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일하기

전에 이야기 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집에서 일한다.

얼마전 평소와 같이 일하는데 7살 딸 아이 (샬롯)의 친구가 놀러왔다. 코딩하다가 커피 마시러, 과자 부스러기를 담으려 주방을 왔다갔다 하는 나를 보며 아이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다. 그리곤 물었다: “Are you Charlotte’s brother? (샬롯 오빠예요?)”. 내가 약간 동안이긴 하지만 전형적인 폐인 너드몸매의 소유잔데 오빠라니…그 아이는 낮 시간에 집에서 왔다갔다 하는 남자 어른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난 그냥 고맙다고만 얘기했다.

나는 자주 큰애, 작은애를 학교에 등하교 시킨다. 등교 시간엔 출근길에 아이를 내려주는 아빠들이 제법 있어서 괜찮다. 문제는 오후 2시쯤 하교 시간이다. 코딩하다 시간되면 평소 작업복인 아디다스 삼줄 추리닝에 두손 집어넣고 학교로 어슬렁 걸어간다. 그러다보면 역시 아이를 픽업하러온 엄마 부대를 마주치게 된다. 평소 안면만 있는 한국 엄마들과 눈이 마주칠때면 얼른 눈길을 돌린다.  ‘저 아줌마는 매일 낮시간에 나오는 날 어떻게 생각할까?’. 엄마들 표정도 약간 당황해 하는 것 같다. ‘저 노는거 아니예요!!’ 소리는 마음에서만 맴돈다. 우리 집에 처음오는 사람들에게 날 소개하며 아내는 꼭 집에서 <일하는>거라고 강조한다. 부끄러워하는것 같다…그래서 손님이 갈때까지 오피스에 숨어있게 하는거겠지.

집에서 일하는 사람의 일상

이런것들이 집에서 일하면서 겪는 일상이다. 이런 방식으로 일한지 이제 2년이 되었다. 지금은 출퇴근 해야하는 직장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을만큼 적응됐고 이 생활이 좋다. 시애틀에 2년전 이사오면서 집의 한 공간을 아래 사진과 같이 오피스로 꾸몄다. 오피스 안에는 프로그래밍 작업을 위한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다. 여러대의 서버, 넷웍 장비, 맥북, 잠잘 수 있는 소파, 두루마리 휴지,.. 심지어 한쪽에는 사우나실도 있다.

IMG_20131124_090218[우리집 한 구석에 마련한 오피스]

원래는 나만의 공간인 오피스로 꾸미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오피스 메이트가 생겼다. 역시 집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야 하는 세살 짜리 친구 <클라라>인데 잠옷만 입고 다닌다. 지금 블로그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옆에서 병원놀이 하자고 졸라댄다. (잠깐 놀아주고 더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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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피스 메이트. 잠옷만 입고 다닌다.]

아침에 일어나 대충 추리닝 걸쳐입고 커피 한잔과 베이글 한개 들고 출근(?)해 회사 이메일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중요한 이메일만 우선 답장을 보낸다. 그리곤 당연히 다른 직장인들이 다 그렇듯 업무는 잠시 미루고 한참 웹서핑을 한다. 트위터, 뉴스, 블로그들을 돌아보면 시간이 잘 간다. 가끔 아내가 들어와 일 잘하나 살펴보는데, 혹 놀고 있다는 걸 들키면 <클라라>를 방에 풀어 놓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한참 놀다가 지겨워지면 코딩을 시작한다. 코딩하는 동안은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일주일에 서너번 전화로 팀미팅이 있다. 가끔 화장실에서 집중하며, 설겆이하면서 미팅을 할때도 있는데 뭐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괜찮다. 중간 중간 아이와 놀아주기도 하고, 집청소도 하고, 골프 연습장도 다녀오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새로운 형태의 조직

우리 회사 유칼립투스의 직원중 약 80% 정도는 이렇게 집에서 일한다. 우리 회사만 아주 특이한 것이 아니다. 워드프레스를 만드는 오토마틱 [1], Ruby on Rails를 만든 David Hansson의 회사 37Signals [2], 그리고 현재 우리 CEO의 전 회사 MySQL [3] 모두 직원의 대부분이 집에서 일한다. 내가 이전에 잠시 일했던 스타트업 Fancy.com은 많은 개발자가 한국에 있는데 역시 모두 집에서 일한다. “재택근무”가 주는 어감은 여전히 <집에서도 부업으로 할 수 있는 000!>라는 스팸메일처럼 다소 2류 문화를 내포하지만, MySQL, 워드프레스, 유칼립투스 모두 소프트웨어 업계의 떠오르는 샛별들이다. 작년 야후가 집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모두 해고해 비판을 받았을때, 언론들은 새로운 형태의 조직으로 우리 회사와 워드프레스를 소개해 많은 호평을 받았다.

집에서 일하는 것의 가장 큰 혜택은 자유다. 위에서 설명했듯 우리 회사는 직원이 어디에서, 어떤 시간에 일하든 문제가 없다. 원하면 어디로든 이사갈 수 있고, 여행을 다니며 일해도 상관이 없다. 우리 직원중 한 사람은 사람이 살지 않고 인터넷도 안 들어오는 깊은 산속에서 밭을 일구어 살며 위성 인터넷으로 접속해 일을 한다. 어제는 집 앞에서 만났다고 쿠거(산 사자) 사진을 회사 전체 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아직 회사에서 이 직원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 나는 골프를 좋아해 주중에 하루는 꼭 라운딩을 나간다. 아침일찍 나가도 점심을 먹고서야 들어오는데, 남들 다 일할때 노는 것만큼 신나는게 없다. 아마 오피스를 나가야 한다면 이런 생활은 포기해야 할거다. 회사가 주는 이런 자유는 직원을 채용할 때 아주 강력한 미끼다. 실력있는 개발자에게 자유만큼 매력적인 것이 없으니까.. 

재택근무를 영어로는 흔히 “Remote employment” 로 지칭한다. 하지만 유칼립투스나 워드프레스는 스스로의 조직 형태를 “Distributed workforce”로 부른다. Remote employment는 헤드쿼터 오피스를 중심으로 매니저가 집에서 일하는 소수의 직원(remote)들을 관리하는 측면이 강하지만, Distributed workforce는 애초에 헤드쿼터라는 물리적 오피스의 개념이 없이, 전세계에 분산되어 일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다. 유칼립투스는 CEO부터 거의 모든 임원들까지 각 주에 흩어진 자신의 집에서 일한다. 종종 나 자신도 궁금한것은 이렇게 전세계에 분산돼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 어떻게 좋은 성과(Performance)를 낼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워드프레스나 유칼립투스 모두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조직이다. 단순히 일하는 시간만을 계산한다면 사실 일반 회사들에 비해 많지가 않다. 이들은 오피스에서 긴밀히 얼굴을 마주대고 회의를 할수도 없다. 회식자리에서 만드는 끈끈한 동료애도 기대할 수 없다.

아마 탁월한 동기부여 (motivation)가 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워드프레스, 37signals, MySQL, 유칼립투스의 공통점은 모두 오픈소스에서 시작한 회사라는 점이다. 집에서 일하는 것은 오픈소스 개발자들의 원래 삶의 방식이다. 폴 그레이엄은 낮에는 밥 벌이를 위해 일하고, 밤에는 진짜 자신의 아름다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오픈소스 해커를 “낮 일” 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4]. 폴그레이엄이 <해커와 화가>를 썼던 10여년전에는 오픈소스 해커들이 진부한 낮일과 진짜 밤일을 분리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오픈소스가 소프트웨어의 주류로 자리잡으며 낮일과 밤일을 구분지을 필요가 없어졌다. 집이 회사고 해킹(밤일)이 직업이다. 오픈소스 해커들에게 “아름다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본업이 되었을때 나타나는 퍼포먼스는 매니저에 의해 잘 관리되는 구식 소프트웨어 회사의 조직을 압도한다. 혹 미심쩍다면, 집에서만 일하는 사람의 퍼포먼스를 어떻게 평가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된다. 사무실에선 책상에 앉아만 있어도 기본은 먹어준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오직 한가지 “코드”로만 평가 받는다.

개인적으로 오픈소스 회사에서 일하며 가장 기쁜 것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다. 아이가 옆에서 떠드는데 일이 되느냐고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하지만 그렇게 방해받아도 괜찮다. 막 유치원을 마치고 달려와 내미는 딸아이의 어설픈 그림 한장이 주는 기쁨이 훨씬 크니까. 실제로 적막한 가운데서 코딩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옆에서 뛰어 놀때 더 즐겁게 일이 잘된다. 아마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감동받을때 나오는 주체못할 터보 코딩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전화로 하는 팀미팅에선 직원들의 아이들 웃고 우는 소리가 배경음으로 깔린다. 매일 출근했더라면 놓쳐버렸을 아이들의 커 가는 순간 순간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몇가지 관리의 팁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구성되다보니 오피스에서 일하는 회사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조직을 관리한다. 그중 몇가지 팁만 소개해본다.

  • 지역 모임: 프로젝트를 시작할때는 대화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몇달에 한번 팀 단위로 도시를 돌아가며 모임을 갖는다. 시애틀, 뉴욕, 샌프란시스코등 팀원이 살고 있는 도시로 모여 일주일 정도 오피스를 렌트해 회의하거나 코딩한다. 우리보다 좀 더 갑부인 오토마틱경우는 그리스, 도쿄등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1].
  • 전체 모임: 큰 오피스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대신 그 돈으로 전 직원이 모이는 워크샵 (All-hands meeting)을 괜찮은 여행지에서 갖는다. 우리는 LA 근교의 휴양지에서 주로 모임을 갖고, 오토마틱경우는 전 세계의 휴양지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1].
  • 커뮤니케이션: 거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이메일, 채팅등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 오피스에 나와 일하는 사람들도 예외가 없다. 바로 옆자리에서 일하더라도 irc 채팅방에서 질문하고 대답해야 한다. 오픈소스회사의 핵심은 투명성이다. 거의 모든 회사의 미팅을 외부에 공개된 irc 채팅방에서 하고, 발표는 외부로 스트리밍 한다.
  • 투명성: 매주 월요일 임원들은 전 직원에게 자기 부서의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CEO는 한주간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보고하고, 세일즈 임원은  몇개의 라이센스를 팔았는지 공개해야한다. CFO는 전 직원에게 현재 회사의 통장 잔고가 얼마인지 공개한다.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회사는 직원에게 더 정직해야 한다.
  • 회식: 직장의 꽃 회식은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한다. 중요한 프로젝을 마치는등 이벤트때마다 가족, 친구들과 나가 회식하고 영수증을 회사에 제출하면 된다.
  • 개발 장비: 개발팀의 컴퓨터 장비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팀원들은 여러대의 서버를 집에서 돌리고, 맥프로 레티나등과 같은 최신 노트북을 지급받는다.

이처럼 집에서 일하는 회사 조직이 모든 경우에 맞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스타트업, 특히 소프트웨어, 서비스분야에서 시작하는 회사에서는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침, 저녁으로 낭비하는 출퇴근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거나 자신을 위해 소비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일일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주의할것은 조직의 구성원이 자신의 일을 자기 가족만큼 사랑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픈소스를 하는 사람들에겐 일과 삶의 구분이 없다. 코딩은 삶의 일부고 아이들은 그런 아빠의 모습을 집에서 보는게 자연스럽다. 놀다가 코딩하고, 코딩하다가 노는게 우리 삶의 방식이다. 구성원이 코딩을 직업으로만 생각해 코딩과 삶을 공간적, 시간적으로 구분짓고자 한다면 아마도 우리의 이 방식은 맞지 않을 것이다.

[1] http://www.businessinsider.com/automattics-awesome-remote-work-culture-2013-8
[2] http://www.forbes.com/sites/danschawbel/2013/03/29/david-heinemeier-hansson-every-employee-should-work-from-home/
[3] http://www.entrepreneur.com/article/228752#
[4] 해커와 화가-2

아이디어 생각 안하기

들어가며

난 어려서부터 코딩한 그런 창조적 아이는 아니었다. 그저 98년 당시 가장 쿨했던 전공 컴퓨터공학(지금은 상상 안가겠지만..) 에 발 담궈봤을 뿐이다. 처음 1년간은 C 프로그래밍이 너무 어려워 학점이 계속 “씨 씨” 욕을 해댔다. 1년정도 지났을때 좀 색다른 경험이 있었다. 교회의 젊은 전도사님이 어느날엔가 잡지책을 한권 펴 놓고 끙끙대고 있는걸 봤다. 무엇을 하시느냐 묻자 잡지사의 상금이  걸린 퍼즐 문제를 푼다고 했다. 그분은 사실 좀 많이 가난했었는데 거기에 진심으로 희망을 걸고 계신 듯 했다. 그런데 문제들중 딱 한가지만 모르겠다고 울상이었다.  퍼즐은 숫자가 나열되어 있고 중간 중간에 비어있는 연산부호를 넣어 결과 숫자를 만들어내는 문제였다. ‘안 어려워 보이는데?’ 생각했지만 한참 끙끙대도 조합이 안 나왔다. 가능한 연산자의 조합이 수도 없이 많으니 당연했다. 그러다가 언뜻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가만..코드로 짜면 그 많은 조합을 컴퓨터가 할 수 있잖아?’. 막상 코딩하는데는 몇분 안 걸렸고 프로그램은 곧바로 답을 찾아냈다.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전도사님은 눈이 휘둥그레져, 과장하자면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목격한 사람처럼 흥분했다. 그 주 내내 만나는 사람마다 “저사람 천재”라고, 심지어는 설교중에도 토해내던 흥분이 다음 호 잡지의 당첨자 목록에 본인 이름이 없는걸 확인한 후에야 멈췄다.

두뇌의 조작질

작은 에피소드를 아직 기억하는 이유는 내 코드가 어떤 사람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한 첫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전에 학교에서 해오던 숙제, 프로젝트는 매년 반복되는 이미 정답이 정해진 훈련이었다면 그날의 코딩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살아있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요즘 종종 블로그를 읽고 일개 프로그래머인 내게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상담해오는 분들이 있다. 대부분 재미있고 신선하다. 그런데 거의 모든 경우 슬라이드를 다 읽고 난 후에도 그 아이디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지 알수가 없다. 많은 경우 본인의 아이디어가 “새롭다” 또는 “지금껏 없었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말이 맞다. 새롭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는 무한대로 만들어낼수 있다. 트위터에 한글자 더 추가해 141 글자를 가능케 하는 것도 아이디어고, 139자로 제한하는 것도 아이디어다. 다만 아무도 원하지 않을 뿐.

폴 그레이엄이 “스타트업 아이디어”에서 지적했듯 아이디어에서 시작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 [1]. 무한한 아이디어의 바다에는 반짝이는 돌들이 너무 많아서 우연히 예쁜 돌맹이 하나를 집어들고 진주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을 꿈꾸는 나는 종종 아침에 샤워하다가 혹은 밤늦게 뜨거운 욕조에 누워 생각하다가 깜짝 놀랄 쿨한 아이디어가 생각나곤 한다. 흥분된 마음에 검색을 해보고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걸 알땐 가슴이 벌렁벌렁 한다. 우뇌는 어떻게 구현할까 생각하고, 좌뇌는 벌써 빌게이츠집에 놀러가 있다. 생각의 그 다음단계는 쿨한 아이디어가 해결하는 문제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 이러한 문제를 겪고 있는데 내 아이디어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가정한다. 생각이 더 깊어지면 창조해낸 그 문제가 내게 그동안 고통이었다고 믿기 시작한다. 문제가 주는 고통이 심하다고 믿으니 아이디어는 더 빛나 보인다. 이 스타트업은 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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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결국 두뇌의 장난질이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전까지는 사실 그 문제가 쓰라려본 적이 없다. 아이디어를 정당화 시키기 위해 두뇌가 한 조작질에 또 한번 당했을 뿐이다. 아이디어를 갖고 싶어한 그 순간부터 내 두뇌는 내 편이 아니다.

문제부터 생각할때

성공한 스타트업은 모두 문제에서 시작한다. 트위터의 창업자지만 세력 다툼에서 밀린 잭 도시(Jack Dorsey)는 Square라는 모바일 페이먼트(Payment) 스타트업을 다시 시작해 현재 적어도 3조원 이상의 가치를 평가 받는다. 잭 도시는 물건을 살 때마다 이런 질문을 했다. “왜 지금 내가 지갑에 손을 가져가 신용카드를 꺼내야 하지?” “왜 카드가 승인나서 영수증이 나올때까지 어색하게 서서 기다려야 하지?” “왜 또 나는 영수증에 사인해서 다시 돌려주고, 카드를 넣은 지갑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 넣어야 하지?” [2] 보통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결제의 과정이 잭 도시의 일상에서는 괴로움이었다. 아마도 리누스 토발즈가 본인을 ‘게으름뱅이’라고 지칭한 이유와 같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에겐 익숙한 삶의 방식이 창업자들에겐 너무 귀찮고 불 필요해서 코딩으로 해결해야하는 문제로 보인 것이다.

사실 잭 도시, 리누스 토발즈 같은 “난 놈” 들에게만 그런 문제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때론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를 다른 이유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주 미국에서는 홈조이라는 집 청소 스타트업이 약 400억 이상의 펀드를 받았다 [3]. 창업 1년만에 꽤 많은 매출을 올리는 알짜배기 스타트업으로 알려져 이곳 기준으로도 큰 펀드를 받아낸 것이다. 홈조이는 깔끔한 웹 페이지에서 집 청소를 요청하면 미국의 대도시에 있는 청소 업체들을 연결해 청소부를 파송한다. 스스로 청소부를 고용할 필요도 없고 홈페이지 하나 예쁘게 만든다니 마치 대동강 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마냥 기발해 보인다. 그런데 꼭 그런 것일까? 아래는 홈조이의 창업자 Adora Cheung의 트윗에서 발췌한 것이다. 청소부들과 함께 추수감사 식사후 찍은 사진이다.

피부색도 사회적 클래스도 완전히 다른 청소부 사회에 들어가 그 업체들과 네트웍을 만들만한 용기, 적극성을 가진 프로그래머가 얼마나 될까? 실제 Adora Cheung은 인터뷰에서 본인이 청소부로 일했던 경험이 중요했다고 얘기했다. “집청소” 혹은 “청소부 고용” 이라는 문제는 아마도 몇천년의 역사를 가진 누구나 아는 문제인데 그걸 인터넷으로 가지고 온 것은 홈조이가 처음이다. 때론 문제를 알지만 해결할 용기가 없을 뿐이다. 비슷한 다른 예로 Stripe라는 페이먼트 스타트업이 있다 [4]. 수없이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자신의 프로그램을 온라인에서 돈 받고 파는 그 과정을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누구도 해결하려 들지 않았다. 코딩은 자신 있지만, 금융회사를 상대하는건 상상도 못할 일이기 때문에. 그걸 처음 시도해 의외로 쉽게 문제를 해결하고 페이먼트 서비스를 만든것이 Stripe 이다. 모든 프로그래머가 고통을 느꼈지만 금융회사의 문을 한번 두드려볼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아이디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부터 두뇌는 스스로를 속이기 시작한다. 그대신 우리 주변에 있는 문제를 발견하면서 스타트업은 시작된다. 때로는 홈조이, Stripe의 예처럼 스스로 단정지은 영역을 넘지 못해 알면서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더 많은 경우는 사실 우리가 문제를 발견할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런 표현을 본 적이 있다. “Founders attract the problem (창업자는 문제들을 매혹시킨다)”. 문제가 매력적이어야 하는게 아니다. 우리 주변에 숨어서 존재하는 문제들중 하나가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을만큼 당신이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표현도 좋다. “Problems want to be discovered (문제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준비된 사람에게 보일 뿐이다. Ev Williams는 Blogger, Twitter에 이어서 최근엔 Medium 이라는 세번째 스타트업을 창업해 성공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꾸준히 한 우물만 파다보니, “웹에서 글쓰기” 라는 주제에서는 대박 문제들이 그에게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스타트업을 꿈꾼다면 그래서 보이지 않는 문제들에게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첫째, 무언가를 정말 좋아해야 하고, 둘째는 작은 문제부터 해결해봐야 한다.  Ev Williams가 글쓰고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2조원 넘는 재산이 있으면서도 medium.com을 창업할 이유가 없다. 잭 도시는 아주 어려서부터 트위터를 상상하고 있었다 [5]. 두 사람 다 문제에 빠져 사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마크 쥬커버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치과 사무실과 자신의 집을 연결하는 작은 문제를 메신져를 코딩해 해결했다. 페이스북의 전신 Facemesh는 내성적이라 여친을 사귈 수 없었던 쥬커버그가 여학생들 사진을 스토킹하며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었다.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다보니 소셜 네트웍이라는 대박 문제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디어 생각은 멈추고, 좋아하는 것(직업일수도 있고 취미 일수도 있는)을 계속 하자. 그 과정에서 나를 괴롭히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세심하게 관찰하자. 혹 문제가 대박처럼 보이지 않을지라도 내게 중요하다면 코딩으로 해결해보자. 그러다보면 언젠가 대박 문제가 당신에게 노크할지도 모른다.

loveactually

https://twitter.com/sm_park

[1] 스타트업 아이디어 (번역)
[2] http://techcrunch.com/2011/12/25/what-startup-to-build/
[3] http://techcrunch.com/2013/12/05/homejoy-38-m/
[4] http://paulgraham.com/schlep.html
[5] 장관님, 이런 놈들을 찾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