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추억
창조경제부가 위기다. 큰 누님 등극후 언론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그들이 “진상의 거인” 윤창중에 의해 아웃오브안중이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어쩌면 언론의 관심에서 잠시 벗어난 지금 어디 다같이 MT라도 가셔서 SW 공부, 코딩 공부라도 다시 하는 일은 당연히 상상할 수 없겠다. 창조경제부의 수장 “최문기” 장관님.. 처음 이름을 들었을때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높은분 내가 알리가 없는데… 얼마전 그의 프로필을 훑어 보다가 내겐 잊을수 없는 단어를 발견했다.
“2001.10 : 그리드포럼코리아 의장”, “ICU 그리드미들웨어연구센터 최문기 소장”
아 그분은 내가 10년을 연구했던 그리드 컴퓨팅의 한국내 최고 책임자셨구나. 그래서 내가 그 이름이 친숙했구나. 이거 참 너무 반가워서 블로그를 안할 수가 없다. 기대하시라!
그리드 컴퓨팅. 10년전 SW 최고 핫 이슈! 이곳저곳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를 연동해 하나의 컴퓨터처럼 공유한다는게 비전이었고, 미국에선 제 2의 인터넷이라 불리며 정부에서 몇천억을 학교에 뿌려주던 그런 프로젝이다. 미국 따라하기 좋아하는 우리 역시 참여정부 출범직후 수백억을 학교에 하사한다. 창조의 역군 최문기님이 그 프로젝의 리더였다.
때는 2002년, 석사 1학년 “꼬꼬마”였던 나는 우연히 그리드 컴퓨팅에 발을 들였다. 수많은 논문을 읽으며, 나 역시 서양것들이 이야기하는 그런 “진짜” 그리드 시스템 — 여러개의 학교, 연구소의 컴퓨터가 연결되어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 을 만들고 싶었다. 상상하니 신이났고, 또 하면 할수 있을것 같았다 (이게 꼬꼬마의 문제다). 두가지가 관건이었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과 전국의 클러스터 컴퓨터를 모으는 것.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아, 이제 막 학부 졸업한 꼬꼬마도 맘먹으니까 되는구나 그때 알았다. 몇달간 밤새 프로그램을 만들고 전국의 몇개 학교 대학원생에게 클러스터를 사용해도 될지 이메일을 돌렸다. 과부사정 홀애비가 잘안다고 그들은 너그러웠고, 몇몇은 root 패스워드를 가르쳐주는 과잉친절까지 보였다. ‘이렇게 진짜 그리드 테스트베드가 생기는구나’, 그게 참 신이났다. 당시 채팅으로 열정을 나누던 타학교 학생들을 신촌까지 찾아가 만나고, 맥주마시며 신나게 연구 이야기를 하던 기억이 아련하다. 결과적으로 그 당시 꽤 잘나가던 국제 학회에 논문을 집어넣고 채택되는 행운을 얻는다. 사실 아이디어는 구닥다리였지만 아시아에서 테스트베드를 만들고, 실제 그리드를 만들어 실험했다는 그 사실이 서양것들에겐 신기했다. 자랑같지만 실제 한국에서 그리드를 만들어서 논문 채택된 것은 처음이고 마지막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연구하던 2년내내 그리드의 변방에 머물렀다. 내 연구결과를 가지고 교수님이 제안서를 썼고, 돈 얻으러 발표 다녀오신후 한마디: “어 그거 안됐어…거기 될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다 알더라고…”. 그리드 포럼 코리아, 창조의 역군께서 의장으로 계시던 그곳은 이미 네트웍이 단단해서 나같은 변방 학교 꼬꼬마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내가 논문을 어디에 냈건, 어설프지만 테스트베드를 만들었건 그게 큰 상관은 없었다. 그 분들은 이미 뛰어난 플랜을 가지고 계신 한국에서(만) 알아주던 전문가 들이니까. 2년간 그래서 좀 외롭게 연구하다가 미국에 나왔다. 결과적으로는 지금의 클라우드 회사에서 같은것을 만들고 있고.
그럼 정부의 돈을 다 빨아간 “그리드 포럼 코리아” 이 분들은 몇년간 무슨 일을 하셨을까? 처음엔 제법 서양것들처럼 조직을 만들었다. 포럼, 워킹 그룹, 리서치 그룹 등등. 회의도 많이 했다. 그리고 그분들은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비전을 담은 그림, 연간 계획도, 기술스택, 담당기관 연락처등등.. 몇년간 계획세우고, 그림그리고 발표하고…
그렇게 끝났다. 몇년 후 이젠 “유비쿼터스”가 대세라고 정부가 방향을 트니 예산이 사라졌고, 포럼의 교수들, 기관들 다 그쪽으로 돌아섰다. 나랏님이, 그 돈받는 교수님이 이제 유비쿼터스 하라시니 대학원생들은 별수가 없다.
몇년간 수백억 세금을 들인 사업에 남은 건 파워포인트와 그림들 뿐이다. 코드도 남지 않고, 사람도 남지 않았다. 허무한 그림만 여러개 구글 이미지 캐쉬에 남아있다. 아래는 당시 최문기 장관의 인터뷰 기사다.
“한때 ETRI에서 연구열정을 불사르기도 했던 최 소장은 “오는 2010년께는 지금보다 1만배 빠른 인터넷이 일상생활에 활용될 전망”이라며 “미들웨어 연구는 향후 예상되는 인터넷 트래픽을 해결하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소장은 산·학·연 컨소시엄을 활용한 공동연구로 미들웨어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석박사급 인력을 향후 4년간 50명 정도 배출할 계획이다.”
묻고 싶다. 약속했던 미들웨어 분야 코드는 어딨습니까? 전문인력 50명? 난 그동안 한 사람도 못 보았는뎁쇼?
관료의 나라
우리는 관료의 나라다. 최문기 장관도, “기가 코리아”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그 아래 윤종록 차관도 모두 한때 엔지니어였다. 언론은 그들이 한때 우리처럼 코딩하던, 그래서 현장감있는 새시대의 일꾼이라 칭찬하지만, 내가 경험한 그들은 모두 “관료”일뿐이다. 돈이 있는 곳에, 인기가 있는 곳은 제일 먼저 달려가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 팝송을 번역해 부르는 것처럼 미국의 인기 기술, 그 호사스런 미래상을 소개하는 사람들. 파워포인트에 미래상을 그려주면, 언젠가 진짜 엔지니어, 해커들이 그것을 이루어 줄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들. 그림만 그려대는 사람들, 그들은 관료다.
Licklider와 Arpanet
J.C.R. Licklider (http://en.wikipedia.org/wiki/J._C._R._Licklider). 20세기를 살았던 이상한 이력의 소유자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하버드와 MIT에서 교수를 하다가 60년대 처음 컴퓨터를 만난다. 그리고 쉴세없이 빠져들어가 심리학자가 코딩을 시작한다.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기계어를 직접 넣어야하는 어려운 코딩말이다. 컴퓨터에서 미래를 본 그는 교수 생활을 접고 BBN이라는 컨설팅 회사에 들어간다. 음향전문회사인 BBN을 설득해 비지니스에 아무 상관없는 컴퓨터를 구입하고, 몇명의 해커를 고용해 컴퓨터 부서를 만든다. 그는 곧 미 국방부의 연구 지원 프로그램 ARPA에 들어가 스스로 “공무원”이 된다. 그리고 두개의 프로젝을 시작한다. 프로젝과 시작 동기는 이렇다.
- MIT의 프로젝트 MAC: 그는 코딩을 하던중 비싸고 큰 컴퓨터를 혼자만 이용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임을 깨닫는다. 한대의 컴퓨터에 여러명이 접속해서 공유할때 컴퓨터의 진짜 가능성이 실현된다고 믿었다. 프로젝트 MAC은 처음으로 time sharing을 구현했다.
- ARPANet: ARPA의 사무실에는 여러개의 국방부소속 컴퓨터 터미널이 놓여있다. 여러개의 모니터를 왔다갔다하는 것이 불편해, 컴퓨터들이 서로 네트웍에 연결되면 얼마나 편할까 상상한다. 그리고 대학들을 네트웍으로 연결하는 프로젝을 시작한다.
프로젝트 MAC에서는 훗날 유닉스와, C 언어, 그리고 넓게 봐서는 리눅스가 나왔다. ARPANET은 네개의 미국 대학 컴퓨터를 연결해 인터넷의 전신 패킷네트웍을 만들었고, 그 핵심기술인 IMP(라우터)는 BBN에서 Licklider가 심어놓은 해커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TCP/IP의 아버지 Vint Cerf가 그의 프로젝 펀드로 연구하던 꼬꼬마 대학원생이다.
코딩하던 공무원은 Licklider 혼자가 아니다. 어느날 ARPA의 디렉터와 그 아래 ARPANET 책임자 사이에선 이런 대화가 오갔다.
ARPA 디렉터: “너희 ARPANET에서 만든 이메일을 쓰니까 정말 편하더라. 근데 난 이메일을 너무 많이 받아서 그거 관리하는게 정말 불편해…ㅠㅠ”
며칠후 ARPANET 디렉터: “내가 이메일 관리 코드를 짜봤어 한번 써봐.”
이렇게 세계 최초의 이메일 관리 프로그램을 고위 공무원이 만들었다. 그리고 그 코드는 곧 ARPANET 유저사이에 사랑받는 프로그램이 된다.
마무리
정권이 바뀔때마다 정부에서 외치는 구호에 학교들이 화답한다: “그리드”, “유비쿼터스”, “월드클래스 유니버시티”, 이제는 “창조경제”. 우리에게 더이상 큰 그림 그리는 사람은 필요 없다. 언론에 떠들어댄 몇조원 경제 효과, 수백명의 전문가 양성, 이제는 주워남을 수 없는 그 약속들이 부끄럽지는 않은가? “장관님, 차관님 코딩을 좀 하십니까? ” 물으면 아마 속으로 ‘내가 이 나이에, 이 자리에 그짓을 왜..?’ 묻겠지..하지만 우리에겐 해커의 심성을 지닌 사람, 즉 문제가 왜 문제인지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 절실하다. 문제를 정말 사랑하고, 그 본질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창조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
한때는 나와같은 엔지니어, 해커의 길을 걷던 “동지” 높은분들께 이렇게 묻고싶다.
“어이 부라더, 너 만에 하나 내가 C코드 짜라하면 그거 감당할 수 있긋냐?”
대답을 제대로 못할 시 연변 너드들이 찾아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