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you know – 번역과 생각

최근들어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발견한 사실은 더이상 긴 글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하루중 많은 시간을 트위터의 짧은 글, 페이스북의 사진들, 동영상을 즐기는데 소비한다. 물론 짧게 짧게 전파되는 트위터는 정보를 발견(discovery)하는데 최고의 툴이다. 그러나 그 툴 자체에 중독돼 링크의 목적지가 담고있는 유용한 정보들, 어쩌면 내 삶의 방향을 바꿀지도 모를 그런 내용들은 놓치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 페이스북에 긴 글을 올려서는 반응이 별로 없다는것도 알았다. 나 역시 누군지도 모르는 <페친>이 like한 유머스런 동영상에 손이가지 내 지인이 몇시간동안 생각하고 올렸을 긴 글을 파싱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짧은 글, 동영상은 탄산음료같은 짜릿한 맛은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변화시키는 그런 실제적인 영양가치는 없다.

이번에 번역하는 Paul Graham의 How You Know를 읽고나서 이 생각이 더 분명해졌다. 내가 읽는 글들은 비록 얼마후엔 그 내용이 잊혀질지라도 그 글이 남겨놓은 <세상을 바라보는 모델>은 계속해서 나의 행동과 가치관을 결정할 것이다. 140자 트윗들로만 내 머릿속 모델이 채워진다면 10년후에 나는 얼마나 정신없는 사람이 되어있을까?

How You Know 

http://paulgraham.com/know.html

나는 Villehardouin의 연대기를 그동안 두세번은 더 읽은것 같다. 그런데 그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기억해서 요약하라면 한 페이지를 간신히 채울수 있을까싶다. 내 책장에 꽂혀있는 몇백권의 책들에 시선이 옮아가면 덜컥 불안한 마음이든다. 이렇게 많은 책을 읽고도 기억을 다 못한다면 나는 왜 그리 시간을 낭비했던 것일까?

몇달전에 Constance Reid가 쓴 힐버트의 전기를 읽다가 이렇게 불안한 마음에 답이 될수있는 한 구절을 찾았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다:

힐버트는 수학강의들이 사실들만 나열하지, 학생들이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해결하는 훈련이 없는점에 질색했다. 힐버트는 학생들에게 문제를 잘 정의하는것이 이미 절반의 해답이다라고 이야기하곤했다.

이 말은 나 역시 그동안 중요하다고 느꼈던 부분인데 힐버트가 그렇게 이야기했다는걸 읽으니 내 생각에 더 확신이 생겼다.

그런데 난 처음에 어떻게 그런 생각(문제가 절반의 답이다)을 갖게된 걸까? 내 자신의 경험에 더해 그동안 읽었던 글들을 통해서일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글을 읽었던 바로 그 순간은 전혀 기억에 없다. 힐버트가 이렇게 얘기했다는 구절도 결국엔 잊고말것이다. 그러나 힐버트의 예화는 <그 생각이 맞다>는 내 믿음을 증가시켰고, 후에 힐버트의 말은 잊더라도 그 확인된 믿음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을 것이다.

읽기와 경험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모델을 훈련시킨다. 읽었던 바로 그 순간, 정확한 내용은 잊을지라도 읽기가 우리의 모델링에 남겨놓은 영향은 여전히 지속된다. 그래서 마치 우리의 마음은 소스코드는 잃어버렸지만 컴파일된 프로그램과 같다. 우린 마음이 동작하지만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는 모른다.

Villehardouin 연대기를 읽고나서 내 마음속에 남겨지는것은 정확한 내용이 아니라 십자군, 베니스, 중세문화, 포위전쟁등에 대한 내 마음의 모델이다. 내가 아주 집중해서 읽지 않더라도 책이 내게 끼치는 영향이 결코 작지 않다는점은 분명하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읽은것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고 걱정한다. 그런데 읽기가 실제로 이렇게 우리 생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걸 발견하면 모두 나처럼 놀랄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잊는다는것이 어떤면에서 다른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것도 알게된다.

예를들어 어떤 경험을 하거나 어떤 책을 읽는다면 그 경험은 바로 그 순간의 두뇌 상태에 따라 컴파일되어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면 같은 책을 다른 시점에 읽으면 그 책은 다르게 컴파일될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좋은 책들은 여러번 읽는것이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책을 다시 읽을때마다 사실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마치 나무를 잘못 잘라서 다시 작업해야 하는 목수의 마음이랄까… 그런데 읽을때마다 다르게 컴파일된다면 어쩌면 <이미 읽었는데>라는건 맞지않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좀더 나아가서 이게 꼭 책에만 국한된게 아닐지도 모른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우리가 가지고있는 과거의 경험을 다시 재생할수 있게될 것이다. 오늘날엔 사람들이 즐기기 위해서, 즉 여행 사진을 다시 본다든지, 아니면 두뇌의 버그를 고치기 위해서 (Stephen Fry가 노래를 못하게 만들었던 어렸을적 트라우마를 기억해낸것처럼) 예전의 경험을 다시 들추어본다. 그러나 경험을 기록하고 다시 재생하는 기술이 발달하면 사람들은 마치 읽은 책을 다시 읽는것처럼 예전의 기억들을 다시 현실에서 재생하고 그것들에서 다시 배우게 될런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단순히 기억을 재생하는것뿐 아니라 기억을 다시 정렬하고 고칠수있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미래엔 그럼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모델 자체도 바꿀수 있게될것이다.

https://twitter.com/sm_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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