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비전, 직업에 대한 이야기

(몇달전에 출석하는 작은 교회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copy&paste 해서 올려봅니다. 이미 페이스북에서는 공유했던 내용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과분하게도 오늘 청년부 예배에서 말씀을 맡은 박상민집사입니다. 먼저 제 소개를 짧게 드리겠습니다. 저는 2010년에 동부의 University of Virginia에서 Computer Science로 박사학위를 마쳤고, 그 후 지금까지 미국의 스타트업 회사들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Hewlett Packard에서 SW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조금 특이한것이 있다면 저는 5년째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일을 합니다. 일년에 오피스 나가는 날은 열흘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아이들 학교 등하교는 제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둘째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픽업하는걸 제가 매일 하는데 백인 엄마들 사이에서 그렇게 하는 남자는 중국인 할아버지와 저 밖에 없습니다.

사실은 오늘 부탁을 받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까 고민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잤습니다. 제가 목사님이 아닌데 설교를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제 전공분야, 하는 일을 설명하자니 그건 또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될것이고… 그래서 제가 오늘 나누는 이야기는 짧지만 여러분보다 10년정도 세상을 더 산 교회아저씨의 <개똥철학> 정도로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경말씀도 중간중간 나누겠지만, 제 이야기는 진리이신 성경 말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오로지 경험에 기초한 이야기임을 먼저 밝힙니다.

제가 오늘 할 이야기는 공부와 직업 그리고 그것을 우리 인생에 심어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돌아봤을때 감사할 것이 정말로 많습니다. 훌륭한 부모님을 주셨고 착하고 예쁜 아내도 교회에서 만나서 겨우 스물다섯살에 결혼을해서 함께 유학을 왔습니다. 아내보다 더 예쁜 세딸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감사하는것중 하나는 제 직업입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 — 소프트웨어 만드는것– 을 정말 좋아하고 사실은 꽤 잘합니다. 잠을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 새벽 5시에 일어나 커피를 가득 내려 마시면서 코딩하는 것만큼 즐거운것이 없습니다. 낮엔 직장일을 하지만, 새벽엔 취미삼아, 공부삼아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꾸준히 만듭니다. 저를 길이나 스타벅스에서 혹시 만났는데 먼데를 응시하고 있다거나, 혼자 중얼중얼대고 있다면 ‘아 저 사람이 지금 머리로는 프로그래밍 중이구나. 건드리지 말아야겠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교회에서 제 인상이 험악해 보이거나 아파보이면 ‘아 박집사가 지금 버그를 잡고 있구나’, 이렇게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상엔 자기 여가시간에 취미삼아서 일을 계속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직장 끝나고 취미삼아 일 더하고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예를들어 그로서리 QFC에서 일을 한다면, 주말에 취미삼아서 일을 더하러 나오겠습니까? 저는 이런 제 직업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 더 나아가 사명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한것은 아닙니다.

고난과 하나님의 계획

한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한국에 유행한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책보다 현실이 더 고달픈 청년들은 “아프면 환자지 어째서 청춘이냐?” 라고 반박을 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학교와 취업등에서의 고난은 우리가 10, 20대를 지나면서 반드시 겪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도 고난없이 30대, 40대의 어른이 된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예상치 못하게 폭풍처럼 찾아오는데, 고난가운데 빠지게 되면 그 순간엔 오로지 그곳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 고난의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선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스티브잡스가 죽기 얼마전 스탠포드에서 한 졸업식 연설은 아주 유명합니다. 거기에서 잡스는 인생의 중요한 포인트를 하나 집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고난들이 <점>과 <점>처럼 찍혀 있는데 성공의 순간과 그 고난의 점들이 연결되어 있더라라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그가 학교를 자퇴하고 청강한 과목에서 배운 Calligraphy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것) 가 후에 애플컴퓨터의 혁신적인 폰트가 되는것 말이지요. 무신론자였던 잡스는 논리로 설명하기 힘든 이 현상을 Karma-운명 , 숙명등의 단어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계획, 섭리> 라고 부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세번정도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 소개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첫번째 이야기는 스킵하고 두번째, 세번째 이야기만 나누겠습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제가 어떻게 군대를 안가게 되었나 스토리입니다.

두번째는 고난 이라기보다는 황당한 고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희때는 대학입시에서 4개의 학교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1개 학교는 가고싶지만 성적이 조금 모자란곳, 1-2개는 가고 싶고 성적도 충분한 곳, 마지막은 성적은 남아도는데 가고싶진 않은곳을 고릅니다. 제게는 가고 싶고 성적도 충분한 곳이 한양대학교였습니다. 저는 사실 고등학교때 인문계였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나 공대는 관심이 없었고, 갈수도 없었습니다. 제 관심은 영문학쪽에 있었습니다. 한양대 영문학과는 점수도 충분하고 제가 가고 싶은 곳이기도했습니다.

입시의 과정엔 논술시험과 면접이 있습니다. 어떤 학교는 논술만보고 어떤곳은 두가지 모두 필요했습니다. 한양대 캠퍼스에 논술 시험을 보러 갔는데 논술을 나름 잘 써내고 마치는 찰나였습니다. 시험 조교가 이렇게 마무리를 했습니다: “여러분 다음주에 있는 면접도 다들 잘 보세요.” 그런데 저는 이때까지 한양대는 면접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어, 내가 잘못 알았나?’ 확인해야 하지만 저는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저 조교는 준비가 덜 됐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면접을 가지 않았고 당연히 입시에 떨어졌습니다. 내 계산대로라면 당연히 가야하는 학교, 전공이었는데말이죠.

결국 어쩔수없이 선택한 곳은 아주대학교 인문학부였습니다. 아주대는 컴퓨터나 공대가 괜찮은데 인문학은 별로라서 실패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대학교가 그때 한국에서 한가지 아주 특별한것이 있었습니다. 무제한 전과 (transfer) 제도입니다. 전공을 바꿀수 있는 제도입니다. 심지어 인문계에서 이공계로도 전과가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1년후에 저는 컴퓨터가 좋아졌습니다. 그때 인문계에서 이공계로 전공을 바꿀수 있는 학교는 한국에 한곳 아주대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대의 컴퓨터 전공은 꽤 실력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은 보너스를 하나 남겨놓았습니다. 저는 컴퓨터를 나름 잘하지만, 사실 사람들 사이에선 글 잘쓰는 블로거로 더 유명합니다. 책 읽기, 글쓰기 좋아하는 인문계의 소질은 하나님이 제게 남겨놓은 보너스 입니다.

세번째 고난은 유학중에 겪었습니다. 박사과정의 가장 힘든것중 하나는 퀄시험이라 불리는 전공시험입니다. 퀄 시험을 2번 실패하면 학교에서 나가야 합니다. 흔히 <피똥싼다>고 표현하는 시험인데 저는 피똥을 여러번 쌌습니다. 유학을 나와보니 주변에 수재들로 가득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온 친구들은 스펙들이 대단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중국 어디 성 대학입시에서 2등했다고 합니다. 근데 그 성 인구가 1억명입니다.

첫해에 시험을 보았습니다. 여러개 과목에서 15개 정도의 문제가 출제됩니다. 처음 시험에서 제가 몇문제를 맞추었을까요? 정답은 한문제도 맞추지 못했다입니다. 공부가 조금 부족하긴 했지만, 설마 백지를 내고 시험장을 나가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교수에게 답안지를 돌려주며 혹 백지인것을 들킬까봐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몇달간 도서관에서 공부만 했는데, 백지라니… 아마 지금껏 살며 가장 절망한 날이 그날이었던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 어떻게든 위로해보려는 아내를 뒤로하고 혼자 침대에 누워 별의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여러분 <기쁨>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슬픔>이 아니고 <절망>입니다. 희망이 없음입니다. ‘그깟시험 다시 한번 잘 준비하면 되지 뭘 그래’라고 생각할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평가했을때 내 계산으로는 도저히 시험을 패스하는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사람의 계산에서는 절망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렇게 허무할리 없다는 믿음으로 다시 공부했습니다. 9개월 후 시험이 마지막 기회라서 그때는 정말 도서관에서 살았습니다. 머리가 나빠서 이해가 안되니까 큰 전공책 여러개를 통째로 외웠습니다. 그 당시 아내가 큰 애 수안이를 임신했는데 배 나온 아줌마가 싸온 도시락을 도서관에서 같이 까먹으며 공부했습니다. 시험날이 가까워오는데 신물나게 공부하고 또 하니까 이제 될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시험날엔 꽤 괜찮게 답안지를 써냈습니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요?

또 떨어졌습니다. 지도교수의 말로는 거의 근접했는데 아쉽게도 탈락이라고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저를 좋게 봐주었던 지도교수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교수회의에서 삼세판을 강력하게 주장해 예외적으로 한번 더 기회를 준것입니다. 그리고 몇달후에 결국은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몇달간 더 공부를 했지만, 사실 두번째 시험과 세번째 시험 사이에서 실력의 향상은 없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바뀐 중요한 마음의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신뢰입니다. 두번째까지는 내가 최선을 다 했으니 성공해야한다는 믿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어야 한다”는 내 의지가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의지가 실패했을때는 강한 절망이 지배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두번째의 실패후에 마음에 찾아온것은 뜻밖에도 평안이었습니다. (어렸을때 병원에 누워서 누렸던것과 비슷한 평안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쁠것이다”. 한번이나 두번만에 합격했다면 이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지 못했을것입니다. 때론 머리나쁜것이 진리로 인도하는데 쓰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의지가 실패해 절망에 빠지려할때, 그래서 이 익숙한 말씀이 우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

그리고 이번 역시 하나님은 고난 후에 보너스를 예비하셨습니다. 시험에 떨어져 학교를 떠나게되면 석사 학위라도 받아야 하니까 관심에도 없던 수업 하나를 학점을 채우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업에서 배운 이론을 제 분야에 적용해 학술대회 최고논문상 후보에도 오르고, 그것으로 박사 논문까지 잘 마치게 됩니다.

어쩌면 여러분중에 지금 고난가운데 있는 사람도 있을것입니다. 혹 지금이 아니더라도 분명 여기 모두는 고난을 겪여 봤고, 또한 앞으로도 많이 겪을것입니다. 스티브잡스와 같은 무신론자 역시 이러한 고난이 무작위의 현상이 아니라 미묘하게 미래와 연결되는 인생의 점과 점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는 성공한 다음에야 과거를 돌아보고 고난의 가치를 알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다릅니다. 고난가운데 있어도 아니면 미래에 겪을 고난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 의미를 말씀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11-13

비전

우리가 교회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중 하나는 <비전>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세상에서도, 특히 젊은 사람들이 가장 자주 듣는 단어 역시 <비전>입니다. “비전을 가져라. 큰 꿈을 품어라” 자주 듣는 말이지요. 그러면 요즘 세대에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제 비전은 공무원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고, 조금이라도 확실한 것을 붙잡아보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사실은 비전의 의미를 잘못 해석해서 붙들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전의 사전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Merriam-Webster를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1) 눈으로 보는 것 (그래서 안과를 vision 이라고 이야기하죠)
2) 상상하는것, 꿈을 꾸는 것 (흔히 지칭하는 비전이 이것입니다).

즉, 지금 시점에서 눈으로 보고 있는것과 미래에 이루어질 것을 상상하는 것이 <비전>의 두가지 의미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이 두가지 의미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미래에 이루어질 꿈은 지금 눈으로 보는 그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비전의 의미가 가장 생생하게 드러나는 곳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앞으로 있을 미래의 일을 사도 요한이 지금 시점에서 보고 이것을 기록한것이 요한계시록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공무원이 비전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동사무소에서 서류 발급해주는 직원을 눈으로 보면서 ‘이게 나의 미래구나. 신난다!’ 이렇게 속으로 소리쳤을 사람입니다. 혹시 그게 아니라 <삼포세대, 취업률 50%도 안돼, 취업하자마자 명예퇴직…> 이런 소문을 귀로 듣고 공무원을 꿈으로 삼았다면, 그건 비전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사회의 현상을 부모님 통해, 친구를 통해 귀로 들었지, 자기 미래의 모습을 아직 눈으로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래의 제 모습을 본 것은 2003년 이었습니다.  그당시 저는 아주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를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사실 학부때 성적이 안 좋아서, 석사학위라도 받으면 대기업에 가기 수월하니까 공부했습니다.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은 좋아하고 잘 했는데 시험만 보면 성적이 안좋았습니다. 특히 인문계 출신이라 그런지 수학, 물리같은 기초 과학과목은 C가 최고 점수입니다.

그런데 마침 저희학교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학생들이 재학기간중 한번 외국의 컨퍼런스에 연수를 가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제가 몇명 친구들과 같이 간곳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라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이곳에서 <글로벌 그리드 포럼>이라는 그당시 막 떠오르던 컴퓨터 기술 컨퍼런스가 열린다고해서 정말 아무 기대없이 구경하러 갔습니다. 그렇게 연수를 가면 지원금이 꽤 많이 나오는데 사실은 공짜관광하러 가는것이었습니다. 괜히 중간에 런던에 들른다거나 말이죠.

그 컨퍼런스 첫날 제 시선을 사로잡은 한가지 광경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컨퍼런스장 복도에서 아무렇게나 앉아 노트북을 켜놓고 뚫어져라 집중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가까이가서 보니 검은 스크린에 떠오르는 하얀 문자들을 두드리고 있는 그 사람들은 연구소, 학교에서 나온 프로그래머들이었습니다. 회의장 안에서는 정부기관, IBM같은 회사에서 나온 잘 차려입은 높은 사람들이 미래의 기술에 대해 설명하는데 후줄근한 티셔츠입은 이 사람들은 그런것엔 그다지 관심도 없고 그냥 노트북속 코드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다녀왔던 여러명의 동료들에겐 그 모습이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제게는 달랐습니다.

거기서 미래의 제 모습을 본 것입니다. 마치 카메라로 찍은것처럼 그 순간을 찍어서 그 사람이 아닌 내가 그 자리에 노트북을 들고 앉아있는것을 상상한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에 다시 돌아와서 남은 1년반동안 집중한것은 박사과정 유학이었습니다. 한국인이 미국의 연구소에서 그 사람들처럼 일하기 위해서는 미국 학교에서 박사학위가 필요하기때문입니다. 사실 저희 학교 – 아주대학교 –는 유학을 많이 보낼만큼 유명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더더욱 문제는 제 학점이 3.0이 채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유학관련 사이트를 뒤져보니 몇년간 제 학점으로 유학간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돈을 많이 내고 석사유학을 가는 몇가지 경우가 전부였습니다. 제가 유학을 가는 유일한 방법은 논문을 외국의 교수들이 알만한 유명한곳에 출간하는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작 석사 1년차인데 무작정 덤볐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험을 하고, 논문을 쓰고…교수님이 지도하면서도 “안될텐데…” 말리는걸 그냥 우겨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상상하던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좋은 곳들에서 논문이 채택되고, 논문을 읽고 추천한 교수들에게 박사 어드미션을 장학금과 함께 받았고 한국에서 6만불짜리 국가장학금까지 캐쉬로 챙겨서 유학을 나왔습니다. 물론 아까 소개한대로 몇달후에 피똥싸는 경험을 하게 되지만요. 그리고 졸업후에 처음 취직한 스타트업 회사는 그때 그 컨퍼런스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창업한 회사입니다. 제가 눈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그 사람들과 후줄근한 티셔츠입고 컴퓨터와 씨름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비전은 소문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듣는 세상의 현실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 눈으로 직접 보고 마음속에 사진처럼 찍어놓는 것입니다.

직업의 목적

몇주전 인공지능 알파고가 큰 뉴스거리였던걸 기억하실겁니다. 곧 세상이 인공지능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했죠. 컴퓨터를 전공한 제 관점에서 판단하면, 그러한 전망은 아마도 사실일것입니다.  인터넷이 모든 종류의 정보에 접근하게 만들었다면 인공지능은 곧 그 정보들을 사용해 사람보다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그럼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스카이넷이 곧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는건가? 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이 질문을 생각해보면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 과연 로봇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질문을 던질수 있을까? 만일 사람이 지성과 감성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면 그럼 로봇역시 이 질문을 언젠가 스스로 던질것입니다. 나의 존재 목적을 묻는것이 지적인 활동의 클라이막스라면 사람의 지성을 그대로 따라하는 알파고 역시 이 질문을 언젠가 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게 인류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고요.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그저 상상인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질문은 영적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그저 뇌세포들의 상호작용으로 모델링할수 있는 로봇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이므로 이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신교 신앙의 핵심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선 이렇게 답을 합니다.

Q: 사람의 첫째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A: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과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Man’s chief end is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

20대에게 가장 큰 걱정은 당장 눈앞에 닥친 취업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시간이 지나서 30대가 되면 여러분 모두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될 것입니다. 저 역시 남들이 보기에 부러워할만큼 그런 직장과 가정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침에 깰때도 밤에 잠들때에도 여러분은 이 질문을 하게될 것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낮시간 대부분을 일하는데 보내므로 결국 이 질문은 ‘내가 일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입니다. 저 역시 이것에 명쾌한 답은 아직 못 찾았습니다. 다만 웨스트민스터 고백이 어렴풋하게나마 중요한 푯대가 되어줍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과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흔히 꿈을 이야기하라면 <꿈의 직장>을 댑니다. <구글>, <페이스북>, 한국에서는 <삼성>, <몇급 공무원>.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좋은 직장의 좋은 타이틀을 가지게되면 얼마동안 행복할까요? 우리는 다 경험해봐서 압니다. 한두달 지나면 무덤덤해지고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40대, 50대가 되서 아직 <내가 삼성맨이야!> 떵떵거린다면 주위에서 다들 불쌍하게 쳐다볼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것은 <직업> 입니다. 직업과 직장은 다릅니다. 저는 소프트웨어 만드는것이 직업입니다. 이것은 아마 평생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직장은 그동안 여러번 바뀌었고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제가 천국에 가면 하나님은 저를 <직장>을 가지고 평가하지 않을것입니다. “너는 왜 구글에 못갔니?” 라고 묻진 않으실겁니다. 그러나 제 <직업>을 가지고는 평가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제게 주신 사명이고 달란트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가 준 직업의 10 달란트를 가지고 무엇을했니?” 라고 찾으실 것입니다. 제 직업은 소프트웨어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닮았기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했듯, 소프트웨어를 <창조>하는 능력이 제 안에 있습니다.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는 웨스트민스터의 답 그대로 내게 주신 이 능력을 저는 즐거워합니다. 매일처럼 새벽에 코딩하는 이유는 이 능력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직업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수준에 다다르기 원합니다. 부끄럽게도 그러나 아직은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저 직장에서 동료에게나 인정받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매일 여가시간에 코딩하는 이유는 언젠가 나의 실력이, 나의 결과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싶기 때문입니다.

pieta

Pietà, 1498-1499

2년전에 아내와 결혼 10주년으로 로마에 갔었습니다. 바티칸 대성당에가서 곳곳의 예술작품들을 넋을 잃고 바라봤었습니다. 특히 미켈란젤로가 24살에 조각했다는 피에타는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바라볼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잘 아시죠?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안고있는 조각상. 예수님의 죽음을 그렇게 생생하고 또 아름답게 묘사할수 있었던것은 이미 10년이상 수련한 미켈란젤로의 재능이 몇년간 공을들여 디테일을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직업의 결과물은 바티칸 대성당에서 수백년째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직업의 결과물역시 그렇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작품이 되길 원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수련하고 또 남들이 안보는 디테일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청년들 역시 여러분의 직업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겨 즐거워하고, 또 그것으로 작품을 만들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길 바라며 오늘 말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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