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이야기 #2 – 천재들의 행진

2차대전을 둘러싼 시기(1940-60)는 아마도 “천재들의 행진”이라고 불러도 될만큼 컴퓨터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거인들이 가득하다. 전쟁이 조성해 놓은 급박한 분위기가 천재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고, 때마침 히틀러의 나치즘을 피해 미국, 특히 보스톤 지역으로 몰려든 유럽의 천재들 (예: 아인슈타인, 커트 고델, 폰 노이먼..)은 MIT, 하버드를 중심으로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고 토론하며 현재까지도 영향력을 미치는 학문 분야들을 만들어간다. 지난번 포스팅 [1]에서 다룬 인물 버네버 부쉬가 지휘하는 가운데, 미국 정부와 육/해/공군은 독일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기술들에 아낌없이 연구자금을 지원했고, 이 당시에 연구됐던 기술들은 실제 무기로 개발되기도 했지만, 훗날 많은 학문 분야들과 IT산업의 근본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컴퓨터의 개념과 결과물이 막 태어나는 시점이었던 1930-1945년의 특징은 수학, 철학, 인지학(두뇌를 다루는 학문), 심지어 생물학에 이르기까지의 분야를 섭렵했던 천재들이 혁명을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즉 단순히 기계의 조합, 계산기 수준의 생각으로는 컴퓨터의 탄생을 이룰 수 없었다. 17세기 라이프니츠의 꿈 (무엇이든 대답할 수 있는 꿈의 방정식)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사람의 본질과 생각(reasoning)의 원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컴퓨터를 상상해냈다. 그들에게는 컴퓨터란 독일군에게 보낼 포탄의 정확한 궤적을 계산하는 계산기 수준이 아닌, 사람의 마음(mind)을 심을 수 있는 기계였다. 그 천재들 중 하나가 노버트 와이너(Norbert Weiner) 였다.

노버트 와이너 (Norbert Weiner) (1894-1964)

한국에 천재소년 송유근이 있다면, 20세기 미국엔 노버트 와이너가 있었다. 와이너의 천재성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14세에 대학교를 졸업했고 17세에 하버드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 수학, 동물학, 철학을 모두 공부했다. 학위를 마치고 유럽으로 날아가 스승으로 삼은 사람들의 면면도 대단하다. 지구 최고의 철학자 버틀랜드 러쎌 (Bertrand Russell), 수학자 데이빗 힐버트 (David Hilbert), 하디 (G.H. Hardy) 등등. 한마디로 20세기 모든 지식이 그의 머리안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천재성 만큼이나 기행도 많았던 그는, 갑자기 노동문제에 관심이 생겨 기자로 일한다거나 전쟁시기엔 애국심때문에 군에 지원 복무하기도 하는등 “신동 증후군”을 톡톡히 앓았다. 그는 MIT의 수학과 교수로 평생을 연구에 몰두한다.

와이너가 컴퓨터의 발전에 미친 공적은 이것이다라고 하나를 내세우긴 힘들다. 그의 업적은 “피드백”이라는 개념을 공식적으로 도입한 학문분야 싸이버네틱스(Cybernetics)라 할 수 있는데, 싸이버네틱스의 피드백 컨트롤 개념은 훗날 인공지능, 인지학, 철학등에 걸쳐 다양하게 영향을 미친다. 말하자면 와이너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선구자쯤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피드백 컨트롤의 개념은 아래 그림처럼 아주 간단하다. 어떤 대상 (컴퓨터, 사람, 동물 등등. 그림에선 Process)에 인풋(Input)을 가하게 되면 그 대상은 그 인풋에 영향받아 측정할 수 있는 결과(Output)를 보인다. 그때 인풋과 아웃풋 사이에 대상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제어기(그림에선 Comparator)를 달아서 원하는 방식으로 대상을 제어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피드백 루프(loop)의 응용은 아주 광범위한데, 예를 들어 실내 온도 조절기엔 “아웃풋=온도, 인풋=냉난방기를 적용하게 되면, 제어기는 자동으로 원하는 온도를 맞추기 위해 냉난방기를 동작시키게 된다. 나아가 뉴럴 네트워크(Neural Network)이라는 인공지능 이론이 여기에서 출발한다. 사람의 뇌 기본은 뉴론(neuron)으로 이루어져있고 각각의 뉴론은 전자 신호를 인풋으로 받고 뉴론의 프로그램에 따라 다시 전자신호를 아웃풋으로 배출한다는 개념이다. 그리고 왼편 그림처럼 수도 없이 많은 뉴론들이 서로 통신하며 인풋/아웃풋으로 엮인 큰 네트웍을 형성한 것이 바로 인간의 뇌라는 개념이다. 이를 구현하면 곧 궁극의 AI 머신이 된다.

와이너는 인웃/아웃풋, 통신(Communication), 그리고 제어기(Controller)를 수학으로 표현(모델링)할 수 있음을 보였다. 그리고 이는 단지 전자기술 한 분야를 넘어 생물학,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깊은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세상의 거의 모든 존재들은 인풋-아웃풋, 그리고 그 사이에 위치해서 인풋을 아웃풋으로 바꾸어주는 제어기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지금 노트북 스크린을 보는 내 눈은 “인풋”, 그리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은 아웃풋, 둘 사이의 “보고 두드리는” 속도를 조절하는 뇌는 “제어기”라는 의미이다. 일종의 목적을 갖고 인풋/아웃풋을 조절해 주는 제어기, 이것을 현실에서 구현해 내는 것은 바로 우리 두뇌와 동일한 일을 하는 인공지능 기계를 만드는 일이다. 이렇게 와이너가 정의한 제어 이론은 현대의 전자공학, 인지과학, 인공지능등의 분야에 기초를 마련했다.

고독한 천재 튜링 (Alan Turing) (1912-1954)

애플 컴퓨터의 로고 “한입 베어문 사과”가 튜링이 자살하면서 베어 물었던 사과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애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이야기가 사실이기를 바란다. 컴퓨터 역사에서 튜링만큼 매력적인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릴만한 발견을 했고,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는 일을 했으며, 인공지능의 선구자 였던 사실들, 그보다 호사가들의 마음을 더 끄는 것은 그가 바로 게이였고, 영국정부로부터 강제로 호르몬 주사를 맞은 사실, 그리고 그로 인한 수치심에 독사과를 먹고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한 비극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비극적인 죽음을 맞지 않았다면 컴퓨터의 역사는 다르게 쓰여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말년에 그가 몰두한 연구는 인공지능이었고, 최근에 iPhone의 Siri가 큰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면 말이다.

튜링이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리는 것은 그가 상상한 튜링 머신 때문이다. 튜링 머신은 이전 포스팅 [2] 에서도 소개했는데, 형체를 가진 기계가 아니다. 튜링이 고안한 일종의 가상의 기계인데, 사람이 사고(thinking)할때의 과정을 표현한 모델이다. 튜링 머신은 정보를 읽고 쓸수 있는 무한한 길이의 테이프 (카세트 테이프라고 생각해도 OK), 테이프 좌,우로 움직이며 정보를 읽거나 쓰는 헤드, 그리고 언제 어떻게 테이프 내용을 업데이트 할지를 결정하는 제어로직(현대용어론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튜링머신을 이해하기 위해 간단한 곱셈을 예로 들어보자. 15×24 라는 곱셈을 할때, 우리는 이런 과정을 거친다 (암산이 가능한 천재들도 한번 따라해 주시길..).
    15
x  24
——–
60
+300
——–
=360

처음에 테이프엔 왼쪽 맨 윗처럼 문제만 써있다. 제어 로직엔 오른쪽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곱셈 방법이 프로그램 돼있다. 헤드는 테이프 내용을 읽어가며 곱해질 숫자의 맨 끝자리 수(4)를 찾은 다음 그 전 수 (15)를 곱한 중간 결과(60)를 테이프에 적는다. 이번엔 곱하는 수의10의 자리 (2)를 찾아서, 다시 그 전 수(15)를 곱하고 중간 결과를 적는다 (300). 끝으로 헤드는 중간결과값 적은 자리를 찾아가서 60과 300을 각각 읽어 들이고 두개를 더한 값을 테이프의 맨 끝에 적고 계산을 마친다.  위의 간단한 곱셈식은 튜링 머신으로 할 수 있는 “논리적 사고(thinking)” 의 간단한 예다. 결론적으로 테이프, 헤드, 제어정보로만 이루어진 튜링 머신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논리적 사고를 표현할 수 있다.

그 다음 튜링이 보인 결과는 더 경이롭다. 튜링은 제어로직과 인풋데이터로 이루어진 튜링머신을 텍스트로 쓰고, 이를 또 다른 튜링머신 (Universal Turing Machine)에게 주어서 시뮬레이션 할 수 있도록 만들수 있음을 보였다. 즉, 위의 예에서는 복잡한 곱셈에 쓰이는 제어 로직(일의 자리, 십의 자리 순으로 계속 곱해나가고, 중간 결과값을 더함)을  [*, +, 헤드 이동…] 등의 일련의 텍스트로,  15, 24라는 인풋 데이터와 함께 테이프에 기록하는 것이다. 그럼 유니버설 튜링머신은 테이프에 새겨진 곱셈의 제어로직이 하라는 그대로 인풋 데이터를 가지고 수행하게 된다. 아하, 이렇게 튜링은 컴퓨터를 인류 최초로 상상한 것이다! 다음편에 소개할 폰 노이먼에게 튜링의 상상은 한줄기 빛이 된다.

이렇게 천재들은 인류의 역사에 큰 공헌을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인생은 불행하게 마치는 것이 공통적이다. 강제로 호르몬주사를 맞아 가슴이 여자처럼 커지는 수모를 겪고, 결국은 독사과를 베어 물고 죽어야했던 튜링 (최근 영국 정부는 튜링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기술이 전쟁에 미치는 영향을 목격한후, 정부의 연구 자금을 스스로 끊고 일생을 함께 보낸 친구들 (폰 노이먼등)과의 관계마저 절교해 말년을 외롭게 보낸 와이너. 그리고 여기에 언급하진 않았지만 튜링보다 앞서 라이프니츠의 문제에 답을 한, 20세기의 최고 수학자 커트 괴델(Kurt Godel) 의 말년은 더 슬프다. 괴델은 정신불안에 시달리며 자신 아내이외의 사람이 주는 음식에 독이 들어있다고 의심하고, 아내가 병으로 입원해있는 동안 홀로 굶어죽고 만다. 빛나는 천재의 마음(mind)은 세상을 밝게 만들었지만, 그 밝음만큼 내면에 간직해야 했던 어두움은 그들 자신의 인생을 불행으로 몰고 간 것이다.

(다음 편은 폰 노이먼과 에니악, 에드박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_^b).

– 박상민 http://twitter.com/#!/sm_park

[1] 컴퓨터 이야기 #1 – 생각에서 기계로
[2] 소프트웨어, 하드웨어의 아버지

6 thoughts on “컴퓨터 이야기 #2 – 천재들의 행진

  1. 글솜씨가 좋으셔서 너무 재밌네요^_^ 폰 노이먼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응용수학자인데 담편도 기대합니다.. 이렇게 좋은 글에 리플이 없다니 아쉬워서 하나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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