이동한다고 생각해 거래를 거절한다 (2 만족). 래리와 세르게이는 아이디어가 팔리지 않아 결국 자신의 기숙사 컴퓨터로 서비스를 시작한다 (3 만족).  곧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등 몇사람으로 부터 100만불 투자를 받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4 만족). [참조 4]

  • HP에서 일하던 스티브 워즈니악과 Atari 라는 게임회사에서 일하던 스티브 잡스는, 원시 PC Altair 에 매혹된 동호회 모임 Home Brew Computer Club (집에서 만든 컴퓨터 클럽) 의 다른 회원들에게 자랑할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한다 (1 만족). 워즈니악의 세련된 디자인에 동호회 사람들은 감동하고 (3 만족) 이에 확신을 얻은 잡스는 아직 HP를 떠나지 않은 워즈니악을 설득해 회사를 설립한다. Markkula라는 동네 부자가 2억 5천만원을 투자해 본격적으로 잡스의 집 차고에서 애플 PC를 만들기 시작한다 (4 만족) [참조 5].

  • 빌게이츠와 폴앨런 역시 하버드 신입생 시절 Altair PC에 매료되어, 본업이었던 수업에 나가지 않고 BASIC 컴파일러를 만든다 (1 만족). 그의 BASIC 컴파일러는 곧 위에 언급한 Home brew computer club 사람들 사이에 유행하게 된다 (3 만족).  게이츠는 타고난 사업 수완을 발휘해 그 원시적인 BASIC 컴파일러로 돈을 벌고, 곧 IBM과 DOS 계약을 체결해 따로 투자를 받지 않고도 사업을 궤도에 올린다 (4 만족) [참조 5]. 참고로 갓 21살 빌게이츠가 클럽 사람들에게 자기 소프트웨어는 돈 내고 쓰라고 공개 편지를 쓴 사건은 오픈소스와 독점소스의 역사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 (http://g-ecx.images-amazon.com/images/G/01/books/orly/GatesLetter.pdf).

  • 지금 우리 회사 (Eucalyptus systems) 도 정확히 이 패턴으로 성장하고 있다. 2009년 UC 산타바바라에서 교수(Rich Wolski)와 대학원생, 포닥으로 이루어진 6명은  본업인 논문은 안쓰고 몇달간 아마존 클라우드를 오픈소스로 구현하기 시작한다 (1 만족). 이 소식을 접한 옛날 그리드 컴퓨팅 사람들 (시카고의 Ian Foster등)은 클라우드는 그리드랑 똑같으니 뻘짓하지 말라고 지적한다 (2 만족). 간신히 초기 버전을 만들어서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곧 수천번 이상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한다 (3 만족). 이어서 바로 몇개의 투자 회사(VC) 들이 250억 이상을 투자하고 현재는 60여명 정도의 직원으로 성장한다 (4 만족).

나는 위의 기본 템플릿에 실리콘밸리의 영웅들과 혁신적 기술을 대부분 때려 맞출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기존의 조직 (학교/회사)에서 받아들일수 없는 프로그램을 만든 아웃라이어 (outlier) 해커들은 IT의 큰 패러다임 변화 (PC, 웹, 클라우드) 속에서  영웅으로 등극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제국을 10여년 세우고 나면, 또 새로운 영웅들이 위의 템플릿에 맞추어 등장하고, 기존 영웅들을 역사속으로 보내버린다.

3. 왜 꼭 영웅인가?
실리콘밸리의 영웅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지배하고 성장시킨다. 주변에서 조언해주는 어른들은 분명 도움이 되지만, 창업자가 가지고 있는 명확한 비전에 따라 회사의 흥망 성사가 결정된다. 쥬커버그가 이제 만 26살 이지만 페이스북 가치는 삼성의 100조원 시가총액에 가깝게 평가받는다. 지구를 한동안 지배한것 같은 구글의 레리와 세르게이는 이제 갓 30대 후반이다. 우리의 기업 조직 — 5,60대 임원들의 지휘하에 40대 부장, 30대 과장, 그리고 20대 일꾼들 — 은 새마을 운동 시절부터 변함이 없지만, 실리콘밸리는 젊은 영웅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컨셉”에 의해 재편된다. 이는 창업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인 소프트웨어들은 한, 두 명의 핵심 해커들에 의해 개발되었다. 예를 들어, Unix와 C언어는 켄 톰슨, 데니스 리치 두 사람이 개발했다. Java 언어는 제임스 고슬링 혼자 만들었고 리눅스는 리누스 토발즈가, TCP/IP는 빈트 서프와 로버트 칸 이 만들었다. 물론 후에는 여러 엔지니어가 참여해서 개발을 돕지만, 여전히 기술을 지배하는 건 소프트웨어 영웅들이다. 예를 들어 리누스 토발즈는 지금도 리눅스 커널에 모듈을 추가할지 여부에 대해 100% 독재적으로 결정한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이렇게 소개하기도 했다: “My name is Linus Torvalds and I am your god [6]”)

나는 이러한 인물 중심적인 발전은 소프트웨어의 특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브룩스는 그의 베스트셀러 The Mythical Man-month에서 끊임없이 “개념의 일관성 (Conceptual Integrity)” 을 강조했다. 즉 아무리 큰 규모의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단 한명만 소프트웨어를 디자인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 예를 스티브 잡스를 통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로지 그의 감각에 의해 디자인되는 애플 제품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흥분을 하나? (너무 흥분해서 싸우기도 잘한다) 빌게이츠가 MS의 최고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자리에서 물러나기전 레이 오지라는 천재 SW 디자이너를 그 자리에 앉히려고 아예 그의 회사를 사 버린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8]. 그마저 떠나고  “MBA 경영인” 스티브 발머가 이끄는 MS는 지금 얼마나 많이 헤매고 있나? 구글의 역사를 다룬 책 “In the plex” [4] 에서는 CEO 에릭 슈미츠 (그 자신도 Lex를 만든 유명한 SW 엔지니어) 뒤에 가려진듯 했던 레리와 세르게이가 핵심 제품들 디자인에 얼마나 깊게 관여하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구글의 심플한 디자인과 “I’m feeling lucky” 버튼은 레리의 고집, 곧 “개념의 일관성”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밑바닥 해커에서 시작한 영웅의 비전이 신개념을 창조하고, 그의 독점적 지배하에 개념의 일관성이 유지된다.

1998년 구글 홈페이지: 지금과 별 차이가 없다

실리콘밸리는 그래서 영웅의 흥망성쇠에 따라 끊임없이 이동한다. 나 같은 범인 프로그래머들은 영웅이 창조해 낸 새로운 시대를 따라갈 뿐이다. 운이든, 안목이든 조금이라도 빨리 영웅의 스타트업에 몸을 담는 사람은 평생 그 혜택을 누릴수 있다. 구글에서 마사지해주던 안마사는 지금 넓은 저택에서 안마 받으며 살고 있다. 아래 그림처럼 새 영웅 쥬커버그의 도래에 실리콘밸리의 재능들은 그의 영지 페이스북으로 몸을 맡기는 것이다. 페이스북이 주식 상장 하는 날에 일찍 주군을 모신 사람들은 포르쉐 매장으로 향하는 거다.


출처: http://www.fastcodesign.com/1664037/infographic-of-the-day-facebook-is-winning-silicon-valleys-talent-war

4. 결론
우리 소프트웨어 영웅은 그럼 누군가? 1938년 창업한 삼성그룹의 오너가 영웅이라면, 그 영웅은 좀 너무 쉬어버린것 아닌가? 거기서 조직을 관리한 임원들을 영웅으로 모시기에는 그분들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철학 부재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예: 2만+α 양병론). 벤처붐 이후 살아남은 기업들 (NHN, 다음 등), 그곳의 영웅들은 여전히 해커의 통찰력과 개념의 일관성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마 그랬으면 네이버 검색의 품질이 훨씬 좋았겠지? 나는 실리콘밸리 해커들의 전설이야기에 매일 흥분하는데, 그 이름이 하도 많아 외울 수 조차 없다. 한국의 전설적인 해커는 그 이름을 들은적이 없으니 외울수가 없다.

영웅이 없는데 “2만+α” 의 소프트웨어 인력은 무엇을 해야 하나? 정부와 기업의 잘 관리된 조직과 플랜에 따라 척척척 “한국형 안드로이드”, “한국형 클라우드”, “한국형 소셜네트워크”를 만들어 내겠지? 해커가 밑바닥부터 일구어낸 개념의 일관성 (Conceptual Integrity)보다는 임원단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명령체계가 소프트웨어 강국을 만들어 낸다면 나는 그 날로 우리 아버지 시골집에 내려가 소나 키우련다.

끝으로 나는 10여년전의 벤처 바람이, 그런 광풍까지는 아니어도 다시 훈풍으로 불길 바란다. 그때 크게 데이신 분들이 눈살을 찌푸릴지 몰라도, 한번 더 우리의 잉여력을 믿어주고 부동산으로 돌아갈 돈이 소프트웨어 영웅들의 손에 쥐어졌으면 한다. 우리가운데 영웅은 분명히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 박상민 http://twitter.com/#!/sm_park

[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03/2011090300287.html
[2] http://media.daum.net/cplist/view.html?cateid=1006&cpid=129&newsid=20110901110341745&p=seouleconomy
[3] https://sangminpark.wordpress.com/2011/08/23/%EC%86%8C%ED%94%84%ED%8A%B8%EC%9B%A8%EC%96%B4-%EC%9E%89%EC%97%AC%EC%99%80-%EA%B3%B5%ED%8F%AC/
[4]  In The Plex: How Google Thinks, Works, and Shapes Our Lives, by Steven Levy
[5]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 http://www.yes24.com/24/goods/2256?scode=032&srank=16
[6] Just for Fun: The Story of an Accidental Revolutionary, by Linus Torvalds and David Diamond
[7] The Mythical Man-Month, by Fred Brooks
[8] http://news.cnet.com/Microsoft-to-buy-Groove-Networks/2100-1014_3-5608063.html

안드로이드의 함정

1. 들어가며
구글의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는 이제 쉰내나는 뉴스가 되버렸다.  “한국형 안드로이드” 로 장단을 맞추어준 공무원들도 이제 한껀 했다는 위안감에 두다리 쭉 펴고 주무시지 않나 생각해 본다 (공룡책을 주문하는 센스는 잊지 않으셨겠지?). 삼성은 바다 OS가 있고, 당장은 갤탭 7.7, 갤탭 노트와 같은 빼어난 기계를 출시할 예정이어서, 하드웨어 명가라는 이름에 전혀 손상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우리가 좀 도와줄까?” 하는 정부를 향해 “아 뭣도 모르면서…진상피우지 말고 뒤로 쫌 빠지쇼~” 호기롭게 한마디 했겠지? 아무튼 온 국민의 관심은 이제 모바일OS시장을 어떻게 우리가 요리할것인가 이것이 되버린 듯 하다.

그런데, 내가 본 지난주 뉴스 중 제일 흥미로운 것은 아마존의 타블렛 소식이었다 [1]. 이것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아마존 타블렛이 안드로이드를 fork한 버전이라는 점이다. fork란 소스코드의 어느 한 시점에서부터 자기 마음대로 수정하고 자기들만의 버전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로, 아마존 타블렛은 허니컴이나 아이스크림이 아닌 순전히 아마존 버전의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froyo 즈음에 fork한것이 아닌가 싶다). 거기엔 구글의 앱마켓도 없고, 여타 기본 안드로이드 앱도 없다. 아마존이 제공하는 여러가지 서비스 앱이 기본으로 깔려있을 뿐이다. 이쯤되면 아마 “에이 별론데..”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아마존 타블렛이 크게 히트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구글에게도, 한국의 IT계에도 대단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견해 본다 (예언자 나셨다..그죠?).

2. 아마존 – 갈아치우는 천재
그럼 아마존이라는 회사에 대해 한번 정리해 보겠다. 1994년 월스트리트 금융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제프 베조스는 뉴욕에서 시애틀까지 운전해 인터넷 골드러쉬를 감행한다. 시애틀에서 세운 온라인 서점이 Amazon.com 인데, 처음 10평도 안되는 창고에 책을 보관하고 인터넷 주문을 받으며 사업을 시작했다. 책에서 시작해 차츰 차츰 상품의 종류를 넓히더니, 최근엔 신라면도 팔기 시작했다 ( 주문은 여기 ). 아마존 닷컴의 존재감은 사실 애플, 구글에 비해 대단치 않다. 특히 한국에서는 너드 커뮤니티에 가끔 뜨는 딜 때문에 좀 알려져 있는 정도랄까? (참고로 너드는 좋은 의미에서다. 화내지 마시길)

그렇지만, 겉으로 보이는 아마존의 모습 — 인터넷 상점 — 이 전부가 아니다. 그 뿌리에 있는 서비스들을 살펴보면 놀랍다 (참고로 블로그의 그림들은 [2]에서 참조했다).

현재 아마존이 운영하고 있는 몇가지 서비스들만 나열해 보자.

  • Amazon Web Service: 이게 제일로 무서운 놈이다. 후에 더 설명하겠다.
  • E-book: 킨들 이북의 종류는 어마어마하다. 이미 킨들북이 종이 책보다 더 많이 팔린다고 공개했다.
  • 아마존 MP3: iTunes에 뒤지지 않게 음악이 많고, 가격은 더 저렴하다.
  • 아마존 appstore: 아마존만의 안드로이드 앱스토어를 최근 오픈했다.
  • 아마존 instant video: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로 넷플릭스와 경쟁한다.

우선 아마존 태블릿에 올라갈 수 있는 서비스들 몇가지만 추려보면, 킨들 이북, MP3, 비디오 스트리밍, 클라우드 드라이브 (파일 저장 서비스로 dropbox와 같다), 클라우드 플레이어(클라우드 방식 mp3 player), 그리고 안드로이드 앱스토어가 있다. 앱스토어를 통해서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인기 앱들은 당연히 다운가능할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이쯤 되면…”오, 아마존 타블렛도 그럴듯한데?”…이런 반응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아마존의 최고 강점이 무엇인줄 아는가? 그것은 바로 고품질 서비스에 더해서 이루어지는…

“가격 후려치기!”  바로 그것이다. 

아마존 타블렛 가격은 이미 기존 타블렛 절반인 $250에 예상되고 있다. 하드웨어에서 어느정도 손해를 보고 들어가도 서비스로 이익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아마존이 제공하는 대부분 서비스들조차 경쟁사들에 비해 가격이 싸다! 이처럼 저가 전략은 아마존만의 특성인데,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를 흔히 갈아치우는 리더 (Disruptive leader)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여담으로 잡스나 구글의 에릭 슈미츠에 비해 제프 베조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적은데, 사실 탐구해봐야 할 리더다. 제프 베조스는 구글에 제일 처음 투자한 4인방 중 한명으로 순전히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마음에 들어 투자했다고 한다. 구글에 단 2억 5천만원 투자해서, 훗날 주식이 수조원이 되버렸으니, 역시 호랑이는 호랑이를 알아보는 법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마존의 저가, 고급 서비스 전략은 지금껏 수많은 회사들을 무너뜨렸다. 최근 대형 서점 Borders가 문을 닫았고, 소니가 먼저 시작한 e-book 시장은 킨들로 접수했으며, 서킷시티같은 미국의 오프라인 매장들을 문닫게 한 일등 공신이다.

저가 전략이라니 왠지 이거 중국회사 이미지 아닌가? 또 한편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기 보다 늦게 진입해 시장을 갈아 엎어버리는 전략, 이건 왠지 삼성의 fast follower 전략과 비슷하지 않은가?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아마존이

“철저한 소프트웨어 회사” 

라는 사실이다. 웹사이트 하나가 전부인 듯 위장하고 있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빠르고 편리한 쇼핑 경험, 타 온라인 상점과는 상대도 되지 않는 배송 시스템, 수요 ,공급을 예측해서 결정하는 제품 가격등은 아마존만의 검색, 데이터 마이닝, 시스템 최적화의 결과물이다. 그러한 소프트웨어의 절정은 뒤에 소개할 아마존 웹서비스라는 세계 최고의 클라우드 시스템이라 할수 있다. 아마존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업계 탑 클래스다. 구글이나 MS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는 인재들이 득시글한 곳이 아마존이다.

3. 아마존 – 클라우드의 황제
IT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미 아마존이 클라우드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알것이다. 클라우드는 아마존에서 시작했고, 아마존이 시장의 대부분 (약 70% 정도)을 장악하고 있다. 아마존은 Amazon Web Service (AWS)라는 이름으로 외부의 회사들과 개인들에게 컴퓨터, 스토리지, 네트워크 자원을 시간당 아주 싼 가격에 팔고 있는데, 예를들어 리눅스 컴퓨터 (가상머신) 한대로 웹사이트를 운영한다면 한시간에 백원정도만 지불하면 된다. 아마존 클라우드 특징을 짧게 요약하자면:

  • 가격이 싸다. 데이터센터를 최소한의 비용으로 운영하는 아마존만의 소프트웨어/하드웨어 노하우가 비결이다.
  • API 가 포괄적이다. 인터넷 세상에선 API를 선점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이미 아마존 API는 대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널리 퍼져있다.
  • 어떤 종류의 어플리케이션도 소화할 수 있다. 웹사이트, 비디오 스트리밍(Netflix), 인터넷 게임등 다양한 종류의 어플리케이션을 지원하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게 검색에 최적화된 데이터 센터를 운영하는 구글과 차별되는 점이다).

아래 사진은 아마존 웹서비스를 사용하는 인터넷 회사들의 일부다. 여기에 추가해 애플의 iCloud도 AWS를 이용한다고 알려져있다. 아마존은 자신의 온라인 비지니스 전체를 AWS에서 돌리고 있다.

4. 한방 먹은 구글
지금까지는 논픽션 이었다면, 이 장에서는 상상력을 조금 발휘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구글이 모토롤라 모빌리티를 인수한 배경에 특허 말고도 아마존의 움직임이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구글은 안드로이드에 많이 투자해 왔지만, 라이센스 비용이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수입을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투자한 이유는 “더 많은 검색 트래픽을 유발하면 그것이 광고수익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글의 설명이다. 또 악의 축 MS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구글이 투자대비 수익을 얼마나 거두었는지 확실치가 않다. 구글의 사업 모델은 [3]에서 잘 소개하듯이 1) 검색결과에 띄우는 광고, 2) 사용자의 데이터(예를들어 블로그)를 확보하고 이를 광고등에 활용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안드로이드 마켓에 붙이는 30% 커미션이 부가적인 수입이다. 즉 구글은 모바일 클라이언트에서 버는 돈 보다는 자신이 보유하게 될 데이터와, 앱, 서비스를 활용하는 돈벌이를 구상해왔다.

그런데 안드로이드 점유율이 올라가고 이제 좀 먹겠구나 싶은 시점에,  엉뚱한 놈 아마존이 뛰어든 것이다. 구글이 기껏 만들어놓은 안드로이드를 fork하더니, 구글보다 더 잘 갖추어진 컨텐츠(mp3, e-book, 비디오등)와 자기들만의 앱스토어로 구글의 영역 (데이터와 서비스)을 침범하려는 것이다. 얼마전까지 아마존은 모바일시장에 직접 뛰어들지 않았다. 뛰어난 AWS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무심하게 mp3, ebook 시장을 저렴한 가격으로 장악해 들어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구글의 밥그릇에 큰 숫가락을 올려놓은 것이다. 이것이 모토로라 인수에 영향을 끼쳤다는 건 어쩌면 논리의 비약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구글은 어떻게든 아마존이 만들어낼 $250 타블렛과 경쟁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하드웨어 회사를 보유하는 것은 아마존, 혹은 Facebook이나 그 이후에 나타날 강력한 클라우드/서비스 회사에 대응할 무기가 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구글은 트래픽을 분석해(AI 활용)  돈을 버는 회사다. 아마존이 지배하는 안드로이드 트래픽은 구글에게 배달되지 않는다.

5. 결론
우리 기업들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를 한번 상상해 본다. 아마존은 올해 말 $250 타블렛을 출시하고, 예전 킨들리더가 그랬듯 이번엔 타블렛 시장을 장악해 들어간다. 구글 역시 이에 질세라 모토로라를 통해 타블렛과 스마트폰을 손해보면서 팔기 시작하고 검색과 광고, 앱스토어등 서비스쪽에서 손해를 메꾸거나 이익을 얻게 된다. 두 회사는 경쟁을 해도 살아 남고 어쩌면 더 나은 수익을 올릴지도 모른다. 컨텐츠, 광고, 앱 시장의 성장은 하드웨어의 희생을 상쇄하고도 남을 수 있다. 디자인과 두터운 팬층으로 먹고 들어가는 애플이 이제는 iCloud를 내세우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만일 이같은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재앙이 아닐까? 우리는 뛰어난 스마트폰, 타블렛 제조기술이 있지만, 저렴한 가격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술이 없다. 컨텐츠도 없고 클라우드에서 어플리케이션을 돌리는 경험도 없다. 지금 실리콘밸리에서는 컴퓨터, 자본도없이 아이디어만 가지고 AWS 나 Windows Azure 에서 프로그래밍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클라우드가 단지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IT판을 뒤엎고 있다는 뜻이다. HP가 타블렛과 PC사업 접고 현금을 탈탈 털어서 데이터 검색하는 회사 autonomy 를 사는건 사춘기소녀 반항이 아니다. 그곳에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너무 비관적인것 아냐? 클라우드가 설마 그렇게 빨리 발전할까?”… 약 15년전 제프 베조스는 이삿짐을 싣고 미 동서부를 횡단하고 있었고, 레리와 세르게이는 대학 기숙사에서 열띠게 토론하고 있었다. 지금 그들은 클라우드로 세상을 집어 삼키고 있다. 오늘의 결론은 그래서 이것이다.

“문제는 클라우드다. 모바일 OS에 헛다리 짚지 말자”

ps. 앞으로 AWS 중심으로 꾸준히 블로그를 올릴 예정이니 종종 방문해 주세요.

[1] Amazon’s Kindle Tablet Is Very Real. I’ve Seen It, Played With It. http://techcrunch.com/2011/09/02/amazon-kindle-tablet/
[2] Amazon.com: the hidden empire. http://www.slideshare.net/faberNovel/amazoncom-the-hidden-empire
[3]  In The Plex: How Google Thinks, Works, and Shapes Our Lives, by Steven Levy

What-How-Why-Why not?

출근했는데 마땅히 급한 일이 없으니 한번 짧게 교육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요즘 Steven Levy 가 지은 구글에 대한 책 [1] 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구글은 미디어에서 잘 묘사하듯이 너드, 오탁후, 해커들이 모여 만든 대형 AI (인공지능) 공장이다. Levy는 책에서 이런 구글의 문화는 독종 오탁후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받았던 몬테소리 교육에서 비롯됐다고 이야기한다(몬테소리 원장님들이 들으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갈 듯). 즉, “그건 왜 안되는데?” 를 가르치는 교육이 일찌기 두 창업자 뇌를 프로그래밍 했다는 이야기다. 30분 걸어가야 유치원 한군데 있는, 00리 출신인 나로선 그런 교육을 못받은게 억울할 뿐이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난 자연이 프로그래밍 했다. 자랑스러워 하자). 한번 교육의 네 단계에 대해서 정리해 보자.

What
중,고등학교에서 늘 하는 짓, 지식의 결과물을 듣고 암기하는 것이다. 지금 머릿속에서 랜덤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을 적어보면:

  • 삼국사기 김부식, 삼국유사 일연. 김부식 나쁜놈
  •  
  • ATM의 셀은 53 바이트 (아 이건 그만 잊고싶다…ㅠㅠ)

How
대학교와서 What과 더불어 배우는 것들이다. xx 기술은 어떻게 구현되었는가? CPU는 디지털회로 땜질을 해보면서, C 언어는 컨텍스트 프리 그래머를 떠올리면서, SW디자인은 폭포와 달팽이를 손으로 따라 그려보면서 배웠다.

Why
여기서부터는 대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인데, 누가, 왜  그 시대에 그 지식 혹은 기술을 만들어야 했는가? 미국에 와서 1년후 치른 공포의 박사시험 (Qual)에서 받은 이론 점수는 0 점이었다. 지도 교수는 미 동부 특유의 깐깐하고 엄숙한 사람인데, 그 점수가 매겨진 시험지를 앞에 놓고 약 1분간 침묵하며 날 바라보았다. 그 깊고 그윽한 눈길에서 난생 처음 공포를 느꼈다. 집에 돌아가 위로하는 아내를 거실에 두고 혼자 침대에 누워 다시 눈뜨지 않았으면 생각했다.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힘을 얻은건 지난번 소개처럼 Martin Davis의 The Universal Computer를 읽고 나서다. 라이프니츠와 튜링이 왜 그리 Dream Machine 문제에 집착했는지를 알고 난 후, 그제서야 나도 문제 자체의 매력을 알게 됐다. 간신히 Why의 단계로 들어간 거다. How 과정에서 좌절하고 힘들때 Why는 신념을 갖고 문제에 도전하게 한다. 이런 동기부여를 주지 않은 예전 대학이 미웠다.

Why not?
요즘 정말 들어가고 싶은 단계는 “Why not?” 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왜 안되는데?”, “난 회사를 시작하면 왜 안되는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Why 를 찾아냈다면, 그럼 미래를 만들어내려면 Why not? 을 외쳐야 한다. 그런데 참 어렵다. 래리와 세르게이가 받았던 그런 교육을 못 받아서 그런가? 공포로 받은 상처들이 아직 아물지 않아 그런가? 은행 잔고를 보면 한숨쉬는 아내에게 미안해서 그런가?

어쩌면 평생 Why not?의 단계에 못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Why 단계에 머무르기만 해도 아마 중산층으로, 좋은 남편과 아빠로, 혹 학교에 가게 된다면 좋은 선생이 될 수 있겠지. 근데….10년전 집을 나와 살던 벤처회사의 서버실 뒷 공간, 거기 깔아 놓은 매트에 누워서 듣던 팬(fan) 소리, 서너시간 자면서도 알고리즘이 떠오르면 일어나 메모지에 적어놓던 날. 아주 잠시였고, 실패했지만 Why not? 을 시도해봤던 그때가 계속 생각난다. 돌아가고 싶다.

– 박상민 http://twitter.com/#!/sm_park

[1] In The Plex: How Google Thinks, Works, and Shapes Our Lives, by Steven Levy
[2] 소프트웨어, 하드웨어의 아버지 (https://sangminpark.wordpress.com/2011/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