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비전, 직업에 대한 이야기

(몇달전에 출석하는 작은 교회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copy&paste 해서 올려봅니다. 이미 페이스북에서는 공유했던 내용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과분하게도 오늘 청년부 예배에서 말씀을 맡은 박상민집사입니다. 먼저 제 소개를 짧게 드리겠습니다. 저는 2010년에 동부의 University of Virginia에서 Computer Science로 박사학위를 마쳤고, 그 후 지금까지 미국의 스타트업 회사들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Hewlett Packard에서 SW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조금 특이한것이 있다면 저는 5년째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일을 합니다. 일년에 오피스 나가는 날은 열흘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아이들 학교 등하교는 제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둘째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픽업하는걸 제가 매일 하는데 백인 엄마들 사이에서 그렇게 하는 남자는 중국인 할아버지와 저 밖에 없습니다.

사실은 오늘 부탁을 받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까 고민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잤습니다. 제가 목사님이 아닌데 설교를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제 전공분야, 하는 일을 설명하자니 그건 또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될것이고… 그래서 제가 오늘 나누는 이야기는 짧지만 여러분보다 10년정도 세상을 더 산 교회아저씨의 <개똥철학> 정도로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경말씀도 중간중간 나누겠지만, 제 이야기는 진리이신 성경 말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오로지 경험에 기초한 이야기임을 먼저 밝힙니다.

제가 오늘 할 이야기는 공부와 직업 그리고 그것을 우리 인생에 심어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돌아봤을때 감사할 것이 정말로 많습니다. 훌륭한 부모님을 주셨고 착하고 예쁜 아내도 교회에서 만나서 겨우 스물다섯살에 결혼을해서 함께 유학을 왔습니다. 아내보다 더 예쁜 세딸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감사하는것중 하나는 제 직업입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 — 소프트웨어 만드는것– 을 정말 좋아하고 사실은 꽤 잘합니다. 잠을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 새벽 5시에 일어나 커피를 가득 내려 마시면서 코딩하는 것만큼 즐거운것이 없습니다. 낮엔 직장일을 하지만, 새벽엔 취미삼아, 공부삼아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꾸준히 만듭니다. 저를 길이나 스타벅스에서 혹시 만났는데 먼데를 응시하고 있다거나, 혼자 중얼중얼대고 있다면 ‘아 저 사람이 지금 머리로는 프로그래밍 중이구나. 건드리지 말아야겠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교회에서 제 인상이 험악해 보이거나 아파보이면 ‘아 박집사가 지금 버그를 잡고 있구나’, 이렇게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상엔 자기 여가시간에 취미삼아서 일을 계속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직장 끝나고 취미삼아 일 더하고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예를들어 그로서리 QFC에서 일을 한다면, 주말에 취미삼아서 일을 더하러 나오겠습니까? 저는 이런 제 직업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 더 나아가 사명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한것은 아닙니다.

고난과 하나님의 계획

한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한국에 유행한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책보다 현실이 더 고달픈 청년들은 “아프면 환자지 어째서 청춘이냐?” 라고 반박을 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학교와 취업등에서의 고난은 우리가 10, 20대를 지나면서 반드시 겪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도 고난없이 30대, 40대의 어른이 된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예상치 못하게 폭풍처럼 찾아오는데, 고난가운데 빠지게 되면 그 순간엔 오로지 그곳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 고난의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선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스티브잡스가 죽기 얼마전 스탠포드에서 한 졸업식 연설은 아주 유명합니다. 거기에서 잡스는 인생의 중요한 포인트를 하나 집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고난들이 <점>과 <점>처럼 찍혀 있는데 성공의 순간과 그 고난의 점들이 연결되어 있더라라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그가 학교를 자퇴하고 청강한 과목에서 배운 Calligraphy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것) 가 후에 애플컴퓨터의 혁신적인 폰트가 되는것 말이지요. 무신론자였던 잡스는 논리로 설명하기 힘든 이 현상을 Karma-운명 , 숙명등의 단어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계획, 섭리> 라고 부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세번정도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 소개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첫번째 이야기는 스킵하고 두번째, 세번째 이야기만 나누겠습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제가 어떻게 군대를 안가게 되었나 스토리입니다.

두번째는 고난 이라기보다는 황당한 고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희때는 대학입시에서 4개의 학교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1개 학교는 가고싶지만 성적이 조금 모자란곳, 1-2개는 가고 싶고 성적도 충분한 곳, 마지막은 성적은 남아도는데 가고싶진 않은곳을 고릅니다. 제게는 가고 싶고 성적도 충분한 곳이 한양대학교였습니다. 저는 사실 고등학교때 인문계였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나 공대는 관심이 없었고, 갈수도 없었습니다. 제 관심은 영문학쪽에 있었습니다. 한양대 영문학과는 점수도 충분하고 제가 가고 싶은 곳이기도했습니다.

입시의 과정엔 논술시험과 면접이 있습니다. 어떤 학교는 논술만보고 어떤곳은 두가지 모두 필요했습니다. 한양대 캠퍼스에 논술 시험을 보러 갔는데 논술을 나름 잘 써내고 마치는 찰나였습니다. 시험 조교가 이렇게 마무리를 했습니다: “여러분 다음주에 있는 면접도 다들 잘 보세요.” 그런데 저는 이때까지 한양대는 면접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어, 내가 잘못 알았나?’ 확인해야 하지만 저는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저 조교는 준비가 덜 됐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면접을 가지 않았고 당연히 입시에 떨어졌습니다. 내 계산대로라면 당연히 가야하는 학교, 전공이었는데말이죠.

결국 어쩔수없이 선택한 곳은 아주대학교 인문학부였습니다. 아주대는 컴퓨터나 공대가 괜찮은데 인문학은 별로라서 실패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대학교가 그때 한국에서 한가지 아주 특별한것이 있었습니다. 무제한 전과 (transfer) 제도입니다. 전공을 바꿀수 있는 제도입니다. 심지어 인문계에서 이공계로도 전과가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1년후에 저는 컴퓨터가 좋아졌습니다. 그때 인문계에서 이공계로 전공을 바꿀수 있는 학교는 한국에 한곳 아주대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대의 컴퓨터 전공은 꽤 실력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은 보너스를 하나 남겨놓았습니다. 저는 컴퓨터를 나름 잘하지만, 사실 사람들 사이에선 글 잘쓰는 블로거로 더 유명합니다. 책 읽기, 글쓰기 좋아하는 인문계의 소질은 하나님이 제게 남겨놓은 보너스 입니다.

세번째 고난은 유학중에 겪었습니다. 박사과정의 가장 힘든것중 하나는 퀄시험이라 불리는 전공시험입니다. 퀄 시험을 2번 실패하면 학교에서 나가야 합니다. 흔히 <피똥싼다>고 표현하는 시험인데 저는 피똥을 여러번 쌌습니다. 유학을 나와보니 주변에 수재들로 가득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온 친구들은 스펙들이 대단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중국 어디 성 대학입시에서 2등했다고 합니다. 근데 그 성 인구가 1억명입니다.

첫해에 시험을 보았습니다. 여러개 과목에서 15개 정도의 문제가 출제됩니다. 처음 시험에서 제가 몇문제를 맞추었을까요? 정답은 한문제도 맞추지 못했다입니다. 공부가 조금 부족하긴 했지만, 설마 백지를 내고 시험장을 나가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교수에게 답안지를 돌려주며 혹 백지인것을 들킬까봐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몇달간 도서관에서 공부만 했는데, 백지라니… 아마 지금껏 살며 가장 절망한 날이 그날이었던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 어떻게든 위로해보려는 아내를 뒤로하고 혼자 침대에 누워 별의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여러분 <기쁨>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슬픔>이 아니고 <절망>입니다. 희망이 없음입니다. ‘그깟시험 다시 한번 잘 준비하면 되지 뭘 그래’라고 생각할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평가했을때 내 계산으로는 도저히 시험을 패스하는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사람의 계산에서는 절망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렇게 허무할리 없다는 믿음으로 다시 공부했습니다. 9개월 후 시험이 마지막 기회라서 그때는 정말 도서관에서 살았습니다. 머리가 나빠서 이해가 안되니까 큰 전공책 여러개를 통째로 외웠습니다. 그 당시 아내가 큰 애 수안이를 임신했는데 배 나온 아줌마가 싸온 도시락을 도서관에서 같이 까먹으며 공부했습니다. 시험날이 가까워오는데 신물나게 공부하고 또 하니까 이제 될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시험날엔 꽤 괜찮게 답안지를 써냈습니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요?

또 떨어졌습니다. 지도교수의 말로는 거의 근접했는데 아쉽게도 탈락이라고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저를 좋게 봐주었던 지도교수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교수회의에서 삼세판을 강력하게 주장해 예외적으로 한번 더 기회를 준것입니다. 그리고 몇달후에 결국은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몇달간 더 공부를 했지만, 사실 두번째 시험과 세번째 시험 사이에서 실력의 향상은 없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바뀐 중요한 마음의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신뢰입니다. 두번째까지는 내가 최선을 다 했으니 성공해야한다는 믿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어야 한다”는 내 의지가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의지가 실패했을때는 강한 절망이 지배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두번째의 실패후에 마음에 찾아온것은 뜻밖에도 평안이었습니다. (어렸을때 병원에 누워서 누렸던것과 비슷한 평안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쁠것이다”. 한번이나 두번만에 합격했다면 이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지 못했을것입니다. 때론 머리나쁜것이 진리로 인도하는데 쓰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의지가 실패해 절망에 빠지려할때, 그래서 이 익숙한 말씀이 우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

그리고 이번 역시 하나님은 고난 후에 보너스를 예비하셨습니다. 시험에 떨어져 학교를 떠나게되면 석사 학위라도 받아야 하니까 관심에도 없던 수업 하나를 학점을 채우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업에서 배운 이론을 제 분야에 적용해 학술대회 최고논문상 후보에도 오르고, 그것으로 박사 논문까지 잘 마치게 됩니다.

어쩌면 여러분중에 지금 고난가운데 있는 사람도 있을것입니다. 혹 지금이 아니더라도 분명 여기 모두는 고난을 겪여 봤고, 또한 앞으로도 많이 겪을것입니다. 스티브잡스와 같은 무신론자 역시 이러한 고난이 무작위의 현상이 아니라 미묘하게 미래와 연결되는 인생의 점과 점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는 성공한 다음에야 과거를 돌아보고 고난의 가치를 알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다릅니다. 고난가운데 있어도 아니면 미래에 겪을 고난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 의미를 말씀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11-13

비전

우리가 교회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중 하나는 <비전>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세상에서도, 특히 젊은 사람들이 가장 자주 듣는 단어 역시 <비전>입니다. “비전을 가져라. 큰 꿈을 품어라” 자주 듣는 말이지요. 그러면 요즘 세대에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제 비전은 공무원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고, 조금이라도 확실한 것을 붙잡아보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사실은 비전의 의미를 잘못 해석해서 붙들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전의 사전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Merriam-Webster를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1) 눈으로 보는 것 (그래서 안과를 vision 이라고 이야기하죠)
2) 상상하는것, 꿈을 꾸는 것 (흔히 지칭하는 비전이 이것입니다).

즉, 지금 시점에서 눈으로 보고 있는것과 미래에 이루어질 것을 상상하는 것이 <비전>의 두가지 의미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이 두가지 의미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미래에 이루어질 꿈은 지금 눈으로 보는 그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비전의 의미가 가장 생생하게 드러나는 곳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앞으로 있을 미래의 일을 사도 요한이 지금 시점에서 보고 이것을 기록한것이 요한계시록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공무원이 비전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동사무소에서 서류 발급해주는 직원을 눈으로 보면서 ‘이게 나의 미래구나. 신난다!’ 이렇게 속으로 소리쳤을 사람입니다. 혹시 그게 아니라 <삼포세대, 취업률 50%도 안돼, 취업하자마자 명예퇴직…> 이런 소문을 귀로 듣고 공무원을 꿈으로 삼았다면, 그건 비전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사회의 현상을 부모님 통해, 친구를 통해 귀로 들었지, 자기 미래의 모습을 아직 눈으로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래의 제 모습을 본 것은 2003년 이었습니다.  그당시 저는 아주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를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사실 학부때 성적이 안 좋아서, 석사학위라도 받으면 대기업에 가기 수월하니까 공부했습니다.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은 좋아하고 잘 했는데 시험만 보면 성적이 안좋았습니다. 특히 인문계 출신이라 그런지 수학, 물리같은 기초 과학과목은 C가 최고 점수입니다.

그런데 마침 저희학교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학생들이 재학기간중 한번 외국의 컨퍼런스에 연수를 가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제가 몇명 친구들과 같이 간곳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라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이곳에서 <글로벌 그리드 포럼>이라는 그당시 막 떠오르던 컴퓨터 기술 컨퍼런스가 열린다고해서 정말 아무 기대없이 구경하러 갔습니다. 그렇게 연수를 가면 지원금이 꽤 많이 나오는데 사실은 공짜관광하러 가는것이었습니다. 괜히 중간에 런던에 들른다거나 말이죠.

그 컨퍼런스 첫날 제 시선을 사로잡은 한가지 광경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컨퍼런스장 복도에서 아무렇게나 앉아 노트북을 켜놓고 뚫어져라 집중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가까이가서 보니 검은 스크린에 떠오르는 하얀 문자들을 두드리고 있는 그 사람들은 연구소, 학교에서 나온 프로그래머들이었습니다. 회의장 안에서는 정부기관, IBM같은 회사에서 나온 잘 차려입은 높은 사람들이 미래의 기술에 대해 설명하는데 후줄근한 티셔츠입은 이 사람들은 그런것엔 그다지 관심도 없고 그냥 노트북속 코드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다녀왔던 여러명의 동료들에겐 그 모습이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제게는 달랐습니다.

거기서 미래의 제 모습을 본 것입니다. 마치 카메라로 찍은것처럼 그 순간을 찍어서 그 사람이 아닌 내가 그 자리에 노트북을 들고 앉아있는것을 상상한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에 다시 돌아와서 남은 1년반동안 집중한것은 박사과정 유학이었습니다. 한국인이 미국의 연구소에서 그 사람들처럼 일하기 위해서는 미국 학교에서 박사학위가 필요하기때문입니다. 사실 저희 학교 – 아주대학교 –는 유학을 많이 보낼만큼 유명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더더욱 문제는 제 학점이 3.0이 채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유학관련 사이트를 뒤져보니 몇년간 제 학점으로 유학간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돈을 많이 내고 석사유학을 가는 몇가지 경우가 전부였습니다. 제가 유학을 가는 유일한 방법은 논문을 외국의 교수들이 알만한 유명한곳에 출간하는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작 석사 1년차인데 무작정 덤볐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험을 하고, 논문을 쓰고…교수님이 지도하면서도 “안될텐데…” 말리는걸 그냥 우겨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상상하던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좋은 곳들에서 논문이 채택되고, 논문을 읽고 추천한 교수들에게 박사 어드미션을 장학금과 함께 받았고 한국에서 6만불짜리 국가장학금까지 캐쉬로 챙겨서 유학을 나왔습니다. 물론 아까 소개한대로 몇달후에 피똥싸는 경험을 하게 되지만요. 그리고 졸업후에 처음 취직한 스타트업 회사는 그때 그 컨퍼런스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창업한 회사입니다. 제가 눈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그 사람들과 후줄근한 티셔츠입고 컴퓨터와 씨름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비전은 소문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듣는 세상의 현실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 눈으로 직접 보고 마음속에 사진처럼 찍어놓는 것입니다.

직업의 목적

몇주전 인공지능 알파고가 큰 뉴스거리였던걸 기억하실겁니다. 곧 세상이 인공지능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했죠. 컴퓨터를 전공한 제 관점에서 판단하면, 그러한 전망은 아마도 사실일것입니다.  인터넷이 모든 종류의 정보에 접근하게 만들었다면 인공지능은 곧 그 정보들을 사용해 사람보다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그럼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스카이넷이 곧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는건가? 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이 질문을 생각해보면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 과연 로봇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질문을 던질수 있을까? 만일 사람이 지성과 감성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면 그럼 로봇역시 이 질문을 언젠가 스스로 던질것입니다. 나의 존재 목적을 묻는것이 지적인 활동의 클라이막스라면 사람의 지성을 그대로 따라하는 알파고 역시 이 질문을 언젠가 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게 인류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고요.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그저 상상인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질문은 영적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그저 뇌세포들의 상호작용으로 모델링할수 있는 로봇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이므로 이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신교 신앙의 핵심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선 이렇게 답을 합니다.

Q: 사람의 첫째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A: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과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Man’s chief end is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

20대에게 가장 큰 걱정은 당장 눈앞에 닥친 취업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시간이 지나서 30대가 되면 여러분 모두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될 것입니다. 저 역시 남들이 보기에 부러워할만큼 그런 직장과 가정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침에 깰때도 밤에 잠들때에도 여러분은 이 질문을 하게될 것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낮시간 대부분을 일하는데 보내므로 결국 이 질문은 ‘내가 일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입니다. 저 역시 이것에 명쾌한 답은 아직 못 찾았습니다. 다만 웨스트민스터 고백이 어렴풋하게나마 중요한 푯대가 되어줍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과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흔히 꿈을 이야기하라면 <꿈의 직장>을 댑니다. <구글>, <페이스북>, 한국에서는 <삼성>, <몇급 공무원>.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좋은 직장의 좋은 타이틀을 가지게되면 얼마동안 행복할까요? 우리는 다 경험해봐서 압니다. 한두달 지나면 무덤덤해지고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40대, 50대가 되서 아직 <내가 삼성맨이야!> 떵떵거린다면 주위에서 다들 불쌍하게 쳐다볼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것은 <직업> 입니다. 직업과 직장은 다릅니다. 저는 소프트웨어 만드는것이 직업입니다. 이것은 아마 평생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직장은 그동안 여러번 바뀌었고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제가 천국에 가면 하나님은 저를 <직장>을 가지고 평가하지 않을것입니다. “너는 왜 구글에 못갔니?” 라고 묻진 않으실겁니다. 그러나 제 <직업>을 가지고는 평가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제게 주신 사명이고 달란트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가 준 직업의 10 달란트를 가지고 무엇을했니?” 라고 찾으실 것입니다. 제 직업은 소프트웨어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닮았기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했듯, 소프트웨어를 <창조>하는 능력이 제 안에 있습니다.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는 웨스트민스터의 답 그대로 내게 주신 이 능력을 저는 즐거워합니다. 매일처럼 새벽에 코딩하는 이유는 이 능력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직업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수준에 다다르기 원합니다. 부끄럽게도 그러나 아직은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저 직장에서 동료에게나 인정받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매일 여가시간에 코딩하는 이유는 언젠가 나의 실력이, 나의 결과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싶기 때문입니다.

pieta

Pietà, 1498-1499

2년전에 아내와 결혼 10주년으로 로마에 갔었습니다. 바티칸 대성당에가서 곳곳의 예술작품들을 넋을 잃고 바라봤었습니다. 특히 미켈란젤로가 24살에 조각했다는 피에타는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바라볼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잘 아시죠?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안고있는 조각상. 예수님의 죽음을 그렇게 생생하고 또 아름답게 묘사할수 있었던것은 이미 10년이상 수련한 미켈란젤로의 재능이 몇년간 공을들여 디테일을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직업의 결과물은 바티칸 대성당에서 수백년째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직업의 결과물역시 그렇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작품이 되길 원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수련하고 또 남들이 안보는 디테일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청년들 역시 여러분의 직업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겨 즐거워하고, 또 그것으로 작품을 만들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길 바라며 오늘 말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회의 시간에 똑똑해보이는법 9가지

(재미있길래 퍼와서 가볍게 번역했습니다. 원글은 여기에서…) https://techcrunch.com/2016/09/30/9-tricks-to-appear-smart-in-brainstorming-meetings/

1. 물마시러 나가면서 필요한거 없냐고 묻는다.

사람들은 당신이 친절하고 사려깊다고 생각하느라 10분간 어디에서 놀다오는지 잊는다.

2. 미팅중 포스트잇에 그림을 그려라.


사람들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기 시작할때 미리 준비한 포스트잇에 아무 그림이나 그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갑자기 준비안된 자신을 생각하며 당황해할 것이다.

3. 너무 단순해서 깊이있어 보이는 비유를 들어라.


사람들이 문제에 대해 토론을 시작할때 뜬금없이 비유를 들어가며 문제와 연결시켜라. 예를들어 문제를 빵굽기에 연결시켜 “자 여기 빵이 있습니다. 빵에는 크림이 필요하겠죠? 우리에게 크림은 뭘까요” 이런식이다. 사람들은 당신이 문제의 깊은 곳까지 바라본다고 착각하지 설마 그냥 크림빵이 먹고싶은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4. “우리가 과연 맞는 질문을 하는 걸까요?” 라고 물어라.


당신이 똑똑해 보이게하는 최고의 질문은 질문 자체에 대해 질문하는것이다. 혹 누군가 “그럼 맞는 질문이 뭘까요?” 물으면 “그냥 확인을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넘겨라.

5. 관용적인 표현을 써라.


아이디어에 대해 관용구를 써서 질문을 하면 똑똑해보이는데 효과적이다.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 아닐까요? 입에 거미줄 치는건 아닐런지… 이거 발 디딜틈도 없겠군요!” 이런식으로 하면 된다.

6. 독특한데 창의적으로 보이는 습관을 만들어라.


당신 심연의 생각을 다 끌어내는것처럼 보이는 그런 습관을 만들어라. 이를테면 복도를 계속 왔다갔다 한다거나, 같은 자리에서 계속 뛰든지, 벽에다 공을 계속 던지는것도 괜찮다. 온몸을 다해 당신이 생각중이란걸 표현하면된다.

7. “CEO는 이렇게 생각할텐데…” 라고 말하라.


사람들이 당신이 CEO와 가깝다고 믿게끔 하는게 포인트다. “사장님은 이렇게 생각했을것 같은데…” 혹은 “아 그 아이디어 좋네요! 사장님이 좋아할거 같은데요.” 이런식으로 대화하면 사람들은 당신이 CEO 라인에 있구나 생각할거다.

8. “우리가 지금 맞는 모델을 세우는겁니까?” 라고 질문하라.


모델, 프레임워크, 아키텍춰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면 사람들은 당신이 문제를 앞서 나가는, 큰 그림을 그릴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것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해할수 없을때마다 “그게 맞는 모델일까요?” 질문하면된다.

9. 사람들이 아이디어에 거의 동의하는거 같으면 “합시다!” 라고 먼저 말하라.


눈치를 봐서 사람들이 어떤 아이디어를 모두 좋아하는거 같으면 크게 “합시다 (ship it)!” 제일먼저 외쳐라. 물론 사람들은 웃게되겠지만 무의식적으로 당신이 회의의 결론을 내는 사람인것처럼 여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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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와 돈

소프트웨어로는 돈 벌기가 쉽다. 최근 수십년간 새로 탄생한 억만장자들은 모두 소프트웨어로 돈을 벌었다.


포브스 세계의 부자 랭킹을 보면 1, 2위의 빌게이츠, 제프베조스 모두 소프트웨어로 시애틀에 큰 기업을 만든 사람들이다. 그리고 12위 안에 페이스북, 구글, 오라클의 창업자 6인이 부자리스트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모두 1.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2.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3. 주변에서 도움 약간 (펀딩, 직원..)을 받았을 뿐이다. 몇년후에 이 사람들이 만든 소프트웨어는 전 세계 수십억의 인구가 사용한다.

지금은 사람들이 이것없이는 살수 없을만큼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지만 그 당시 윈도우즈가 없을때, 페이스북이 없을때 ‘이런걸 만들어야지’ 라고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이들에게는 얼마나 그게 당연하게 (obviously) 보였을까.

그래서 내가 “소프트웨어로 돈 벌기 참 쉽다, 그죠~” 이렇게 말하면 전세계 프로그래머들이 다 이렇게 반응할것이다.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파는건 최악으로 어렵다. 이미 잘 나가는 회사의 월급쟁이는 일단 이야기에서 제외해본다. 이야기는 소프트웨어로 부자되기에 대한 것이니까.

소프트웨어로 스타트업을 하거나 능력있는 사람이 1인 기업을 해보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수있다.

다른 종류의 노동은 대개 시간과 일의 가치에 따라 값을 쳐준다. 몸을 쓰는 노가다를 해도 8시간 일하면 30만원은 받아야한다. 식당을 차리고 음식을 내놓으면 원가에 이익을 더해 값을 매기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지불하고 먹는다.

그런데 하루종일 단내나게 일을 해도 사람들이 천원이라도 내고싶은 제품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마 능력자가 한달 내내 일을 한다면 그럴듯하게 동작하는, 예를들어 앱스토어에 넘쳐나는 사진 필터링 앱 정도 만들어낼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그걸 팔면 얼마나 돈을 벌까? 아마도 십만원 정도 벌면 주변에서 “괜찮은데 나도 해볼까” 이런 이야기를 들을것이다.


하루에 8시간씩 일한다고 치면 한달에 160시간 일하고 10만원을 벌어보자. 그럼 시간당 일당이 600원이다. 사발면 한개 사먹기도 힘들어 시발 소리가 나올것이다. 

나는 지금 직장을 다니며 개발을 해주면 한달에 꽤 많은 돈을 번다. 그런데 내가 어느순간 ‘내일을 할거다’ 생각해 직장을 나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 시간당 사발면 한개값 벌기도 힘들어진다. 호텔 식당에서 일하다가 자기 식당을 차리는 쉐프들은 이렇지 않을것이다.

소프트웨어로의 창업은 모 아니면 도가 된다. 그런데 윷가락을 20개쯤 던져서 모가 나와야한다.

그런데 그 이유는 생각보다 분명하다. 내가 한달내내 죽어라 일해 소프트웨어를 만들면 솔직히 아이디어와 퀄리티가 거지같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앱스토어에 넘쳐나는 사진 필터링 앱을 만들었는데 버튼이 사진 가운데 붙어있거나 이런식이다. 미치거나 변태가 아닌 이상 이런 앱을 사줄 사람이 없다. 호텔에서 일했던 쉐프는 자기 식당을 차려도 호텔 비스무리한 맛이 나오니까 장사가 되겠지만 대기업 개발자가 몇달 내내 뭔가를 만들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앱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에픽 게임즈를 만든 전설적인 게임 개발자 팀 스위니가 한 말이다. “소프트웨어를 팔아서 2만원 벌기까지 16,000 시간을 취미로 코딩해야했다”.

나는 말콤글레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이야기한 1만 시간의 법칙이 소프트웨어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1만 시간 이상을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순전한 호기심으로, 취미로 시간을 쏟은 개발자만이 직장인에서 창업자로, 번데기에서 나비가 날아가는 그런 변화를 경험할수 있다.

5년간 하루 8시간씩 순전히 어떤것에 몰두해있을때 그때서야 나는 개발자중 한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한사람이 될수 있을것이라 믿는다.

그럼 나는 그때에서야 순전히 내가 만든 소프트웨어로 2만원을 벌것이다.

유명인과 주변인의 말싸움

지난주부터 실리콘밸리의 Tech 커뮤니티가 Peter Thiel(피터틸)의 트럼프 지지, 그리고 연이은 거액 1.25m 도네이션때문에 두 편으로 갈렸다.

논쟁의 화살은 YCombinator에 쏠렸는데 틸과의 파트너쉽 관계를 모두 청산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나온것. (YC는 억울할수도 있는게 YC에서 틸은 파트타임 파트너밖에 안되지만 페이스북에선 이사회 멤버. 근데 이런 말싸움은 트위터에서 벌어지는데 주커버그는 트위터에 없으니… 🙄)

그 공격의 선봉에 선 사람은 역시 좌파중 좌파인 DHH http://david.heinemeierhansson.com/. 평상시에도 대놓고 YC와 폴그레이엄을 비난하던 겁없는(?) 사람인데 워낙에 본인도 ruby on rails등 테크 업계에서 대단한 것을 많이 한 사람이라 파급력이 크다.

상당히 공격적이고 폴그레이엄처럼 점잖게 말하기보다는 주장과 함께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을 흔히 하는 일종의 능력치높은 트롤이다. 이번에 폴그레이엄에게 트위터 블락 신공을 당하기도했다.

DHH와 함께 공격의 선봉을 맡은 것은 까대기에서 둘째라면 서러운 pinboard. https://mobile.twitter.com/Pinboard

Pinboard는 1인이 북마킹 서비스를 운영하는데 테크 커뮤니티에 그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고 평상시 이런 이슈들에 워낙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라 영향력이 상당하다.

그리고 세번째 중요한 목소리는 바로 Marco Arment (마르코). 역시 1인 개발자로 tumblr, overcast, instapaper등 걸출한 앱들을 혼자 만들어낸 재야 최고의 실력자. 혼자하는 블로그에 매월 50만이 방문하고 팟캐스트도 팬층이 두텁다. Https://marco.org 

이렇게 인디쪽 실력자들이 틸과의 관계를 청산하지 않는것은 트럼프를 인정하는것과 다름없다고 공격을 시작했다. YC는 어찌보면 인디에 있는 사람들을 메이저로 끌어올려주는 집단이라 인디쪽 사람들을 무시할수가 없다.


Yc를 현재 이끄는 Sam Altman의 블로그 일부. 폴그레이엄과 그의 의견은 비록 트럼프가 싫다고 해도 그를 지지하는 40%의 인구를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본인들도 트럼프를 혐오하지만 이런식으로 지지자를 해고하고 대화를 단절한다면 선거 이후에도 상처는 치유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다.

즉 피터틸을 잘라내는건 정치적 보복으로 트럼프같은 사람이나 할 행동이고 우리는 성숙하게 상대의 정치적 견해차이를 인정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어찌보면 좌우로 치우침없는 좋은 의견이다.


위는 마르코의 블로그에서 퍼온 부분. 그의 비판의 핵심은(dhh, pinboard 마찬가지) 틸같은 파워있는 사람을 하나의 직원으로 볼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기부액수, 그동안의 지지 행위를 보면 그는 트럼프와 동일인으로 봐도 무방하다.

억만장자인 그를 yc의 파트너에서 자르는것은 정치적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는게 아니다. Yc처럼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조직이 그와같은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에 대응하지 않는것은 결국 트럼프와 틸을 변호하는 것과 같다. 블로그의 마무리는 “Shame on Y combinator.” 😬

Dhh나 pinboard는 워낙 트롤 수준으로 그동안 폴그레이엄과 YC를 비난해왔기때문에 설득력이 약하지만 마르코같은 사람은 이쪽 바닥에서 본래 존경받기도하고 글 자체에 감정을 섞거나 하지 않으므로 더 설득력이 있다. 워낙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이기도 하고.

테크 종사자들은 보통 진보에 가깝다. 그런데 이번 이슈가 그 안에서도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될것 같다. 폴그레이엄쪽에 손드는 사람은 아무래도 안정적 보수에 가까울것이고 마르코쪽에 손드는 사람은 반골 진보에 가까울 것이다.

참고로 피터틸이 페이스북 이사회에 있기때문에 역시 압력을 받은 주커버그는 그를 변호하는 입장이다. 아마존의 베조스도 마찬가지고.

나는 마르코의 블로그를 읽고나니 이쪽에 마음이 더 기운다. 나 역시 반골인지 아님 성공을 못한 변두리 사람이라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

하지만 한가지 부러운것은 유명인, 그것도 테크인들에게 존경의 대상인 폴그레엄, yc를 상대하며 때로는 ‘저렇게 심하게해도 되나?’ 싶을만큼 신랄하게 비난하는 dhh, 마르코등 주변인들의 힘이다. 그리고 잘 쓰여진 논쟁 글 한편으로 테크 커뮤니티를 설득하는 마르코 같은 주변인의 생각의 힘, 글의 힘이다 (Sam Altman은 솔직히 이부분에서 밀린다). 마르코와 dhh의 신랄한 비판이 있은후에 cnn에까지 이 논쟁이 보도되었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다시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지만 생각의 힘, 글의 힘이있는 주변인이 성공한 권력을 상대로 그렇게 강한 자기 주장을 펼칠수 있을까? 스타트업, 인디로 활동하는 개발자중 이렇게 강한 생각의 힘, 글의 힘이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이런 논쟁을 지켜보는 커뮤니티는 그럼 공정한 판단을 내릴수 있을까? 성공한 권력자에게 존경심을 이미 깔고 들어가는 우리 문화에서 이런 주변인들의 의미있는 <까댐>이 제대로 펼쳐질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번역] A Letter to the Doctors and Nurses Who Cared for My Wife

뉴욕타임즈에 실린 글이 너무 좋아서 번역해 봤습니다. 비록 원문의 그 미묘하고 슬프면서 아름다운  감정이 다 살아나진 않아도 조금이라도 전달된다면 다행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읽을수 있습니다: “A Letter to the Doctors and Nurses Who Cared for My Wife” 

(보스톤의 작가인 Peter DeMarco는 34살의 젊은 나이에 급성천식으로 아내를 잃고나서 아내를 치료했던 캠브릿지 병원 중환자실에 이 편지를 보냈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결국 아내의 마지막 날들이되었던 그 일주일…여러분들이 아내를 얼마나 열심히 간호했는지 친구들, 가족들에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병원의 의사, 간호사, 호흡기전문의, 사회복지사, 그리고 청소원까지 이름 하나하나를 기억해내면 15번째 이름쯤에서 제게 놀라서 묻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 많은 이름들을 다 기억해?” 그럼,

“내가 그분들 이름을 어떻게 잊겠어?” 이렇게 저는 반문합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은 제 아내가 의식이 없이 누워있을때 전문적으로, 친절하게 그리고 아내의 품위를 지켜주며 치료했습니다. 주사를 맞을때면 아내가 의식이 없어 듣지못해도 조금 아플거라고 미리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청진기로 심장과 폐의 소리를 듣다가 아내의 옷이 내려가면 환자복을 다시 올려 그녀의 맨살을 가려주었습니다. 아내의 체온을 조절할때 뿐 아니라 입원실이 조금 싸늘할때도 아내가 더 편안히 잘 거라며 담요를 다시 잘 펴서 덮어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아내의 부모님에게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부모님들이 불편한 간이침대에 올라갈때도, 매 시간 마실 물을 가져다줄때도, 끝없는 질문에 상세하게 설명할때도 여러분의 그 친절이 아내의 부모님을 위로했습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아내의 아버지 본인도 의사이십니다. 자신이 딸의 치료에 의료진과 함께 하고있다고 느끼셨을때 그게 얼마나 큰 의미가 되었는지 상상할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제게 해준 것들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그 일주일동안 당신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디에서 제가 힘을 얻을수 있었을까요?

일주일 내내 제가 아내의 침대곁에서 흐느낄때…그녀의 손등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힘없이 앉아있을때면 기척 하나없이, 마치 투명인간이 된것처럼 조용히 자신의 업무를 해주었습니다. 제가 간이침대를 그녀의 침대곁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붙여보려고 애쓸때면 주사튜브와 의료기기의 복잡한 선들 사이로 들어가 침대를 옮기는것을 몇번이고 도와주었습니다. 

얼마나 자주 제게 다가와 필요한 것이 없는지, 마실물과 먹을것, 갈아입을 옷과 샤워할 물이 필요한지 물어봐 주셨는지 모릅니다. 아내의 상태에대해 좀 더 알고 싶을때, 아니면 그냥 아무 이야기든 하고싶을때에도 여러분은 옆에 있어주었습니다.

깊이 절망해 있었을때 얼마나 많이 저를 안아서 위로해주고 Laura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녀의 사진을 함께 보며, 제가 그녀에대해 쓴 글을 읽으며 공감해주었는지 모릅니다. 제게 나쁜 소식을 전할때면 얼마나 많이 떨리는 목소리로 슬픔을 눈에담아 이야기해주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긴급한 이메일을 써야해서 컴퓨터가 필요하면 어떻게해서든 제게 마련해 주었습니다. 중환자실의 특별한 손님이었던 우리 고양이 <콜라>를 몰래 데리고와 마지막으로 Laura의 얼굴을 핥게해주었을때 못본척해 주신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특별한 저녁에 Laura의 친구, 동료, 학교동창과 가족들까지 50명이 넘는 사람들을 중환자실로 부를수있는 특권까지 허락해주었습니다. 그날 저녁 친구들은 기타를 연주하고, 오페라 곡을 불러주거나 춤을 추며 Laura에게 마지막 사랑을 쏟아부었습니다. 제 아내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랑받고있었다는걸 그날에야 알았습니다. 그날 저녁은 우리 결혼생활의 마지막 파티와 같았습니다. 여러분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시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번의 그 순간, 한시간 뿐이었지만 제가 평생 잊지못할 그 시간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 Laura의 장기를 기증하기위한 수술을 기다리면서 저는 아내와 혼자있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과 친구들이 몰려와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시간이 계속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오후 4시, 이제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난후 저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지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간호사 Donna와 Jen에게 간이침대를 옮기는걸 도와줄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아내 곁에 조금 더 가까이 눕고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더 좋은 생각을 해내더군요.

간호사들은 제게 잠시만 나가있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가 다시 돌아왔을때 그분들은 Laura를 침대의 오른편으로 눕혀서 제가 같이 누울수 있을정도의 공간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한시간만 제가 아내와 아무 방해없이 둘만의 시간을 가져도 되냐고 물었을때 고개를 끄덕이며 커튼과 문을 닫고 불을 꺼 주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바라본채로 누웠습니다. 정말 아름다워서 아내의 머리와 얼굴을 어루만지며 아름답다고 속삭였습니다. 아내의 가운을 조금 내려서 가슴에 키스를 하고 머리를 기대니 숨쉴때마다 올라왔다 내려가는 심장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순간이 남편과 아내로서의 마지막 교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어떤때보다 가장 자연스럽고 순수하며 위로받을수 있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곧 잠이들었습니다.

전 그 마지막 한 시간을 평생 기억할겁니다. 상상할수 있는 그 어떤것보다 큰 선물이었습니다. Donna와 Jen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깊은 고마움과 사랑을 담아서,

Peter DeMar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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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DeMarco 와 아내  Laura Levis

[번역]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들

오랜만에 폴 그레이엄의 짧은 에세이를 읽고 동감이 되어서 번역해 봅니다.
적성,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원글: http://paulgraham.com/wor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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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수학자였다. 내가 어린시절 내내 아버지는 Westinghouse사에서 핵융합 모델링을했다.

아버지는 어릴적부터 무엇을 하고싶은지 알았던 운좋은 사람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을 이야기할때마다 “12살때쯤 수학에 관심이 생기던 시절”이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영국령 웨일즈 지방의 Pwllheli라는 작은 시골에서 자랐다. 우리가 구글 스트리트뷰를 사용해 아버지의 어린 시절 시골길을 다시 찾아봤을때 그는 시골에서 자란게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15살쯤 되면 시골이 지겹지 않았어요?” 내가 물었다.

“아니” 아버지가 말했다. “그때쯤에 나는 수학에 푹 빠져있었거든.”

다른날엔 아버지에게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들었다. 내게는 수학책의 챕터 마지막에 있는 문제리스트 (exercise)는 항상 “일”일 뿐이거나 좀 더 좋게 말해도 챕터에서 배운것을 다시 복습하는 절차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겐 그 문제들이 일종의 보상(reward)이었다. 챕터의 내용들은 그저 문제를 푸는데 도움을 조금 주는것들 뿐이다. 아버지는 수학책을 받자마자 챕터 마지막의 모든 문제들을 다 풀었고 책의 진도를 조금씩 나가야 했던 수학 선생님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아버지처럼 일찌감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게된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적성찾는 한가지 알고리즘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들에게 일처럼 보이는 것이 당신에게는 일이 아니라면 그것이 당신의 적성이다. 예를들어 나를 포함해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투덜대면서도) 사실은 디버깅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디버깅을 스스로 찾아하는데 그게 사실 자원해서 할만큼 그렇게 즐거운 성격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여드름 짜내며 희열을 느끼는것처럼 디버깅을 좋아한다. 그런데 프로그래밍에 디버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따져보면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려면 디버깅 역시 좋아해야만한다.

당신의 취향이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느껴질수록 그 취향이 당신이 계속 해나가야할 적성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대학교때 친구들 대신해서 수업 논문들을 써주곤했다. 내가 듣지도 않는 수업의 논문을 쓰는게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친구들 역시 아주 좋아했고…

내게는 그렇게 즐거웠던 일이 다른 사람에겐 고통스러울수 있다는게 흥미로웠지만 이러한 상호간 인식 차이가 무슨 의미인지는 그당시에 잘 몰랐다. 누군가에겐 자신이 어떤 적성이 있는지를 찾고 결정하는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란걸 알지 못했다. 미스테리 소설의 탐정이 사건을 해결해가는 것처럼 그런 미묘한 단서들을 통해서만 한 사람의 적성을 찾을수 있다는걸 지금은 안다. 그래서 스스로 이 질문을 던져보는것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일처럼 느끼지만 당신에게는 일이 아니었던 (즐거움이었던)것은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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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초등학교 MS-DOS 시절엔 PC게임 하나를 돌리는데 많은 해킹이 필요했다. 게임 디스켓을 친구들에게서 빌릴때면 공책 한장을 부욱 찢어 게임을 실행하기 위한 도스 커맨드를 빽빽하게 함께 적어가야했다. 하지만 커맨드를 따라해도 안될때가 많아 다음날 다시 다른 커맨드를 적어와실행하고를 반복했다. 며칠간 커맨드라인과 설정을 바꾸어가며 게임을 실행해보려고 노력하다 드디어 도스의 까만 텍스트창이 사라지고 화려한 그래픽이 모니터를 가득 채울때면 그 희열은 이루말할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게임은 몇분 해보다가 재미가 없어 끄고 말았다. 친구들은 재밌다고 난리인 게임들을 이런 식으로 실행만 시켜보고 끝내곤 했다. 사실 그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게임을 실행하기까지의 반복되는 설정, 도스 커맨드라인 그리고 이런 디버깅을 마쳤을때의 희열이 내겐 “일”이 아닌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내게도 프로그래밍은 천직이다.

Screen Shot 2015-05-28 at 12.58.34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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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인터뷰

페이스북을 통해서 이메일 인터뷰를 부탁받았습니다. 요즘 블로그를 잘 못하는데 이왕 시간 들여 쓴김에 한번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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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이 아닌 실리콘밸리에서 SW엔지니어로 활동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일하는곳은 실리콘밸리가 아니고 시애틀입니다. 회사는 실리콘밸리가 본부지만 저는 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미국에서는 SW엔지니어 직군의 평균 급여가 의사, 변호사를 제외하고 가장 높습니다. 흔히 억대연봉이 직장인의 꿈이라고하는데, 대학을 갓 졸업한 23살의 새내기가 억대연봉으로 입사하는것이 아주 흔한 일입니다. 제 주변에 30대 부부가 SW엔지니어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둘이 합쳐 연봉 30만불 (약 3억원)이상 받는게 일반적입니다. 흔히 아메리칸 드림이라고하는 — 외국에서 태어나 자란 이민자가 가장 빠르게 미국의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 일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직업이 SW엔지니어입니다.

둘째는 자유로운 근무환경입니다. 저는 현재 약 3년넘게 사무실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만 일하고 있습니다. 가끔 6개월에 한번정도 캘리포니아의 사무실에 갈때가 있지만 회사일은 집에서 제가 원하는 시간에 합니다 (현재 HP에 인수된 저희 스타트업 회사 유칼립투스 시스템즈의 70% 직원이 집에서 일을 했습니다). 집에서 일하기때문에 누구에게 감시받을 필요도 없고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낮시간에는 아직 어린 아이들과 놀거나 집근처 골프장에 나가고 밤시간에 일을 하는 때도 많습니다.

셋째는 회사선택의 자유입니다. 어느 회사든 몇년간 일하고 나면 업무가 지겨워집니다. 특히 기술의 진행이 아주 빠른 SW세계에서는 한 기술만 계속 붙잡고 있으면 쉽게 퇴보하고 맙니다.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에는 SW엔지니어가 선택할 수 있는 회사들이 정말 많습니다. 도전적인 일을 하고 싶으면 스타트업 회사에 문을 두드릴 수 있고, 좀 더 좋은 보수와 복지를 원하면 대기업에 몸담을 수 있습니다.

2. 실리콘밸리에서 일해야겠다고 결심하신 계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하며 그런 생각을 품었습니다. 공부하면서 교과서, 논문에 나오는 소프트웨어들을 직접 설치 사용해보고 소스코드도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중요한 SW를 만드는곳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찾을수 없었습니다. 학교들마다 논문은 많이 쓴다고 하는데, 전공이 컴퓨터이면서도 가치있는 SW는 하나도 개발하지 못하는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원에서 그당시 떠오르는 분야였던 ‘그리드’ 컴퓨팅 SW를 만들어보려고 이곳 저곳 다른 학교 컴퓨터도 빌리고 학생들끼리 모임도 가지곤 했었습니다. 실제 어설프게나마 동작하는 SW를 만들고 논문도 냈지만 한국은 오로지 ‘논문’ 과 정부 발주의 ‘프로젝트’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관련 내용은 링크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장관님 코딩은 좀 하십니까?)

어떻게 SW를 잘 만들수 있을까 이야기하는 ‘논문’은 써내면서 실제로는 SW를 만들 생각도, 능력도 없는것이 한국의 모순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유학하고 일하게 되었습니다.

3. 한국 SW엔지니어들이 희망을 가지려면 어떠한 점이 먼저 해결돼야 할까요? 중요한 순서대로 세가지를 들어주시고 이유를 설명해주세요.

1번의 답과 비슷합니다.
첫째는 경제적인 처우입니다. 한국의 SW엔지니어도 미국처럼 고소득의 급여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이 다른 이유는 한국의 SW업계는 그만큼 매출을 올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긴 시간 SW를 사용하는지 관찰해 보면 SW가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큰 가치를 생산해 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가치를 돈으로 연결시켜 ‘떼돈’ 버는 SW회사가 많이 생겨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여러가지 제약이 있고 그중 정부의 규제가 큰 ‘악’중 하나입니다. SW 업체가 돈을 버는 방법은 기존의 시스템중 불편한 부분을 발견해서 SW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불편한 부분에 SW가 들어가면 기존 시스템에는 변형이 가해지게 됩니다. 얼마전 ‘우버’가 불법택시라고 한국에서 낙인 찍혔습니다. 택시라는 운송시스템의 불편한 부분을 ‘우버’는 SW로 해결했고 결과적으로 미국의 택시 시스템은 크게 변형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형’을 미국에서는 ‘혁신’이라고 부르고 한국에서는 ‘불법’이라고 부릅니다. ActiveX, 핀테크, 드론등 ‘혁신’이 이루어져야 하는 분야들에서 정부는 ‘불법’을 막아내려고 규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편으론 스타트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는것을 보면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습니다.

둘째로 연공서열의 문화가 사라져야 합니다. SW개발자는 능력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퍼포먼스 차이가 10배 이상 나기도 합니다. 최근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회사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약 2조 5천억에 샀습니다. 2.5조원짜리 게임 SW의 대부분을 창업자 한 사람이 프로그래밍 했습니다. ‘리눅스’라는 운영체제는 구글, 페이스북등 전세계 거의 모든 회사들에서 사용됩니다. ‘리눅스’는 리누스 토발즈가 몇개월간 집에서 혼자 만들어 시작되었고 현재도 그가 모든 개발을 지휘합니다. 연공서열의 문화에서는 이런 영웅담이 나올수가 없습니다. 1년차 말단직원으로 시작해 20년 지나야 부장, 임원이 되는 경직된 구조에서 10배, 100배의 퍼포먼스를 내는  천재들이 어떻게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10배의 퍼포먼스를 내는 1년차 직원이 있다면 10배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어야 합니다.

셋째로 회사와 기술선택의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한국의 SW엔지니어가 안정적으로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회사는 삼성, 네이버등 몇개의 대기업, 인터넷 기업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3년에 한번씩 회사를 옮기면서 본인의 흥미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그렇게 하다보면 모든 회사를 한번씩 다녀보고 더 갈곳이 없어 치킨집을 차려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한국에 더 많은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그중 성공하는 업체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카카오톡’ ‘네이버’같은 회사들이 100개쯤 생겨나야 SW엔지니어들이 마음껏 활동할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겁니다.

4. 실력으로 평가받는 실리콘밸리 문화에서 한국인 SW개발자들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실제로 한국SW 개발자라고 하면 현지 기업은 어떠한 평가를 내리는지 진솔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주변에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등 여러 회사에서 일하는 지인들을 봤을때 모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어디에 가든 부지런하다고 평가 받는데 이건 SW개발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부지런히 맡은 일 잘 해내는 사람들이 한국 SW 개발자에 대한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실함’은 장점이면서 또한 한계이기도 합니다. 큰 회사의 리더로 올라가거나 스타트업을 창업하기 위해서는 ‘성실함’에 더해 ‘창의력’, ‘리더쉽’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저를 포함해 한국 개발자들이 약한 부분입니다. 큰 소리 내지않고 맡은일 하는것을 미덕이라고 배워온 사람들이 토론을 통해 남을 설득하는 미국식 문화에 적응하는것은 쉽지 않습니다. 주어진 문제는 잘 해내지만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창의적인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많지 않습니다.

5. 얼마전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이라는 주제로 열린 강연회에서 발표하신 내용 중 `잉여’와 `공포’라는 단어가 인상 깊었습니다. 이 단어들이 지칭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어떤 것들인지 다시한번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등 거의 모든 SW회사는 잉여의 결과물입니다. 즉 본업이 있는 학생이나 직장인이 본업과 상관없는 취미생활에 몰두해 SW를 만들고 이것이 시대의 변화에 맞물려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것입니다. 미국에서 천여명 남짓되는 사람들이 처음 PC를 취미삼아 사용했을때, 빌게이츠는 대학교 기숙사에서 PC에 올라가는 SW를 만들고 배포했습니다. 이것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작입니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는 기숙사에서 여학생들을 스토킹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었고 이것이 페이스북의 시작입니다. 애플의 스티브잡스와 워즈니악은 PC동호회에서 처음만나 취미로 PC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성공적인 SW는 ‘잉여’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분위기가 다릅니다. 끊임없이 정부와 언론에서 소프트웨어가 위기라는 ‘공포’심을 조성하며 SW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삼성이 SW가 없어서 망한다’, ‘외산 SW가 한국을 장악하려 한다’는 등의 공포심 조성이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준다고 믿는 모양입니다. 이것이 과거 개발독재 시절에는 적용되었을지 모르지만 SW는 그런식으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많은 돈과 인력을 들이며 “SW도 해내자”고 해왔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은것 역시 같은 이유입니다. “공포심” “체계적인 계획”은 성공적인 SW를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취미생활에 몰두한 사람들이 예측 불가능하게 성공적인 SW를 만들수 있습니다.

나쁜놈들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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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가장 재미있던 한국 영화중 하나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였다. 영화가 특별히 재미있었던 이유는 예전 어린아이의 눈으로 목격했던 한국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다시 재현했기 때문이다. 내가 초중고 학생으로 살았던 80-90년대는 정말로 <나쁜놈들 전성시대>였다. 조폭들만 나쁜놈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최민식이 그렸던 공무원, 경찰, 회사원들이 일상속에서 저지르는 자잘한 비리들은 그 시대엔 생활의 일부였다. 과속 단속에 걸리면 1만원짜리 한장 쥐어주는 것으로 넘어갔었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맞고 돌아올때면 엄마들은 하얀 봉투를 책속에 꼬옥 넣어 건네야했다. 우리 동네에는 한국에서 그당시 샐러리맨으로 살았던 분들이 여럿 계시다. 이 분들의 샐러리맨 <활약상>들을 들을때면 흥미진진하다. 대기업 말단 사원을 불러 수백만원짜리 양복을 맞추어주던 하청업체의 접대와 고스톱판에서 잃어주는 돈으로 은근히 전달하던 뇌물 이야기등등. <그땐 참 모두들 나쁘게 살았지…> 이렇게 말끝을 흐리시는 추억담을 듣곤 한다.

대학교 버전의 <나쁜놈들 전성시대>역시 크게 다를바 없다. 용돈으로 나오는 몇십만원 월급을 고스란히 교수님에게 상납해야 했던 대학원생들 사이에선 다양한 <학교 전설>들이 구전되었다. 해외 연수를 가면 학생들의 여행경비를 압수해 가족의 동반 여행에 여비로 활용하던 사람도 있고, 연구 장비로 책정된 예산으로 본인 집 냉장고 산 교수의 이야기는 전설중 레전드였다. 신임 교수자리가 나오면 모집 요강의 내용까지 바꿔가며 자기 사람을 불러주고, 신임은 선배의 은혜가 고마워 교수 계급사회의 아래에서 묵묵히 선배 교수에게 프로젝트, 논문의 한자리를 상납하곤 했다. 계급의 맨 바닥에 깔려있는 대학원생은 자기가 쓴 논문의 앞자리 이름을 지도 교수에게 양보하면서 <내가 졸업만 해봐라 이쪽으로는 오줌도 안싼다> 다짐을 하던 그런 시대가 있었다.

조폭들에겐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했다면, 부패한 학교들에게 가해진 조치는 <규칙>과 <정량 평가>다. 교수를 임용할때 돈이 오가거나 선후배 끌어주기가 심하다는 지적에 <오케이, 그럼 신임교수 뽑을때나 교수 평가할때는 SCI 논문 갯수로만 합시다> 하면 깔끔한 승부가 이루어질거라 생각했다. 교수들이 연구비를 임의 전용한다면, <오케이, 그럼 연구 제안서에 회식비등 짜잘한 항목까지 정확하게 적게 하고 나중에 다 영수증을 검사합시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경찰과 검사가 활약했다면, 학교에는 이렇게 <규칙>과 <정량평가>라는 객관적인 감시자를 붙여놓았다. 국가에서 SCI라는 규칙을 정하니 학교들은 군말없이 잘 따른다. 아니 사실은 잘 따르는게 아니라, 새 규칙에 잘 적응해가는 것이다. 프로젝트 제안서에는 몇개의 SCI논문을 쓸것인가 약속해야 한다. 정교수로 승진하기 위해서 몇편 이상의 SCI 논문을 써내야 한다. 둘다 논문의 품질은 상관이 없다. 그게 이 바닥의 새로운 룰이니 최민식이 그랬듯 적응하는자가 살아남는다.

그런데 문제는 SCI 논문이라는 이 기준이 어떤 분야에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전공하고 일하는 컴퓨터 과학 (혹은 컴퓨터 공학) 분야에서 SCI 논문으로 연구를 평가하는 것은 정말 <불 쉿>이다. 그냥 <불 쉿>이 아니고 진짜 큰 소의 <불 쉿>이다. SCI는 책으로 발간되는 논문집말고 컨퍼런스에서 발표되는 논문들은 포함하지 않는다. 하지만 컴퓨터분야의 발전 속도는 너무 빠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연구 결과들을 대부분 컨퍼런스에서 발표한다. 단언컨데 컴퓨터 연구계의 <일진>들은 SCI로 분류되는 논문집에 결과를 발표하지 않는다. 심사하는데 1-2년 소비하고 학회지에 논문이 출판되면 이미 흘러간 옛 이야기가 되버리고 마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보자. SOSP와 OSDI라는 두개의 학회는 운영체제, 시스템 분야에서는 넘사벽의 학회다. 매년 백편 이상의 논문이 제출되지만 약 20편 정도만 학회에서 발표할 수 있다. 그렇게 논문을 제출해보기라도 하는 학교들이 보통 MIT, Berkeley, CMU 와 같은 곳들이고, 평범한 미국의 주립대학들은 사실 논문을 내 볼 엄두도 잘 못낸다. 두 학회에서 논문을 한편이라도 발표한 사람 만나면, 이 바닥에서는 형님대접 해드려야 한다. 미국의 아무 학교에 지원서를 내도 서류 심사에서는 특별 대우를 받는다. 그런데, 두 학회에 논문을 10편을 쓴 가공의 인물이 있다고 하고, 이 사람이 정신이 나갔는지 한국 학교의 교수 임용에 신청서를 냈다고 해보자. 하지만 이 사람은 SCI 점수가 0점이라 서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다. 어디 아프리카에서 발행되는 학회지라도 SCI에 낸게 있는 사람보다 낮게 평가받는다. 이거 말고 더 큰 <불 쉿>이 어디있단 말인가?

나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중 2008년에 <슈퍼컴퓨팅> 컨퍼런스라는 곳에 논문을 냈다. OSDI, SOSP까지 수준은 아니지만 내 분야에서는 최고이고 컴퓨터과학계에 가장 유명한 컨퍼런스중 하나다. 그런데 소가 뒷걸음치다가 개구리 밟듯 운이 좋았는지 <최고논문상> 후보에 올랐다. 내공이 모자라 상은 받지 못했지만, 후보에 오른것만으로 자랑할만한 성과다. 컨퍼런스의 경쟁률이 5:1 정도 되고, 약 30개 논문중 4편이 후보에 올랐으니 40:1 정도의 경쟁이었을 것이다. 그 이듬해 한국에 갈일이 있어 모교에 들렀다. 예전 교수님을 만난 자리에서 그 논문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던것 같다. 이런 대화가 오갔다.

나: <교수님 저 이번에 이런 논문 썼습니다…>
교수님: <응.. SCI를 써야 해.. 한국에 교수로 오고 싶으면 SCI를 써야지 아님 서류심사에서 통과를 못해>
나: <미국 학교들에선 SCI에 안내는거 아시잖아요…>
교수님: <으응..나도 알고 과에서도 알지.. 근데 규칙이야.. SCI를 써야 해..>

SCI도 쓰면서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을까? 어떤 분야에서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컴퓨터과에서는 전혀 아니다. 허접한 SCI 학회지들에 일년에 몇개의 논문을 내기 위해선 <일진> 수준의 연구는 현실적으로 포기해야 한다. <일진> 수준의 연구를 하기위해선 <일진>들이 노는 물에 가서 놀아야하는데 그 사람들은 SCI에서 놀지 않는다. 사실 미국의 컴퓨터과 교수들은 SCI라는 평가기준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졸업을 2년정도 앞둔 내게 선택은 <한국에서 교수하고 싶으면 타협하고 SCI 방식으로 연구하거나> <진짜 일진이 되고 싶으면 SCI는 무시하고 수준있는 학회들에 논문을 내거나> 둘중 하나였다. 나는 후자를 선택하는게 옳다 여겼다. 주변에 전자를 선택하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똑똑해서 일진될 재목같았던 분들이 전자를 선택할때는 좀 안타까웠다.

내가 가장 <불쉿>이라고 느끼는 것은 <응 나도 알고 과에서도 알아. 근데 규칙이야> 이 대목이다. 몇해 후 모교를 방문해서 다른 교수님과도 대화를 나눴다. 나이 지긋하시고 학교에서도 파워 있으신 교수님 역시 같은 이야기 <자네 발표 잘 하던데…SCI는 좀 썼나?.. 나도 알고 과에서도 아는데…규칙이라서…>. 컴퓨터과의  얼마나 많은 재능있는 사람들이 이 멍청한 규칙에 세계적인 연구자 되기를 포기해야하는지 모른다. 교수도 알고, 학교도 알고, 심지어는 교육계의 관료도 문제를 안다고 생각한다. 부패를 막으려고 만든 규칙이 독이 되어 개인과 시스템을 서서히 죽이는걸 알지만, <근데 규칙이라서…>를 위선적으로 대뇌어야 한다면 얼마나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인가?

이것이 단순히 학교 안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SCI 못지않은 초대형 불쉿 <공인인증서>를 보자. 1999년 막 인터넷이 한국에 보급되면서 제정된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수없는 국가 <공인인증서>. 본래는 처음 인터넷을 접하는 국민들에게 해커들의 헤꼬지를 막아주려한 선한 의도의 <규칙>이다. 지금껏 15년 세월이 지나는동안 인터넷 기술은 완전히 달라졌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인인증서 불쉿>을 외쳐왔는지 모른다. 공인인증서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수백만건의 개인정보는 유출되고 있다. 오히려  공인인증서의 본 의미도 모르는채 무조건 클릭하게끔 사람들을 적응시켜 보안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전락했다. 인터넷 회사들의 결제 과정에 등장해서는 사용자 경험(UX)을 똥칠해 버리지만, 법률이라 스타트업, 인터넷 기업들이 혁신할 기회가 없다. 그 사이 미국에서는 아마존이 <원클릭>이라는 인터넷 상거래의 혁신으로 전 세계를 먹어가고 있는데도, 아무리 목이 터져라 <공인인증서 불쉿>이라고 외쳐대도 변화가 없다. 늘 되풀이된다. <공인인증서가 아닌건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근데 규칙이야>. 

법은 양심이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어쩔수 없이 발휘돼야 하는 필요악이다. 우리는 사회가 성장하면서 겪은 <나쁜놈들 전성시대>에 질린 나머지 <너도 알고, 나도 아닌걸 알지만 어쩔수 없는 규칙>의 노예로 살고 있다. 교수들의 양심을 믿고 SCI 규칙을 풀었다가는 학교들이 또 부정하게 신임 교수들을 뽑을까봐서. 교수들의 연구 관리를 자유롭게 풀어주면 또 세금으로 자기집 냉장고 살까봐. 국민의 인터넷 실력을 믿고 공인인증서 규칙을 풀었다가는 전부 해킹당할까봐서. 그래서 아무리 <불쉿><불쉿>대도 규칙을 풀지 않는다. 그 사이 학교와 인터넷은 세계에서 경쟁력을 잃어가지만, <나쁜놈들>의 기억이 얼마나 강력한지 좀체로 자유를 허락치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사회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개개인은 훨씬 더 많이 발전했는지 모른다. 급격한 성장의 마약에 취해 한때 양심을 잊은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나은 직업적 양심, 소명, 능력을 가진 사람이 많을지 모른다. 양심에 의한 자율이 다스리는 사회가 법치국가보다 훨씬 더 나은 곳이다.

박상민 / https://twitter.com/sm_park

인터뷰의 질문과 답

얼마전 제게 소프트웨어 개발과 오픈소스에 대해 인터뷰를 부탁하셔서 평소 생각을 말씀 드렸는데 여러 사람들 의견을 모아 책으로 출간이 되었네요. http://jpub.tistory.com/366

인터뷰의 질문과 답 모두 의미가 있는 것 같아 블로그로 공유합니다.

Q: 중국, 인도, 영국 등에서 코딩교육을 의무화한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조심스럽게 프로그래밍을의무교육-입시화 하자는 얘기가 제기되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10만 SW인력양성론’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조기에 SW를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든지, 정책적 차원에서 SW인력을 길러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기본적으로 어린 나이에 코딩을 접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져커버그는 아주 어려서부터 프로그래밍을 했고, 12살 나이에 이미 아버지의 치과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메신져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져커버그의 관심을 파악한 부모는 코딩 과외를 시켜주기도 했습니다. 트위터를 만든 잭 도시, 텀블러의 데이빗 카프등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 창업자들은 초등학교, 늦어도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릴적부터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는 이유가 중요합니다. 좀 더 빠르게 접해서 단지 더 많이 배우게 하거나, 코딩을 아주 잘하는 기술자로 만드는게 목적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에 코딩을 시작하면, 주변에서 접하는 사소한 “문제(Problem)”들을 프로그래밍으로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즉, 져커버그가 아버지 치과 사무실과 자신의 집을 연결시키는 메신저를 만든 이유는, 아버지와 가족이 일하면서도 대화를 나누는 “문제 해결”을 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주변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인식하던 결과물이 훗날 소셜 네트웍이라는 대박 “문제”를 해결한 페이스북입니다. 어른, 특히 대학교 이후에 직업을 위해 코딩을 배운 사람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쉽게 알아채기 어려운 이런 문제들을 발견 못합니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회사들중 “문제”를 처음 발견하고 그걸 해결한 곳은 거의 없습니다. 네이버는 구글이 발견한 문제를, 삼성은 애플이 발견한 문제를, 다음은 야후가 발견한 문제를 자신들 역시 해결한 것 뿐입니다.  흔히 창의력이 없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문제를 발견하는 눈이 없다는 뜻입니다.

프로그래밍 조기 교육 주장의 문제는, “10만 SW인력 양성론”에서 드러나듯 그 목적이 단지 많은 기술자를 양성하려 하는데 있습니다. 기술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대학교 교육으로 충분합니다. 절대 프로그래밍은 어려서부터 배워야할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목적은 어려서부터 주변의 문제들을 파악하는 감각을 기르기 위함이고 따라서 커리큘럼등이 이에 초점을 맞추어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Q: 오픈소스 관련 한 벤처대표는 오픈소스는 공짜라기보다는 ‘자유’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참여와 공유를 강조하는 측면입니다. 박상민 연구원님은 블로그에서 “오픈소스가 한국 SW의 근본적 해결”라고 적으셨습니다. 국내에서는 안타깝게도 FTA 이후 오픈소스 관련 분쟁사례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오픈소스 거번넌스 체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오픈소스의 본질(가능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울러, 현실에서 오픈소스에 대한 이해 부족 혹은 오해와 곡해를 통한 저작권 침해 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그 대표분 말씀대로 오픈소스는 공짜가 아닙니다. 저희 회사 Eucalyptus systems는 모든 소스코드를 github을 통해서 공개하지만, 고객들에게 돈을 받고 소프트웨어를 배포합니다. 저희 회사 CEO는 그 전 오픈소스 회사 MySQL을 1조원 넘는 가격에 팔았습니다. 그래서 흔한 질문이 “소스 코드를 공개했는데, 왜 내가 돈을 지불해야 하는가?” 부분입니다. 답은 “소스코드는 소프트웨어의 단지 한 부분” 이라는 사실입니다. 코드이외에 실제 소프트웨어를 운영하기 위해선 다른 기술들 (패키징, QA)과 고객 서비스 (24시간 콜센터등)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픈소스 제품을 사는 사람들은 소스를 사는 것이 아니라, 오픈소스 회사의 모든 서비스를 구입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런 서비스를 구입하지 않고 소스코드만 가지고 스스로 패키징, QA, 서비스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는 곳도 있습니다. 저희 CEO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사람들은 돈이 많아서 시간을 절약하고,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많아서 돈을 아낀다”고 합니다.

오픈소스는 두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문화적인 측면입니다. 미국에 끊임없이 소프트웨어 회사가 생기고 회사들이 빠른 시간에 성장하는 이유는 저변에 셀수 없이 많은 오픈소스 해커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PC를 취미로 만들고 공유하던 동호회에서 시작한 회사가 애플입니다. 리누스 토발즈는 주말에 시간내서 소스코드 관리툴 git 을 만들었는데, 그 툴을 좋아한 젊은이 둘이 웹 버젼으로 만든 github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타트업이 되었습니다. 주말에 취미로 만들고 코드를 공개한 소프트웨어가 참여, 공유를 통해서 스타트업, 대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회사가 빠른 시간에 성장하기 위해서는 능력있는 개발자가 많아야 하는데, 오픈소스 문화가 그런 고급 인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줍니다.

두번째는 기업에 도움이 된다는 측면입니다. 최근 몇년사이에 미국에서는 <스타트업은 오픈소스 해야 한다>는게 일종의 불문율입니다. 이유는 주 구매층인 중견 기업, 대기업들이 이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몇십년간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등에 종속(lock-in)되어서 어쩔수 없이 많은 지출을 해야 했는데, 이제는 Linux, MySQL등  품질은 비슷하지만 적은 비용으로 소프트웨어를 운영하는 대안을 선택합니다. 80년대-2000년대까지는 소프트웨어의 “품질”이 최고의 요구사항 이었다면, 품질에 차이가 거의 없는 지금은 “자유”, “선택”이 소프트웨어 구매의 최고 요구사항입니다. 코드를 직접 볼 수 있고 필요하다면 구매하지 않고도 소프트웨어를 운영할 수 있는 오픈소스가 이기는게 당연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성공적인 오픈소스 회사의 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래머들에게조차 오픈소스는 괴짜들이 하는 취미 정도로만 인식되는게 현실입니다. 오픈소스는 취미일뿐 아니라 성공적인 기업 모델입니다. 오픈소스의 전도사 역할을 할만한 회사가 대기업 가운데서도 나와야 하고, 스타트업중에도 성공하는 회사가 있어야 합니다. 법, 제도적으로는 기반이 없는 지금 그런 회사들을 띄워줄 (Bootstrap)만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블로그에 보면 ‘제큐어웹(XecureWeb)’으로 인한 한국 보안 인증체계의 문제점을 언급하셨습니다. 외국에 비해 국내 보안 체계는 매우 복잡하고, 사용자에 책임을 전가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한국과 미국 보안 인증 체계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A: 질문과는 반대로 사실 가장 큰 차이는 미국은 사용자에 책임을 지우는 반면, 한국은 정부가 사용자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아주 강합니다. 미국의 경우 예를들어 아마존에서 쇼핑을 하면 클릭 한번 하는 것으로 결재가 끝납니다. 구매의 전 과정에서 정부가 규제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반대로 한국의 경우 정부가 사업체에 보안 인증을 강제하니까 제품을 한번 구매할때마다 ActiveX,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등을 강제로 설치해야 하죠.

정부의 의도가 완전히 잘못 되었다고 생각치는 않습니다. 컴맹이고 나이 든 분들께는 보안을 강제 하는 것이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보안과 뛰어난 사용자 경험이 꼭 밸런스를 맞추어야 합니다. 한국정부는 지나치게 국민을 신뢰 못하는 나머지 보안쪽에 너무 큰 무게를 두고 사용자 경험을 무시했습니다. 웹기업 들이 창의적으로 만들 수 있는 뛰어난 사용자 경험이 정부에 의해 근본적으로 막힌 것입니다. 보안, 인증 체계는 기업들이 만들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더 나은 보안 체계를 갖춘 회사들이 시장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모든 보안의 키를 쥐고 있으니까 오히려 기업들에서는 보안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더 위험한 웹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정부 규제는 보안에서, 사용자 경험면에서 모두 실패입니다.

Q: 정부 주도의 진흥 혹은 규제보다는 서비스 사용자 중심의 시장에 의해 성공하는 SW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많습니다. 바람직한 SW정책 혹은 SW정책의 방향성은 무엇입니까? 더불어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인정받고 스타트업이 시장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한국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판단하십니까?

A: 이미 크게 성공하고 있는 카카오톡, 라인등에 정부가 한 역할이 조금이라도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스타트업이 성공하는 과정에서 대기업등에 의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 해주는 역할 정도가 정부가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창업자들이 빛을 지거나 신용불량이 되는 등 사업의 결과에 의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실패하면 잃을것이 너무 많은 환경에서 누가 시작을 하겠습니까?

정부 보다는 스타트업으로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 투자자, 멘토 역할을 해서 다음 세대를 이끌어야 합니다. 유명한 벤처기업가 폴 그레이엄은 자신의 스타트업을 성공시킨 후 YCombinator를 만들어 매년 수십팀의 스타트업에 초기 자금을 지원하고 멘토링을 해왔습니다. 여기에서 드랍박스, AirBnB와 같은 걸출한 스타트업들이 나왔고 수십조원 가치의 회사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구글 창업자 둘의 가능성을 보고 맨 처음 몇억을 투자 했습니다. 우리 역시 성공한 사람들에 의해 다시 투자 되는 벤처 생태계가 필요합니다. 최근 모바일 생태계 조성을 위해 100억 투자를 약속한 카카오 김범수 의장이 좋은 예입니다.

정부가 중점적으로 해야 할 과제는 소프트웨어 문화를 진흥시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프트웨어 문화의 핵심은 오픈소스 입니다. 취미로 주말에 코딩을 하는 학생들, 직장인들의 수와 국가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정확히 비례할 것입니다. 학교, 기업들에서 적극적으로 오픈 소스를 도입하고 개발하도록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오픈 소스는 문화이면서 또한 강력한 경쟁력입니다.

Q: 이번 책의 컨셉이 ‘SW로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SW의 성공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시는지요? SW로 성공한다는 것(개발자들의 입장에서)과 SW가 성공한다는 것(제품 혹은 서비스의 입장에서)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마지막으로 사례를 포함해서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개발자의 입장에서 SW로 성공하는 것은 직업이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개발일을 하며 힘들어 하고 불평하는 친구들을 많이 봅니다. 이것은 이상한 현상입니다. SW를 개발하는 과정은 즐거움의 연속이어야 합니다. 오픈소스 개발자들은 직업으로 코딩하는 그 시간만큼 저녁이나 주말에 프로그래밍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은 스스로 조물주가 되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창조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건 아주 중독성이 강한 즐거움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아주 성공한 사람들 (예를들어 폴 그레이엄)이 나이 들어서도 코딩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개발자들은 의사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직군입니다. 매일 놀이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마도 SW 개발자들만 누리는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위의 설명에서 한가지 빠진 조건은 “능력있는” 개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발을 즐거워 하는 정도와 능력은 정확히 비례합니다. 프로그래밍을 싫어하면서 능력있는 사람은 한번도 못 보았습니다.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는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학생이거나 해서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코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능력있는 사람이 되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집니다. 이것이 개발자의 성공이라 생각합니다.

제품/서비스 입장에서 SW가 성공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공한 제품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문제점 한가지를 해결한 것입니다. 구글은 “알고 싶다”, 아마존은 “사고 싶다”, 페이스북은 “친하고 싶다”, 트위터는 “말하고 싶다”는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해결하는 고통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서비스는 더 크게 성공합니다. 구글이 해결한 “알고 싶다”의 문제의 깊이와 현재 구글의 300조 주식 가치는 정확히 비례합니다. 아마도 트위터가 절대로 구글보다 커질 수 없는 이유는 “말하고 싶다”는 본능이 “알고 싶다”는 욕구보다 더 작기 때문일 것입니다.

앱스토어에 출시된 수십만개의 앱들 대부분이 가치가 없는 이유는, 아이디어가 기발하지만 사실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중의 아주 소수 앱들만이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성공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무시하고 상상속에서 문제를 만들어내 SW로 해결합니다. 제프 베조스는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고 고통이 큰 문제 (싼 가격에 물건사서 빠르게 받는것)를 해결합니다”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트위터, 블로거, 미디움 세개의 서비스를 연속해 성공시킨 에반 윌리엄스는 사람들의 공통된 문제중 하나를 골라, ‘기다리기 싫어함’, ‘생각하기 싫어함’ 두가지만 SW로 해결해주면 스타트업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SW의 성공은 고통의 정도가 큰 문제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내가 만드는 SW가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것은 SW개발하는 과정 만큼이나 즐거운 일입니다.

https://twitter.com/sm_park

Let it go

“An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 – Arthur Clarke
“모든 진보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 아서 클라크

frozen_elsa-wide

2014

오늘 블로그의 첫 배경 사진은 영화 프로즌의 여왕 <엘사>다. 2014년의 첫 글 치고는 다소 뜬금없어 보이지만, 오늘은 영화에서 느낀 비전(꿈)에 관한 내 감정을 일기처럼 표현해 보고 싶었다. 이런 글은 영화를 아직 못 본 분들껜 공감이 어려울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워드프레스의 Matt Mullenweg 가 이야기 했듯 블로그의 제1 가치는 미래에 다시 이 글을 읽을 내 자신이라 생각하고 ([1]) 그냥 표현해보기로 맘 먹었다.

2014를 맞이한 지금 이순간, 나는 참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이다. 행복한 이유는 예전의 블로그 <비전: 눈으로 보는 행위> [2] 에서 이야기 했듯 대학 시절에 가졌던 꿈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실력 쟁쟁한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삼줄 추리닝에 샌달 신고 다니며 신나게 코딩하는 것은 지금 매일 매일의 생활이 됐다. 예쁘고 착한 아내와 두 딸이 주는 가정에서의 안정감과 기쁨 역시 참 좋다. 집에서 하고 싶은 코딩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부족하지 않다. 지금처럼만 늙어간다면 인생이 아마 썩 괜찮을 것 같다….하지만,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 마음속 한 공간엔 감정으로는 느껴지는데 말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 블랙홀같은 공간이 있다. 불행함으로 표현한 그 공간에 비어있는 것은 <비전><꿈>이다. 10대때는 좋은 대학을 가는게 꿈이었고, 20대때는 미국 학교에서 공부하고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되는게 꿈이었는데, 이제 30대는 절반이 이미 지났는데 무슨 꿈을 꾸어야 하는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끝없이 전해지는 SW 창업자들의 성공 스토리는 운좋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비전은 단어 뜻 그대로 무엇인가를 <눈으로 목격>하는 것이다. 10대때는 활기넘치는 대학생들, 20대에는 자유분방한 미국 프로그래머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이번에는 뜻하지않게 딸 아이들과 영화 <프로즌>을 보며 또 한번 <비전>이 주는 강렬한 비쥬얼 효과를 느꼈다. 내가 “<프로즌>의 주인공같은 여왕이 되리라”고 마음먹은 것은 물론 아니다. 애니메이션 곳곳에 드러나있는 은유들 속에서, 프로그래머로서 내가 꿈꿔야 하는 것들을 찾았다는 뜻이다. 사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영화가 특별하게 느껴졌는지 알지 못했다. 일주일 내내 가슴이 벅찬 느낌, 그 이유를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천천히 내용을 곱씹어보고 YouTube 영상을 여러번 보고 나서야 <프로즌>이 내 머릿속에 어렴풋이 스케치해뒀던 다음 단계의 <비전>을 강력하게 시각화했음을 알았다.

프로즌

프로즌의 주인공 <엘사>는 손에 닿는 모든것을 얼게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갖고 태어났다. 마법은 아름다운 눈송이를 만들기도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사람들을 다치게하는 저주가 되기 때문에 <엘사>는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장갑을 손에 끼우고 살아야만 했다. <엘사>는 자신의 여왕 즉위식 날 처음으로 바깥 세상에 나와 조심스레 왕관을 받는다. 그러나 <엘사>의 마음속 깊은 두려움은 곧 주위를 얼어붙게 만든다. 그녀의 손을 저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피해 눈덮인 산으로 도망하는 엘사, 거기서 처음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게 된다. 아래의 동영상을 꼭 감상해야 블로그를 이해할 수 있다.

장갑 (두려움)
<엘사>는 어른이 되기까지 손에 장갑을 끼운채 살아야했다. 제어할 수 없는 두려움 때문이다.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것들이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것이 두렵다. 실제로 그 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어려서부터 각인된 <두려움>이 손을 장갑밖으로 꺼낼 수 없게 만들었다. 두려움은 <엘사> 자신뿐 아니라 주위를 해치는 감정이었다.

프로그래머로서의 내게 두려움은 내 머릿속으로 상상한 고유한 창조물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나게 코딩할 수 있다. 이미 가치를 인정받은 소프트웨어의 한 부분을 코딩하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이 상상한 세계를 머리에서 꺼내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다. ‘내 것을 창조해봤는데 그게 추한것이면 어쩌지?’ ‘내 상상력이 저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기라도 할까?’ ‘내 유치한 아이디어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 역시 내 손이 만드는 것이 두려워 장갑을 끼운채 살고 있다. 이제 나도 이 장갑을 벗어야겠다.

아름다운 창조물
눈덮인 산에 홀로 떨어진 <엘사>는 장갑을 벗고, 처음으로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손 위에서 빛어진 눈송이들의 아름다운 문양과 귀여운 눈사람이 즐겁다. 이제 자신감이 생긴 그녀는 이렇게 노래한다.

It’s time to see what I can do
To test the limits and break through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I’m free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때야.
내 한계를 시험해보고 그것을 넘어서보고.
내겐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무런 룰도 없어.
난 자유야.

절벽의 끝에 조심스레 발을 대니 얼음 다리(bridge)가 만들어지고, 이제는 거침없이 하늘위로 달려나간다. <엘사>가 달려나가는 하늘위로 다리가 채워져가는 장면은 너무 감격스러워 하마트면 울어버릴뻔했다.

elsa_bridge

코딩이 바로 <엘사>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창조해내는 마법이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주어진 과제들을 풀어나갈때는 문제의 숲속에 갇혀서 깨닫지 못하지만, 프로그래밍의 본질은 머신이 사람처럼 생각하게 하고 (구글), 정지해있는 것들이 움직이게 하며(자동차), 침묵하던 사람들이 말하게 하는 것이다 (페이스북). 그래서 “모든 진보한 기술은 마술과 구분할 수 없다”는 아써 클라크의 말이 옳다. 때로는 알고리즘이 어렵고 하드웨어를 이해하느라 머리 아프지만, 프로그래머는 <창조주>, <마법사>로서의 감격을 잊어선 안된다.

<엘사>는 처음부터 다리나 거대한 궁전을 만들지 않았고 눈송이, 눈사람을 만들어보며 즐거워했다. 그리곤 자신의 한계를 하나 하나 시험해 나간다. 코딩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완전한 다리, 궁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손을 장갑안에 감추게끔 한다.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름다운 창조의 시작이다. 하지만 조심스레 내밀던 발로 하늘을 향해 달려나가듯, 우리 역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그걸 넘어서는것이 중요하다. 아써 클라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가능한 것의 한계점을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한계점을 넘어서 조금 더 나아가 보는 것이다”. 내 한계를 넘어서 아름다운 창조물을 만들고 싶은 마음, 그게 <비전> 이다.

얼음 궁전
<엘사>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얼음 궁전의 유일한 거주자는 <엘사>자신이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으로 갖게된 자유가 홀로 사는 외로움보다 더 중요했다. 이후 스토리가 더 진행되면 왕국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위해 마법을 사용하지만, <엘사>는 자신의 궁전에 홀로 살면서 창조하고 누리는 삶 역시 행복해했다.

‘내가 만드는 것이 추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은 그 창조물의 유일한 사용자가 <나> 일때는 더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코딩할때, 누군가를 위해 그것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때때로  상상속의 “사용자” 때문에 자신없고 비참해질수 있다. 폴그레이엄이 <스타트업 아이디어>[3] 에서 지적했듯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은 그래서 실패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내는 창조물 (아이디어)은 오로지 내가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야한다. <사용자>로서의 내가 기술의 최첨단에 서 있고, 나를 위해 만드는 프로그램이 그런 나 자신을 만족시킨다면 그럼 나는 세상에서 가장 진보한 SW를 만들어낸 것이다. 훗날 외로운 궁전에서 나온 <엘사>는 온 국민의 환호속에 여왕으로 귀환한다. 내가 만들고 스스로 누리는 그 SW 역시 같은 영광을 얻을지도 모른다.

<프로즌>의 주제곡은 이렇게 끝난다.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어차피 추위가 힘들었던 적은 없어.

내 귀엔 이렇게 들렸다.
The code never bothered me anyway. 어차피 코드가 힘들었던 적은 없어.

https://twitter.com/sm_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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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go 
The snow glows white on the mountain tonight
Not a footprint to be seen
A kingdom of isolation,
And it looks like I’m the Queen

오늘밤 산위에 눈이 하얗게 빛나고 있어요.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않아요.
고립된 저 왕국, 이제 보니 내가 그곳의 여왕이네요.

The wind is howling like this swirling storm inside
Couldn’t keep it in, heaven knows I tried Don’t let them in, don’t let them see
Be the good girl you always have to be
Conceal, don’t feel, don’t let them know
Well, now they know

회오리 폭풍속처럼 바람이 부네요.
감출수가 없었어요. 하늘은 알아요 내가 노력했다는 걸.
아무도 들이지마, 누구도 알면 안돼. 언제나 착한 소녀로 살아야 해.
감춰. 느끼지마. 아무도 알게 하지마. 하지만 이제는 모두 알아요.

Let it go, let it go
Can’t hold it back anymore
Let it go, let it go
Turn away and slam the door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이제 잡아둘 수 없어요.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뒤돌아서, 문을 닫아 버려요.

I don’t care
What they’re going to say
Let the storm rage on,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이제 신경쓰지 않아요.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폭풍은 계속 불어와도 돼요.
한번도 추위를 느낀적 없었으니까.

It’s funny how some distance
Makes everything seem small
And the fears that once controlled me
Can’t get to me at all

참 재밌어요. 조금 거리를 두었을땐 모든 것들이 작아 보이니.
한때 날 괴롭혔던 두려움은
이제 전혀 내게 없네요.

It’s time to see what I can do
To test the limits and break through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I’m free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때죠.
내 한계를 시험해보고 그것을 넘어서보고.
내겐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무런 룰도 없어요.
난 자유예요.

Let it go, let it go
I am one with the wind and sky
Let it go, let it go
You’ll never see me cry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지금은 바람과 하늘과 하나예요.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다시는 우는 모습은 없을거예요.

Here I stand
And here I’ll stay
Let the storm rage on

여기 내가 서있고
여기 내가 머무를거예요.
폭풍은 계속 불어도 돼요.

My power flurries through the air into the ground
My soul is spiraling in frozen fractals all around
And one thought crystallizes like an icy blast
I’m never going back,
The past is in the past

내 힘은 하늘과 땅에 흩날리고
내 영혼은 얼음 문양을 만들며 회오리쳐요.
한번의 생각이 얼음 폭풍처럼 크리스탈을 만들죠.
절대 돌아가지 않아요. 과거는 과거일 뿐이죠.

Let it go, let it go
And I’ll rise like the break of dawn
Let it go, let it go
That perfect girl is gone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새벽처럼 그렇게 일어설 거니까요.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그 완벽한 소녀는 이제 없어요.

Here I stand
In the light of day
Let the storm rage on,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여기 내가 서있어요.
낮의 빛 가운데에.
폭풍이 계속 몰아쳐도 돼요.
추위는 한번도 괴롭지 않았으니까.

[1] http://ma.tt/2014/01/intrinsic-blogging/
[2] 비전, 눈으로 보는 행위.
[3] 스타트업 아이디어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