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의 질문과 답

얼마전 제게 소프트웨어 개발과 오픈소스에 대해 인터뷰를 부탁하셔서 평소 생각을 말씀 드렸는데 여러 사람들 의견을 모아 책으로 출간이 되었네요. http://jpub.tistory.com/366

인터뷰의 질문과 답 모두 의미가 있는 것 같아 블로그로 공유합니다.

Q: 중국, 인도, 영국 등에서 코딩교육을 의무화한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조심스럽게 프로그래밍을의무교육-입시화 하자는 얘기가 제기되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10만 SW인력양성론’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조기에 SW를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든지, 정책적 차원에서 SW인력을 길러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기본적으로 어린 나이에 코딩을 접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져커버그는 아주 어려서부터 프로그래밍을 했고, 12살 나이에 이미 아버지의 치과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메신져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져커버그의 관심을 파악한 부모는 코딩 과외를 시켜주기도 했습니다. 트위터를 만든 잭 도시, 텀블러의 데이빗 카프등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 창업자들은 초등학교, 늦어도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릴적부터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는 이유가 중요합니다. 좀 더 빠르게 접해서 단지 더 많이 배우게 하거나, 코딩을 아주 잘하는 기술자로 만드는게 목적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에 코딩을 시작하면, 주변에서 접하는 사소한 “문제(Problem)”들을 프로그래밍으로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즉, 져커버그가 아버지 치과 사무실과 자신의 집을 연결시키는 메신저를 만든 이유는, 아버지와 가족이 일하면서도 대화를 나누는 “문제 해결”을 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주변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인식하던 결과물이 훗날 소셜 네트웍이라는 대박 “문제”를 해결한 페이스북입니다. 어른, 특히 대학교 이후에 직업을 위해 코딩을 배운 사람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쉽게 알아채기 어려운 이런 문제들을 발견 못합니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회사들중 “문제”를 처음 발견하고 그걸 해결한 곳은 거의 없습니다. 네이버는 구글이 발견한 문제를, 삼성은 애플이 발견한 문제를, 다음은 야후가 발견한 문제를 자신들 역시 해결한 것 뿐입니다.  흔히 창의력이 없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문제를 발견하는 눈이 없다는 뜻입니다.

프로그래밍 조기 교육 주장의 문제는, “10만 SW인력 양성론”에서 드러나듯 그 목적이 단지 많은 기술자를 양성하려 하는데 있습니다. 기술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대학교 교육으로 충분합니다. 절대 프로그래밍은 어려서부터 배워야할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목적은 어려서부터 주변의 문제들을 파악하는 감각을 기르기 위함이고 따라서 커리큘럼등이 이에 초점을 맞추어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Q: 오픈소스 관련 한 벤처대표는 오픈소스는 공짜라기보다는 ‘자유’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참여와 공유를 강조하는 측면입니다. 박상민 연구원님은 블로그에서 “오픈소스가 한국 SW의 근본적 해결”라고 적으셨습니다. 국내에서는 안타깝게도 FTA 이후 오픈소스 관련 분쟁사례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오픈소스 거번넌스 체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오픈소스의 본질(가능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울러, 현실에서 오픈소스에 대한 이해 부족 혹은 오해와 곡해를 통한 저작권 침해 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그 대표분 말씀대로 오픈소스는 공짜가 아닙니다. 저희 회사 Eucalyptus systems는 모든 소스코드를 github을 통해서 공개하지만, 고객들에게 돈을 받고 소프트웨어를 배포합니다. 저희 회사 CEO는 그 전 오픈소스 회사 MySQL을 1조원 넘는 가격에 팔았습니다. 그래서 흔한 질문이 “소스 코드를 공개했는데, 왜 내가 돈을 지불해야 하는가?” 부분입니다. 답은 “소스코드는 소프트웨어의 단지 한 부분” 이라는 사실입니다. 코드이외에 실제 소프트웨어를 운영하기 위해선 다른 기술들 (패키징, QA)과 고객 서비스 (24시간 콜센터등)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픈소스 제품을 사는 사람들은 소스를 사는 것이 아니라, 오픈소스 회사의 모든 서비스를 구입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런 서비스를 구입하지 않고 소스코드만 가지고 스스로 패키징, QA, 서비스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는 곳도 있습니다. 저희 CEO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사람들은 돈이 많아서 시간을 절약하고,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많아서 돈을 아낀다”고 합니다.

오픈소스는 두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문화적인 측면입니다. 미국에 끊임없이 소프트웨어 회사가 생기고 회사들이 빠른 시간에 성장하는 이유는 저변에 셀수 없이 많은 오픈소스 해커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PC를 취미로 만들고 공유하던 동호회에서 시작한 회사가 애플입니다. 리누스 토발즈는 주말에 시간내서 소스코드 관리툴 git 을 만들었는데, 그 툴을 좋아한 젊은이 둘이 웹 버젼으로 만든 github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타트업이 되었습니다. 주말에 취미로 만들고 코드를 공개한 소프트웨어가 참여, 공유를 통해서 스타트업, 대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회사가 빠른 시간에 성장하기 위해서는 능력있는 개발자가 많아야 하는데, 오픈소스 문화가 그런 고급 인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줍니다.

두번째는 기업에 도움이 된다는 측면입니다. 최근 몇년사이에 미국에서는 <스타트업은 오픈소스 해야 한다>는게 일종의 불문율입니다. 이유는 주 구매층인 중견 기업, 대기업들이 이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몇십년간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등에 종속(lock-in)되어서 어쩔수 없이 많은 지출을 해야 했는데, 이제는 Linux, MySQL등  품질은 비슷하지만 적은 비용으로 소프트웨어를 운영하는 대안을 선택합니다. 80년대-2000년대까지는 소프트웨어의 “품질”이 최고의 요구사항 이었다면, 품질에 차이가 거의 없는 지금은 “자유”, “선택”이 소프트웨어 구매의 최고 요구사항입니다. 코드를 직접 볼 수 있고 필요하다면 구매하지 않고도 소프트웨어를 운영할 수 있는 오픈소스가 이기는게 당연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성공적인 오픈소스 회사의 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래머들에게조차 오픈소스는 괴짜들이 하는 취미 정도로만 인식되는게 현실입니다. 오픈소스는 취미일뿐 아니라 성공적인 기업 모델입니다. 오픈소스의 전도사 역할을 할만한 회사가 대기업 가운데서도 나와야 하고, 스타트업중에도 성공하는 회사가 있어야 합니다. 법, 제도적으로는 기반이 없는 지금 그런 회사들을 띄워줄 (Bootstrap)만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블로그에 보면 ‘제큐어웹(XecureWeb)’으로 인한 한국 보안 인증체계의 문제점을 언급하셨습니다. 외국에 비해 국내 보안 체계는 매우 복잡하고, 사용자에 책임을 전가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한국과 미국 보안 인증 체계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A: 질문과는 반대로 사실 가장 큰 차이는 미국은 사용자에 책임을 지우는 반면, 한국은 정부가 사용자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아주 강합니다. 미국의 경우 예를들어 아마존에서 쇼핑을 하면 클릭 한번 하는 것으로 결재가 끝납니다. 구매의 전 과정에서 정부가 규제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반대로 한국의 경우 정부가 사업체에 보안 인증을 강제하니까 제품을 한번 구매할때마다 ActiveX,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등을 강제로 설치해야 하죠.

정부의 의도가 완전히 잘못 되었다고 생각치는 않습니다. 컴맹이고 나이 든 분들께는 보안을 강제 하는 것이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보안과 뛰어난 사용자 경험이 꼭 밸런스를 맞추어야 합니다. 한국정부는 지나치게 국민을 신뢰 못하는 나머지 보안쪽에 너무 큰 무게를 두고 사용자 경험을 무시했습니다. 웹기업 들이 창의적으로 만들 수 있는 뛰어난 사용자 경험이 정부에 의해 근본적으로 막힌 것입니다. 보안, 인증 체계는 기업들이 만들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더 나은 보안 체계를 갖춘 회사들이 시장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모든 보안의 키를 쥐고 있으니까 오히려 기업들에서는 보안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더 위험한 웹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정부 규제는 보안에서, 사용자 경험면에서 모두 실패입니다.

Q: 정부 주도의 진흥 혹은 규제보다는 서비스 사용자 중심의 시장에 의해 성공하는 SW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많습니다. 바람직한 SW정책 혹은 SW정책의 방향성은 무엇입니까? 더불어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인정받고 스타트업이 시장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한국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판단하십니까?

A: 이미 크게 성공하고 있는 카카오톡, 라인등에 정부가 한 역할이 조금이라도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스타트업이 성공하는 과정에서 대기업등에 의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 해주는 역할 정도가 정부가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창업자들이 빛을 지거나 신용불량이 되는 등 사업의 결과에 의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실패하면 잃을것이 너무 많은 환경에서 누가 시작을 하겠습니까?

정부 보다는 스타트업으로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 투자자, 멘토 역할을 해서 다음 세대를 이끌어야 합니다. 유명한 벤처기업가 폴 그레이엄은 자신의 스타트업을 성공시킨 후 YCombinator를 만들어 매년 수십팀의 스타트업에 초기 자금을 지원하고 멘토링을 해왔습니다. 여기에서 드랍박스, AirBnB와 같은 걸출한 스타트업들이 나왔고 수십조원 가치의 회사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구글 창업자 둘의 가능성을 보고 맨 처음 몇억을 투자 했습니다. 우리 역시 성공한 사람들에 의해 다시 투자 되는 벤처 생태계가 필요합니다. 최근 모바일 생태계 조성을 위해 100억 투자를 약속한 카카오 김범수 의장이 좋은 예입니다.

정부가 중점적으로 해야 할 과제는 소프트웨어 문화를 진흥시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프트웨어 문화의 핵심은 오픈소스 입니다. 취미로 주말에 코딩을 하는 학생들, 직장인들의 수와 국가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정확히 비례할 것입니다. 학교, 기업들에서 적극적으로 오픈 소스를 도입하고 개발하도록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오픈 소스는 문화이면서 또한 강력한 경쟁력입니다.

Q: 이번 책의 컨셉이 ‘SW로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SW의 성공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시는지요? SW로 성공한다는 것(개발자들의 입장에서)과 SW가 성공한다는 것(제품 혹은 서비스의 입장에서)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마지막으로 사례를 포함해서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개발자의 입장에서 SW로 성공하는 것은 직업이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개발일을 하며 힘들어 하고 불평하는 친구들을 많이 봅니다. 이것은 이상한 현상입니다. SW를 개발하는 과정은 즐거움의 연속이어야 합니다. 오픈소스 개발자들은 직업으로 코딩하는 그 시간만큼 저녁이나 주말에 프로그래밍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은 스스로 조물주가 되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창조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건 아주 중독성이 강한 즐거움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아주 성공한 사람들 (예를들어 폴 그레이엄)이 나이 들어서도 코딩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개발자들은 의사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직군입니다. 매일 놀이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마도 SW 개발자들만 누리는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위의 설명에서 한가지 빠진 조건은 “능력있는” 개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발을 즐거워 하는 정도와 능력은 정확히 비례합니다. 프로그래밍을 싫어하면서 능력있는 사람은 한번도 못 보았습니다.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는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학생이거나 해서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코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능력있는 사람이 되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집니다. 이것이 개발자의 성공이라 생각합니다.

제품/서비스 입장에서 SW가 성공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공한 제품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문제점 한가지를 해결한 것입니다. 구글은 “알고 싶다”, 아마존은 “사고 싶다”, 페이스북은 “친하고 싶다”, 트위터는 “말하고 싶다”는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해결하는 고통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서비스는 더 크게 성공합니다. 구글이 해결한 “알고 싶다”의 문제의 깊이와 현재 구글의 300조 주식 가치는 정확히 비례합니다. 아마도 트위터가 절대로 구글보다 커질 수 없는 이유는 “말하고 싶다”는 본능이 “알고 싶다”는 욕구보다 더 작기 때문일 것입니다.

앱스토어에 출시된 수십만개의 앱들 대부분이 가치가 없는 이유는, 아이디어가 기발하지만 사실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중의 아주 소수 앱들만이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성공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무시하고 상상속에서 문제를 만들어내 SW로 해결합니다. 제프 베조스는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고 고통이 큰 문제 (싼 가격에 물건사서 빠르게 받는것)를 해결합니다”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트위터, 블로거, 미디움 세개의 서비스를 연속해 성공시킨 에반 윌리엄스는 사람들의 공통된 문제중 하나를 골라, ‘기다리기 싫어함’, ‘생각하기 싫어함’ 두가지만 SW로 해결해주면 스타트업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SW의 성공은 고통의 정도가 큰 문제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내가 만드는 SW가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것은 SW개발하는 과정 만큼이나 즐거운 일입니다.

https://twitter.com/sm_park

Let it go

“An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 – Arthur Clarke
“모든 진보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 아서 클라크

frozen_elsa-wide

2014

오늘 블로그의 첫 배경 사진은 영화 프로즌의 여왕 <엘사>다. 2014년의 첫 글 치고는 다소 뜬금없어 보이지만, 오늘은 영화에서 느낀 비전(꿈)에 관한 내 감정을 일기처럼 표현해 보고 싶었다. 이런 글은 영화를 아직 못 본 분들껜 공감이 어려울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워드프레스의 Matt Mullenweg 가 이야기 했듯 블로그의 제1 가치는 미래에 다시 이 글을 읽을 내 자신이라 생각하고 ([1]) 그냥 표현해보기로 맘 먹었다.

2014를 맞이한 지금 이순간, 나는 참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이다. 행복한 이유는 예전의 블로그 <비전: 눈으로 보는 행위> [2] 에서 이야기 했듯 대학 시절에 가졌던 꿈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실력 쟁쟁한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삼줄 추리닝에 샌달 신고 다니며 신나게 코딩하는 것은 지금 매일 매일의 생활이 됐다. 예쁘고 착한 아내와 두 딸이 주는 가정에서의 안정감과 기쁨 역시 참 좋다. 집에서 하고 싶은 코딩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부족하지 않다. 지금처럼만 늙어간다면 인생이 아마 썩 괜찮을 것 같다….하지만,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 마음속 한 공간엔 감정으로는 느껴지는데 말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 블랙홀같은 공간이 있다. 불행함으로 표현한 그 공간에 비어있는 것은 <비전><꿈>이다. 10대때는 좋은 대학을 가는게 꿈이었고, 20대때는 미국 학교에서 공부하고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되는게 꿈이었는데, 이제 30대는 절반이 이미 지났는데 무슨 꿈을 꾸어야 하는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끝없이 전해지는 SW 창업자들의 성공 스토리는 운좋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비전은 단어 뜻 그대로 무엇인가를 <눈으로 목격>하는 것이다. 10대때는 활기넘치는 대학생들, 20대에는 자유분방한 미국 프로그래머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이번에는 뜻하지않게 딸 아이들과 영화 <프로즌>을 보며 또 한번 <비전>이 주는 강렬한 비쥬얼 효과를 느꼈다. 내가 “<프로즌>의 주인공같은 여왕이 되리라”고 마음먹은 것은 물론 아니다. 애니메이션 곳곳에 드러나있는 은유들 속에서, 프로그래머로서 내가 꿈꿔야 하는 것들을 찾았다는 뜻이다. 사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영화가 특별하게 느껴졌는지 알지 못했다. 일주일 내내 가슴이 벅찬 느낌, 그 이유를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천천히 내용을 곱씹어보고 YouTube 영상을 여러번 보고 나서야 <프로즌>이 내 머릿속에 어렴풋이 스케치해뒀던 다음 단계의 <비전>을 강력하게 시각화했음을 알았다.

프로즌

프로즌의 주인공 <엘사>는 손에 닿는 모든것을 얼게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갖고 태어났다. 마법은 아름다운 눈송이를 만들기도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사람들을 다치게하는 저주가 되기 때문에 <엘사>는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장갑을 손에 끼우고 살아야만 했다. <엘사>는 자신의 여왕 즉위식 날 처음으로 바깥 세상에 나와 조심스레 왕관을 받는다. 그러나 <엘사>의 마음속 깊은 두려움은 곧 주위를 얼어붙게 만든다. 그녀의 손을 저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피해 눈덮인 산으로 도망하는 엘사, 거기서 처음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게 된다. 아래의 동영상을 꼭 감상해야 블로그를 이해할 수 있다.

장갑 (두려움)
<엘사>는 어른이 되기까지 손에 장갑을 끼운채 살아야했다. 제어할 수 없는 두려움 때문이다.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것들이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것이 두렵다. 실제로 그 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어려서부터 각인된 <두려움>이 손을 장갑밖으로 꺼낼 수 없게 만들었다. 두려움은 <엘사> 자신뿐 아니라 주위를 해치는 감정이었다.

프로그래머로서의 내게 두려움은 내 머릿속으로 상상한 고유한 창조물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나게 코딩할 수 있다. 이미 가치를 인정받은 소프트웨어의 한 부분을 코딩하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이 상상한 세계를 머리에서 꺼내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다. ‘내 것을 창조해봤는데 그게 추한것이면 어쩌지?’ ‘내 상상력이 저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기라도 할까?’ ‘내 유치한 아이디어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 역시 내 손이 만드는 것이 두려워 장갑을 끼운채 살고 있다. 이제 나도 이 장갑을 벗어야겠다.

아름다운 창조물
눈덮인 산에 홀로 떨어진 <엘사>는 장갑을 벗고, 처음으로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손 위에서 빛어진 눈송이들의 아름다운 문양과 귀여운 눈사람이 즐겁다. 이제 자신감이 생긴 그녀는 이렇게 노래한다.

It’s time to see what I can do
To test the limits and break through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I’m free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때야.
내 한계를 시험해보고 그것을 넘어서보고.
내겐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무런 룰도 없어.
난 자유야.

절벽의 끝에 조심스레 발을 대니 얼음 다리(bridge)가 만들어지고, 이제는 거침없이 하늘위로 달려나간다. <엘사>가 달려나가는 하늘위로 다리가 채워져가는 장면은 너무 감격스러워 하마트면 울어버릴뻔했다.

elsa_bridge

코딩이 바로 <엘사>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창조해내는 마법이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주어진 과제들을 풀어나갈때는 문제의 숲속에 갇혀서 깨닫지 못하지만, 프로그래밍의 본질은 머신이 사람처럼 생각하게 하고 (구글), 정지해있는 것들이 움직이게 하며(자동차), 침묵하던 사람들이 말하게 하는 것이다 (페이스북). 그래서 “모든 진보한 기술은 마술과 구분할 수 없다”는 아써 클라크의 말이 옳다. 때로는 알고리즘이 어렵고 하드웨어를 이해하느라 머리 아프지만, 프로그래머는 <창조주>, <마법사>로서의 감격을 잊어선 안된다.

<엘사>는 처음부터 다리나 거대한 궁전을 만들지 않았고 눈송이, 눈사람을 만들어보며 즐거워했다. 그리곤 자신의 한계를 하나 하나 시험해 나간다. 코딩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완전한 다리, 궁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손을 장갑안에 감추게끔 한다.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름다운 창조의 시작이다. 하지만 조심스레 내밀던 발로 하늘을 향해 달려나가듯, 우리 역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그걸 넘어서는것이 중요하다. 아써 클라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가능한 것의 한계점을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한계점을 넘어서 조금 더 나아가 보는 것이다”. 내 한계를 넘어서 아름다운 창조물을 만들고 싶은 마음, 그게 <비전> 이다.

얼음 궁전
<엘사>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얼음 궁전의 유일한 거주자는 <엘사>자신이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으로 갖게된 자유가 홀로 사는 외로움보다 더 중요했다. 이후 스토리가 더 진행되면 왕국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위해 마법을 사용하지만, <엘사>는 자신의 궁전에 홀로 살면서 창조하고 누리는 삶 역시 행복해했다.

‘내가 만드는 것이 추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은 그 창조물의 유일한 사용자가 <나> 일때는 더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코딩할때, 누군가를 위해 그것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때때로  상상속의 “사용자” 때문에 자신없고 비참해질수 있다. 폴그레이엄이 <스타트업 아이디어>[3] 에서 지적했듯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은 그래서 실패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내는 창조물 (아이디어)은 오로지 내가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야한다. <사용자>로서의 내가 기술의 최첨단에 서 있고, 나를 위해 만드는 프로그램이 그런 나 자신을 만족시킨다면 그럼 나는 세상에서 가장 진보한 SW를 만들어낸 것이다. 훗날 외로운 궁전에서 나온 <엘사>는 온 국민의 환호속에 여왕으로 귀환한다. 내가 만들고 스스로 누리는 그 SW 역시 같은 영광을 얻을지도 모른다.

<프로즌>의 주제곡은 이렇게 끝난다.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어차피 추위가 힘들었던 적은 없어.

내 귀엔 이렇게 들렸다.
The code never bothered me anyway. 어차피 코드가 힘들었던 적은 없어.

https://twitter.com/sm_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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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go 
The snow glows white on the mountain tonight
Not a footprint to be seen
A kingdom of isolation,
And it looks like I’m the Queen

오늘밤 산위에 눈이 하얗게 빛나고 있어요.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않아요.
고립된 저 왕국, 이제 보니 내가 그곳의 여왕이네요.

The wind is howling like this swirling storm inside
Couldn’t keep it in, heaven knows I tried Don’t let them in, don’t let them see
Be the good girl you always have to be
Conceal, don’t feel, don’t let them know
Well, now they know

회오리 폭풍속처럼 바람이 부네요.
감출수가 없었어요. 하늘은 알아요 내가 노력했다는 걸.
아무도 들이지마, 누구도 알면 안돼. 언제나 착한 소녀로 살아야 해.
감춰. 느끼지마. 아무도 알게 하지마. 하지만 이제는 모두 알아요.

Let it go, let it go
Can’t hold it back anymore
Let it go, let it go
Turn away and slam the door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이제 잡아둘 수 없어요.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뒤돌아서, 문을 닫아 버려요.

I don’t care
What they’re going to say
Let the storm rage on,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이제 신경쓰지 않아요.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폭풍은 계속 불어와도 돼요.
한번도 추위를 느낀적 없었으니까.

It’s funny how some distance
Makes everything seem small
And the fears that once controlled me
Can’t get to me at all

참 재밌어요. 조금 거리를 두었을땐 모든 것들이 작아 보이니.
한때 날 괴롭혔던 두려움은
이제 전혀 내게 없네요.

It’s time to see what I can do
To test the limits and break through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I’m free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때죠.
내 한계를 시험해보고 그것을 넘어서보고.
내겐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무런 룰도 없어요.
난 자유예요.

Let it go, let it go
I am one with the wind and sky
Let it go, let it go
You’ll never see me cry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지금은 바람과 하늘과 하나예요.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다시는 우는 모습은 없을거예요.

Here I stand
And here I’ll stay
Let the storm rage on

여기 내가 서있고
여기 내가 머무를거예요.
폭풍은 계속 불어도 돼요.

My power flurries through the air into the ground
My soul is spiraling in frozen fractals all around
And one thought crystallizes like an icy blast
I’m never going back,
The past is in the past

내 힘은 하늘과 땅에 흩날리고
내 영혼은 얼음 문양을 만들며 회오리쳐요.
한번의 생각이 얼음 폭풍처럼 크리스탈을 만들죠.
절대 돌아가지 않아요. 과거는 과거일 뿐이죠.

Let it go, let it go
And I’ll rise like the break of dawn
Let it go, let it go
That perfect girl is gone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새벽처럼 그렇게 일어설 거니까요.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그 완벽한 소녀는 이제 없어요.

Here I stand
In the light of day
Let the storm rage on,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여기 내가 서있어요.
낮의 빛 가운데에.
폭풍이 계속 몰아쳐도 돼요.
추위는 한번도 괴롭지 않았으니까.

[1] http://ma.tt/2014/01/intrinsic-blogging/
[2] 비전, 눈으로 보는 행위.
[3] 스타트업 아이디어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