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you know – 번역과 생각

최근들어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발견한 사실은 더이상 긴 글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하루중 많은 시간을 트위터의 짧은 글, 페이스북의 사진들, 동영상을 즐기는데 소비한다. 물론 짧게 짧게 전파되는 트위터는 정보를 발견(discovery)하는데 최고의 툴이다. 그러나 그 툴 자체에 중독돼 링크의 목적지가 담고있는 유용한 정보들, 어쩌면 내 삶의 방향을 바꿀지도 모를 그런 내용들은 놓치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 페이스북에 긴 글을 올려서는 반응이 별로 없다는것도 알았다. 나 역시 누군지도 모르는 <페친>이 like한 유머스런 동영상에 손이가지 내 지인이 몇시간동안 생각하고 올렸을 긴 글을 파싱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짧은 글, 동영상은 탄산음료같은 짜릿한 맛은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변화시키는 그런 실제적인 영양가치는 없다.

이번에 번역하는 Paul Graham의 How You Know를 읽고나서 이 생각이 더 분명해졌다. 내가 읽는 글들은 비록 얼마후엔 그 내용이 잊혀질지라도 그 글이 남겨놓은 <세상을 바라보는 모델>은 계속해서 나의 행동과 가치관을 결정할 것이다. 140자 트윗들로만 내 머릿속 모델이 채워진다면 10년후에 나는 얼마나 정신없는 사람이 되어있을까?

How You Know 

http://paulgraham.com/know.html

나는 Villehardouin의 연대기를 그동안 두세번은 더 읽은것 같다. 그런데 그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기억해서 요약하라면 한 페이지를 간신히 채울수 있을까싶다. 내 책장에 꽂혀있는 몇백권의 책들에 시선이 옮아가면 덜컥 불안한 마음이든다. 이렇게 많은 책을 읽고도 기억을 다 못한다면 나는 왜 그리 시간을 낭비했던 것일까?

몇달전에 Constance Reid가 쓴 힐버트의 전기를 읽다가 이렇게 불안한 마음에 답이 될수있는 한 구절을 찾았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다:

힐버트는 수학강의들이 사실들만 나열하지, 학생들이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해결하는 훈련이 없는점에 질색했다. 힐버트는 학생들에게 문제를 잘 정의하는것이 이미 절반의 해답이다라고 이야기하곤했다.

이 말은 나 역시 그동안 중요하다고 느꼈던 부분인데 힐버트가 그렇게 이야기했다는걸 읽으니 내 생각에 더 확신이 생겼다.

그런데 난 처음에 어떻게 그런 생각(문제가 절반의 답이다)을 갖게된 걸까? 내 자신의 경험에 더해 그동안 읽었던 글들을 통해서일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글을 읽었던 바로 그 순간은 전혀 기억에 없다. 힐버트가 이렇게 얘기했다는 구절도 결국엔 잊고말것이다. 그러나 힐버트의 예화는 <그 생각이 맞다>는 내 믿음을 증가시켰고, 후에 힐버트의 말은 잊더라도 그 확인된 믿음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을 것이다.

읽기와 경험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모델을 훈련시킨다. 읽었던 바로 그 순간, 정확한 내용은 잊을지라도 읽기가 우리의 모델링에 남겨놓은 영향은 여전히 지속된다. 그래서 마치 우리의 마음은 소스코드는 잃어버렸지만 컴파일된 프로그램과 같다. 우린 마음이 동작하지만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는 모른다.

Villehardouin 연대기를 읽고나서 내 마음속에 남겨지는것은 정확한 내용이 아니라 십자군, 베니스, 중세문화, 포위전쟁등에 대한 내 마음의 모델이다. 내가 아주 집중해서 읽지 않더라도 책이 내게 끼치는 영향이 결코 작지 않다는점은 분명하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읽은것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고 걱정한다. 그런데 읽기가 실제로 이렇게 우리 생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걸 발견하면 모두 나처럼 놀랄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잊는다는것이 어떤면에서 다른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것도 알게된다.

예를들어 어떤 경험을 하거나 어떤 책을 읽는다면 그 경험은 바로 그 순간의 두뇌 상태에 따라 컴파일되어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면 같은 책을 다른 시점에 읽으면 그 책은 다르게 컴파일될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좋은 책들은 여러번 읽는것이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책을 다시 읽을때마다 사실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마치 나무를 잘못 잘라서 다시 작업해야 하는 목수의 마음이랄까… 그런데 읽을때마다 다르게 컴파일된다면 어쩌면 <이미 읽었는데>라는건 맞지않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좀더 나아가서 이게 꼭 책에만 국한된게 아닐지도 모른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우리가 가지고있는 과거의 경험을 다시 재생할수 있게될 것이다. 오늘날엔 사람들이 즐기기 위해서, 즉 여행 사진을 다시 본다든지, 아니면 두뇌의 버그를 고치기 위해서 (Stephen Fry가 노래를 못하게 만들었던 어렸을적 트라우마를 기억해낸것처럼) 예전의 경험을 다시 들추어본다. 그러나 경험을 기록하고 다시 재생하는 기술이 발달하면 사람들은 마치 읽은 책을 다시 읽는것처럼 예전의 기억들을 다시 현실에서 재생하고 그것들에서 다시 배우게 될런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단순히 기억을 재생하는것뿐 아니라 기억을 다시 정렬하고 고칠수있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미래엔 그럼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모델 자체도 바꿀수 있게될것이다.

https://twitter.com/sm_park

고난, 비전, 직업에 대한 이야기

(몇달전에 출석하는 작은 교회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copy&paste 해서 올려봅니다. 이미 페이스북에서는 공유했던 내용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과분하게도 오늘 청년부 예배에서 말씀을 맡은 박상민집사입니다. 먼저 제 소개를 짧게 드리겠습니다. 저는 2010년에 동부의 University of Virginia에서 Computer Science로 박사학위를 마쳤고, 그 후 지금까지 미국의 스타트업 회사들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Hewlett Packard에서 SW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조금 특이한것이 있다면 저는 5년째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일을 합니다. 일년에 오피스 나가는 날은 열흘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아이들 학교 등하교는 제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둘째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픽업하는걸 제가 매일 하는데 백인 엄마들 사이에서 그렇게 하는 남자는 중국인 할아버지와 저 밖에 없습니다.

사실은 오늘 부탁을 받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까 고민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잤습니다. 제가 목사님이 아닌데 설교를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제 전공분야, 하는 일을 설명하자니 그건 또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될것이고… 그래서 제가 오늘 나누는 이야기는 짧지만 여러분보다 10년정도 세상을 더 산 교회아저씨의 <개똥철학> 정도로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경말씀도 중간중간 나누겠지만, 제 이야기는 진리이신 성경 말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오로지 경험에 기초한 이야기임을 먼저 밝힙니다.

제가 오늘 할 이야기는 공부와 직업 그리고 그것을 우리 인생에 심어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돌아봤을때 감사할 것이 정말로 많습니다. 훌륭한 부모님을 주셨고 착하고 예쁜 아내도 교회에서 만나서 겨우 스물다섯살에 결혼을해서 함께 유학을 왔습니다. 아내보다 더 예쁜 세딸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감사하는것중 하나는 제 직업입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 — 소프트웨어 만드는것– 을 정말 좋아하고 사실은 꽤 잘합니다. 잠을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 새벽 5시에 일어나 커피를 가득 내려 마시면서 코딩하는 것만큼 즐거운것이 없습니다. 낮엔 직장일을 하지만, 새벽엔 취미삼아, 공부삼아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꾸준히 만듭니다. 저를 길이나 스타벅스에서 혹시 만났는데 먼데를 응시하고 있다거나, 혼자 중얼중얼대고 있다면 ‘아 저 사람이 지금 머리로는 프로그래밍 중이구나. 건드리지 말아야겠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교회에서 제 인상이 험악해 보이거나 아파보이면 ‘아 박집사가 지금 버그를 잡고 있구나’, 이렇게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상엔 자기 여가시간에 취미삼아서 일을 계속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직장 끝나고 취미삼아 일 더하고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예를들어 그로서리 QFC에서 일을 한다면, 주말에 취미삼아서 일을 더하러 나오겠습니까? 저는 이런 제 직업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 더 나아가 사명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한것은 아닙니다.

고난과 하나님의 계획

한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한국에 유행한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책보다 현실이 더 고달픈 청년들은 “아프면 환자지 어째서 청춘이냐?” 라고 반박을 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학교와 취업등에서의 고난은 우리가 10, 20대를 지나면서 반드시 겪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도 고난없이 30대, 40대의 어른이 된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예상치 못하게 폭풍처럼 찾아오는데, 고난가운데 빠지게 되면 그 순간엔 오로지 그곳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 고난의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선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스티브잡스가 죽기 얼마전 스탠포드에서 한 졸업식 연설은 아주 유명합니다. 거기에서 잡스는 인생의 중요한 포인트를 하나 집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고난들이 <점>과 <점>처럼 찍혀 있는데 성공의 순간과 그 고난의 점들이 연결되어 있더라라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그가 학교를 자퇴하고 청강한 과목에서 배운 Calligraphy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것) 가 후에 애플컴퓨터의 혁신적인 폰트가 되는것 말이지요. 무신론자였던 잡스는 논리로 설명하기 힘든 이 현상을 Karma-운명 , 숙명등의 단어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계획, 섭리> 라고 부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세번정도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 소개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첫번째 이야기는 스킵하고 두번째, 세번째 이야기만 나누겠습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제가 어떻게 군대를 안가게 되었나 스토리입니다.

두번째는 고난 이라기보다는 황당한 고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희때는 대학입시에서 4개의 학교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1개 학교는 가고싶지만 성적이 조금 모자란곳, 1-2개는 가고 싶고 성적도 충분한 곳, 마지막은 성적은 남아도는데 가고싶진 않은곳을 고릅니다. 제게는 가고 싶고 성적도 충분한 곳이 한양대학교였습니다. 저는 사실 고등학교때 인문계였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나 공대는 관심이 없었고, 갈수도 없었습니다. 제 관심은 영문학쪽에 있었습니다. 한양대 영문학과는 점수도 충분하고 제가 가고 싶은 곳이기도했습니다.

입시의 과정엔 논술시험과 면접이 있습니다. 어떤 학교는 논술만보고 어떤곳은 두가지 모두 필요했습니다. 한양대 캠퍼스에 논술 시험을 보러 갔는데 논술을 나름 잘 써내고 마치는 찰나였습니다. 시험 조교가 이렇게 마무리를 했습니다: “여러분 다음주에 있는 면접도 다들 잘 보세요.” 그런데 저는 이때까지 한양대는 면접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어, 내가 잘못 알았나?’ 확인해야 하지만 저는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저 조교는 준비가 덜 됐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면접을 가지 않았고 당연히 입시에 떨어졌습니다. 내 계산대로라면 당연히 가야하는 학교, 전공이었는데말이죠.

결국 어쩔수없이 선택한 곳은 아주대학교 인문학부였습니다. 아주대는 컴퓨터나 공대가 괜찮은데 인문학은 별로라서 실패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대학교가 그때 한국에서 한가지 아주 특별한것이 있었습니다. 무제한 전과 (transfer) 제도입니다. 전공을 바꿀수 있는 제도입니다. 심지어 인문계에서 이공계로도 전과가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1년후에 저는 컴퓨터가 좋아졌습니다. 그때 인문계에서 이공계로 전공을 바꿀수 있는 학교는 한국에 한곳 아주대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대의 컴퓨터 전공은 꽤 실력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은 보너스를 하나 남겨놓았습니다. 저는 컴퓨터를 나름 잘하지만, 사실 사람들 사이에선 글 잘쓰는 블로거로 더 유명합니다. 책 읽기, 글쓰기 좋아하는 인문계의 소질은 하나님이 제게 남겨놓은 보너스 입니다.

세번째 고난은 유학중에 겪었습니다. 박사과정의 가장 힘든것중 하나는 퀄시험이라 불리는 전공시험입니다. 퀄 시험을 2번 실패하면 학교에서 나가야 합니다. 흔히 <피똥싼다>고 표현하는 시험인데 저는 피똥을 여러번 쌌습니다. 유학을 나와보니 주변에 수재들로 가득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온 친구들은 스펙들이 대단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중국 어디 성 대학입시에서 2등했다고 합니다. 근데 그 성 인구가 1억명입니다.

첫해에 시험을 보았습니다. 여러개 과목에서 15개 정도의 문제가 출제됩니다. 처음 시험에서 제가 몇문제를 맞추었을까요? 정답은 한문제도 맞추지 못했다입니다. 공부가 조금 부족하긴 했지만, 설마 백지를 내고 시험장을 나가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교수에게 답안지를 돌려주며 혹 백지인것을 들킬까봐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몇달간 도서관에서 공부만 했는데, 백지라니… 아마 지금껏 살며 가장 절망한 날이 그날이었던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 어떻게든 위로해보려는 아내를 뒤로하고 혼자 침대에 누워 별의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여러분 <기쁨>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슬픔>이 아니고 <절망>입니다. 희망이 없음입니다. ‘그깟시험 다시 한번 잘 준비하면 되지 뭘 그래’라고 생각할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평가했을때 내 계산으로는 도저히 시험을 패스하는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사람의 계산에서는 절망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렇게 허무할리 없다는 믿음으로 다시 공부했습니다. 9개월 후 시험이 마지막 기회라서 그때는 정말 도서관에서 살았습니다. 머리가 나빠서 이해가 안되니까 큰 전공책 여러개를 통째로 외웠습니다. 그 당시 아내가 큰 애 수안이를 임신했는데 배 나온 아줌마가 싸온 도시락을 도서관에서 같이 까먹으며 공부했습니다. 시험날이 가까워오는데 신물나게 공부하고 또 하니까 이제 될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시험날엔 꽤 괜찮게 답안지를 써냈습니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요?

또 떨어졌습니다. 지도교수의 말로는 거의 근접했는데 아쉽게도 탈락이라고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저를 좋게 봐주었던 지도교수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교수회의에서 삼세판을 강력하게 주장해 예외적으로 한번 더 기회를 준것입니다. 그리고 몇달후에 결국은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몇달간 더 공부를 했지만, 사실 두번째 시험과 세번째 시험 사이에서 실력의 향상은 없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바뀐 중요한 마음의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신뢰입니다. 두번째까지는 내가 최선을 다 했으니 성공해야한다는 믿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어야 한다”는 내 의지가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의지가 실패했을때는 강한 절망이 지배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두번째의 실패후에 마음에 찾아온것은 뜻밖에도 평안이었습니다. (어렸을때 병원에 누워서 누렸던것과 비슷한 평안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쁠것이다”. 한번이나 두번만에 합격했다면 이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지 못했을것입니다. 때론 머리나쁜것이 진리로 인도하는데 쓰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의지가 실패해 절망에 빠지려할때, 그래서 이 익숙한 말씀이 우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

그리고 이번 역시 하나님은 고난 후에 보너스를 예비하셨습니다. 시험에 떨어져 학교를 떠나게되면 석사 학위라도 받아야 하니까 관심에도 없던 수업 하나를 학점을 채우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업에서 배운 이론을 제 분야에 적용해 학술대회 최고논문상 후보에도 오르고, 그것으로 박사 논문까지 잘 마치게 됩니다.

어쩌면 여러분중에 지금 고난가운데 있는 사람도 있을것입니다. 혹 지금이 아니더라도 분명 여기 모두는 고난을 겪여 봤고, 또한 앞으로도 많이 겪을것입니다. 스티브잡스와 같은 무신론자 역시 이러한 고난이 무작위의 현상이 아니라 미묘하게 미래와 연결되는 인생의 점과 점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는 성공한 다음에야 과거를 돌아보고 고난의 가치를 알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다릅니다. 고난가운데 있어도 아니면 미래에 겪을 고난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 의미를 말씀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11-13

비전

우리가 교회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중 하나는 <비전>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세상에서도, 특히 젊은 사람들이 가장 자주 듣는 단어 역시 <비전>입니다. “비전을 가져라. 큰 꿈을 품어라” 자주 듣는 말이지요. 그러면 요즘 세대에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제 비전은 공무원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고, 조금이라도 확실한 것을 붙잡아보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사실은 비전의 의미를 잘못 해석해서 붙들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전의 사전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Merriam-Webster를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1) 눈으로 보는 것 (그래서 안과를 vision 이라고 이야기하죠)
2) 상상하는것, 꿈을 꾸는 것 (흔히 지칭하는 비전이 이것입니다).

즉, 지금 시점에서 눈으로 보고 있는것과 미래에 이루어질 것을 상상하는 것이 <비전>의 두가지 의미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이 두가지 의미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미래에 이루어질 꿈은 지금 눈으로 보는 그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비전의 의미가 가장 생생하게 드러나는 곳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앞으로 있을 미래의 일을 사도 요한이 지금 시점에서 보고 이것을 기록한것이 요한계시록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공무원이 비전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동사무소에서 서류 발급해주는 직원을 눈으로 보면서 ‘이게 나의 미래구나. 신난다!’ 이렇게 속으로 소리쳤을 사람입니다. 혹시 그게 아니라 <삼포세대, 취업률 50%도 안돼, 취업하자마자 명예퇴직…> 이런 소문을 귀로 듣고 공무원을 꿈으로 삼았다면, 그건 비전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사회의 현상을 부모님 통해, 친구를 통해 귀로 들었지, 자기 미래의 모습을 아직 눈으로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래의 제 모습을 본 것은 2003년 이었습니다.  그당시 저는 아주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를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사실 학부때 성적이 안 좋아서, 석사학위라도 받으면 대기업에 가기 수월하니까 공부했습니다.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은 좋아하고 잘 했는데 시험만 보면 성적이 안좋았습니다. 특히 인문계 출신이라 그런지 수학, 물리같은 기초 과학과목은 C가 최고 점수입니다.

그런데 마침 저희학교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학생들이 재학기간중 한번 외국의 컨퍼런스에 연수를 가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제가 몇명 친구들과 같이 간곳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라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이곳에서 <글로벌 그리드 포럼>이라는 그당시 막 떠오르던 컴퓨터 기술 컨퍼런스가 열린다고해서 정말 아무 기대없이 구경하러 갔습니다. 그렇게 연수를 가면 지원금이 꽤 많이 나오는데 사실은 공짜관광하러 가는것이었습니다. 괜히 중간에 런던에 들른다거나 말이죠.

그 컨퍼런스 첫날 제 시선을 사로잡은 한가지 광경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컨퍼런스장 복도에서 아무렇게나 앉아 노트북을 켜놓고 뚫어져라 집중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가까이가서 보니 검은 스크린에 떠오르는 하얀 문자들을 두드리고 있는 그 사람들은 연구소, 학교에서 나온 프로그래머들이었습니다. 회의장 안에서는 정부기관, IBM같은 회사에서 나온 잘 차려입은 높은 사람들이 미래의 기술에 대해 설명하는데 후줄근한 티셔츠입은 이 사람들은 그런것엔 그다지 관심도 없고 그냥 노트북속 코드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다녀왔던 여러명의 동료들에겐 그 모습이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제게는 달랐습니다.

거기서 미래의 제 모습을 본 것입니다. 마치 카메라로 찍은것처럼 그 순간을 찍어서 그 사람이 아닌 내가 그 자리에 노트북을 들고 앉아있는것을 상상한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에 다시 돌아와서 남은 1년반동안 집중한것은 박사과정 유학이었습니다. 한국인이 미국의 연구소에서 그 사람들처럼 일하기 위해서는 미국 학교에서 박사학위가 필요하기때문입니다. 사실 저희 학교 – 아주대학교 –는 유학을 많이 보낼만큼 유명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더더욱 문제는 제 학점이 3.0이 채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유학관련 사이트를 뒤져보니 몇년간 제 학점으로 유학간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돈을 많이 내고 석사유학을 가는 몇가지 경우가 전부였습니다. 제가 유학을 가는 유일한 방법은 논문을 외국의 교수들이 알만한 유명한곳에 출간하는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작 석사 1년차인데 무작정 덤볐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험을 하고, 논문을 쓰고…교수님이 지도하면서도 “안될텐데…” 말리는걸 그냥 우겨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상상하던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좋은 곳들에서 논문이 채택되고, 논문을 읽고 추천한 교수들에게 박사 어드미션을 장학금과 함께 받았고 한국에서 6만불짜리 국가장학금까지 캐쉬로 챙겨서 유학을 나왔습니다. 물론 아까 소개한대로 몇달후에 피똥싸는 경험을 하게 되지만요. 그리고 졸업후에 처음 취직한 스타트업 회사는 그때 그 컨퍼런스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창업한 회사입니다. 제가 눈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그 사람들과 후줄근한 티셔츠입고 컴퓨터와 씨름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비전은 소문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듣는 세상의 현실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 눈으로 직접 보고 마음속에 사진처럼 찍어놓는 것입니다.

직업의 목적

몇주전 인공지능 알파고가 큰 뉴스거리였던걸 기억하실겁니다. 곧 세상이 인공지능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했죠. 컴퓨터를 전공한 제 관점에서 판단하면, 그러한 전망은 아마도 사실일것입니다.  인터넷이 모든 종류의 정보에 접근하게 만들었다면 인공지능은 곧 그 정보들을 사용해 사람보다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그럼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스카이넷이 곧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는건가? 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이 질문을 생각해보면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 과연 로봇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질문을 던질수 있을까? 만일 사람이 지성과 감성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면 그럼 로봇역시 이 질문을 언젠가 스스로 던질것입니다. 나의 존재 목적을 묻는것이 지적인 활동의 클라이막스라면 사람의 지성을 그대로 따라하는 알파고 역시 이 질문을 언젠가 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게 인류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고요.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그저 상상인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질문은 영적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그저 뇌세포들의 상호작용으로 모델링할수 있는 로봇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이므로 이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신교 신앙의 핵심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선 이렇게 답을 합니다.

Q: 사람의 첫째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A: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과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Man’s chief end is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

20대에게 가장 큰 걱정은 당장 눈앞에 닥친 취업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시간이 지나서 30대가 되면 여러분 모두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될 것입니다. 저 역시 남들이 보기에 부러워할만큼 그런 직장과 가정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침에 깰때도 밤에 잠들때에도 여러분은 이 질문을 하게될 것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낮시간 대부분을 일하는데 보내므로 결국 이 질문은 ‘내가 일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입니다. 저 역시 이것에 명쾌한 답은 아직 못 찾았습니다. 다만 웨스트민스터 고백이 어렴풋하게나마 중요한 푯대가 되어줍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과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흔히 꿈을 이야기하라면 <꿈의 직장>을 댑니다. <구글>, <페이스북>, 한국에서는 <삼성>, <몇급 공무원>.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좋은 직장의 좋은 타이틀을 가지게되면 얼마동안 행복할까요? 우리는 다 경험해봐서 압니다. 한두달 지나면 무덤덤해지고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40대, 50대가 되서 아직 <내가 삼성맨이야!> 떵떵거린다면 주위에서 다들 불쌍하게 쳐다볼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것은 <직업> 입니다. 직업과 직장은 다릅니다. 저는 소프트웨어 만드는것이 직업입니다. 이것은 아마 평생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직장은 그동안 여러번 바뀌었고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제가 천국에 가면 하나님은 저를 <직장>을 가지고 평가하지 않을것입니다. “너는 왜 구글에 못갔니?” 라고 묻진 않으실겁니다. 그러나 제 <직업>을 가지고는 평가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제게 주신 사명이고 달란트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가 준 직업의 10 달란트를 가지고 무엇을했니?” 라고 찾으실 것입니다. 제 직업은 소프트웨어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닮았기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했듯, 소프트웨어를 <창조>하는 능력이 제 안에 있습니다.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는 웨스트민스터의 답 그대로 내게 주신 이 능력을 저는 즐거워합니다. 매일처럼 새벽에 코딩하는 이유는 이 능력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직업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수준에 다다르기 원합니다. 부끄럽게도 그러나 아직은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저 직장에서 동료에게나 인정받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매일 여가시간에 코딩하는 이유는 언젠가 나의 실력이, 나의 결과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싶기 때문입니다.

pieta

Pietà, 1498-1499

2년전에 아내와 결혼 10주년으로 로마에 갔었습니다. 바티칸 대성당에가서 곳곳의 예술작품들을 넋을 잃고 바라봤었습니다. 특히 미켈란젤로가 24살에 조각했다는 피에타는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바라볼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잘 아시죠?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안고있는 조각상. 예수님의 죽음을 그렇게 생생하고 또 아름답게 묘사할수 있었던것은 이미 10년이상 수련한 미켈란젤로의 재능이 몇년간 공을들여 디테일을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직업의 결과물은 바티칸 대성당에서 수백년째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직업의 결과물역시 그렇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작품이 되길 원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수련하고 또 남들이 안보는 디테일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청년들 역시 여러분의 직업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겨 즐거워하고, 또 그것으로 작품을 만들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길 바라며 오늘 말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회의 시간에 똑똑해보이는법 9가지

(재미있길래 퍼와서 가볍게 번역했습니다. 원글은 여기에서…) https://techcrunch.com/2016/09/30/9-tricks-to-appear-smart-in-brainstorming-meetings/

1. 물마시러 나가면서 필요한거 없냐고 묻는다.

사람들은 당신이 친절하고 사려깊다고 생각하느라 10분간 어디에서 놀다오는지 잊는다.

2. 미팅중 포스트잇에 그림을 그려라.


사람들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기 시작할때 미리 준비한 포스트잇에 아무 그림이나 그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갑자기 준비안된 자신을 생각하며 당황해할 것이다.

3. 너무 단순해서 깊이있어 보이는 비유를 들어라.


사람들이 문제에 대해 토론을 시작할때 뜬금없이 비유를 들어가며 문제와 연결시켜라. 예를들어 문제를 빵굽기에 연결시켜 “자 여기 빵이 있습니다. 빵에는 크림이 필요하겠죠? 우리에게 크림은 뭘까요” 이런식이다. 사람들은 당신이 문제의 깊은 곳까지 바라본다고 착각하지 설마 그냥 크림빵이 먹고싶은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4. “우리가 과연 맞는 질문을 하는 걸까요?” 라고 물어라.


당신이 똑똑해 보이게하는 최고의 질문은 질문 자체에 대해 질문하는것이다. 혹 누군가 “그럼 맞는 질문이 뭘까요?” 물으면 “그냥 확인을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넘겨라.

5. 관용적인 표현을 써라.


아이디어에 대해 관용구를 써서 질문을 하면 똑똑해보이는데 효과적이다.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 아닐까요? 입에 거미줄 치는건 아닐런지… 이거 발 디딜틈도 없겠군요!” 이런식으로 하면 된다.

6. 독특한데 창의적으로 보이는 습관을 만들어라.


당신 심연의 생각을 다 끌어내는것처럼 보이는 그런 습관을 만들어라. 이를테면 복도를 계속 왔다갔다 한다거나, 같은 자리에서 계속 뛰든지, 벽에다 공을 계속 던지는것도 괜찮다. 온몸을 다해 당신이 생각중이란걸 표현하면된다.

7. “CEO는 이렇게 생각할텐데…” 라고 말하라.


사람들이 당신이 CEO와 가깝다고 믿게끔 하는게 포인트다. “사장님은 이렇게 생각했을것 같은데…” 혹은 “아 그 아이디어 좋네요! 사장님이 좋아할거 같은데요.” 이런식으로 대화하면 사람들은 당신이 CEO 라인에 있구나 생각할거다.

8. “우리가 지금 맞는 모델을 세우는겁니까?” 라고 질문하라.


모델, 프레임워크, 아키텍춰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면 사람들은 당신이 문제를 앞서 나가는, 큰 그림을 그릴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것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해할수 없을때마다 “그게 맞는 모델일까요?” 질문하면된다.

9. 사람들이 아이디어에 거의 동의하는거 같으면 “합시다!” 라고 먼저 말하라.


눈치를 봐서 사람들이 어떤 아이디어를 모두 좋아하는거 같으면 크게 “합시다 (ship it)!” 제일먼저 외쳐라. 물론 사람들은 웃게되겠지만 무의식적으로 당신이 회의의 결론을 내는 사람인것처럼 여길것이다.
http://twitter.com/sm_park

소프트웨어와 돈

소프트웨어로는 돈 벌기가 쉽다. 최근 수십년간 새로 탄생한 억만장자들은 모두 소프트웨어로 돈을 벌었다.


포브스 세계의 부자 랭킹을 보면 1, 2위의 빌게이츠, 제프베조스 모두 소프트웨어로 시애틀에 큰 기업을 만든 사람들이다. 그리고 12위 안에 페이스북, 구글, 오라클의 창업자 6인이 부자리스트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모두 1.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2.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3. 주변에서 도움 약간 (펀딩, 직원..)을 받았을 뿐이다. 몇년후에 이 사람들이 만든 소프트웨어는 전 세계 수십억의 인구가 사용한다.

지금은 사람들이 이것없이는 살수 없을만큼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지만 그 당시 윈도우즈가 없을때, 페이스북이 없을때 ‘이런걸 만들어야지’ 라고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이들에게는 얼마나 그게 당연하게 (obviously) 보였을까.

그래서 내가 “소프트웨어로 돈 벌기 참 쉽다, 그죠~” 이렇게 말하면 전세계 프로그래머들이 다 이렇게 반응할것이다.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파는건 최악으로 어렵다. 이미 잘 나가는 회사의 월급쟁이는 일단 이야기에서 제외해본다. 이야기는 소프트웨어로 부자되기에 대한 것이니까.

소프트웨어로 스타트업을 하거나 능력있는 사람이 1인 기업을 해보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수있다.

다른 종류의 노동은 대개 시간과 일의 가치에 따라 값을 쳐준다. 몸을 쓰는 노가다를 해도 8시간 일하면 30만원은 받아야한다. 식당을 차리고 음식을 내놓으면 원가에 이익을 더해 값을 매기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지불하고 먹는다.

그런데 하루종일 단내나게 일을 해도 사람들이 천원이라도 내고싶은 제품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마 능력자가 한달 내내 일을 한다면 그럴듯하게 동작하는, 예를들어 앱스토어에 넘쳐나는 사진 필터링 앱 정도 만들어낼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그걸 팔면 얼마나 돈을 벌까? 아마도 십만원 정도 벌면 주변에서 “괜찮은데 나도 해볼까” 이런 이야기를 들을것이다.


하루에 8시간씩 일한다고 치면 한달에 160시간 일하고 10만원을 벌어보자. 그럼 시간당 일당이 600원이다. 사발면 한개 사먹기도 힘들어 시발 소리가 나올것이다. 

나는 지금 직장을 다니며 개발을 해주면 한달에 꽤 많은 돈을 번다. 그런데 내가 어느순간 ‘내일을 할거다’ 생각해 직장을 나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 시간당 사발면 한개값 벌기도 힘들어진다. 호텔 식당에서 일하다가 자기 식당을 차리는 쉐프들은 이렇지 않을것이다.

소프트웨어로의 창업은 모 아니면 도가 된다. 그런데 윷가락을 20개쯤 던져서 모가 나와야한다.

그런데 그 이유는 생각보다 분명하다. 내가 한달내내 죽어라 일해 소프트웨어를 만들면 솔직히 아이디어와 퀄리티가 거지같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앱스토어에 넘쳐나는 사진 필터링 앱을 만들었는데 버튼이 사진 가운데 붙어있거나 이런식이다. 미치거나 변태가 아닌 이상 이런 앱을 사줄 사람이 없다. 호텔에서 일했던 쉐프는 자기 식당을 차려도 호텔 비스무리한 맛이 나오니까 장사가 되겠지만 대기업 개발자가 몇달 내내 뭔가를 만들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앱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에픽 게임즈를 만든 전설적인 게임 개발자 팀 스위니가 한 말이다. “소프트웨어를 팔아서 2만원 벌기까지 16,000 시간을 취미로 코딩해야했다”.

나는 말콤글레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이야기한 1만 시간의 법칙이 소프트웨어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1만 시간 이상을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순전한 호기심으로, 취미로 시간을 쏟은 개발자만이 직장인에서 창업자로, 번데기에서 나비가 날아가는 그런 변화를 경험할수 있다.

5년간 하루 8시간씩 순전히 어떤것에 몰두해있을때 그때서야 나는 개발자중 한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한사람이 될수 있을것이라 믿는다.

그럼 나는 그때에서야 순전히 내가 만든 소프트웨어로 2만원을 벌것이다.

유명인과 주변인의 말싸움

지난주부터 실리콘밸리의 Tech 커뮤니티가 Peter Thiel(피터틸)의 트럼프 지지, 그리고 연이은 거액 1.25m 도네이션때문에 두 편으로 갈렸다.

논쟁의 화살은 YCombinator에 쏠렸는데 틸과의 파트너쉽 관계를 모두 청산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나온것. (YC는 억울할수도 있는게 YC에서 틸은 파트타임 파트너밖에 안되지만 페이스북에선 이사회 멤버. 근데 이런 말싸움은 트위터에서 벌어지는데 주커버그는 트위터에 없으니… 🙄)

그 공격의 선봉에 선 사람은 역시 좌파중 좌파인 DHH http://david.heinemeierhansson.com/. 평상시에도 대놓고 YC와 폴그레이엄을 비난하던 겁없는(?) 사람인데 워낙에 본인도 ruby on rails등 테크 업계에서 대단한 것을 많이 한 사람이라 파급력이 크다.

상당히 공격적이고 폴그레이엄처럼 점잖게 말하기보다는 주장과 함께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을 흔히 하는 일종의 능력치높은 트롤이다. 이번에 폴그레이엄에게 트위터 블락 신공을 당하기도했다.

DHH와 함께 공격의 선봉을 맡은 것은 까대기에서 둘째라면 서러운 pinboard. https://mobile.twitter.com/Pinboard

Pinboard는 1인이 북마킹 서비스를 운영하는데 테크 커뮤니티에 그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고 평상시 이런 이슈들에 워낙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라 영향력이 상당하다.

그리고 세번째 중요한 목소리는 바로 Marco Arment (마르코). 역시 1인 개발자로 tumblr, overcast, instapaper등 걸출한 앱들을 혼자 만들어낸 재야 최고의 실력자. 혼자하는 블로그에 매월 50만이 방문하고 팟캐스트도 팬층이 두텁다. Https://marco.org 

이렇게 인디쪽 실력자들이 틸과의 관계를 청산하지 않는것은 트럼프를 인정하는것과 다름없다고 공격을 시작했다. YC는 어찌보면 인디에 있는 사람들을 메이저로 끌어올려주는 집단이라 인디쪽 사람들을 무시할수가 없다.


Yc를 현재 이끄는 Sam Altman의 블로그 일부. 폴그레이엄과 그의 의견은 비록 트럼프가 싫다고 해도 그를 지지하는 40%의 인구를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본인들도 트럼프를 혐오하지만 이런식으로 지지자를 해고하고 대화를 단절한다면 선거 이후에도 상처는 치유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다.

즉 피터틸을 잘라내는건 정치적 보복으로 트럼프같은 사람이나 할 행동이고 우리는 성숙하게 상대의 정치적 견해차이를 인정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어찌보면 좌우로 치우침없는 좋은 의견이다.


위는 마르코의 블로그에서 퍼온 부분. 그의 비판의 핵심은(dhh, pinboard 마찬가지) 틸같은 파워있는 사람을 하나의 직원으로 볼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기부액수, 그동안의 지지 행위를 보면 그는 트럼프와 동일인으로 봐도 무방하다.

억만장자인 그를 yc의 파트너에서 자르는것은 정치적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는게 아니다. Yc처럼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조직이 그와같은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에 대응하지 않는것은 결국 트럼프와 틸을 변호하는 것과 같다. 블로그의 마무리는 “Shame on Y combinator.” 😬

Dhh나 pinboard는 워낙 트롤 수준으로 그동안 폴그레이엄과 YC를 비난해왔기때문에 설득력이 약하지만 마르코같은 사람은 이쪽 바닥에서 본래 존경받기도하고 글 자체에 감정을 섞거나 하지 않으므로 더 설득력이 있다. 워낙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이기도 하고.

테크 종사자들은 보통 진보에 가깝다. 그런데 이번 이슈가 그 안에서도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될것 같다. 폴그레이엄쪽에 손드는 사람은 아무래도 안정적 보수에 가까울것이고 마르코쪽에 손드는 사람은 반골 진보에 가까울 것이다.

참고로 피터틸이 페이스북 이사회에 있기때문에 역시 압력을 받은 주커버그는 그를 변호하는 입장이다. 아마존의 베조스도 마찬가지고.

나는 마르코의 블로그를 읽고나니 이쪽에 마음이 더 기운다. 나 역시 반골인지 아님 성공을 못한 변두리 사람이라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

하지만 한가지 부러운것은 유명인, 그것도 테크인들에게 존경의 대상인 폴그레엄, yc를 상대하며 때로는 ‘저렇게 심하게해도 되나?’ 싶을만큼 신랄하게 비난하는 dhh, 마르코등 주변인들의 힘이다. 그리고 잘 쓰여진 논쟁 글 한편으로 테크 커뮤니티를 설득하는 마르코 같은 주변인의 생각의 힘, 글의 힘이다 (Sam Altman은 솔직히 이부분에서 밀린다). 마르코와 dhh의 신랄한 비판이 있은후에 cnn에까지 이 논쟁이 보도되었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다시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지만 생각의 힘, 글의 힘이있는 주변인이 성공한 권력을 상대로 그렇게 강한 자기 주장을 펼칠수 있을까? 스타트업, 인디로 활동하는 개발자중 이렇게 강한 생각의 힘, 글의 힘이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이런 논쟁을 지켜보는 커뮤니티는 그럼 공정한 판단을 내릴수 있을까? 성공한 권력자에게 존경심을 이미 깔고 들어가는 우리 문화에서 이런 주변인들의 의미있는 <까댐>이 제대로 펼쳐질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번역] A Letter to the Doctors and Nurses Who Cared for My Wife

뉴욕타임즈에 실린 글이 너무 좋아서 번역해 봤습니다. 비록 원문의 그 미묘하고 슬프면서 아름다운  감정이 다 살아나진 않아도 조금이라도 전달된다면 다행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읽을수 있습니다: “A Letter to the Doctors and Nurses Who Cared for My Wife” 

(보스톤의 작가인 Peter DeMarco는 34살의 젊은 나이에 급성천식으로 아내를 잃고나서 아내를 치료했던 캠브릿지 병원 중환자실에 이 편지를 보냈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결국 아내의 마지막 날들이되었던 그 일주일…여러분들이 아내를 얼마나 열심히 간호했는지 친구들, 가족들에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병원의 의사, 간호사, 호흡기전문의, 사회복지사, 그리고 청소원까지 이름 하나하나를 기억해내면 15번째 이름쯤에서 제게 놀라서 묻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 많은 이름들을 다 기억해?” 그럼,

“내가 그분들 이름을 어떻게 잊겠어?” 이렇게 저는 반문합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은 제 아내가 의식이 없이 누워있을때 전문적으로, 친절하게 그리고 아내의 품위를 지켜주며 치료했습니다. 주사를 맞을때면 아내가 의식이 없어 듣지못해도 조금 아플거라고 미리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청진기로 심장과 폐의 소리를 듣다가 아내의 옷이 내려가면 환자복을 다시 올려 그녀의 맨살을 가려주었습니다. 아내의 체온을 조절할때 뿐 아니라 입원실이 조금 싸늘할때도 아내가 더 편안히 잘 거라며 담요를 다시 잘 펴서 덮어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아내의 부모님에게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부모님들이 불편한 간이침대에 올라갈때도, 매 시간 마실 물을 가져다줄때도, 끝없는 질문에 상세하게 설명할때도 여러분의 그 친절이 아내의 부모님을 위로했습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아내의 아버지 본인도 의사이십니다. 자신이 딸의 치료에 의료진과 함께 하고있다고 느끼셨을때 그게 얼마나 큰 의미가 되었는지 상상할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제게 해준 것들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그 일주일동안 당신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디에서 제가 힘을 얻을수 있었을까요?

일주일 내내 제가 아내의 침대곁에서 흐느낄때…그녀의 손등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힘없이 앉아있을때면 기척 하나없이, 마치 투명인간이 된것처럼 조용히 자신의 업무를 해주었습니다. 제가 간이침대를 그녀의 침대곁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붙여보려고 애쓸때면 주사튜브와 의료기기의 복잡한 선들 사이로 들어가 침대를 옮기는것을 몇번이고 도와주었습니다. 

얼마나 자주 제게 다가와 필요한 것이 없는지, 마실물과 먹을것, 갈아입을 옷과 샤워할 물이 필요한지 물어봐 주셨는지 모릅니다. 아내의 상태에대해 좀 더 알고 싶을때, 아니면 그냥 아무 이야기든 하고싶을때에도 여러분은 옆에 있어주었습니다.

깊이 절망해 있었을때 얼마나 많이 저를 안아서 위로해주고 Laura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녀의 사진을 함께 보며, 제가 그녀에대해 쓴 글을 읽으며 공감해주었는지 모릅니다. 제게 나쁜 소식을 전할때면 얼마나 많이 떨리는 목소리로 슬픔을 눈에담아 이야기해주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긴급한 이메일을 써야해서 컴퓨터가 필요하면 어떻게해서든 제게 마련해 주었습니다. 중환자실의 특별한 손님이었던 우리 고양이 <콜라>를 몰래 데리고와 마지막으로 Laura의 얼굴을 핥게해주었을때 못본척해 주신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특별한 저녁에 Laura의 친구, 동료, 학교동창과 가족들까지 50명이 넘는 사람들을 중환자실로 부를수있는 특권까지 허락해주었습니다. 그날 저녁 친구들은 기타를 연주하고, 오페라 곡을 불러주거나 춤을 추며 Laura에게 마지막 사랑을 쏟아부었습니다. 제 아내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랑받고있었다는걸 그날에야 알았습니다. 그날 저녁은 우리 결혼생활의 마지막 파티와 같았습니다. 여러분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시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번의 그 순간, 한시간 뿐이었지만 제가 평생 잊지못할 그 시간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 Laura의 장기를 기증하기위한 수술을 기다리면서 저는 아내와 혼자있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과 친구들이 몰려와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시간이 계속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오후 4시, 이제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난후 저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지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간호사 Donna와 Jen에게 간이침대를 옮기는걸 도와줄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아내 곁에 조금 더 가까이 눕고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더 좋은 생각을 해내더군요.

간호사들은 제게 잠시만 나가있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가 다시 돌아왔을때 그분들은 Laura를 침대의 오른편으로 눕혀서 제가 같이 누울수 있을정도의 공간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한시간만 제가 아내와 아무 방해없이 둘만의 시간을 가져도 되냐고 물었을때 고개를 끄덕이며 커튼과 문을 닫고 불을 꺼 주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바라본채로 누웠습니다. 정말 아름다워서 아내의 머리와 얼굴을 어루만지며 아름답다고 속삭였습니다. 아내의 가운을 조금 내려서 가슴에 키스를 하고 머리를 기대니 숨쉴때마다 올라왔다 내려가는 심장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순간이 남편과 아내로서의 마지막 교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어떤때보다 가장 자연스럽고 순수하며 위로받을수 있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곧 잠이들었습니다.

전 그 마지막 한 시간을 평생 기억할겁니다. 상상할수 있는 그 어떤것보다 큰 선물이었습니다. Donna와 Jen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깊은 고마움과 사랑을 담아서,

Peter DeMar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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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DeMarco 와 아내  Laura Lev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