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의 승리

창조란다.

창조경제가 화제다. 큰 누님께서 “앞으로 5년은 창조여..” 하신후 언론, 정치인, 석학들이 제각각 “이게 창조 맞나여?” 떠들어대니, 드디어 그분께서 몇마디 하셨다. (http://news.mt.co.kr/mtview.php?no=2013041815465078255). “창조”라고 말은 꺼냈는데, 막상 그 담에 할말이 없어서 많이 고민하셨을 그뿐께서 싸이의 젠틀맨이야말로 모범 창조라며 숟가락 슬쩍 얹어보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빌 게이츠, 스티브잡스와 같은 창조적 인재를 “양성” 해야 한다는, “인재 양성론” 역시 일관되서 보기 좋다. 과거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었다면 지금은 잡스 키우기 5개년 계획을 세우려나 보다.

그분께서 소프트웨어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신 것은 나와 같은 일개 코더로서 참 황송한 일이다. 새 정부의 보호아래 높아진 코더의 존엄을 누리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사의 이 부분을 읽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시작되는 빡침을 억누를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하고, 그것에 대해서 정당하게 가치를 인정해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지적재산권이 잘 보호되어야 하고 국내기업들한테도 당연히 로열티를 지불해야한다”며 “소중한 가치를 보호하고 인정해 줘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픈소스, 공짜? 해킹?

지적재산권, 로열티, 라이센스.. 아무래도 그분이 이쪽으로 관심을 가지신 듯 하다. 마음대로 복제 못하는 법을 만들어 코더의 밥 그릇을 보호해 주시려는 어머니의 마음을 느낀다. 물론 나 역시 SW의 불법 복제로 얼마나 많은 코더들이 고통받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쌓인 버그리포트에 허덕이는 내가 굳이 이렇게 글질하는 이유는 법과 제도가 아니라, 오픈소스가 한국 SW의 근본적 해결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거 오픈소스가 뭐요?” 라고 물으면 아마도 주변에서 이리 대답할 것이다: “소프트웨어 공짜로 쓰자는 운동입니다. 소스를 공개해서 로열티도 없다네요. 리차드 스톨만이라고 극좌파 MIT 해커가 시작했는데, 지금은 리눅스라고 서버실에서 종종 쓴다고 합니다요…”. 일단, 뭐 “공짜”, “해커”, “좌파” 요 부분에서 불꽃 싸다구가 한대 날아오지 않을까?

슬프지만 이게 한국의 오픈소스 인식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얼마전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오픈소스를 만들고, 작디 작은 개발자 커뮤니티를 유지하던 KTH가 정리해고를 했다. 제법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과 같은 문화를 만들었고, 오픈소스 바닥에서 실력이 쟁쟁하던 사람을 많이 보유했던 회사다. 그런데 사장부터 날고 기던 개발자까지 모두  날려버리고는 이제 SI를 한단다. 작년에 나는 뉴욕의 잘나가는 스타트업 thefancy.com에서 아키텍트로 잠시 일했다. 내가 만나본 사람중 가장 천재같았던 미국인 창업자는 신기하게도 한국인들로 개발팀을 꾸몄다. 그가 꾸린 한국인 팀과 일해보니 이유를 알만했다. 정말 뛰어난 팀이었다. 그런데 그가 유별나게 공들이며 한국 개발자를 스카우트 하던 회사가 있다. 그게 KTH였다. 정말로 삼성같은 곳 출신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오로지 KTH 사람만 은밀히 접근해 뽑아왔다. 왜냐하면 거기에 보물들이 있었으니까…그런데 우리의 공적 기업인 KT는 오픈소스쟁이들 돈 못번다고 매몰차게 쫓아냈다.

제국과 문화

역사적으로 현재의 성공적인 실리콘밸리가 있기까지 두개의 가장 큰 SW 물줄기가 있다. 오픈소스 “해커” 파와 비공개소스 “머니”파 이렇게 나눌 수 있다. 그 시작은 해커파였고 큰 형님은 아래의 리차드 스톨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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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리차드 스톨먼 – 해커파 원조. 극진 좌파.

1970년대 MIT에서 서식하던 학부 새내기 몇몇은 연구용 메인프레임을, 운영체제나 게임등을 만들어보려 밤마다 해킹했고 그중 스톨먼님이 강력한 해킹실력을 선보였다. 그분은 강한 심성을 지니셔서 MIT에서  패스워드를 사용하는 보안 시스템을 도입하자 곧바로 해킹해 모든 유저에게 패스워드를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기도 하셨다. 사실 그들의 해킹은 파괴가 아니라 재미와 자유의 추구였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고 초기 SW의 발전에 핵심이었다. 이후 스톨먼은 오픈소스계의 완전 좌파 GNU를 조직하고 (우파는 Apache 재단), GPL이라 불리는 오픈소스 라이센스를 만들어 이후의 오픈소스 운동에 이론적, 법적 토대를 확립했다.

70년대 미 동부파를 스톨만님이 장악했다면 서부파에는 스티브 워즈니악이라는 얼굴로는 절대 밀리지 않는 분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은 Homebrew Computer Club 이라는 직역하자면 “가내수공 컴퓨터 동호회”에서 처음만났다. 잡스가 비지니스로서 컴퓨터의 가능성을 보았다면 워즈니악은 컴퓨터 설계도와 소스를 공짜로 나누어주는 자비로운 해커였다. 워즈니악에겐 만드는 것뿐 아니라 그것을 공유하며 디자인에대해 신나게 떠드는 그 과정이 재미였다. 그래서 해커의 핵심은 파괴가 아니라 공유와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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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얼굴로 디버깅 하시는 워즈니악님

동네 동호회나 학교 연구실에서 신나게 해킹하던 세력에게 도전장을 던진이가 바로 빌게이츠다. 그가 짠 베이직 컴파일러 소스코드를 당연하게 자기들끼리 나누던 해커 세력에게, 하버드 범생 빌게이츠는 1976년 이런 도발적인 편지를 보낸다 (http://g-ecx.images-amazon.com/images/G/01/books/orly/GatesLetter.pdf). 그 중 한 부분을 번역하자면:

“너희들(해커) 왜 이러니? 너희 취미로 하는 녀석들 왜 소프트웨어를 훔치고 그러니? 너희들 하드웨어는 돈주고 사잖니? 근데 왜 소프트웨어는 공유하고 지랄이야?…좋은 말할때 아래 주소로 돈 보내세요.”

어쩌면 아버지가 부자 변호사였던 빌게이츠에게는 “지적재산권”이 당연한 권리였는지 모른다.

여기로부터 오픈소스 “해커”파와 비공개소스 “머니”파가 갈린다. 머니파에는 그후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등 거친놈들이 세력을 형성했고, 돈에 눈 뒤집히는 저널리즘은 동호회에서 소스코드나 나누어보는 너드들 커뮤니티보다는 빌게이츠와 래리 엘리슨의 불어나는 재산에 더 관심이 많았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PC, 기업용 컴퓨터 시장이 가져다주는 돈이 “머니”파의 세력을 불렸다. 머니파는 결과적으로 돈의 제국을 만들었다.

그럼 오픈소스 해커파는 죽었는가? 절대로 아니다. 그들은 머니파에 대항해 돈 대신 넘쳐나는 잉여력과 시간으로 그들에 대항했다. 80년대 핀란드의 한 대학생 리누스 토발즈가 재미로 시작했던 리눅스가 윈도우즈에 대항했고, 역시 핀란드의 천재적 해커 몬티가 시작했던 MySQL은 오라클 데이터베이스에 대항했다. 한 두 사람 천재적 해커의 지휘아래 전세계의 개미때같은 해커들이 일어섰다. 누가 돈 주는 일 아닌데도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해커에게 본능적으로 내재된 자유정신이 계속해서 해커파를 살아있게 했다. 오픈소스파는 결과적으로 SW문화를 일구었다.

승리자

자, 그럼 이쯤에서 과거를 정산해보자. 두 세력의 싸움에서 누가 승리했는가? 나는 오픈소스편이지만 과거만 돌아봤을때 머니파의 손을 들어주겠다. 솔직히 리눅스 데스크탑이 윈도우즈와 게임이 되는가? MySQL은 1조원에 팔린 반면 오라클은 여전히 150조원짜리의 회사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회상부”가 아닌 “미래창조부”라는 부서를 만들었으니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 봐야한다. “머니” 제국과 “오픈소스” 문화의 싸움에서 현재 누가 이기고 있는가? 단언컨데 문화가 이기고 있다. 오픈소스 문화를 적극 활용한 곳이 구글, 페이스북등 2000년 이후의 인터넷 기업이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리눅스 기반 오픈소스로 만들었고, 하둡과 같은 빅데이터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최근 구글은 오픈소스 회사가 설령 자신의 아이디어를 복제하더라도 고소하지 않겠다는 맹세까지 했다. 구글은 오픈소스 진영의 날고 기는 해커들, 예를 들어 자바의 제임스 고슬링, 파이썬의 Guido van Rossum등을 영입해 오픈소스 문화 중심에 있고 싶어 한다. 구글의 회사가치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넘어선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화가 이기는 것이다.

스타트업과 오픈소스

하지만 오픈소스 해커 문화가 진짜 꽃피우는 곳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이다.  예를들어 github 이라는 오픈 소스 프로젝트의 말그대로 “허브”가 되는 곳이 있다. 2012년 techcrunch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스타트업으로 뽑힌 곳이다. 오픈소스계의 영원한 아이돌 리누스 토발즈는 리눅스 커널을 관리하는 기존 툴이 엉망인 것에 너무 빡친 바람에 git이라는  소스관리 툴을 만든다. 그게 리누스에게 얼마나 깊은 빡침이었는지, 단 2주만에 완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고는 후에 “git 만드는게 제일 쉬웠어요” 라는 인터뷰로 나와같은 빠돌이를 지리게했다). github의 두 창업자들은 동네 프로그래밍 동호회(이것봐. 또 동호회다…)에서 만나 git을 인터넷 기반으로 확장하는 아이디어에 착안했다. 각자 직업이 있는지라 주말마다 브런치 먹으면서 코딩을 하고 서비스를 런치했다.

2011년 기준 매일 4500(!)개의 오픈소스 프로젝이 github에서 생성된다. 현재 1조원 가치의 회사로 실리콘밸리의 “달링”으로 사랑받는다. 리누스가 단 2주만에 만든 툴이 1조원짜리 회사, 사실은 그것보다 더 가치있는 인터넷 스케일의 소스코드 저장소를 만들었다. 리누스가 github으로 돈을 벌었다고 들어본적이 없다. 어차피 재미와 빡침의 해소를 위해 코딩하는 사람이니까. 세상 어느곳에서 2주 재미로 코딩하고 1조원짜리 회사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그게 오픈소스 문화의 힘이다.

마무리

현재도 마이크로소프트나 오라클은 종종 꽤 쿨한 제품을 낸다. 예를들어 클라우드에서 Windows Azure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현지의 분위기는 “뒷방 저 노인네 아직도 뭐 깎고있네…”  이 수준이다. 그들을 추앙했던 저널리즘마저 이제는 제국에 등을 돌려버렸다. 현재는 오픈소스를 가장 강하게 등에 업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등이 IT를 이끌고 있다. 그들 역시 문화를 잘 활용한 것일뿐 문화 자체는 아니다. 다음 영웅이 출현하면 언젠가 그  신진 제국들 역시 무너질 것이다. 하지만 문화는 절대로 죽지 않고 도도하게 흐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며 소프트웨어가 그 중심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청기와집이나 언론 모두 죽어가는 제국을 우러러보며 모델로 삼으려할 뿐이다. 스타트업이 많이 생겨야 한다고 대빵께서 이야기한다. 나는 오픈소스 아닌 MS의 플랫폼에서 만드는 스타트업을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들의 기억은 슬프게도 여전히 MS나 오라클이 한국에 뿌리내린 제국 그 안에 갇혀있다. 액티브엑스로 보안을 통제해야 하고, ‘을’이 짜낸 윈도우즈 프로그램이 ‘갑’에게 제값 받게 해주는 법 제정, 그것이 그들의 틀이다. 실리콘밸리의 가장 핵심에 있는 오픈소스 해커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치더라도, github처럼 한두명 젊은이가 오픈소스로 몇조원짜리 회사를 일구었다는 성공신화라도 좀 누가 전했으면 싶다. 제국은 죽지만 문화는 산다.

언젠가 우리 큰분께서 해카톤(Hackathon) 이벤트에 납시어서 해킹에 열중하는 우리의 희망들에게 인자한 미소 한방 날려주는 날이 왔으면 하고 바래본다.

– 박상민 http://twitter.com/#!/sm_park

오랜만에 블로그

거의 1년간 블로그를 안했네요. 다시 시작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여럿 있는데, 오늘은 우선 최근에 이메일로 했던 교수신문과의 인터뷰 내용을 올립니다. 별 내용은 없지만 En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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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을 좋아했는지요?

아니요. 컴퓨터를 처음 갖게 된것은 1991년이니까 얼리 유저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게임을 하는게 주 목적이었고 프로그래밍이나 해킹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그저 게임하는게 좋았습니다. 고등학교때 하숙하며 친한 대학생 형이 밤새 프로그래밍 하는 모습을 뒤에서 많이 지켜봤습니다. 왠지 모르지만 그 모습이 신나 보였고 그곳에 무언가 있어보였죠. 그래서 대학교때 전공을 컴퓨터로 선택했습니다. 프로그래밍을 처음 배울때는 늦게 시작해서 그랬는지 많이 고생했습니다. 그래도 어설프게나마 내가 만든 창조물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건 기뻤습니다. 일종의 중독이라고 생각합니다.

Q. 미국에서 박사학위 취득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한국과 미국에서 공부하며 느낀 학술문화의 차이점이 있으신가요?

박사과정 초기에 퀄시험이 있습니다. 학위를 할만한 지식, 자질이 있는가를 테스트하는데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같이 공부했던 한국 학생들 여러명중 한번에 통과한 분이 없었습니다. 어려움의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제 자신이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사실 한국과 미국의 커리큘럼 차이가 큰 문제점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컴퓨터과학(Computer Science) 경우 학부생들에게 기초 이론에 초점을 맞추어 교육합니다. 즉 계산 이론(Computational Theory), 알고리즘(Algorithm), 자료 구조(Data Structure) 등의 과목입니다. 한국의 커리큘럼은 기초 과목을 쉽게 쉽게 넘어갑니다. 대신 응용 분야를 많이 교육하고 학교들은 이를 자랑합니다. 예를 들어, 게임 프로그래밍, 실시간 시스템, 네트워크 프로그래밍 등입니다. 저는 이것이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응용 분야를 학교에서 강조하는 이유는 사실 기업과 정부의 보이지 않는 입김 때문입니다. 사회에 나가서 당장 써먹을만한 소위 “인재”를 키우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아는 것은 많아 보이는데 정작 기본기가 없는, 영혼 없는 인재들이 대학에서 배출된다는게 문제입니다. 제가 바로 퀄시험에서 여러번 탈락할 수 밖에 없는 영혼없는 인재였기 때문에 잘 압니다.

학부 4학년때 수강한 과목 교수님의 첫 수업시간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과목은 앞에서 이야기한 그런 “고급 응용” 과목입니다. 대략 이런 스토리였습니다: “너희들 졸업하고 나서 지금 배우는 과목 X를 써먹을 일은 없을거야. 이 분야는 이제 한물 갔고, 회사들은 Y 방식의 기술을 만들거든. 하지만 나는 X 기술에서 국내 최고였어.” 그 솔직하신 말대로 수업에서 배운것은 아무 쓸모도 없었습니다. 3학점을 환불받고 싶은게 지금 심정입니다.

Q. 박사까지 공부하려는 의지는 직업으로서의 학자를 염두에 둔 게 아니었는지요? 왜 학문으로서의 연구를 떠났는지요? 왜 논문을 쓰지 않으시는지요?

박사과정을 하면서 논문을 제법 많이 썼고, 최고 논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는 논문을 쓰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면서 논문을 쓸 여유도, 이유도 없다는 점입니다. 박사과정에서는 논문을 쓰는게 당연했습니다. 그 과정도 즐겼고 결과도 좋았습니다. 특별히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훈련 – 즉 배경 지식을 습득하고, 아이디어를 생각해낸후 그것을 증명해 단 10장의 종이에 적어내려가는 것 -, 이것은 세상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최고의 지적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내가 쓴 논문이 얼마나 내 분야에, 넓게 봐서는 사회에 공헌을 하는가 돌아봤을때는 자신있게 Yes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2000년 이후 컴퓨터 분야를 선도하는 것은 학계가 아니라 산업계입니다. 빅데이터, 클라우드 모두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과 같은 회사들에서 처음 아이디어가 나왔고 이를 구체화 시켰습니다. 예전에는 반대의 경우가 많았습니다. 운영체제, 데이터베이스, 암호이론등 핵심 아이디어는 학교들에서 나왔고 이를 처음 구현했던 것도 학교였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의 애플 맥 OS는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만든 Mach 라는 커널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학교등에서 연구하고 논문 쓰는 것이 실제 공헌을 많이 했습니다.

현재 미국과 한국 많은 학교들의 연구 내용, 논문을 보면 회사들에서 이미 해결한 “죽은 문제”를 붙잡고 아주 작은 부분들만 바꿔보면서, 새로움으로 포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99%는 신경쓰지 않는 작은 문제들을 습관처럼 붙들고 해결하고 있지요. 졸업후 두가지 길의 갈래에 섰을때, 주저없이 좀 더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선택했습니다. 비록 예전과 같이 10페이지 논문을 매년 몇편씩 생산해 내지는 않지만, 매일 매일 제가 만드는 코드는 전 세계 곳곳에서 사용되고 고쳐집니다. 그게 더 보람이 있습니다.

Q. 학자로서의 길과 개발자로서의 커리어 패스는 많이 다른 것인가요? 산학연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는 측면에서, 오히려 현장에서의 경험이 더욱 중요하지 않은가요?

학자로서의 길은 그 종착역이 교수, 국가 연구소 연구원등 제한적인데 반해 개발자의 캐리어 패스는 아주 많습니다. 미국의 경우 회사들도 많고, 연봉등의 대우도 의사등의 몇몇 전문직을 제외하고는 가장 좋은 편입니다. 종종 직업의 안정성을 이유로 연구직을 선호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 의견은 다릅니다. 젊어서 두뇌가 획획 돌아가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영역 (예를 들어 스타트업 회사들)이 있고, 수십년간 닦아온 내공과 지혜를 필요로 하는 영역들 (예를 들어 시스템 아키텍트)이 있습니다. 어떤 회사도 “우리는 개발자가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곳이 없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고유한 어려움이 있고 IT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떄문에, 전문성을 확보한 SW 인력은 영원히 부족합니다.

최근 미국에서 경험하는 한가지 트렌드는 학교의 고급 두뇌들이 산업계로 유출되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하버드 대학교에서 종신 보장(tenure)을 받은 컴퓨터과 교수가 구글로 이직했습니다. 제 논문을 지도했던 교수도 종신 보장을 받자마자 구글로 이직했습니다. 그만큼 현장이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학교들은 교수를 확보하지 못해 비상입니다. 학교에서 산업계로는 유출되는데,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한가지 문제는 학교가 산업계와 너무 담을 쌓아놓고 자신만의 프리미엄을 유지하려는 태도입니다. 예를 들어 산업계에서 뛰어난 인재를 학교에서 교수로 채용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한국에서는 규정상 논문의 정량을 채워야 하는데 산업계 인재는 사소한 논문 많이 쓰는 것에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학교라는 우물에 과거형 인재들만 가득한 현상을 낳고 맙니다.

Q. 교육 및 연구의 측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에서는 스타트업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재 제가 일하는 회사는 클라우드 스타트업입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를 시작할때도 그랬지만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가장 보람있고 즐겁습니다. 스타트업은 그 자체가 새로운 이론의 실험이기 때문에 논문을 쓰지 않더라도 연구입니다. 이전에 잠시 유명 스타트업에서 일한적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전략적으로 한국 개발자들만 채용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 개발자들에 비해 열정과 재능있는 사람들이 한국에 많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의 경우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성향이 아주 강합니다. 그런 긍정적인 의미의 해커들이 미국에서는 스타트업을 해서,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삼성등의 대기업이 독점해 큰 것을 더 크게 키우려는 한국 현실에서 그런 사람들을 받아줄 곳이 없습니다. 대기업은 정형화된, 적당히 잘하는 인재를 원하지 판을 깨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해커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대기업 기준의 인재나 논문을 많이 쓰는 연구원보다는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해커로 남고싶기 때문에 미국에서 일합니다.

Q. 한국은 그야말로 클라우드 유행입니다. 클라우드 컴퓨팅 관련 전문가가 되려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현업에서 느끼는 클라우드 기술 동향과 향후 전망은 어떠한가요?

종종 설명은 화려하지만 몇년 지나고나면 사라지는 일종의 패션과 같은 기술들이 있습니다. 클라우드는 분명히 그런 buzzword 와는 다릅니다. 현재 IT의 큰 두갈래 줄기는 모바일과 클라우드입니다. 모바일 분야에서는 어떻게하면 컴퓨터가 사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사람을 도울까를 고민합니다. 구글 글래스가 그 뱡향에서의 새로운 실험입니다. 클라우드는 수십억개의 그런 모바일 디바이스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이지않는 백엔드 기술입니다. 과거에는 서버 몇대에 데이터베이스와 웹서버를 돌려서 처리했다면 지금은 수십억개의 디바이스에서 요청하는 정보를 수백만대의 서버들이 서로 통신하며 개인에 맞추어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미래로 갈수록 기존 개념의 데스크탑, 노트북은 사라지고 데이터와 서비스가 모두 보이지 않는 클라우드에서 제공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클라우드 전문가에 대한 수요는 증가할 것입니다.

Q. SW개발자의 하루 일과는 어떠한가요?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일해본 경험이 있으신데, 비교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는지요?

지금 일하는 회사는 특이하게 전 직원의 60% 정도가 집에서 일합니다. 회사의 본부는 캘리포니아에 있는데 몇달에 한번씩 회사로 출장(!)을 가서 디자인 회의등을 하고 개발, 테스트등의 모든 업무는 집안의 제 오피스에서 합니다. 어떤 직원은 심지어 케이블도 없는 산속 깊은 곳에 살면서 위성 인터넷으로 접속해 일을 합니다. 같이 일한지 3년이 되어가는데 아직 얼굴을 못봤습니다. 그만큼 회사의 분위기가 자유롭습니다. 제 경우에는 낮에는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 주거나 같이 놀아주는 시간이 많고 대신 밤에 일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혹 일이 잘 안되거나 모임이 있을때는 하루 쉬고 골프등으로 여가를 즐깁니다. 저희 회사에는 정해진 휴가 일수가 없습니다. 원한다면 언제든 휴가를 갈 수 있습니다. 즉 언제 일하는지, 어디서 일하는지에 대해 아무도 간섭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적은 양의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공유하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많이 합니다. 평균적으로 따지면 하루에 약 10시간 정도는 일을 하는것 같습니다. 관리와 승진이라는 보상체계가 동기를 부여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즐거움, 그리고 스타트업이 성공했을때 얻는 큰 금전적 보상등이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에 더 생산적으로 일을 많이 합니다.

Q. 트위터에 SW만으로 성공한 케이스라든지, 1조원 가치의 코딩 이야기 등을 언급하셨습니다. 전통적 개념의 제품이 아닌, SW제품의 특징 혹은 가능성은 무엇이라고 보십나요?

SW제품의 특징은 한 사람이 하나의 산업 전체를 갈아 엎어버릴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들어, 현재 저희 회사의 CEO가 예전에 성공시켰던 오픈소스 데이터베이스 MySQL의 경우 창업자 혼자 90% 이상을 코딩했다고 합니다. 훗날 1조원 넘는 가격에 회사가 팔렸습니다. 즉 한 사람이 1조원 가치의 코딩을 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한 사람이 소프트웨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된 마인드가 회사와 산업 방향을 크게 결정합니다. 스티브잡스의 간결함에 대한 집착이 여전히 애플을 정의하고 있고, 빌게이츠가 추구한 생산성있는 SW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비지니스 영역을 꽉 잡고 있게끔 했습니다. 구글은 창업자 두 사람이 대학원 기숙사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여전히 학교 기숙사 같은 매력적인 개발 문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종종 한국의 기관, 언론에서 그런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얼토당토 않은 소리입니다. 그런 소위 IT시대의 영웅들은 길러내는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문화속에서 자생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IT, 경제, 사회의 틀을 바꾸어보고 싶은, 일종의 반란을 꿈꾸는 사람들 중에서 툭 튀어 나오는 것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인재 입니다. 반란자를 길러낸다는 이야기는 애초에 모순입니다. 미국의 경우 매년 그런 사람들이 툭 툭 튀어 나옵니다. 한국의 경우 SW의 매력이 왜곡돼버려 애초에 큰 꿈을 품는 젊은사람들이 사라지는게 정말 안타깝습니다.

Q. 컴퓨터 관련 전공으로, 미국 유학을 준비하거나 유학 중인 (졸업예정자) 학생들에게 커리어패스의 관점에서 조언을 해준다면?

저는 박사학위 후의 커리어패스가 어찌보면 굳이 박사학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스타트업 업계입니다. 그렇지만 박사학위 6년의 시간이 아깝지는 않습니다. 그 시간동안 컴퓨터과학의 기본을 다시 배웠고, 연구하는 프로세스를 몸에 체득했습니다. 특히 학생시절에는 여유가 많아 SW나 과학 전반에 관련된 다양한 교양 서적들을 읽었던 건 럭셔리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은 충분하 가치있는 투자입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커리어패스를 생각할때 너무 직업의 안정성이나 주변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가장 즐거운 일, 그리고 조금 위험스럽게 보여도 세상을 바꿀만한 일에 자신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의 스타트업 업계의 경우 한 회사가 혹 실패 하더라도 개발자들에겐 실패가 없습니다. 실리콘밸리 자체가 스타트업의 거대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어디에든 다음 목표를 추구할 회사들이 존재합니다. 금전적인 보상도 대기업에 비해 부족하지 않습니다. 기회가 닿을때는 자신이 회사를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한국 출신으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습니다. 몇년 후에는 더 많은 후배들을 만나서 신나게 이야기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