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강함은.

흔히 해커들은 어려서부터 프로그래밍에 빠졌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나는 아니다. 인문학부로 막 대학에 들어간 첫해는 국사, 국문, 영문과마다 MT를 따라다니며 그때까지 남아있었던 인문학의 끝자락 낭만을 구경했다. 제 멋대로 머리기르던 “스티븐 시발”형들이 길목마다 가득했다. 절친 형이 컴퓨터를 너무 사랑해 밤마다 프로그래밍 하던 모습이 사실 그것보다 더 좋아보였다. 그래서 컴퓨터과에 전과를 했다.

고등학교부터 인문학돌이였던 내가 그렇게 첫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었다 (참고로 나는 수능 언어영역에서는 늘 99.9% 에 들었고, 수리 영역에서는 50%를 간신히 턱걸이했다). C언어를 하는 그 수업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 처음이라 어렵긴 하구나…”.  두번째 수업을 마치고 “확실히 이과 애들은 다른가보다. 생긴것들 봐봐….”.  막 전과한터라 도움 받을 사람도 없이 결국은 학기말까지 이해 안되는 코딩…어떻게든 버텼고 랩실에서 기말 시험을 보았다.  시험 내용은 아마도 Sorting 알고리즘 하나를 구현하는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컴파일이 되지 않았다.’…

시험 마치기까지 데이터 정렬을 하기는 커녕 프로그램이 컴파일조차 안됐다. 조교가 결과값을 확인하러 왔을때 결국 컴파일 에러가 가득한 모니터를 보여줄 수 밖에 없었다. C언어 수업 결국 C를 받았다. 그날 부끄러워서 조교형 얼굴도 못쳐다보며 컴퓨터실을 나오고 마음속에 무언가 감정이 솟구쳤다.

학부 3학년, 때마침 한국은 벤처의 광풍이 몰아쳤다. 앞에 소개한 형이 한 벤처 회사의 CTO가 되었고, 그동안 간신히 덜덜덜 거리며 프로그램 수업듣던 내게 일을 제의했다. 일년간 정말 열심히 코딩했다.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코딩하다가 회사의 아주 조그만 서버실 뒤에서 매트리스를 깔고 잤다. 너무 생각을 많이해 때로는 꿈에서 알고리즘을 얻기도 했다. 아침에 회사 화장실에서 대충 머리를 감고 나오자면 청소부 아줌마가 늘 ‘저건 뭐하는 자식이야?…’ 이런 얼굴로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이제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당시 비지니스 모델 찾는다고 마음만 바쁘던 회사는 처음으로 (대기업!) 나우누리에서 프로젝을 수주했다. 그런데 사실 개발 경험이 거의 없던 회사였던지라 진도가 영 부진했다. 간신히 apache, tomcat 셋업하고 자바 서블릿 튜토리얼 보아가며 ‘달달달’ 겨우 코딩하던 꼬꼬마였다. ‘갑’ 나우누리는 진도가 안 나오는 우리를 전화로 닥달하다가 결국 개발자 보내라고 요구했다. 아…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그랬는지..이제 겨우 학부 3학년 꼬꼬마가 그곳에 갔다. 그래도 ‘갑’이 부르시니 좋은거 입고 가야한다고…아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은갈치 정장을 입고 갔다.

개발자들 수두룩하고 터미널이 가득한 커다란 방에 은갈치가 던져졌다. 그리고 데모를 해야 하니 준비를 하란다. 윈도우즈가 세상의 전부인줄 알았던 나는 리눅스를 배운지 이제 갓 몇주. “ls” “cd” “mkdir”..이런 단 몇개의 커맨드라인으로 무장한 나를 유닉스 터미널에 앉혀놓고 다시 올테니 데모를 준비해 놓으란다. 정장을 하고 앉은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렇게 갑의 회사 터미널에 한시간동안 ls, cd만 쳐대고 있었다. 결국 그날 갑의 팀장에게 정말 무섭게 혼나며 세상맛을 보았다. 속으로는

‘저 이제 학부 3학년 어린이예요..리눅스 지난주에 배웠어요’

말하고 싶었지만 분위기상 혼나는게 맞았다. ‘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혼날수 있구나’ 그날 알았다. 그렇게 그곳 개발실을 나오며 마음속에서 무언가 또 솟구쳤다.

몇년후, 이전 블로그에서 소개했던 내용이 계기가 되어 유학을 나왔다.(https://sangminpark.wordpress.com/2011/09/15/%EB%B9%84%EC%A0%84-%EB%88%88%EC%9C%BC%EB%A1%9C-%EB%B3%B4%EB%8A%94-%ED%96%89%EC%9C%84/) 비록 학부 학점은 요즘 류현진 방어율 비슷하지만 코딩은 이제 제법 자신있었다. 게다가 다른 신입생들과 다르게 나는 이미 여러편 논문을 쓴 경험이 있었다. 미국에서도 잘 할것 같았다. 두학기 지난후 퀄 시험이라는 박사자격시험을 보았다. 안될것같은 학생은 미리 걸러내는 시험이다. 열심히 준비했다. 아직 20대 초반 어린 아내가 싸준 도시락 도서관에서 같이 먹으며 공부했다. 아 이렇게 많이 배우는구나 생각했다. 시험을 치뤘다 그리고..

‘나는 한 문제도 맞추지를 못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무어라고 답을 적어낸 문제가 거의 없었다. 빈 종이를 내고 나오며 혹 교수님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부끄러웠다. 집에 돌아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맞아준 아내를 방에서 나가게 하고 그냥 침대에 누웠다. 살면서 처음으로 ‘정말 안될것 같다’ 라는 패배감이 가득했다. 아마 한 문제만 제대로 답을 써봤어도 그렇진 않았을텐데…간신히 잠을 청하고 저녁즈음 일어나며 드는 어떤 감정이 있었다.

돌아보면 세가지 일을 겪은후 마음속을 가득 채운 그것은 “분함”이었다. C학점을 받은것도, ‘갑’에게 혼났던 것도, 빈 답안지를 냈던 것도 모두 내 모자람때문이었는데 나는 왜 그게 그렇게 분하고 원통했는지 모른다. “분함”이란 풀어 쓰자면, “두고봐라 내가 지금은 이래도 앞으로는 달라질 거다” 라는 일종의 선언이다. 그렇게 처음 분함을 품은지 10년이 좀 더 지났다. C코드 컴파일도 못시키던 꼬꼬마가 지금은10개 정도 언어로 몇십만 라인 코드를 짜고 있다. 리눅스를 몰라 ls, cd만 땀흘리며 톡톡댔었는데 지금은 ubuntu, redhat 사람들과 같이 일을한다. 정말로 안될줄 알았던 퀄시험도 그냥 책을 통째로 외우는 비장함으로 마쳤다.

이렇게 개인적 일화를 길게 적어간 이유는 “다 잘되었노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는 이 “분함”이 한국인이 가진 가장 강한힘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번 블로그를 올린후 누군가 한국인으로서의 강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는 미국과 같은 잉여 문화도 없고, 거대한 오픈소스 커뮤니티도 없다. SW를 제대로 만들어본 경험도 없다. 무엇일까…나름 고민을 하다가 결국 다다른것은 우리에겐 이 “분함”과 같은 강한 감정의 힘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인 동료들과 일하며 그들의 너드스런, 잉여스런 집착에 감탄하고, 정말 화려한 코딩 실력에 많이 감동할때가 많다. 하지만 한국인 동료들만큼 자신의 코드에 감정적으로 접착(attach)되는 사람은 별로 못 보았다. 때로 우리는 툴툴대긴 하지만, 주말에도 밤에도 코딩할만큼 자신의 일에 감정적으로 몰입한다. 혹 누군가 내 코드가 영 별로라고 말하면 미국 사람들은 “입닫고 저리 가” 하겠지만, 한국 사람은 그말이 분해서 디버그하고 또 디버그한다.

우리가 가진 이 강한 감정의 힘. 이것이 어떻게 일상의 행복, 잉여의 문화와 결합할 수 있을까?…추상적인 질문이지만 개인적으론 여기에 SW의 해결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한국인 고유의 감정의 힘과 잉여스러움의 조화…언젠가 멋지게 어우러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우리의 강함은.”에 대한 11개의 생각

  1. 우연히 필로잉을 하게 되었는데 자기가 선택한 방향을 급 선회해 새로운길을 가고 있는 모습이 저의 삶과 비슷해 지나온 제 흔적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앞으로 더욱 공고하게 자기 길을 갈수 있는 성공인이 되시기를 빠샤

  2. 멋집니다! 앞으로도 건투하시길!
    저도 한국인의 강함은 “오기”라고 생각하고 이게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있을 겁니다. ㅎㅎ 화이팅!

  3. 저도 문과에서 급하게 컴과로 전과해서 삐질삐질 흘리면서 학교다니고 있는 녀석입니다.

    글자체가 너무너무 와닿네요.. 분함..이라.. 하.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 나중에 볼려고 하다가 이제야 글 읽게 되었네요…
    전에 아는분이 우리나라 정서에 관해서 얘기하다가 영화판 얘기가 나왔는데
    거기서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래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영화가 나오는건
    우리의 “한” 때문이라고요….그말 듣고 저도 깊은 공감을 했습니다…ㅎ_ㅎ

    • 책 제목이 재밌네요. “무한한 한” 이라고 해야 하나요? 서평에서 보니 cultural expression of resentment or dissatisfaction 이렇게 “한”에 대해 요약했는데, 제 생각엔 그것보다는 좀 더 깊은 의미가 있는것 같습니다. 무조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약간은 “자학”하는 듯하면서도 오히려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그런 힘이 있는것 같네요. 종종 다른 나라에도 이렇게 국가 전체에 흐르는 감정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 네. John Lies 교수의 입장도 양측면을 다 강조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만큼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고, 또 그 만큼 많은 희생을 낳기도 했고… 저도 예전에 읽었던 책이라 약간 기억이 가물거리긴 한데, 그 책 말고도 다른 논문들의 맥락도 비슷했으니까 맞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에서도 공통의 극렬한 역사적 경험이 이런 역사적 정서를 만드는 거니까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Valve (그 게임 회사) economist in residence가 econtalk 과 한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리스 출신이거든요. 그리스가 왜 그렇게 실업률이 높고 경제위기인데도 극단적 보수정치 태동이라든가, 혁명이라든가, 전쟁이라든가 그런게 없냐고 하니까 2차대전때 반나치전선에서 싸웠던 경험 때문에 그러기 힘들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5. 자기가 만든 코드에 attach 된다는 말.. 공감이 되네요. 그건 민족성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기업 문화 등에서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물론 민족성 등이 융화되어 자연스레 기업 문화가 만들어졌을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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